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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보고 두툼함에 놀랐다. 두툼한 책을 뭐낙 좋아하기에 뿌듯했지만, 갈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허술한 장정에 짝짝 갈라지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기우였다. 읽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튼튼했다. 한마디로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의 두툼함과 장정은 완벽! '분권해서 돈 좀 벌어보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한권으로 깔끔하게 내준 출판사의 결정이 새삼 멋져 보인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마거릿 미첼 위원회'의 공식승인을 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공식 속편이다.(p.690참조) 원작과 속편의 미묘한 차이와 관계양상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는 내겐 무리다. 일단 원작과 속편를 비교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지금은 오직 이 작품에만 집중하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면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의 뜨거운 사랑 아니던가? 자연히 두 사람의 만남, 갈등, 사랑이 시작부터 이어질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다. 소설은 레트 버틀러의 어린시절 이야기, 결투신청을 받고 대응하는 그의 성격묘사에 우선 주목한다. 초반부 비중있게 등장하는 '결투문화'는 놀라웠다. 서부극에서나 볼법한 결투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니…아무튼, 섀드 워틀링은 레트가 자신의 여동생을 임신시켰다고 주장하며 결투를 신청한다.(p.26참조) 이에 결투입회인 역할을 맡게된 존 헤인즈등 여러사람이 중재노력을 하지만, 총알을 발사되고야 만다.
저자는 레트의 캐릭터성을 부각할 수 있는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인권적인 반노예적 태도'다. 자신의 아내를 노예란 이유로 강간하려는 주인에 반발한 '윌'이 채찍질을 당하자, 어린 레트는 반발한다. "그럼 윌은 죽을거에요. 말도 안 돼요. 아저씨, 그건 살인이에요."(p.39) 또한 노예들이 자기에게 '도련님, 도련님'하자 멋진 말을 한다. "저는 도련님이 아니에요. 제 이름은 레트입니다."(p.42) 멋지다. 레트의 이런 멋진 성격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레트가 성장함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한다.
이어, 여동생 로즈메리와 주고받는 편지(p.73이하)내용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오빠와 여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끈끈한 정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 졌다. 이처럼 초반부는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성장소설'같은 느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도련님'이란 호칭으로 대변되는 지위를 거부하고, 평등과 인도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레트. 이는 반항과 가족갈등으로 연결되며, 그는 일종의 가출을 감행한다. 한마디로 초반부는 성장소설 관점으로 바라봐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제1부 '만남'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장소설적 느낌이라면, 제2부 '전쟁'은 전쟁소설적 느낌이다. 남북전쟁이야기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레트와 테즈 워틀링등이 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물론, 레트와 스칼렛의 사랑에 관련되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주목한 것은 '테즈(테이즈웰) 워틀링'이다. 매음굴 사포루즈를 운영하는 벨 워틀링의 아들인 테즈, 그는 어린나이에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레트는 그의 후견인으로 아들처럼 보살펴 준다. 두사람의 돈독한 신뢰관계는 이야기의 한 축이다.
전쟁이 끝나고(p.339), 기대했던 레트와 스칼렛의 사랑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상상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레트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스칼렛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슐리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관계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장면을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레트는 두니스 보노 살해혐의와 국고횡령혐의 투옥된다. 이에 스칼렛은 면회를 온다. 기뻐하는 레트. 하지만, 하지만, 스칼렛의 목적이 무었인지 아는가? 돈이었다. "나만큼 절실히 원했던 여자가 없었다면서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저를 가지세요. 레트, 뭐든지 해줄게요. 지불명령서 한 장만 써주면……."(p.407) 충격이다. 고작 300달러에 스칼렛은 몸을 팔려 했다. 레트를 향한 스칼렛의 마음은 저 정도였던 것이다. 결국, 돈을 쫒아 프랭크 케너디와 도망가는 스칼렛.
결혼이 사랑의 형식적인 완성이라면, 레트와 스칼렛은 외견적인 완성을 이룬다.(p.446) 하지만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결코 순탄치 않다. 스칼렛을 향한 레트의 사랑은 진정한 완성을 이룰 것인가? 스칼렛의 마음은?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을 읽으며, "정말 명작이구나, 정말 대작이구나" 수없이 되내었다. 남북전쟁 당시 사회상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삶과 애증의 드라마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껏 읽은 다른 대작이 자연스레 오버랩 되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전쟁의 혼란상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일부분과 유사한 느낌이며, 기존 악습에 대항하는 어린시절 레트의 모습은 <홍루몽>의 보옥을 연상시킨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같은 명작을 완벽한 장정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영광이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명작, 오늘을 사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명작, 바로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