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세계사를 심도있게 살펴보거나, 머리 아픈 얘기를 늘어놓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는 세계사 속, 기묘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엮은 책이다. 대개 한 두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보다는 짜투리 시간에 몇 꼭지씩 읽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소개된 에피소드는 무려 172가지다. 자칫 산만할 수도 있지만, 소주제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4장 '불가사의하게 살아간 사람들'에서는 '독, 죽음, 민간요법, 인육, 유행 등'의 소주제가 있고, 소주제별로 관련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 식이다.

'잔혹'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초반부터 이어진다. '처형'의 장엔 유방 도려내기, 온 몸의 구멍 꿰매 죽이기, 화형, 꼬챙이형 같은 끔찍한 형이 등장한다. 온 몸의 구멍을 꿰매 죽인다니, 정말 충격이다. 이야기는 13세기 몽골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력자의 비호아래 영향력을 행사하던 '파티마'란 무녀가 있었는데, 권력 변동기에 밀려나 사형에 처해진다. 사형집행인은 먼저 '양쪽 눈꺼풀과 입을 꿰매고, 양쪽 귀는 접어서 꿰맸다. 또한 항문과 질까지 꿰매 대소변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p.48참조) 결국 그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는 파티마. 잔혹하기로 따지만 꼬챙이형도 엄청나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드라큘라의 모델인 루마니아 백작 이야기라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잔혹함을 즐기며(?) 뜻밖의 세계사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 단두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기요틴의 유래가 나온다.(p.70) 기요틴은 파리대학 해부학 교수이자 정치가인 '조제프 기요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칼이나 도끼로 참수했을 때, 한 번에 잘리지 않아서 사형수가 고통에 빠지는 것을 본 기요탱이 단두대의 사용을 제안했기 때문에. 또한 중세 유럽에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이유(p.80)도 나온다. 진짜 이유는 마녀로 몰린 이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마녀의 재산몰수를 금지하자 마녀적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그 증거로 든다.

중간 중간 사진이나 그림이 실려 있다. 이는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제거하고 신뢰감을 높혀 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진 하나를 꼽겠다. 바로 '엘리스 리델'(p.240)의 사진. 사진 속 소녀는 꽃이 만발한 화단에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다. 굉장히 예쁘지만 표정은 싸늘하다. 계속 보면 왠지 오싹하기까지 하다. 이 소녀를 위해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썼다. 저자는 루이스 캐럴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한다. 어떤 의혹일까? 정말 놀라웠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달리 보였음.

혹시 '피 튀는 끔찍한 이야기만 잔뜩 있는 거 아냐?'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이형(난쟁이나 몸이 두 개인 여자 등)여자를 좋아했다는 중국 현종 이야기(p.153), 종을 만드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딸 이야기(p.155) 같이 기괴하거나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다소 황당하고 쓴웃음 짓게 하는 것도 있다. 처녀성을 확인하는 기상천외(?)한 방법(p.181)이 그것인데, 스폐인에선 결혼 다음 날 손님들에게 핏자국을 보여주며 "처녀였어요!"라고 외쳤다고 하니…참.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놀랍고 충격적이며 재미까지 있다. 한여름, 공포물에 열광하듯 잔혹함 뒤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기류 미사오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 2008-09-21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류 미사오는 이런 책 정말 주구장창 잘도 써내네요..^^;; 기류미사오 책중에 잔혹함이라던가 악녀에 대한 이야기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겹치는 이야기도 많을듯;; 확실히 이런 주제의 책이 자극적이라 흥미도 자아내고 많이 팔리기도 하기 때문일지...
아무튼 저도 보고싶네요.^^ 아무리 봐도 이런 책들은 왜이리 재밌는지...=_=

근데 앨리스 리델 이야기가 여기 왜 들어있나요?ㅇ.,ㅇ 루이스 캐럴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평생 아이들에게 책이나 읽어주면서 살고싶다고 했다던데, 확실히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롤리타 컴플렉스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지요.
정말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확실히 뭔가(?)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수 있겠지요.^^;
이전에 읽었던 기류 미사오 책들을 떠올려보면, 의혹만으로 억측하는 부분들도 좀 있었던것같애요. 하지만 이런 의혹들이 사실 자극적이라 재밌긴 하지요...^^음모론처럼...

