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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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힘든 시기에 정미경 작가를 알게 됐다. 비록 단편 하나였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읽었고, 이번에 <내 아들의 연인>을 읽었다. 역시 정미경 작가의 작품은 어느하나 따분한게 없다.

[너를 사랑해] 충격적인 설정과 간간이 등장하는 사회이슈가 매력적인 단편이다. 회장이 맡긴 계좌로 투자하다 돈을 날린 화자, 미인계를 쓰기로 한다. 오랜 연인사이인 여자친구 Y를 회장에게 소개시켜 눈을 멀게 하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셋은 만나고(p.24), 회장은 Y에게 빠져 버린다. 화자의 계획은 성공한 것일까? 시작은 했지만, 막상 둘의 관계가 진행되자 화자는 어쩔 줄 모른다. 도리어, Y는 "자긴,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어?"(p.48)라며 느긋해 한다. 이들의 기묘한 삼각관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이야기 중간중간 연예인 학력위조 사건, 신정아씨 사건, 탈레반 인질사건, 심형래감독의 D-WAR를 연상시키는 내용도 등장한다. 저자의 의도가 어떤 것이던 간에 그 자체만으로 흥미로웠다.)

[내 아들의 연인] 내 여자친구를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할까? 예비 며느리에 대한 살뜰함? 왠지모를 질투의 시선? 가끔 생각하곤 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도란이란 귀여운 이름을 가졌다. 요즘 아이같지 않게 낭비벽도 없고, 조용조용, 귀여운 도란이. 아들과 도란이 사이를 가로막는 건 돈이다. 신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상류층인 아들과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도란이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은 의외로 공고했다.

어머니인 화자는 도란이를 만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점점 호감을 갖는다. 손으로 직접 뜬 목소리를 선물받고는 '가슴이 아련해졌다'(p.141)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도란이의 모습에서 자기를 발견한 건 아닐까? 가난한 초핀대신 지금 남편을 선택했던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건 아닐까? 표제작에 걸맞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매미]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귀속에서 울려퍼지는 매미소리로 힘들어 하고 있다. 외국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부터 매미소리는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힘겹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힘겹게 하는 것은 매미소리뿐이 아니다. 하루 종일 못질하는 윗층남자, 바로 층간소음(p.182)이다. 견디다 못해 분노를 터트리는 화자의 모습(p.183)은 그 사실적 묘사에 경악했다. 누구나 한번은 경험한 일 아닐까? 화자의 분노가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작가님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한 작품이다. 단편 하나하나 깊이 공감하며, 고민하기도 하고, 때론 웃으며 즐겁게 읽었다. 아직 정미경 작가님의 진가를 모른다면 얼른 읽어 보시길.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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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매미는 저 역시 공감백배예요. 역시 역량있는 작가의 책을 한권 읽으면 모조리 찾아있게 되는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가봐요...^^

쥬베이 2008-07-11 18:1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칼리님도 그러시구나^^
저는 미친듯 전작수집에 돌입하기도 해요ㅋㅋㅋ
 
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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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모 작가) 이런 말을 했다. '작가가 너무 쉽게 쓰면 독자는 작가를 만만하게 여긴다'라고. 이 말을 듣고 기겁했다. 그럼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렵게 쓴단 말인가? 은희경 작가의 작품은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고, 이게 두 번째 작품이다. <비밀과 거짓말>이 얽히고 설킨 인물관계와 복잡한 플롯으로 기억에 남았다면,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다른 차원에서 '복잡'하다. 물론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읽기에는 수월하지만, 스토리라인이 흐릿한데다 소설자제가 몽롱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그것이 꿈이었을까>는 몽환적, 초현실적, 나아가 기이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특히 레인캐슬과 레인캐슬에서 만나게 되는 마리아는 이런 분위기의 결정체이다. 결국엔 제목처럼 '그건 꿈일까?'라는 의문에 봉착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조차 모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의대생인 준과 진은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해보자며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레인캐슬로 향한다. 레인캐슬을 둘러싼 환경은 기괴하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 시체안치실 같은 식당, 모든 장소를 빠짐없이 비추는 조명, 거기다 언제나 내리는 비까지. 공포영화속 그것을 떠올리면 딱 들어맞을 듯. 거기다 화자인 준은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괴함. 한편, 준과 진은 수녀원에서 도망쳤다고 주장하는 마리아란 여자를 만난다. 마리아의 정체는?

