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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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가장한 수준이하의 책들이 횡행하고 있다. 능력도 안되는 저자에 의한, 비슷비슷한 포맷의 책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훌륭한 책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매급으로 이상한 취급을 당하기 쉽상이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같이 훌륭한 책이 밀리언셀러에 준하는 폭발적 반응을 얻지 못하는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다. 참 안타까운 현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은 조선조의 성리학적 이념과 배치되는 책,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건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전략) 그 방법으로 이 책은 일종의 금서들의 사회사라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책과 저자들의 역사는 성리학에 포섭되지 않은 사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중략) 시대와 불화한 책들의 역사는 불행함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왜 시대와의 진정한 의사소통은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p.5-7) 멋지다. 이런 명확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기에, 이어지는 13개의 이야기는 탄탄하고 유기적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선조대의 병법전문가 '한교'(p.119이하)이다. 조선에 한교와 같이 병법에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고, 그런 그를 철저히 배제했던 현실이 또한 충격이다. 일본군의 백병전을 막기위해 선조는 급히 병법서를 도입한다. 바로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 하지만, 조선내에 이를 제대로 소화해 낼 인물이 없었다. 이때 유성룡등의 천거로 등장한 인물이 한교이다. 한교는 <기효신서>의 의문점을 명나라 장수들에게 묻고 물어서 <기효신서절요>, <무예제보>(정조대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원형 p.127참조)등으로 재탄생 시킨다.

또한 한교는 선조말 세력을 확대하던 여진족을 막기 위해 <연병실기>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재창조한 <연병지남> 저술한다. 이는 상당히 빼어난 병법서였지만 채택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이유로 두가지를 든다. 첫째, 서얼로 벼슬이 미천하고 파벌이 없었다. 둘째, 명과 청 사이에서 유연한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정권의 성격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한교의 <연병지남>이 얼마나 빼어난 병법서인지는,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부랴부랴 이를 수용한 것에서 드러난다.

'<심양장계>(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 왕세자 일행이 수도 심양에서 생활한 일을 기록한 책 p.156)'를 중심으로 인조와 세자의 갈등을 그려낸 부분(p.155이하)도 좋았다. 청나라에 볼모로 간 세자는 조선과 청사이 외교관계에 전력하며 많은 공적을 세운다. 세자의 저런 활동이 절절히 녹아있는 것이 바로 <심양장계>.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심양장계>는 이처럼 소현세자 일행과 청의 다양한 교섭 양상을 통해 미묘한 외교관계를 증언하는 동시에 명, 청 교체기의 중국 정치, 사회, 문화 상황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17세기 중국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중략) 한마디로 17세기 동아시아라는 스케일이 큰 삶의 영역을 잘 보여주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p.177)

세자의 귀국과 의문의 죽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권력에 눈이 먼 인조가 자식을 독살했다는 믿을 수 없는, 도저히 믿기 싫은 이야기. 인조가 취한 일련의 조치는 역겹다. 세자의 귀국을 못마땅해 하다 마중조차 못하게 하고, 아들을 독살하고, 며느리를 누명을 씌어 죽게하고, 손주들을 유배한다.(p.186이하 참조) 또한 왕위계승이 당연한 소현세자의 맏아들 석철을 물리치고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넘긴다. 인조는 참 치졸하고 잔인한, 무능한 군주였던 것이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은 지금까지 읽은 소위 '대중역사서'중 손에 꼽을 수작이다. 조선조 지배계급이 두려워했던 책들, 그래서 온갖 탄압을 받았던 책들, 그 속에서 조선의 숨겨진 면모을 돌아볼 수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유사 역사서'속에서 오랜만에 진정 훌륭한 책을 만났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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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6-1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렇게까지 추천을 하시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가...+_+

쥬베이 2008-06-20 01:32   좋아요 0 | URL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칼리 2008-06-2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속에서 배제되어야 했던 비주류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쥬베이 2008-06-24 16:00   좋아요 0 | URL
네, 주류가 두려워했던 걸 파헤치기 때문에 비주류의 입장에 가까워요^^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재미있게 읽으실 책이랍니다^^
 
