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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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서른을 지난 작가의 파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 속 공간인 파주는 요 근래 자주 가는 곳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아울렛을 구경하고, 드라이브하면서 출판단지를 둘러보는 곳이다. 예전에 자유로를 무작정 달렸던 그때, 파주는 그냥 도로를 달리면서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곳에 누군가가 살면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웃고 즐거워했을 것이란 생각을 거의 못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 마을은 언제나 그렇게 다가온다. 물론 그때는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조금은 황량한 곳이었다. 지금처럼 공장이 많지도 않았고, 구경거리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공간과 시대를 산 여섯 명의 청춘들 이야기를 다룬다.

 

화자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기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친구들로 이어진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같이 어울려 다녔는지 간단히 소개한다. 이 간단한 소개는 파편적이다. 그 사이에 현실과 ‘나’의 영상 작업이 짧게 끼어든다. 중요한 사건들은 과거에서 벌어지고, 이 과거는 결국 현재로 이어진다. 파편적으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나’의 DSLR 영상 모습이다. 이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풀어내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나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웃고, 울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여섯 명의 친구는 주연, 송이, 수미, 찬겸, 민웅 등이다. 여기에 주연의 연년생 오빠 주완이 있다. 이 일곱 명의 청춘들이 어떻게 그들의 학창시절을 지나왔는지 보여주면서 현재의 삶도 같이 그려낸다. 이 과정에는 첫사랑의 죽음, 결핍, 단절 등으로 힘들어 하는 ‘나’가 있다. 물론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다. 인도에서 살다 와 한국적 서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연이 있고, 학교 최고 미인과 사귀다 차인 후 가출한 학교 아이돌 민웅과 그를 짝사랑했고 외삼촌의 폭력 아래 살아야 했던 수미가 있다. 분홍빛 돼지처럼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가 최과의사로 성공한 찬겸과 귀여운 요괴 얼굴에 멋진 몸매를 지녔고 패션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송이가 있다.

 

너무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다 보니 불과 얼마 전 유행했던, 사용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의 유물처럼 다가온다. 이 추억과 기억들은 읽는 동안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나’가 주완처럼 고장난 삶을 살고, 이 삶을 힘들어 할 때도 그녀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 읽다 보면 부러운 친구들이다. 남녀 공학을 다니지 못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유대감이다. 대학 때 친구나 선후배들은 결혼 후 겨우 연락만 가끔 하는 사이로 바뀌었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워진다. 이들도 나중에 우리처럼 변하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작가가 ‘나’를 통해 보여주는 문장은 경쾌하고 밝고 톡톡 튄다. 이 문장과 전개 때문에 처음에는 그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한 사람의 성장이, 아픔이, 붕괴가 그렇게 있을 것이란 상상도 못했다. 낯설어야 하는 순간에도 각자의 개성은 빛을 발하고, 서로 연결된다.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되고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나’의 고장이 고쳐지는 과정에 그녀의 영상이 주연의 편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이것은 감정 과잉에 있던 ‘나’의 감정을 덜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더 많이 덜어내고 짤라 낼수록 더 좋은 영상이 만들어졌다는 말이나 이제는 자신이 더 잘 한다는 말에서 성장한 그녀의 삶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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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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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2010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제 나왔다. 지금이라도 나와 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더 빨리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직 두 권이 더 출간되어야 하는데 과연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덱스터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읽다보면 과연 그가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검은 승객과 함께 소시오패스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그가 딸 릴리 앤의 출생과 더불어 완전히 말랑말랑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읽는 내내 적응이 필요했다.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덱스터에 대한 세부적인 기억들이 상당히 희미해졌다. 드라마도 시즌 2까지 보고 다르게 흘러가는 것 때문에 중단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평범해지려고 하는 덱스터가 낯선 것은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그런데 덱스터가 말랑말랑해진 만큼 상대는 더 극악해졌다. 이번 상대는 식인을 하는 무리다. 원 제목에 덱스터는 맛있다고 한 것도 이것과 연관성이 있다. 처음에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고 해도 사람을 먹을까 생각했는데 뒤로 가면서 드러나는 증거들은 식인을 가리킨다.

 

딸의 출생을 본 후 평범해지려는 그는 검은 승객을 어둠 속으로 몰아내려고 한다. 그의 DNA에 새겨진 검은 승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빠의 본능이 이것을 자꾸 억누른다. 이때 사라졌던 그의 형 브라이언이 나타난다. 양아버지에 의해 훈련 받은 덱스터에 비해 브라이언은 훨씬 도발적이다. 릴리 앤과 더불어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그에게 위험 요소가 나타난 것이다. 리타의 두 아이도 평범한 아이들로 만들려는 그의 노력이 흔들린다. 그의 가족들에게 덱스터의 형임을 내세워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감추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가 어느새 가족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존재로 바뀐다. 덱스터는 더 불안해진다.

