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리바리 


- 바람이 요란하다. 운동장은 안온할 줄 알았는데, 강풍은 광문들 틈으로 더 세차게 분다. 태풍같다. 이러다간 몸도 가누기 힘들겠어. 이런 날 인터벌 트레이닝을 계획하는 건 뭐람. 그래도 해야지. 


러닝 욕심에 일찍 나온 덕에 이른 귀가다. 남겨둔 아니 남겨진 재료들, 양파, 오이, 토마토, 대파 등등에 고구마까지 자칫 늦춘다면 물러지거나 무른 야채층이 생기니 말이다. 들어가자마자 작은 고구마들을 오븐에 넣고 양배추 오이 양파 파를 썰어 볼에 넣는다. 소금을 넣자. 어어, 많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식초와 맛술도 숨이 좀 죽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시식해볼 두부면도 삶는다. 삶기는 건가. 아닌가 면발이 그대로 있는다. 아니지. 더 더 끓여야지. 그리고 양상추도 썰어서 넣고 생고구마 남은 것도 넣어보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면을 다 된 듯싶다. 물빠짐 스텐볼에 넣고 찬물샤워, 초고추장에 오이와 파를 채썰어 시식해본다. 어 -- 그런데로 먹어줄만 하다. 일단 배고픈 기운은 가셔지는 듯하다. 다음은 남은 두부와 토마토. 토마토를 송송, 두부도 송송...올리브유를 넣고 토마토와 두부.로 익힌다. 그리고 계란, 한 손 넣기 신공 발휘는 쉽지 않다. 겨우 두 개 넣고 뒤집개로 쓱쓱 저어준다. 간을 할까 말까... 그래 까나리액젓 조금만 넣고 심심하게 들어보자. 


그러는 와중에 숨이 죽어가는 양배추 샐러드 재료를 간을 보자마자, 헛 짜다. 어쩌냐구. 흑흑. 그래 물빠짐 채반기가 있지 돌려보는 것이 맞다싶다. 넣고 돌리고 넣고 돌리고 볼에 짠 소금물이 남아 있으니 정석대로 한 것이다. 큰 보관용기 3리터를 사오길 잘했다. 넣고넣고......아  어쩐다 탄내는 뭣인가....헉. 그래 바닥이 눌고 있던 것이다. 부엌은 숨가쁜 곳이구나 한 순간, 하나에 집중하면 안되는 벅찬 곳이구나 싶다.





2. 모멘트 


- 맛나다. 하물며 내가 만든 것인데 맛있지 않으면 어쩌라구.  군고구마도, 이탈리아식 볶은 토마토, 크기와 식감도 봐줄만 하다. 운동장 러닝은 대회주 속도를 재현하거나 체감하고 싶은 것이다. 큰 진척이 없는 싶어 원인을 알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왜 달리지 못하는 것인가. 흘려들었던 것들이 다시 잡힌다. 골반 회전. 팔치기. 골반을 던진다.는 말. 대체 무슨 말인 것인가.  물리를 배울 때 뉴튼 역학. 정역학들만 집중하고 정작 동역학까지 발전을 못해내는 내가 아쉬웠다. 하물며 층류는 고사하고 난류는 계산하거나 해석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었다. 공학수학을 포기한 날날이 졸업생은 여전히 생소하다. 최근 공기나 물이 조금씩 쌓이다가 소용돌이를 만드는 수학의 난제를 AI가 풀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의 흐름들을 예측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제갈공명이나 아르키메데스의 종합적이고 분권적인 일원론이 바람과 비의 방향을 예측해내는 확율이 더 클 수도 있다. 정교해졌고 과학은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직관과 종합력은 더 미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러닝은 젓가락에 고무줄이 달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 그렇게 설명해낼 수 있지만, 그토록 많은 유투버들이 정역학에 갇혀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해내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몸으로 체화된, 체화해낸 이들은 무수히 많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는 사이 내 몸은 이미 알아낸 것이다.


비가 올 것 같아 하면서.



볕뉘


잠잠하던 일터의 기계가 말썽이다. 이렇게 불현 듯 감당과 관찰의 범위에 벗어나 있는 것들이 불쑥 쳐들어올 때 조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사유 체계는 너무 단순하다. 그래서 남의 시야과 시선을 늘 넣거나 넣으려고 해야 한다. 


한 번에 많은 요리를 하면서, 문득 왜 바리바리 싸주게 되는지를 느낀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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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날씨다. 나가고 싶다. 온 종일 싸돌아다니고 싶다. 그런 날이다. 오늘은 잔뜩 흐려있지만, 살짝 살갗을 움츠려들게도 만드는 바람들이 있어 좋다. 지난 주말 연속 이틀 10k 러닝대회를 참가한다. 그래서 이틀, 어제도 독서모임을 핑계로 몸을 쉬어준다. 


이틀 전, 맥주 생각이 나서 신상 가게 검색을 하다가 문어튀김집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손에 쥐어진 책이다. 얇다. 저자인 그녀에게서 나이를 실감할 수 없다. 