[메디치가 살인 사건의 재구성] 서평단 알림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라우로 마르티네스 지음, 김기협 옮김 / 푸른역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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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은 소설이 아니다. 전직 대학교수가 쓴 정통 역사서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전반적인 역사흐름을 이해해야만 하기에 읽기가 만만치 않다. 처음 50페이지가량 읽었는데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로렌초, 지롤라모, 카테리나, 비스콘티, 프란체스키토…혼란스럽기만 했다. 부랴부랴 노트를 펼쳤다. 처음으로 돌아가 인물이름부터 하나하나 체크하며 다시 읽었다. '아, 그렇구나'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은 1478년 4월 벌어진, 피렌체의 비공식적 지도자 '위대한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를 노린 암살시도(파치음모)를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는 파치음모가 발생한 정치적 배경과 당시 이탈리아 일대의 사회상, 로렌초가문의 내력, 로렌초의 권력장악 과정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입체적인 전달을 위해 사진, 그림, 도표자료등를 폭넓게 활용한다. 특히 암살사건 당시의 상황을 도표로 제시한 부분(p.202,203)은 인상적.

파치음모가 발생한 정치,사회적 배경을 파헤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 듣는 이름이 많이 등장하기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혼란스럽다.) 당시(14,15c무렵) 이탈리아 일대는 수많음 음모가 횡행하고 있었다. 오르시형제가 지롤라모 백작을 살해(p.21)하고, 미망인 카테리나는 도망간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상황을 장악하지 못한 오르시형제는 도리어 쫒기고 카테리나는 도시로 재입성한다. 물론 오르시형제에 협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마치, 밀고 밀리기는 반복하던 6.25 전쟁과 비슷한 상황. 한편, 엽색가인 피렌차 영주 '갈레오토 만프레디'는 아내에게 살해당하고(p.27), 밀라노 공작 '조바니 안드레아'(p.29이하)는 비스콘티, 제롤라모등에게 살해당한다. 당시는 완전한 음모의 시대였던 것이다.

로렌초 암살사건의 전말은 p.187이하에서 본격적으로 서술된다. 로렌초家의 세력확대를 견제하던 파치家가는 암살계획을 주도하고, 결국 로렌초와 줄리아노는 피렌체 대성당에서 습격당한다. 줄리아노는 죽지만, 로렌초는 구사일생으로 몸을 피한다. 절반의 성공이었을까? 이후 정국은 한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공무원이나 경찰들고 사태를 관망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로렌초는 후속조치는 신속했다. 거기다 시민들의 외부세력에 대한 거부감까지 더해져(p.211) 로렌초는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복수뿐, 잔혹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음모를 주도한 파치家는 거의 멸문지화를 당한다. (파치家의 재앙은 p.329이하에서 더욱 자세히 서술)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로렌초 암살시도도 수많은 음모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것. 그러나 '파치음모'이후 벌어진 엄청난 정치, 사회적 파장은 보면 얼마나 이 것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칭한다)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그리 만만한 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차분히 읽어가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르네상스 전후로 한 수많은 음모, 정치, 사회적 흐름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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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나서 그와 비슷한 책들을 꽤 봤었는데 이름들이 낯익어서 그런지 왠지 반가운 리뷰예요^^

쥬베이 2008-06-24 15:59   좋아요 0 | URL
로마인 이야기, 읽지 못했어요. 뭐낙 방대해서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이 책은 사진,도표자료도 많고 상당히 멋져요. 그런데 읽기 쪼금 어려워요~
 