준은 한미라라는 여성(마리아와 한미라가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_-)과 숨바곡질 같은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시간이 흘러 준은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떠나며, 진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상한 만남, 이상한 맺어짐. 그렇게 이야기는 안개속에서 이어진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사랑하는 다나다군>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이가 있다. 과장과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사랑하는 다나다군>에 비해 이 작품은 훨신 세련되고 진중하다. 또한 스토리라인 역시 오사무의 작품보다 간략하며 안정감이 있다. (양자를 비교하는 거 자체에 분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ㅋㅋㅋ) 하지만, 음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로린 마젤이 지휘한 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비틀즈의 음악),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유사하다.

강렬한 스토리라인을 중시하는 입장에선,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다. 내용자체가 모호해 붕 떠 있는 듯하고, 이야기의 몇몇 연결고리는 마음에 걸린다. (준의 갑작스런 프라하행이 대표적) 하지만, 소설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인상적이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숨겨져 있는 뭔가를 어렴풋이 본 듯하다. 모호하고 답답한 저 코멘트처럼, 읽는내내 안개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 표지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메랄드 빛 배경에 실루엣만 흐릿한 여성이 첼로를 켜고 있다. 홀로그램식으로 반짝이는 별은 포인트. 화면으로 보이는 이미지로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보라.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표지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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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7-0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거 관심가는데요?!!!+_+

쥬베이 2008-07-09 15:17   좋아요 0 | URL
ㅋㅋㅋ환상적인 분위가 상당히 매력적이 작품이에요.
하지만 저는 쫌^^

칼리 2008-07-1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잊고 있던 작가였는데 쥬베이님 덕분에 다시 되새겨 보게 되네요^^

쥬베이 2008-07-11 18:13   좋아요 0 | URL
저는 은희경작가하고 맞지 않는거 같아요
이 작품도 그렇고, <비밀과 거짓말>도 그렇고...
큰 감흥이 안오더라고요

다락방 2008-08-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저는 은희경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새의 선물』이나 『마이너리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퍽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재미도 없더군요. 『비밀과 거짓말』도 읽기 어려웠구요. 저도 그 두 작품이 저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쥬베이 2008-08-16 11:41   좋아요 0 | URL
우와 신기하네요^^ 동지감이 팍팍ㅋㅋㅋ

<비밀과 거짓말>은 일부러 어렵게 쓴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 마음에 드는 작가는 아니에요...
 
색에 물들다 2 - 침묵하다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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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 <색에 물들다>는 강렬한 원색표지처럼 빛나는 책이다. 사실, 생소한 티벳작가의 작품이라 걱정을 했다. 지루하진 않을까, 번역은 매끄럽게 됐을까, 등등. 그러나 등장인물의 이름이 특이한 것만 제외하고는 전혀 문제 없었다. 편하게 잘 읽히고, 재미있다. 재미, 그렇다. <색에 물들다>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주말 저녁 가볍게 읽다 새벽까지 내리 읽어버렸다. 놀랍다. 티벳이란 작은 나라에-아직 독립은 못했지만-이런 작가가 있었단 말인가?

<색에 물들다>의 공간적 배경은 '투스'제도(지방 영주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가 존재하던 티벳, 시간적 배경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전쟁을 벌어던 1900년대 초중반이다. 티벳지역의 여러 투스중 하나인 '마이치 투스家'를 둘러싼 다채로운 이야기, 흥망성쇠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초반, 노예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마이치 투스의 둘째아들(바보로 불리며, 소설의 화자이다)의 모습과 바보와 하녀 '쌍지촐마'간 벌어지는 애정문제가 이어진다. 초반이다 보니 '마이치 투스家'를 둘러싼 인물들의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아버지 마이치 투스, 바보의 한족출신 어머니, 혈기넘치는 형, 유모 더친뭐추오, 그외 쑤오랑쩌랑, 멘바 라마 등등.