혼맥을 하며 빠져들다가 나온다. 두 잔이 비어지고 간장 치킨까지 먹은 후였다.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동물들이 오버랩된다. 그들은 혼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주며 읽고 나눌 줄 안다.


흔한 말이 되기도 하지만, 언어를 발명한 우리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퇴화시킨지도 모른다. 다른 감각들은 현저하게 떨어지며 그것도 기관의 우선순위를 언어와 논리에 둔다. 그래서 바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뇌가 썩어들어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직선의 논리가 과하다. 어루만질 줄을 모른다. 자르고 버리는 언어들. 그들이 숱한 관계와 작은 것들의 쓸모마저 죽여버린다. 















볕뉘


그릭요거트 라벨을 보며 원유듬뿍으로 고른다. 오이와 신자두 한박스에 만원이다. 파프리카 하나, 양상추, 양배추, 토마토 등등을 사와 참치를 넣고 샐러드를 만든다. 다이소에서 물빼는 빙빙이도 사구 뒤집개도 준비한다. 볼에 넣고 만들다보니 양도 많아 작은 용기에 담아 맛을 여기저기 보인다.


당분간 엘렌식수에 빠져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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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옅어졌다고 느꼈던 향기가 출근하자 사무실 공간을 꽉 누를 듯이 짙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난초는 어떻게 벌과 나비의 형상을 재현할 수 있을까. 어제 냉천을 따라 걷뛰를 하다 든 생각이다. 아니 그보다 일찍 아무리 숨이 넘어갈 정도로 갈급하다고 할지라도 몸을 바꿀 수 있단 말. 주변의 색들을 여지없이 닯아내는 문어도 그러하며, 식물들이나 살아있는 것들의 갈증이 어떻게 자신의 바꾸어낼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아니라 그것도 다른 곤충과 사모하는 사랑하는 무엇들을 위해 번질 수 있단 말인가. 궁금증들이 뿌리를 뻗어나갔지만 그 정도에서 줄이기로 한다.


사무실 문을 열고 닫자. 이토록 진한 향기라면 뭔가 끌려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다. 다가서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 방 안에는 진딧물이 살고 있다. 4호화분의 흙에 거처를 틀고 있는 녀석들은 작년 가을 소국이 꽃을 피우고 잔뿌리 하나가 겨우 살아남았다. 그 소국이 대를 올리고 어느 정도 크자마자 빨대를 꽂고는 하나하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5호 화분 난방기구의 열기에 고사한 잎들은 살기위해 잎의 면적을 키웠다. 백 여개의 가지, 아니 삼 사 백개의 가지 가운데 십 여개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넓은 잎을 피운다. 살아갈 길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맞다 진딧물 그 녀석들은 이들이 덩치를 키울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여지없이 빨대를 꽂는다.


다이소에 살충, 진딧물을 가려내기 위한 약제를 찾는데 없다. 농약이면 좋겠지만 혐극물은 없다. 붕소를 희석해서 넣은 식물영양제가 최선이었다. 헝, 이건 있는데, 그래 사무실에 있는 걸 써보자 한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아니면 너희들은 막걸리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단 말이다. 입이 막혀죽는 중벌을 받는단 말이다.


볕뉘


이 삼일, 식수의 강연기록을 읽는다. 카프카, 주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동시에 나온다. 장 주네도 읽기는 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읽어내진 못했다. 다시보기이기도 하지만 알다시피 도끼님이 다시 나오신다. 편지글의 바다의 얼음을 깨는 도끼, 카프카의 도끼 원문도 볼 수 있다. <<광택>>이란 책. 리스펙토르의 책은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듯 싶다. 많이 인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번역자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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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뗑환경. 출근길 아이스커피를 찾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잠시 들르는 곳이다. 다행히 직원들이 무던해서 뭐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잠재고객인 걸 아는 바는 없지만 나는 그 사장을 안다. 그렇게 우연이 한 여섯 번 겹치는 오늘 아침. 대자마자 직원들 두 명이 헐레벌떡 나온다. 다른 곳에 주차해달라고 말이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옆으로 빼서 댄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연들은 필연을 예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당장은 기분이 나빴다. 몸의 문제다. 피와 살.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설프게 이해하는 것들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출근길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한다. 


처음에는 옳고그름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머리가 뱀처럼 솟구친다. 하지만 이내 숨을 고르자 다리에 가까운 문제라 여겨진다. 맞다. 불쾌가 그들의 나와바리에 겹친겨야. 그 시공간에 불쑥 침범이라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얼마나 많은 선택폭을 좁히는지. 


땡땡당이 지난 지방선거 평가에는 관심도 없고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로 갈라치기해서 서로 몸과 마음을 얼마나 상하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권 일이년차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몸과 마음 아니 옳고 그름으로 일상화된 나날의 편린들은 그들의 신념들을 더 확고하게 할 것이다. 


