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한 만찬>은 음식산문집이다. 보리밥, 다슬기탕, 토란같이 작가가 어린시절 함께하던 먹(을)거리를 이야기한다. 작가가 풀어내는 음식이야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지만, 진하게 베어있는 유년의 향수야말로 이 책의 묘미다. 쌀이 귀해 하루 한끼는 고구마로 떼워야 했던 그때, 계란을 들고 가게에 가 학용품을 사던 그때, 아련하고 애잔한 느낌이 든다.

이 책엔 음식과 먹거리 사진이 올컬러로 큼지막하게 실려 있다. 사진만 봐도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대롱대롱 말려지는 감(p.55,59), 메주(p.93), 그리고 늙은 호박(p.185)등등. 음식산문집이라 읽기전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침이 하나가득 고인 사진도 있다. 부추부침개(p.168), 메밀돌돌이(p.242)가 바로 그것이다. 고향이 강원도인 부모님덕에 어릴적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라, 정말 먹고 싶었다. (한가지 궁금증. 강원도 부침개하고 전라도 부침개하고 맛이 비슷할까. 보기엔 비슷해보이는데^^)

구수한 사투리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딸랑구, 단쭈시, 외, 묵게크롬 등등. 이는 유년의 향수와 잇닿아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전부 표준어로 제대로 쓴다면 구수한 맛이 살겠는가? 유년시절이 제대로 추억되겠는가?

인상적인 몆부분을 보자. [동부. 돈부죽 끓이다 집시랑 태워먹은 가시내야](p.174) 동부는 강낭콩과 비슷하게 생긴 콩이다. 초등학교때 사먹던 불량식품중에 동부랑 똑같이 생긴, 이름마저 동부인게 있었다. 동부하면 실제 동부보다는 불량식품이 먼저 생각난다. 멋적지만 사실 동부콩을 실제로 본적이 없다. 작가역시 불량식품 동부를 알고 있었다. "밀가루 과자이긴 하지만 어찌 돈부라는 말을 알아서 그렇게 돈부과자를 다 만들었을까, 소위 '불량식품'계보에 속하는 그 과자가 왈칵 반갑기까지 하더라니!"(p.175)

마치 드라마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동부죽을 끓이다 초가집 태워먹을 뻔한 가시나 이야기. 동부죽을 하도 많이 끓어 이골이 난 가시나, 화덕 불이 기어나는 줄도 모르고 밀가루반죽만 치대고 있었단다. 그러다 초가집에 불이 붙자 어떻게 해보려다 결국 동생만 업고 도망갔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p.180참조) 저자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돈부죽 쑤다 집시랑 태워먹은 가시내야,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거라. (중략) ...본 적이 있으신 분은 가시내한테 지금 돈부죽 다 끓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해주시면 후사하겠씀다아!"(p.181) 하하. 이게 공선옥표 유머구나.

공선옥표 유머라…이런 부분도 있다. 저자는 먹거리들 대부분이 여자들에 의해 거두어진 것이고 남자들이 유일하게 거둔 미꾸라지 역시 여자들에 의해 요리된다며, "그러니 결과적으로 남자들, 더군다나 머시매들은 여자들 아니면 굶어죽게 생겼다. 그래도 머시매들은 어떡하든 안 굶어 죽으려고 그랬는지, 언젠가 보니까 뱀을 잡아다가 신문지에 싸가지고 불에다 구워 먹더라니. (중략) 하긴, 즈이 엄마나 누나나 여동생이 추어탕 안 끓여주면 미꾸라지도 그냥 불에 그슬려 먹을 놈들이다."(p.226) 하하. 이 부분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맞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자 없으면 못살 인간들이다. 궁상맞아 진다니까.

<행복한 만찬>으로 공선옥 작가와 처음 만났다. 뒤늦은 만남엔 다 이유가 있었다. 유년시절을 추억한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이 작품으로 공선옥 작가를 알아가라는 신의 계시^^ 감히 말하겠다. <행복한 만찬>은 지금까지 읽은 산문집중 최고다!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고마운 책. 꼭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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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6-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때가 있었죠. 몇몇 여성작가들의 자의식 과잉, 자기 과시적이며, 지나치게 날이 선 태도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선옥 작가는 조용하면서도 존재감있는 몸짓으로 묵묵히 자기 글을 썼던 게 떠오르네요. 서평만 읽어봐도 '공선옥'다운 문체가 물씬 느껴지니 반갑네요^^*

쥬베이 2008-06-01 16:14   좋아요 0 | URL
lazy devil님께선 이미 공선옥작가님 작품을 읽으셨군요
저는 이 작품말고는 읽은게 없어요.
어떤분은 공선옥작가 문체가 '촌스러워 싫다'고 하시던데ㅋㅋㅋ
얼른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