쥬베이 2012-03-13 13: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잔혹동화>도 그렇고, <처형대 세계사>도 그렇고, 작가가 저런 얘기를 좋아한데요ㅎㅎㅎ

우와 역시 시즈님 예리하시다^^ 기류 미사오는 루이스 캐럴이 로리콘이라고 주장합니다ㅋㅋㅋ 내용을 보면 '정말 그런가보다'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시즈님 댓글을 보니, 반드시 진실이라곤 할 수 없겠네요. 아 앨리스 리델, 이쁘더라고요ㅋㅋㅋ 그냥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Apple 2008-09-22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기도 하고, 애인데 참 묘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애인데 어른처럼...
루이스 캐럴얘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서 그런 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아이들 사진을 참 많이 찍었엇는데, 사진들이 참 묘해요. 애들을 애들같이 찍어놓은게 아니라 애들을 어른같이 찍어놓은 느낌이랄까...그래서 로리콘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같기도..^^

쥬베이 2008-09-22 02:31   좋아요 0 | URL
헉!! 시즈님!!! 어쩜 저리 잘아세요??
맞아요. 애인데 꼭 어른처럼 생겼어요. 저도 저런 생각했어요...
시즈님 사진 보신건가요?? 놀랐어요 정말 우와ㅋㅋㅋㅋㅋ
 
제국의 뒷길을 걷다 - 김인숙의 북경 이야기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국의 뒷길을 걷다>의 부제는 '김인숙의 북경 이야기'이다. 여행기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일반적인 여행기는 아니다. 혹시 북경사람들의 생활내지 먹거리, 북경생활의 에피소드를 기대한 분이 있다면 '뭐지, 뭐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중국의 상징 '자금성을 중심으로 주요 건축물들에 얽혀 있는 역사적 이야기를 풀어간다. 생활, 먹거리, 에피소드, 거의 없다.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더해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핵심은 중국 근현대사에 맞추어져 있다. 생생함이 묻어 있는 역사서 같다고나 할까.

중국 근현대사의 중심인물인 서태후, 마지막 황제 푸이, 황후 완룽과 관련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약탈당하고 무너져 가는 왕조의 비애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황제에서 일반인으로 전략한 푸이의 고뇌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푸이는 세 살에 황제에 올랐다. '신해혁명에 의해 중화민국이 선포되자 그 이듬해 일곱 살 나이에 퇴위 선언을 하고, 열아홉 살에는 자금성에서 쫒겨 났으며, 만주국 황제가 되기도 한다.'(p.24참조) 험란한 삶의 종점은 포로수용소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중국으로 송환된 그는 무려 9년간이나 사상개조를 받고 '보통 사람'이 되었다. 말 그대로 드라마같은 삶. 포로가 된 푸이의 궁색한 처지가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수용소에서 연필상자 접는 부역을 시켰는데, 푸이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러자 과거의 대신들이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p.28참조) 한때 그를 쳐다 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말이다.

황후 완룽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완룽은 열일곱 살때 푸이와 결혼한다. 국모인 황후의 자리에 오르지만 푸이와의 결혼은 그리 행복한 선택이 아니었다. 푸이는 성기능을 상실해서 완룽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하지 못했다. (풍문일 뿐이지만 제반사정으로 볼 때, 진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임) 또한 이미 퇴위한 명목뿐인 황제와의 생활은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한 아편중독자가 되어 무너져 버린 완룽, 그녀에게 아편은 악마의 유혹같은 마지막 도피처였다. 해방군에 끌려다니다 행려병자로 최후를 맞이한 완룽, 황후가 아닌 삶을 살았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중국에서 오랫동안 작품구상을 했던 작가의 첫 작품이 소설이 아닌 것은 조금 의외였다. 소설가 김인숙이란 생각이 뭐낙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여정이 바탕이 된 역사 이야기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 애사
이수광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애사>에 대해선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등으로 유명한 이수광 작가의 신작'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요즘 쏟아져 나오는 대중역사서 중 상당수는, 이수광 작가의 성공에 자극 받은 것이다. 설불리 포맷을 차용했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떤 것이든 인기를 끌면 아류는 탄생하는 법이니까.

역사의 숨겨진 사건과 일화를 포착해서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작가의 능력,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크게 사부(思婦), 애국(愛國), 효행(孝行)등 11부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전 시리즈(일명 '조선을 뒤흔든' 시리즈)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보다 더 유교적이고 감동적인 소재를 다룬다. 비교적 잘 알려진 위인들-정약용, 성삼문등-의 숨겨진 비극애사를 다루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인상적인 몇 부분을 살펴보자.

