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란쿤데라
저자의 책을 읽은 것이 없다. 말로만 들었을 뿐, 정작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다. 오해하기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관심밖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이야기는 잘 숨기고 사건으로만 말해야 하고, 인물과 배경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고 글쓰기 책들은 말한다. 시종 흥미롭게, 그가 미리 내밀어둔 장치에 집중하면서 읽게 된다. 여러 경험들로 이루어진 지금의 나에겐 읽기 적당한 때인 것 같다. 아니 청춘의 나와 지금의 나로 거듭 읽으면 분명 관심가는 인물이 달랐을 것이다. 음, 지금에선 읽고 난 뒤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 가벼움-무거움, 우연-필연, 이념(이데올로기)-지향, 삶은 짧고 한번이다. 그 이야기 안에 이런 배합은 너무도 작다. 삶의 음악을 연주하기엔 유효한 책이 될 듯하다.
2. 구천을 떠돌다
놀란 감독이 오딧세이아에서 구천에 떠도는 자들 다시 돌아오게 한다. 이 책 <아야이! 문학의 비명>도 그러하다. 이항대립의 주춧돌이기도 한, 삶-죽음으로 가르는 장면과 사유는 사고를 왜곡된게 한다. 정상인-비정상인 구도, 강함-약함의 구도처럼 은유되는 것들의 무한반복을 낳는다. 네팔 계곡의 참사를 끊임없이 지켜본다. 말할 수 없는 참혹함, 생사를 넘나드는 찰나. 가스통을 부여잡기 위해 격랑을 헤쳐가는 이. 빙하호 홍수가 하루 이틀의 일들도 아니고 피해가는 방법들도 나라마다 달랐다. 그 지구적 원인 가운데 이 나라도 큰 몫을 차지한다. 문학의 비명. 엘렌 식수는 이 책임을 다룬다. 비명들을 한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비겁함과 그것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라는 생각의 부재함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구제할 수 없다. 죽음을 온전히 볼 수 없다.
3. 글쓰기에 다-다르다
동일자의 늪에 빠지면 , 다른 것과 타자를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팔과 다리를 부러뜨려 팔 두개 다리 두개로 만들어야 한다. 곤충의 눈과 더듬이 그리고 머리 가슴 배에 달린 다리는 모두 이상한 것이다. 동일자의 신화에 계열계급화된 팔루스중심체계는 약하고 이상하고 다른 것들을 모두 뱉어내거나 억압하여 죽인 체계이다. 그들은 달라질 수 없다. 다른 것은 다른 것들로 모시거나 섬겨주는 출발을 할 수 없다. 가장 먼저가 여성이다. 여성되기. 무의식 없는 정신분석의 프로이트와 라캉이 거세된다. 되어야 한다. 발견한 대륙마저 이분법의 영토로 환원시키기때문이다. 천의 이름 만의 이름 수십억의 이름으로 달라진 몸과 살은 그대로 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다르다고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의 자장이라고 말한다. 아니 새긴다. 정녕 그렇다. 얼마나 다르다. 다르고 다르기에 다르게 존재하는 법들을 배워야 한다. 충만감과 에너지를 넘쳐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다르게 살 수 있다. 동일자의 자석들은 모든 쇠붙이를 자기 것처럼 찾아 붙이지만, 모든 살아숨쉬는 것들을 보듬는 액체의 세상과 습속은 어루만지고 자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