 

덱스터가 가족 속에 안주하려고 할 때 데보라는 더 일에 매달린다. 덱스터의 정체를 아는 그녀는 오빠를 불러 사건 현장에서 정확한 단서를 찾고자 한다. 이 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검은 승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덱스터의 마음은 딸에게 가 있다. 이 때문에 그의 활약은 예전과 달리 미미하다. 납치된 것처럼 연출된 두 여학생을 찾아야 하는 데보라에게 이것은 아주 큰 스트레스다. 이 두 아이 중 한 명인 스파노스가 사람들에게 먹힌 것처럼 발견되었을 때 그 극에 달한다. 빨리 찾지 않으면 다른 아이 사만다도 사람들 배속으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숨겨진 비밀과 반전이 있다.

 

덱스터가 부드러워진 만큼 강하고 잔혹해진 악당들은 그 정체가 숨겨져 있다. 유력한 용의자는 억만장자 시의원 아버지의 그늘에 안전하게 숨어있다. 사라진 소녀 사만다를 찾기보다 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덱스터에게 이 일은 검은 승객의 본능을 깨우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데보라에게 끌려다닐 뿐이다. 물론 검은 승객은 중요한 순간에 살짝 깨어난다. 하지만 그뿐이다. 검은 승객과 함께 적을 계속해서 쫓지 않는다. 은밀하고 계획적이면서 치명적인 그가 순간 사라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단 한 번 일으킨 살인 후 그가 보여준 행동은 그의 현재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덱스터 시리즈를 읽다 보면 세상이 정말 흉악하고 독특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라면 그렇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현실이 상상을 압도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에 그렇게 무심코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형 브라이언의 출현은 다음에 분명 어떤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시리즈 다음 권이 <Double Dexter>인 것을 보면 더욱 더. 다음 권에서는 이번과 달리 원래의 덱스터가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부드러운 덱스터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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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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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이 소설에서 메르카토르는 불친절하고 황당하고 오만하고 무책임한 탐정이다. 모든 사건에서 그가 말한 논리의 결과는 항상 옳다. 그런데 이 결과가 기존 명탐정과 다르게 어처구니없다. 어떻게 보면 그가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그를 처음 만난 작품이 <붉은 까마귀>인데 이때 모습은 이 소설집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자존심 강하고 직관과 통찰력이 탁월한 그가 보여주는 몇몇 행동은 사디스트 같다. 분명하게 말해 그는 기존 탐정 소설의 탐정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첫 단편 <죽은 자를 깨우다>에서 1년 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와서 새롭게 벌어진 살인사건을 풀어낸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결과가 이상하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면 분명히 맞는데 꼭 집어서 범인을 지정하지 않는다. 처음 이 추리를 듣고 느낀 감정은 정말 무책임하다는 것이었다. 등장부터 불친절하고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계속 읽으면 묘한 매력이 있다. 물론 이 매력이란 것이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질 것이다. 기존 추리소설에 빠져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황당하고 무책임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조직력을 갖춘 경찰이다.

 

이 소설집에 대해 한 편씩 이야기를 풀어내면 아마도 스포일러로 가득할 것이다. 이미 위에서 하나를 내놓았는데 뒤에 이어서 나오는 네 편은 기존 추리소설의 통쾌함을 완전히 뒤엎어버린다. 그가 통찰력과 추리를 통해 풀어내는 결과가 그와 함께 다니는 추리소설가 미나기조차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수 겸 동반자로 설정된 미나기의 직업을 추리소설가로 정한 것 자체가 기존 탐정 소설에 대한 반전 혹은 도전을 노린 것인지 모른다. 범인 찾기와 트릭으로 가득 찬 미스터리 소설에 작가는 이 메르카트로를 등장시켜 정면에서 도전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한정된 세계를 열린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의 당혹감과 황당함은 허무한 동시에 묘한 쾌감을 준다.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이란 소설에서 추리소설의 억지를 황당하고 코믹하게 보여줬는데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의 장르적 공식을 산산조각낸다. 특히 마지막 두 편 <대답 없는 그림책>과 <밀실장>에 오면 그 극에 도달한다. 작가에 대한 평이 본격 미스터리의 이단아란 말이 있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이 작품을 즐기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메르카토르가 말한 것이 정답이라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역자의 말처럼 메르카토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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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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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작품 <런 어웨이>를 읽고 이제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몰입해서 즐겁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었다. 열네 편의 단편이 그녀의 첫 단편집처럼 나를 미로 속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높은 집중을 요구하는 섬세한 문장과 구성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난번에 잘 읽혔던 것은 이번처럼 짧은 호흡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 연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낯선 지명과 낯선 이름은 더욱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면 뭐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열네 편 중 마지막 네 편은 자전적이고 가장 내밀한 이야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내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기존 소설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단지 그녀의 삶의 한 단면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녀의 기억과 추억 등이 문장으로 변해 흘러나왔을 때 그 낯선 시골 마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상황을 만들어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풍경은 지독하게 개인적이다. 작가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의 이미지로 변한 것이다. 가보고 경험하지 못한 곳과 일을 상상한다는 것은 이런 자기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 한곳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언제나 단편을 읽다보면 호불호와 집중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작가는 어느 한 순간을 다룬 작품도 쓴 반면 순간과 순간의 사이를 몇 십 년으로 만든 단편도 썼다. 단편 속에서 시간의 비약이 발생하면 더 몰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만남의 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작품에서 나는 이 순간을 놓쳤다. 정제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 왜? 라는 의문을 달고 고민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서 먼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자존심>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읽으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다. 앞에 나온 이야기들과 이 장면을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문장에서 그 한순간의 행복을 잠시 느낀 것이 전부다. 이것은 <아문센>의 마지막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감정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숨겨져 있던 사랑의 감정이 변함없었다는 것인지. 물론 이런 문제는 가끔 천천히 다시 읽게 된다면 많은 부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직 아니다.