[내 꿈에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세요](p.141)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눈물겨운 편지 이야기다. 병마에 시달리는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까지 잘라 미투리(짚신)를 삼았지만, 남편은 끝내 일어나지 못한다. 원이 엄마는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편지를 관 속에 미투리와 함께 넣는다. 절절한 슬픔이 담긴 편지, 정말 감동이다.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 하는 글을 봤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글은 이번에 처음이다.

[절조가 어찌도 그리 매서웠는가](p.222)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박문랑'이란 처녀의 이야기다. 사건은 이렇다. 고을현감 박경여는 조부가 죽자 시골선비 박수하의 선산에 몰래 묘를 조성한다. 이에 분개한 박수하가 산송을 걸지만 도리어 곤장을 맞아 죽는다. 아비의 죽음에 분노한 딸 문랑은 분연히 외친다. "다행히 원수 놈의 할아버지 무덤이 우리 선산에 있다. 내가 그 무덤을 파헤쳐 불을 지르면 원수 놈이 놀라서 달려올 것이다. 그때 내가 필히 그 배에 칼을 꽂아 죽이리라"(p.224) 한편, 조부의 묘가 파헤쳐졌다는 소식을 듣고 박경여 역시 분기탱천해 문랑의 마을로 달려온다. 일파만파 커져가는 사건,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애사>의 품격을 한차원 높혀 준 것은, 올컬러로 실린 수백점의 그림이다. 실려 있는 김정희, 정선, 김홍도등 조선 최고 화가의 작품은 이야기의 맛을 배가 시킨다. 예를 들어, 김정희의 '세한도'(p.78)를 통해서는 백두산 야생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던 모녀(毛女)의 슬픔을 떠올린다. (저 여인은 폭설을 피해 식량을 찾아나선 무리에서 낙오해, 백두산 야생에서 야생화 된 것임. 동양판 '늑대소녀') 뿐만 아니라, 표지와 삽화도 아주 근사하다. 음영처럼 표시된 조선여인과 특별코팅이 되어 있는 꽃이 대비되면서 색감이 제대로 사는 것이다. 멋지다.

소개된 21가지 이야기는 역사 속에 잠든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이 땅에 살아간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역사 속에서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애사>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 - MIT대 교수가 독한 마음 먹고 쓴 자기비판서
존 터먼 지음, 하워드 진 서문, 이종인 옮김 / 재인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서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읽어본 적 있는가? 시집도 소설도 아닌 책을 이토록 감동하며 읽은 건 처음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고 쌓아온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게 더 많다.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미국의 숨겨진 모습을 통쾌하고 명확하게 들춰 낸다. 이 책을 들고, 대학가로 달려가고 싶다. 고등학교를 누비고 싶다. 이런 멋진 책을 함께 하고 싶다. 왜 베스트셀러에 이런 책은 없는 걸까? 마케팅과 보이지 않는 손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현실이 새삼 역겹다.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그 제목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추악한 행동을 살펴보는 책이다. '환경과 경제', 지식과 문화', 보수 우익과 기독교 근본주의', 패권주의와 외교정책'처럼 큼지막한 대주제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앞에 실린 '하워드 진'의 서문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하워드 진의 날카로운 비판은 충격이었다. 근래 보기 드문 명문 중의 명문이다. 읽는 내내 감탄했고,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석 같은 글, 혹시 이 책을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문만큼은 꼭 읽으시길. 서점에 죽치고 앉아서라도.

하워드 진은 말한다. "부당한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하고, 저항하며,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명예로운 전통이다. 그리고 존 터먼은 바로 그런 전통과 사상에 입각하여 이 책을 썼다. 이런 책을 쓰고 읽고 출판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일이다."(p.18) 자,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고양해 보자.

실려 있는 100가지 비판은 어느 하나 공감가지 않는 게 없다. 미국의 반환경적 행태나 무기판매문제(p.57)같이 널리 알려진 비판도 있고, 갱스터 랩(p.113)과 자기계발서 열풍문제(p.126)같이 그동안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또한, 이제 더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닌 것도 많이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미국에 대한 비판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런 신기한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걸까?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믿는다. 답답한 현실.