큰 사건이 이어진다. 중국 중앙정부에 반발한 왕뻐 투스와의 대결이 그것. 왕뻐 투스가 반발하자, 마이치 투스는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한족관리 황주민 특파원이 파견(p.48)된다. 전쟁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황특파원과 마이치 투스 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나고, 황특파원은 떠나면서 씨앗하나를 남긴다. 그의 제안. '뇌물은 필요없다. 아편씨를 줄테니 이번에 얻은 지역에 그것을 심어라. 가을께 돈을 주고 사가겠다."(p.71참조) 이렇게 마이치 투스의 영지에는 강렬한 양귀비꽃이 만발하게 되었다.

황특파원이 남긴 양귀비 씨앗 덕분에 마이치家는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러자 주변 투스들은 앞다투어 씨앗을 얻으려 혈안이 된다. 결혼동맹을 통해 환심을 사려고도 하고, 애걸복걸 하기도 하고, 도둑이 잠입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마이치家가 돈줄인 씨앗을 쉽게 나눠줄 리 없었다. 양귀비 때문에 이웃투스들과 원수가 된 마이치 투스. 왕뻐 투스는 또한 음모를 꾸민다. 도둑을 끊임없이 잠입시킨 것. 이 부분은 스릴이 굉장하고, 문익점 선생님을 떠올릴 만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좀 엽기적이지만)

아무튼, 양귀비가 널리 퍼지게 되는데, 온통 양귀비만 심다보니 식량부족 문제(p.270)가 생긴다. 다만 마이치 투스는 재빠르게 식량만 심어, 식량위기 상황의 주도권을 잡는다. 이후는 마이치家의 아들인 형과 바보의 대외정책이 부각된다. 마이치 투스의 명에 따라 각기 주변 지역을 순시하고 외교관계를 맺는 두 사람. 계속해서 비교되던 두 사람은  이 부분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바보가 사랑과 포용의 정책으로 굶주린 자들을 구휼(2권 p.64)하는 반면, 형은 전쟁만 일삼다 망신만 당한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와 여포를 보는 듯 하다.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투스의 둘째아들 바보는 정말 바보인가? 하는 것. 모든 사람은 그를 바보라 하지만, 일련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오히려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마이치家 집사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도련님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p.316) 바보라는 호칭은 저자가 역설적인 의미로 일부러 부여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또한, 바보는 <홍루몽>의 보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둘의 주변환경, 국적만 배제한다면 아주 유사한 캐릭터이다. 부잣집 도련님, 약간은 어리숙한 여성편향적 성격, 아주 흡사하다. <홍루몽>을 읽으신 분이라면 캐릭터를 비교해 가면 읽는 것도 좋을 듯.

이외에도, 혀 잘린 사관 '윙버이시'관련 이야기, 차차 부족장 살해와 아들의 복수극, 마이치 투스의 셋째부인 양종이야기, 바보를 둘러싼 로맨스(쌍지촐마, 타나등등)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티벳의 안타까운 역사때문에 '다소 어두운 분위기 아닐까'란 생각도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쾌하고 유머가 가득하다. 또한 감동까지 있다. <색에 물들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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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7-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작정하고 책읽기삼매에 빠지셨군요. 날도 더운데, 마치 폭포수처럼 시원스레 서평을 쏟아내시니 부럽기만 합니다. 올리신 서평 차근차근 읽어볼게요~~^^

쥬베이 2008-07-08 18:06   좋아요 0 | URL
책읽기 삼매경^^ 조만간 끝이 보일듯 해요ㅋㅋㅋ
시원한 집안에서 책을 읽는게 좋죠 나가는거보다ㅋㅋㅋ

칼리 2008-07-1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시원한 집안이라...얼음물에 발담그고 수박드시며 독서중이신건...원시적인 상상인가요...요즘엔 에어컨이 일반화되서^^;;;