 

삶 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는 것도 있다. 먼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충동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때문에 불륜 혹은 자유에 대한 환상이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아이를 잃을 뻔하기도 하고, 감정의 미묘한 틈 사이로 들어온 과거가 가출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동안의 만남이 빤한 결혼으로 이어지기보다 반전을 펼치고, 순간의 충동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이런 남녀들의 사연을 정밀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내었다. 단지 한 순간의 장면에 집중했다면 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더 많이 이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조용히 다시 펼쳐 본 곳에서 몇 문장을 읽으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다시 차분하고 느리게 읽어야 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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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까마귀 1
마야 유타카 지음, 하성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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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읽고 난 후 서평 쓰기가 어려운 책이 있다. 왠지 모르게 포인트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헤매기 때문이다. <붉은 까마귀>가 그렇다. 다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바로 서평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바쁜 일과 다른 책 때문에 밀리다보니 현재까지 흘러왔다. 처음엔 내용을 복기하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소설을 생각해보자는 기특한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금방 쓰기 싫었다. 이 소설 속 탐정 역인 메르카토르에 대한 불만과 서술 트릭도 한몫했다.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낼 자신도 없었다. 지금 머릿속으로 기억을 더듬고 첫 문장을 고민한다.

 

카인과 아벨.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두 형제다. 이 소설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카인은 자살한 동생 아벨이 머물렀던 마을 노도를 찾는다. 이 마을은 지도에는 없다. 산 속을 헤매다 까마귀들의 공격을 받고 죽기 직전에 가시라기에게 구해진다. 이 인연으로 그는 노도에 머물게 되고, 동생 아벨의 자살 이유에 대한 답을 찾는다. 이 과정에 마을에서는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엄청나게 폐쇄된 마을에서 정말 드문 사건이다. 오카가미를 섬기는 마을 사람들은 살인자의 팔뚝에 징표로 반점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옛날에 살인자의 팔에 반점이 나타난 적이 있어 마을 사람들의 믿음은 굳건하다.

 

깃카와 오카도 형제다. 깃카는 동생이란 이유만으로 일에서 상대적으로 해방되어 있다. 형인 오카는 어머니와 함께 논과 밭을 돌면서 일을 해야 한다. 겨우 두 살 차이가 날 뿐인데 어머니는 동생을 애라고 부르고 일을 면제시킨다. 역시 아직 어린 형의 입장에서 이것은 불합리하다. 그 또한 놀고 싶다. 오카의 감정은 동생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깃카는 자신의 것을 잘 누리면서 자유롭게 논다. 이 노는 일 중 하나가 살인 사건의 탐정 역할이다. 그 탐정 놀이의 대상은 노나가세 아재의 죽음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했는데 그의 눈에는 자살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마을 밖을 동경했던 깃카에게 아재는 소중한 이야기꾼이자 정보원이었다.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마을 노도와 오카가미의 절대성을 믿는 마을 사람들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여기에 두 형제의 이야기가 있다. 카인과 아벨, 오카와 깃카다. 외부인 카인이 형이자 화자라면 내부인 깃카는 동생이면서 화자다. 이 둘은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각각 다른 시각에서 다른 사건을 주시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면서 교차하는 구성이다. 이 과정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들은 외부와 내부의 시선 차이를 잘 드러내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차이가 좁혀진다. 정보의 양이 늘어나고 마을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보게 되면서 벌어진다. 범인 찾기의 객관성을 문제 삼는다면 결코 공정한 전개가 아니다. 이것은 반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노도라는 마을은 상당히 특이하다. 고립된 마을은 일본색이 강하게 드러난다. 노도는 오카가미의 절대적 지배 아래 운영되는 마을이다. 절대 권력 아래 위계질서가 잡혀 있다. 밖으로 보기에는 신정 아래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인간의 욕망은 무시무시하다. 고립된 마을 특유의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이 배타성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마을의 숨겨진 역사가 드러날 때 평화로워 보였던 마을 사람들의 탐욕과 폭력과 잔인함이 폭발한다.

 

사실 메르카토르가 탐정 역을 한다는 것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이 때문에 용의자 중 한 명으로 그를 올려놓기도 했다. 모른다는 것이 큰 재미를 주는 경우다. 강한 일본색이 한정된 공간 속에서 펼쳐질 때 지금까지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한국 추리소설을 읽을 때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강한 서술 트릭으로 전체를 구성하고, 모든 사건 해결에 가장 중요한 단서와 증거를 숨겨 놓고 끝까지 간다.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단서를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다른 책을 구해놓았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작가에 대한 호불호는 그 이후로 미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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