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물들다 2 - 침묵하다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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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석을 발견했다. <색에 물들다>는 강렬한 원색표지처럼 빛나는 책이다. 사실, 생소한 티벳작가의 작품이라 걱정을 했다. 지루하진 않을까, 번역은 매끄럽게 됐을까, 등등. 그러나 등장인물의 이름이 특이한 것만 제외하고는 전혀 문제 없었다. 편하게 잘 읽히고, 재미있다. 재미, 그렇다. <색에 물들다>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주말 저녁 가볍게 읽다 새벽까지 내리 읽어버렸다. 놀랍다. 티벳이란 작은 나라에-아직 독립은 못했지만-이런 작가가 있었단 말인가?

<색에 물들다>의 공간적 배경은 '투스'제도(지방 영주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가 존재하던 티벳, 시간적 배경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전쟁을 벌어던 1900년대 초중반이다. 티벳지역의 여러 투스중 하나인 '마이치 투스家'를 둘러싼 다채로운 이야기, 흥망성쇠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초반, 노예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마이치 투스의 둘째아들(바보로 불리며, 소설의 화자이다)의 모습과 바보와 하녀 '쌍지촐마'간 벌어지는 애정문제가 이어진다. 초반이다 보니 '마이치 투스家'를 둘러싼 인물들의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아버지 마이치 투스, 바보의 한족출신 어머니, 혈기넘치는 형, 유모 더친뭐추오, 그외 쑤오랑쩌랑, 멘바 라마 등등.

큰 사건이 이어진다. 중국 중앙정부에 반발한 왕뻐 투스와의 대결이 그것. 왕뻐 투스가 반발하자, 마이치 투스는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한족관리 황주민 특파원이 파견(p.48)된다. 전쟁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황특파원과 마이치 투스 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나고, 황특파원은 떠나면서 씨앗하나를 남긴다. 그의 제안. '뇌물은 필요없다. 아편씨를 줄테니 이번에 얻은 지역에 그것을 심어라. 가을께 돈을 주고 사가겠다."(p.71참조) 이렇게 마이치 투스의 영지에는 강렬한 양귀비꽃이 만발하게 되었다.

황특파원이 남긴 양귀비 씨앗 덕분에 마이치家는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러자 주변 투스들은 앞다투어 씨앗을 얻으려 혈안이 된다. 결혼동맹을 통해 환심을 사려고도 하고, 애걸복걸 하기도 하고, 도둑이 잠입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마이치家가 돈줄인 씨앗을 쉽게 나눠줄 리 없었다. 양귀비 때문에 이웃투스들과 원수가 된 마이치 투스. 왕뻐 투스는 또한 음모를 꾸민다. 도둑을 끊임없이 잠입시킨 것. 이 부분은 스릴이 굉장하고, 문익점 선생님을 떠올릴 만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좀 엽기적이지만)

아무튼, 양귀비가 널리 퍼지게 되는데, 온통 양귀비만 심다보니 식량부족 문제(p.270)가 생긴다. 다만 마이치 투스는 재빠르게 식량만 심어, 식량위기 상황의 주도권을 잡는다. 이후는 마이치家의 아들인 형과 바보의 대외정책이 부각된다. 마이치 투스의 명에 따라 각기 주변 지역을 순시하고 외교관계를 맺는 두 사람. 계속해서 비교되던 두 사람은  이 부분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바보가 사랑과 포용의 정책으로 굶주린 자들을 구휼(2권 p.64)하는 반면, 형은 전쟁만 일삼다 망신만 당한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와 여포를 보는 듯 하다.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투스의 둘째아들 바보는 정말 바보인가? 하는 것. 모든 사람은 그를 바보라 하지만, 일련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오히려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마이치家 집사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도련님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p.316) 바보라는 호칭은 저자가 역설적인 의미로 일부러 부여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또한, 바보는 <홍루몽>의 보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둘의 주변환경, 국적만 배제한다면 아주 유사한 캐릭터이다. 부잣집 도련님, 약간은 어리숙한 여성편향적 성격, 아주 흡사하다. <홍루몽>을 읽으신 분이라면 캐릭터를 비교해 가면 읽는 것도 좋을 듯.

이외에도, 혀 잘린 사관 '윙버이시'관련 이야기, 차차 부족장 살해와 아들의 복수극, 마이치 투스의 셋째부인 양종이야기, 바보를 둘러싼 로맨스(쌍지촐마, 타나등등)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티벳의 안타까운 역사때문에 '다소 어두운 분위기 아닐까'란 생각도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쾌하고 유머가 가득하다. 또한 감동까지 있다. <색에 물들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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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7-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작정하고 책읽기삼매에 빠지셨군요. 날도 더운데, 마치 폭포수처럼 시원스레 서평을 쏟아내시니 부럽기만 합니다. 올리신 서평 차근차근 읽어볼게요~~^^

쥬베이 2008-07-08 18:06   좋아요 0 | URL
책읽기 삼매경^^ 조만간 끝이 보일듯 해요ㅋㅋㅋ
시원한 집안에서 책을 읽는게 좋죠 나가는거보다ㅋㅋㅋ

칼리 2008-07-1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시원한 집안이라...얼음물에 발담그고 수박드시며 독서중이신건...원시적인 상상인가요...요즘엔 에어컨이 일반화되서^^;;;

쥬베이 2008-07-11 18:17   좋아요 0 | URL
ㅋㅋㅋ얼음물에 발은 안담그고요, 가끔 수박은 먹어요ㅎㅎㅎ
에어컨은 전기세때문에 틀 엄두가 안나요ㅜ.ㅜ
사놓고 썩혀두고만 있다는...
여름이라 책읽기 엄청 힘드네요 휴...칼리님도 무더위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