쥬베이 2008-07-11 18:17   좋아요 0 | URL
ㅋㅋㅋ얼음물에 발은 안담그고요, 가끔 수박은 먹어요ㅎㅎㅎ
에어컨은 전기세때문에 틀 엄두가 안나요ㅜ.ㅜ
사놓고 썩혀두고만 있다는...
여름이라 책읽기 엄청 힘드네요 휴...칼리님도 무더위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 - MIT대 교수가 독한 마음 먹고 쓴 자기비판서
존 터먼 지음, 하워드 진 서문, 이종인 옮김 / 재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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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읽어본 적 있는가? 시집도 소설도 아닌 책을 이토록 감동하며 읽은 건 처음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고 쌓아온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게 더 많다.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미국의 숨겨진 모습을 통쾌하고 명확하게 들춰 낸다. 이 책을 들고, 대학가로 달려가고 싶다. 고등학교를 누비고 싶다. 이런 멋진 책을 함께 하고 싶다. 왜 베스트셀러에 이런 책은 없는 걸까? 마케팅과 보이지 않는 손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현실이 새삼 역겹다.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그 제목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추악한 행동을 살펴보는 책이다. '환경과 경제', 지식과 문화', 보수 우익과 기독교 근본주의', 패권주의와 외교정책'처럼 큼지막한 대주제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앞에 실린 '하워드 진'의 서문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하워드 진의 날카로운 비판은 충격이었다. 근래 보기 드문 명문 중의 명문이다. 읽는 내내 감탄했고,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석 같은 글, 혹시 이 책을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문만큼은 꼭 읽으시길. 서점에 죽치고 앉아서라도.

하워드 진은 말한다. "부당한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하고, 저항하며,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명예로운 전통이다. 그리고 존 터먼은 바로 그런 전통과 사상에 입각하여 이 책을 썼다. 이런 책을 쓰고 읽고 출판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일이다."(p.18) 자,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고양해 보자.

실려 있는 100가지 비판은 어느 하나 공감가지 않는 게 없다. 미국의 반환경적 행태나 무기판매문제(p.57)같이 널리 알려진 비판도 있고, 갱스터 랩(p.113)과 자기계발서 열풍문제(p.126)같이 그동안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또한, 이제 더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닌 것도 많이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미국에 대한 비판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런 신기한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걸까?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믿는다. 답답한 현실.

몇몇을 살펴본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p.126이하)은 정말 통쾌했다. 그간 비정상적인 자기계발서 열풍에 의문을 넘어, 의혹까지 품고 있던 나로서는 한문장 한문장 가슴 깊게 공감했다. 저자는 자기계발서의 열풍현상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살펴본다. "자기계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자아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인생의 많은 문제를 정직이나 믿음(예수 또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회복 등의 덕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주장은 개인이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와 만족을 얻게 된다. (중략) 이런 현상은 모든 것을 원자화하는 미국 문화와 경제 정책 탓이 크다. 동시에 이는 미국인들이 천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의 행복에만 몰두할 뿐 이웃과 다른 나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p.128,129참조)

또한 자기계발서에 대한 미국내 비판도 소개한다. "정신 치료의 경우 몇 년에 걸쳐 일대일 상담 방식으로 진행해도 성공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하물며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한두 번 나가고 자기 계발서 몇 권 읽었다고 평생을 따라다닌 나쁜 습관이 고쳐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브로드스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자기 숙모나 자동차 정비공도 해 줄 수 있는 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웬디 캐미너) 어떤가? 당신은 뭘 느꼈는가? 난 평소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생각을 날카로운 말로 옮겨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미국내에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폭넓은 비판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랍다. 지금 베스트셀러를 보면 자기계발서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별 내용이 없다. 마케팅의 힘,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베스트셀러. 이제 그만 좀 하자.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균형있는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고 쌓아온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보다 이 책을 통해 얻은게 더 많다'면 말 다한거 아닌가? 특히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또한 자기계발서 출판업자, 무차별적 선교를 일삼는 일부 종교인, 미국을 향한 해바라기 아니 미국바라기 정치인, 등에게도 사서 보내주고 싶다. 학생들만 공부가 필요한게 아니다.