몇몇을 살펴본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p.126이하)은 정말 통쾌했다. 그간 비정상적인 자기계발서 열풍에 의문을 넘어, 의혹까지 품고 있던 나로서는 한문장 한문장 가슴 깊게 공감했다. 저자는 자기계발서의 열풍현상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살펴본다. "자기계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자아가 모든 것에 우선하며, 인생의 많은 문제를 정직이나 믿음(예수 또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회복 등의 덕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주장은 개인이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와 만족을 얻게 된다. (중략) 이런 현상은 모든 것을 원자화하는 미국 문화와 경제 정책 탓이 크다. 동시에 이는 미국인들이 천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의 행복에만 몰두할 뿐 이웃과 다른 나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p.128,129참조)

또한 자기계발서에 대한 미국내 비판도 소개한다. "정신 치료의 경우 몇 년에 걸쳐 일대일 상담 방식으로 진행해도 성공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하물며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한두 번 나가고 자기 계발서 몇 권 읽었다고 평생을 따라다닌 나쁜 습관이 고쳐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브로드스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자기 숙모나 자동차 정비공도 해 줄 수 있는 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웬디 캐미너) 어떤가? 당신은 뭘 느꼈는가? 난 평소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생각을 날카로운 말로 옮겨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미국내에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폭넓은 비판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랍다. 지금 베스트셀러를 보면 자기계발서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별 내용이 없다. 마케팅의 힘,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베스트셀러. 이제 그만 좀 하자.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균형있는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우고 쌓아온 미국관, 나아가 세계관보다 이 책을 통해 얻은게 더 많다'면 말 다한거 아닌가? 특히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또한 자기계발서 출판업자, 무차별적 선교를 일삼는 일부 종교인, 미국을 향한 해바라기 아니 미국바라기 정치인, 등에게도 사서 보내주고 싶다. 학생들만 공부가 필요한게 아니다.

 


* 하워드 진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부란 모든 이들의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목적으로 국민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립된 존재이다. 그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이런 목적을 파괴한다면, 국민은 언제든지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앨 권리가 있다."(p.16) 저 말이 왜이리 가슴에 와닿는지…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는 자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리 2008-07-0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오하고도 선뜻 뭐라 말하기 어려운 주제임도 분명하고...쥬베이님처럼 신랄하게 긍정도 하지 못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쥬베이 2008-07-07 10:07   좋아요 0 | URL
때가 때인만큼 조심스럽긴 한데,
그간 제가 마음속에 갖고 있던 걸, 너무나 속 시원하게 말해주더라고요ㅋㅋㅋ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 1
이은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과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명저를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관심은 있지만 '따분하고 어렵지 않을까?'란 두려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게 과학이다. 하지만 역으로 저런 고정관념이야말로 이 책의 존재가치이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을 재미있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굉장히 '친절한 책'이다. 소주제별로 깔끔하게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저자가 내려준 동아줄을 그냥 잡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구성은 이러하다. 각 꼭지마다 한 권의 과학고전이 소개된다. 먼저 'XXX는 누구인가?'로 저자소개를 한다. 그 다음, '핵심개념 프리뷰', '콘텐트를 확장하라!'에서는 내용소개, '생각해 볼 문제'에서는 과학고전을 바탕으로 한 논술문제를, '더 읽어 봅시다!'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다른 책을 소개한다. 굉장히 탄탄하다. 평소 과학대중화에 관심이 없는 저자라면 도저히 저렇게 정리할 수 없다.

특히, 주목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과학(앞에 소개한 과학고전)을 주제로 한 논술문제를 수록하고 있다. 대입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독자에게는 논술준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일반독자에게는 본문내용을 좀 더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단순히 논술문제가 있다하여 '청소년만을 위한 책'이라 단정해서는 안된다.

[마틴 가드너의 '아담과 이브에게는 빼꼽이 있었을까'](p.38이하). 이 책은 '사이비 과학'에 대한 비판서이다. 사이버 과학이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과학적인 이론들에 기초하여 주장하는 아이디어들의 모음(p.39)이라 한다. 저자는 최근 널리 퍼진 혈액형 심리학을 예로 든다. 과학적 상식에 비추어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혈액형이라는 생물학적 소재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람들이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다는 것(p.45참조)이다. 이어 논의는 대체의학이 사이비과학인가 여부, UFO와 초능력의 검증여부로 확대된다.

[스티븐 제이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p.252이하) 저자는 먼저 굴드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생물학적 이론들-단속평형설, 환원주의, 생물학적 결정론등-을 설명한 다음, 굴드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살펴본다. 굴드는 정신성에 대한 정량화 주장을 비판한다. 즉, 인간의 정신적 능력은 어떤 정량화된 수치로 강제될 수 없다는 것(p.259)이다. 이어 과학이론이 사회적으로 적용되는 경우 왜곡되는 사례를 설명한다. 새롭고 어려운 개념과 이론이 이어지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

<하라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오랫동안 과학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저자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탄탄한 구성과 흥미로운 서술은 '과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날려 보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