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현학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미스터리가 밋밋하지만 재미있다. 제목에 미학강의가 있기에 설마 했는데 주인공은 진짜로 현학적인 지식을 쏟아낸다.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이 일반 미스터리와 다르다.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별명인 검정고양이로만 불리는 24살 천재 교수다. 화자는 검정고양이의 조수 역할을 맡는 동시에 그와 묘한 로맨스를 만든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시 한 편 포함)이 실렸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화자의 전공이 에드가 앨런 포라는 것과 각 단편 앞에 포의 단편소설에 대한 요약 해설을 간단하게 실었다는 것이다. 이 단편이 미스터리와 연결되면서 풀어져 나오는 현학적인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어떤 순간,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강의일 수도 있다.

 

포의 다섯 단편과 한 편의 시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검은 고양이>,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도둑맞은 편지>, <황금충>, <까마귀> 등이다. 너무 유명한 단편들이다. 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때 읽은 후 벽에 대한 환상으로 공포감을 느꼈던 <검은 고양이>다. 한참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검정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의 명칭이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마 이 단편이 없었다면 끝까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 번씩은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뭐 우리의 검정고양이가 멋진 추리와 해석을 곁들여주니 상관없지만.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다보니 조금 밋밋한 부분이 있다. 물론 <검은 고양이>를 매개로 한 <벽과 모방>은 여전히 섬뜩함이 있다. 하지만 이 서늘한 감정은 화자의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면서 생긴 것이다. 단순히 추리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는데 현학적으로 풀어내는 상황들이 독특하다. 이것은 검정고양이가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고 신선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풀어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가득 든다. 뭐 이런 부분이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여섯 미스터리가 일상에서 발생한다. 죽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은 살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묵은 혹은 숨겨진 마음을 찾거나 어릴 때 충격으로 모방자의 삶을 살거나 착각으로 오해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의 감정을 지우거나 집착으로 인한 발전과 분열을 경험하거나 엇갈린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탐정 역을 하는 검정고양이는 완벽하다. 이 완벽함이 주는 재미가 상당한데 이에 도전하는 화자의 모습은 귀엽다. 이 때문에 이 둘의 로맨스가 은근하게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재미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 미스터리를 해설해주는 검정고양이의 현학적인 미학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에 적응하면 재밌고, 아니면 지루한 철학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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