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 중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재미있다. 책에 대한 책이지만 모두 다섯 꼭지로 나눠 풀어낸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두 번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읽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설명하는 것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현재도 유효하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해설서나 요약본을 읽은 책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책들에 영향을 받아서 아는 척한 것도 상당하다.

 

다섯 이야기 중 앞의 세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이야기는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요즘 같이 직접적인 성묘사와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프랑스 혁명 전의 포르노소설이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다르다. 루소마저 포르노소설 <신 엘로이즈>를 썼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닐 것 같은데 책 속 그림을 보면 또 다르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보인다. 이것은 다시 성과 권력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성과 권력을 관계를 아주 잘 풀어내었다. 래리 플린트의 멋진 비유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앞에서도 말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에 대한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읽었지만 그 책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코페르니쿠스뿐만 아니라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대한 멋진 해설을 붙인 번역서가 오히려 프랑스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여기서 우리가 가진 몇 가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사례를 말한다. 그것은 뉴턴과 갈릴레오다.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닦은 뉴턴이 연금술사였다는 사실과 실제 갈릴레오가 한 일이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고전에 대한 해석이다.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란 제목인데 여기서 주로 다루는 두 저작물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공자의 <논어>와 <성경>이다. 이 세 편의 고전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죽은 후 쓰인 책들이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들이 글로 남은 것이다. 문헌학적으로 이 세 작품이 모두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예수가 직접 쓴 것도 아니고 그 말들도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고전이나 종교적 권위에 기대야 하는 집단에게 있어 이것은 신성불가침한 말씀이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이 책들의 해석보다 더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네 번째 이야기는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성과 양육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교육에 의한 것인가다. 이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읽는 내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내용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량도 가장 많다. 진화생물학, 우생학, 사회생물학, 유전공학,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아주 섬뜩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특히 우생학이 사회생물학과 유전공학으로 이어졌다는 대목은 깜짝 놀랄 사실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의 번역 서문을 그대로 다시 실은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상식을 깨트린다. 그리고 책의 학살이 과연 어떤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현대 도서관 깊은 곳에서 보존만 된 책 학살되고 있는 책들이 있다고 할 때 진정한 학살자는 누군지 알려준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나 고전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고정관념들은 어떤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에서 갈릴레오를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140쪽) 이런 통찰이 나오게 된 되는 책 곳곳에서 말하는 비판적 읽기와 하나의 사건이나 학설을 비교 대조해서 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일반적인 독자에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균형 잡힌 독서도 어렵지만 원문에 대한 다른 번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한두 번 거친다면 분명 그만큼 성장하고 나아갈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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