사무실 아아셔틀은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일상이기도 하다. 내일은 몸의 데미지를 생각해서 다른 카페를 발굴해야 할 것 같다. 신체에 이런 흐름과 우연과 필연 그리고 역사가 새겨진다는 말도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아침. 넥타이가 보여 매고 가도 좋을 듯하다. 다*소 제품이다. 자크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만 무리한 힘을 가해서 떨어진 듯하다. 가방에 넣어 함께 출근이다. 일터에 와서 씨름한다. 그냥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묶인 실을 뜯고 다시 펴고 구조를 살핀다. 그제서야 자크를 보수할 가능성도 보인다. 자크를 수리하고, 넥타이 묶인 구조를 생각하길 여러 번 드디어 수선을 완료한다. 처음보다 각이 덜 잡히긴 하지만 봐줄만 하다. 또한 정이 들어버려 매지 않을 수 없다. 멋쩍긴 하지만 매어보니 잘 어울린다 싶다. 매자.



어젠 제일 가까운 도서관을 가고싶었다. 그곳에서 책들을 읽다가 일반자료실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맞아맞아. 생각가는대로 하는 것이지. 중간중간 간을 하고, 그리고 물빼는 도구들도 눈에 들어오고 실리콘 주걱의 용도도 새긴다. 볼도....그리고 가까운 시장에 들렀지만 마트도 조금씩 살 곳이 없어 결국 사택 근처 식자재마트다. 여전히 일인 매대는 있지만 일인이 적절하게 살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씨름이다. 혼자와 여럿. 홀로와 며칠분.  계란과 감자. 레인지와 주방요리를 번갈아 시도하면서 금주 일용할 양식들을 준비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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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01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핀스트라이프 셔츠와 네이비 넥타이의 조화가 멋집니다! 원단이 시어서커 같기도 하고 면 같기도하고...시어서커면 최고의 조합이네요! 암튼 멋집니다요~!!^^

여울 2026-09-02 16:05   좋아요 0 | URL
네 오돌토돌해요. 시원한 여름보내고 있고, 애정하는 옷이기도 하구요. 감사합니다^^
 
















1. 밀란쿤데라 


저자의 책을 읽은 것이 없다. 말로만 들었을 뿐, 정작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다. 오해하기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관심밖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이야기는 잘 숨기고 사건으로만 말해야 하고, 인물과 배경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고 글쓰기 책들은 말한다. 시종 흥미롭게, 그가 미리 내밀어둔 장치에 집중하면서 읽게 된다. 여러 경험들로 이루어진 지금의 나에겐 읽기 적당한 때인 것 같다. 아니 청춘의 나와 지금의 나로 거듭 읽으면 분명 관심가는 인물이 달랐을 것이다. 음, 지금에선 읽고 난 뒤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 가벼움-무거움, 우연-필연, 이념(이데올로기)-지향, 삶은 짧고 한번이다. 그 이야기 안에 이런 배합은 너무도 작다. 삶의 음악을 연주하기엔 유효한 책이 될 듯하다.


2. 구천을 떠돌다


놀란 감독이 오딧세이아에서 구천에 떠도는 자들 다시 돌아오게 한다. 이 책 <아야이! 문학의 비명>도 그러하다.  이항대립의 주춧돌이기도 한, 삶-죽음으로 가르는 장면과 사유는 사고를 왜곡된게 한다. 정상인-비정상인 구도, 강함-약함의 구도처럼 은유되는 것들의 무한반복을 낳는다. 네팔 계곡의 참사를 끊임없이 지켜본다. 말할 수 없는 참혹함, 생사를 넘나드는 찰나. 가스통을 부여잡기 위해 격랑을 헤쳐가는 이. 빙하호 홍수가 하루 이틀의 일들도 아니고 피해가는 방법들도 나라마다 달랐다. 그 지구적 원인 가운데 이 나라도 큰 몫을 차지한다. 문학의 비명. 엘렌 식수는 이 책임을 다룬다. 비명들을 한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비겁함과 그것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라는 생각의 부재함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구제할 수 없다. 죽음을 온전히 볼 수 없다.


3. 글쓰기에 다-다르다


동일자의 늪에 빠지면 , 다른 것과 타자를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팔과 다리를 부러뜨려 팔 두개 다리 두개로 만들어야 한다. 곤충의 눈과 더듬이 그리고 머리 가슴 배에 달린 다리는 모두 이상한 것이다. 동일자의 신화에 계열계급화된 팔루스중심체계는 약하고 이상하고 다른 것들을 모두 뱉어내거나 억압하여 죽인 체계이다. 그들은 달라질 수 없다. 다른 것은 다른 것들로 모시거나 섬겨주는 출발을 할 수 없다. 가장 먼저가 여성이다. 여성되기. 무의식 없는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와 라캉이 거세된다. 되어야 한다. 발견한 대륙마저 이분법의 영토로 환원시키기때문이다.  천의 이름 만의 이름 수십억의 이름으로 달라진 몸과 살은 그대로 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다르다고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의 자장이라고 말한다. 아니 새긴다. 정녕 그렇다. 얼마나 다르다. 다르고 다르기에 다르게 존재하는 법들을 배워야 한다. 충만감과 에너지를 넘쳐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다르게 살 수 있다. 동일자의 자석들은 모든 쇠붙이를 자기 것처럼 찾아 붙이지만, 모든 살아숨쉬는 것들을 보듬는 액체의 세상과 습속은 어루만지고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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