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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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을 조명하는 책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이라 함은, 대략적으로 기원전 5세기내지 6세기이지만 생물 연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처음으로 개척한 이들의 사상을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사상과 구별하기 위한 표현'(책날개 참조)인 것이다. 고등학교때 배운 윤리는 동서양의 철학을 개괄하고 있어 유명 철학자의 이름 정도는 모두 알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알지 못한다. 그리스철학의 흐름을 도표형식으로 정리한 자료를 찾아봐도 그 시작은 소크라테스였다. 이전 학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하루 아침에 발전된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p.10)을 밝히고 있다. 첫째, 현대인들이 유럽 사상의 기초가 세워지고 발전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저자는 유럽 사상의 기초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지나치게 축약되어 소개되거나 너무 전문적이어서 소수의 전문가만 읽게 되어 있기에(p.10참조) 일반인들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둘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자연과학적 성과를 부각하자. 저자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기존 연구가 문헌학, 철학의 측면만 과도하게 부각시키고 있기에, 균형잡힌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상대성이론, 양자론등 많은 과학이론이 고대 관념의 영향아래서 발전한 것이지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활동했던 그리스의 자연, 사회, 종교등 지역상황을 살펴보고,(p.23이하) 이들을 개관(p.57이하)한다. 이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목적과 관련을 가진다. 특히, 이들을 '과학의 창시자로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두번째 목적과 잇닿아 있다. 과학의 창시자로 볼 수 없다는 회의적 시각은 다음 두가지를 논거로 한다. 첫째, 개별 관찰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둘째, 자신들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비판한다. 개별 관찰을 중시하는(귀납법) 사고는 과학의 역사를 보면 틀렸으며(p.63), 당시에는 실험과 측정을 위한 기술적 수단이 마련되지 않았다(p.64)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을 과학의 창시자로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입장인 것이다.

[밀리토스의 탈레스](p.81이하)부터 본격적으로 스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을 살펴본다. 어떠한 삶을 살아는지 '생애', '생활방식'부터 다양한 저작과 이론까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또한 '부록'에는 주석, 문헌소개, 사진출처, 찾아보기, 연대표등을 실어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사모스의 피타고라스](p.127이하) 피타고라스란 이름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주인공 아니던가? 초반부 소개되는 그에 대한 상반되는 평(p.129)은 충격적이었다.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실로 지극히 방대한 사상을 섭렵했으며, 온갖 지혜로운 작품들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인물"(엠페도클레스) / "사기꾼의 원조", "온갖 사람들로부터 입수한 다양한 정보들과 여기저기서 골라낸 책들에서 조합해낸 것들을 자신이 발견한 진리처럼 떠벌린, 현학적이며 기만적인 인물"(헤라클레이토스) 놀랍지 않은가? 도대체 피타고라스는 어떤 인물로 봐야 할까? 저자는 가장 안전하면서 무난한 결론을 내린다. 모든 특성을 어느 정도씩 지니고 있는 인물이란 것. 그의 저작과 활동에 대해선 직접 읽어보시길.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p.413이하) 단순히 원자론으로 유명한 인물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대단했다. 저자는 "다른 모든 소크라테스 이전 학자들의 틀을 뛰어 넘은 인물"(p.415)이라고 평하고, 에두아르트 첼러와 빌헬름 네슬레는 "당대의 모든 지식을 철학적 속으로 끌어들인 보편적인 정신이었으며, 이런 점에서 그와 비견될 수 있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뿐이다."(p.415) 그는 윤리, 자연철학, 수학등 백과사전적 지식의 소유자였으며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아쉽게도 원자론을 전개한 <자연철학에 대해서>는 남아있지 않아, 이후 해석자들의 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등 위대한 철학자 이전엔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들이 있었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파르메니데스(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가 없었다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되었겠는가?"(p.10)라고. <철학의 탄생>, 이제껏 알지 못했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알게해 준 고마운 책이다. 진정한 그리스 철학의 원류를 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깊이있는 내용, 완벽한 편집, 정말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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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1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나면 철학에 대해서 조금 아는척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쥬베이 2008-06-16 18:14   좋아요 0 | URL
네네^^ 저 사실 힘들게 읽었어요ㅋㅋㅋ
서재에 꽂아두면 폼나는 그런 책^^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6
조나단 콕스 글.사진, 김문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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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진사인 시대다. 밖을 나가보면 서로가 서로를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을 보고 아쉬웠던 적이 있는가? 손이 흔들려 심령사진이 되어 버리거나^^, 빛조절이 안돼 기껏 찍은 사진을 버리거나, 한두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사진은 일상이 되었지만, 사진기술은 아직 어렵게만 느껴진다.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에 대한 시원스런 해답이다. 사진, 특히 '접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장비부터 카메라 조작법, 빛과 색, 사진구성까지 빼어난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특히, 어려운 용어를 자세히 설명한 '어휘해설'(p.157이하)과 알아두면 편리한 사진 관련 웹사이트를 정리한 부분(p.159)은 초보자들이 한층 더 사진에 가까이 가도록 돕는다.