 


* 하워드 진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부란 모든 이들의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목적으로 국민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립된 존재이다. 그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이런 목적을 파괴한다면, 국민은 언제든지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앨 권리가 있다."(p.16) 저 말이 왜이리 가슴에 와닿는지…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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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0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오하고도 선뜻 뭐라 말하기 어려운 주제임도 분명하고...쥬베이님처럼 신랄하게 긍정도 하지 못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쥬베이 2008-07-07 10:07   좋아요 0 | URL
때가 때인만큼 조심스럽긴 한데,
그간 제가 마음속에 갖고 있던 걸, 너무나 속 시원하게 말해주더라고요ㅋㅋㅋ
 
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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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콜릿 코스모스>는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는 작품이다. 온다 리쿠가 연극팬임은 알았지만 막상 작품으로 접하니 조금은 생소하다. 노스탤지어, 학원 미스터리, 아련한 가성 같이 온다 리쿠하면 떠오르는 건 이 작품에 없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 온다 리쿠'란 공식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큼지막한 사건도 놀랄만한 반전도 없다. 미스터리한 소녀 사사키 아스카를 중심으로 한 아라가키 연극동아리 이야기, 유명배우 아즈마 교코와 아즈미 아오이를 둘러싼 이야기가 각기 나뉘어 진행된다. 그러다 영화계의 전설 세리자와 다이지로가 마련한 '신고쿠사이 극장 개관공연 오디션'에서 양자는 극적인 접점에 다다른다. 이렇게 단 두 문장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500페이지 가량을 썼다는 것은, <초콜릿 코스모스>가 사건보단 인물묘사에 치중한 소설이란 점을 의미한다. 온다 리쿠가 연극에 대한 애정을 동력삼아 즐기면서 쓴 것이다. 특히 유명배우 아즈마 교코의 내면묘사는 주목할 만하다. 교코는 동료배우인 아즈미 아오이와 신예 사사키 아스카를 비교선상에 두고 질투하고 불쾌해하고, 때론 우월감에 젖기도 한다. 아오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여성들의 미묘한 갈등양상은 시종일관 이어지다, 마지막 오디션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아름답게 승화된다.

온다 리쿠 특유의 미스터리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적어도 관찰자인 가미야에게는-반복하는 소녀, 마주친 사람들을 섬찟하리만치 흉내내는 소녀, 초반부 가미야에게 관찰되는 사사키 아스카의 모습은 미스터리하고 때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는 사사키 아스카의 비범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처럼 단순한 소재로 머물러 버린듯한 아쉬움은 있지만, 온다 리쿠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팬에게는 약간의 위안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큰 기대를 했지만 <초콜릿 코스모스>, 조금 아쉽다. 읽는 이를 매혹시킬만한 재미가 없다. 어찌해서라도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얻은 건 연극에 대한 온다 리쿠의 애정을 확인한 것 뿐이다.



* 북풀리오의 온다리쿠 시리즈는 통일성있는 표지가 큰 매력이다. <초콜릿 코스모스>의 표지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종이질이 밋밋하다고 해야하나, 질감이 좋지 않다. 그림 속 풍선이나 의자 같은 건 홀로그램처리해서 입체감을 주는 것도 좋았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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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작가임에도 저는 친해지기가 수월치 않아서 매우 고전하고 있는 중이랍니다.-_-;;;

쥬베이 2008-07-07 10:14   좋아요 0 | URL
ㅋㅋㅋ저도 작품에 따라 가끔 실망하는 작가에요.
초창기 읽은 <굽이치는 강가에서>, <삼월의 붉은 구렁을>같은건 좋았는데
요즘은 그닥...

비로그인 2008-07-0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폴리오 맘에 들었는데 점점 별로인듯.. 때타고 구겨짐이 심해질것 같아서..ㅠ
저도 온다리쿠는 이작품을 끝으로 당분간 안볼생각입니다^-^;
<초콜릿코스모스>는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온다리쿠식 소설은 읽을수록 빠져들기가 힘들어지더라구요~ 이번 작품은 님 말씀대로 연극에 대한 온다리쿠의 애정을 듬뿍 느낄수 있었어요 정말^^ 오디션 장면을 읽을때는 연극한편을 보는듯했어요.. 그것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놀라웠어요.. 음.. 근데 온다리쿠는 자꾸 정이 안든단 말야..-_- 서평 너무 잘읽었습니다^^

쥬베이 2008-07-07 11:40   좋아요 0 | URL
<초콜릿 코스모스>표지에 대한 불만은 좀 심하더라고요.
종이질이 조금 이상했는데, 저만 느낀게 아니었어요 여기저기 불만의 소리가...
온다 리쿠가 자기 스스로 흥에 겨워서 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초창기가 독자의 흥미도를 고려했다면, 근래는 자기 만족에 쓴다는 생각이 드네요^^ 볼살통통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