저자는 장비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장비 사용법을 익혀두는 일은 접사 이미지의 촬영 기술을 연마하는 데 기초가 되며, 현장에서 장비를 사용해보아야만 장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p.18) 왜 장비이야기가 목차 제일 앞에 왔는지 이해된다. 장비를 이해하고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야 사진촬영(특히 접사) 기술을 용이하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장비? 장비라니, 그런 거창한건 전문가만 가지고 있는거 아냐? 난 소형디카밖에 없다고.' 그러나 소형디카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접사사진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때에 따라서는 DSLR 카메라보다 소형 카메라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p.15) 한마디로 누구나 한개씩 가지고 있는 디카로도 멋진 접사를 찍는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장비의 기본을 이해했으면, 본격적으로 '카메라의 기능과 기법'(p.46이하)을 배울 차례다. 조금 전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찬찬히, 뒤에 있는 어휘해설을 참조해가면서 읽는게 좋다. 이어 빛과 색, 사진구성을 이야기한다. 사진을 찍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빛조절이었기에 빛부분을 특히 집중했다. 놀랐다. 빛에도 종류가 있다니…그리고 빛의 방향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정면광, 역관, 측광등등, 빛의 종류와 방향에 따라 적절하게 사진기술을 구사해야만 빼어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초보자를 배려하는 구성이다. 즉, 저자는 어려운 기초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통해 사진기술을 설명한다. 그러다보니 빼어난 사진을 직접 접할 수 있고, 초보자들도 구체적인 기술을 체득할 수 있다. 또한 저자의 멋진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수록된 수백장의 올컬러 사진은 하나같이 빼어났지만 특히 인상적인 것이 있다. 야생당근 꽃 위에 거미(p.17), 표범거북(p.21), 서리내린 야생당근(p.46), 잘생긴 천둥오리(p.67), 꽃 위에 사마귀(p.84)등등. 특히 꽃 위에 사마귀를 보고는 기절할 뻔 했다. '저토록 생생한 사진이 가능하다니'하면서 말이다.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정말 좋은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진기술을 쉽고도 정확하게 알려준다. 사진 초보자들도 찬찬히 읽어가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디카가 있지만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이다. 당신도 놀라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세계적인 사진전문가이자 사진작가인 조나단 콕스, 그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강력 추천한다!

 

* 저자는 장비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장비를 보험에 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p.45)고 말한다. 고가의 장비를 가진 전문가만 해당하는 것이지만 상당히 공감이 갔다. 또한 장비보험에 든 디카나 기타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떠한 보험관계가 전개될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 봤다.

* 청어람미디어의 '포토 라이브러리 시리즈' 목록을 보니, <뛰어난 인물사진의 모든 것>과 <뛰어난 자연사진의 모든 것>이 있었다. '만족스런 시리즈 도서는 전부 구입하자'는 주의라 사고야 말았다. 멋진 사진을 접하니, 나 역시도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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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5-28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책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시다며 사진은 언제 찍으시려구요^^* 얼마전 축구중계를 보는데 해설자가 이런 명언을 하더군요.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슴다~~' 맞는 말같아요. 프레임 안에 내가 있건 없건 간에 사진은 순간의 기억을 담으니까요. 좋은 사진 많이 찍으세욤.

쥬베이 2008-05-28 22:2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뭐 사진을 꼭 찍는다는건 아니고^^
사실은 디카도 없어요ㅠ.ㅠ
하지만, 기회가 되면 멋진 사진 찍고 싶습니다ㅋㅋㅋ
 
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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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은 음식산문집이다. 보리밥, 다슬기탕, 토란같이 작가가 어린시절 함께하던 먹(을)거리를 이야기한다. 작가가 풀어내는 음식이야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지만, 진하게 베어있는 유년의 향수야말로 이 책의 묘미다. 쌀이 귀해 하루 한끼는 고구마로 떼워야 했던 그때, 계란을 들고 가게에 가 학용품을 사던 그때, 아련하고 애잔한 느낌이 든다.

이 책엔 음식과 먹거리 사진이 올컬러로 큼지막하게 실려 있다. 사진만 봐도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대롱대롱 말려지는 감(p.55,59), 메주(p.93), 그리고 늙은 호박(p.185)등등. 음식산문집이라 읽기전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침이 하나가득 고인 사진도 있다. 부추부침개(p.168), 메밀돌돌이(p.242)가 바로 그것이다. 고향이 강원도인 부모님덕에 어릴적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라, 정말 먹고 싶었다. (한가지 궁금증. 강원도 부침개하고 전라도 부침개하고 맛이 비슷할까. 보기엔 비슷해보이는데^^)

구수한 사투리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딸랑구, 단쭈시, 외, 묵게크롬 등등. 이는 유년의 향수와 잇닿아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전부 표준어로 제대로 쓴다면 구수한 맛이 살겠는가? 유년시절이 제대로 추억되겠는가?

인상적인 몆부분을 보자. [동부. 돈부죽 끓이다 집시랑 태워먹은 가시내야](p.174) 동부는 강낭콩과 비슷하게 생긴 콩이다. 초등학교때 사먹던 불량식품중에 동부랑 똑같이 생긴, 이름마저 동부인게 있었다. 동부하면 실제 동부보다는 불량식품이 먼저 생각난다. 멋적지만 사실 동부콩을 실제로 본적이 없다. 작가역시 불량식품 동부를 알고 있었다. "밀가루 과자이긴 하지만 어찌 돈부라는 말을 알아서 그렇게 돈부과자를 다 만들었을까, 소위 '불량식품'계보에 속하는 그 과자가 왈칵 반갑기까지 하더라니!"(p.175)

마치 드라마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동부죽을 끓이다 초가집 태워먹을 뻔한 가시나 이야기. 동부죽을 하도 많이 끓어 이골이 난 가시나, 화덕 불이 기어나는 줄도 모르고 밀가루반죽만 치대고 있었단다. 그러다 초가집에 불이 붙자 어떻게 해보려다 결국 동생만 업고 도망갔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p.180참조) 저자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돈부죽 쑤다 집시랑 태워먹은 가시내야,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거라. (중략) ...본 적이 있으신 분은 가시내한테 지금 돈부죽 다 끓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해주시면 후사하겠씀다아!"(p.181) 하하. 이게 공선옥표 유머구나.

공선옥표 유머라…이런 부분도 있다. 저자는 먹거리들 대부분이 여자들에 의해 거두어진 것이고 남자들이 유일하게 거둔 미꾸라지 역시 여자들에 의해 요리된다며, "그러니 결과적으로 남자들, 더군다나 머시매들은 여자들 아니면 굶어죽게 생겼다. 그래도 머시매들은 어떡하든 안 굶어 죽으려고 그랬는지, 언젠가 보니까 뱀을 잡아다가 신문지에 싸가지고 불에다 구워 먹더라니. (중략) 하긴, 즈이 엄마나 누나나 여동생이 추어탕 안 끓여주면 미꾸라지도 그냥 불에 그슬려 먹을 놈들이다."(p.226) 하하. 이 부분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맞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자 없으면 못살 인간들이다. 궁상맞아 진다니까.

<행복한 만찬>으로 공선옥 작가와 처음 만났다. 뒤늦은 만남엔 다 이유가 있었다. 유년시절을 추억한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이 작품으로 공선옥 작가를 알아가라는 신의 계시^^ 감히 말하겠다. <행복한 만찬>은 지금까지 읽은 산문집중 최고다!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고마운 책. 꼭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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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6-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때가 있었죠. 몇몇 여성작가들의 자의식 과잉, 자기 과시적이며, 지나치게 날이 선 태도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선옥 작가는 조용하면서도 존재감있는 몸짓으로 묵묵히 자기 글을 썼던 게 떠오르네요. 서평만 읽어봐도 '공선옥'다운 문체가 물씬 느껴지니 반갑네요^^*

쥬베이 2008-06-01 16:14   좋아요 0 | URL
lazy devil님께선 이미 공선옥작가님 작품을 읽으셨군요
저는 이 작품말고는 읽은게 없어요.
어떤분은 공선옥작가 문체가 '촌스러워 싫다'고 하시던데ㅋㅋㅋ
얼른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