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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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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점이 많지만, 진정한 형태 즉 순수한 형태의 아나키즘과는 더욱 그렇다. 아나키즘 앞에 무정부주의적, 사회적, 신, 심지어 리버테리언 등 어떤 형용사가 붙어도 사정은 같다. 코뮌주의를 아나키즘의 한 변종으로 보는 것은 두 사상의 차이점을 간과하는 것이고, 두 주의가 민주주의, 조직, 선거, 정부 등에 대해 서로 상충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코뮌주의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든 셈인 파리코뮌 투사 귀스타브 르프랑세는 단호히 선언했다. " (나는) 코뮌주의자다.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코뮌주의는 권력의 문제에 관여한다. 자칭 아나키스트들입네 하는 이들의 소위 공동체운동과 사뭇 다른다. 공동체주의자들이 벌이는 사업의 예는 서민차고지, 인쇄소, 생협, 뒷마당 가꾸기 운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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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친씨! 조금 급하신가봐요?!  결론부터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구요. 두괄식으로 사회적 생태론에 대해 말했으니 어서 코뮌주의를 집고 넘어가자구요. 아~~ 정 그렇다면? 내친 김에 달리죠. 귀를 기울릴까요? 그러지 않아도 급히 온 감이 있는데요. 안그래요! 북친씨!! 아니라구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 듯하다구요. 그래요.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후후.


 

당신 사상에 아나키즘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다르다는거죠. 순수한 아나키즘의 변종 아닌가요? 차이가 있다면 뭐죠. "민주주의, 조직, 선거, 정부에 대해 상충된 생각을 갖고 있다." " 그 가운데 권력의 문제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의 와류와 근본적으로 달리한다면서요. 공동체주의자들이 한뼘공원, 생협, 텃밭가꾸기 운동에 올인한다면 뭐가 그들과 다르다는 겁니까?  좀 쉽게 설명해주세요.


 

2. "하지만 코뮌주의자들은 온 힘을 모아 시의회 선거에 참여한다. 왜냐하면 시의회는 잠재적으로 매우 중요한 권력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또 코뮌주의자들은 시의회로 하여금 법률적 권한이 있는 마을 회의를 만들게 한다....이렇게 만들어진 마을회의는 그런 국가기관들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고 무력화시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면 법률적 권한을 가진 마을 회의는 권력행사의 실질적 엔진이 된다....다음단계로 자치체 간 동맹을 맺고 그 동안 국민국가가 했던 역할에 도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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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해 시의회 선거에 참여한다구요. 음~ 우리는 별반 생각없는 듯 한데요.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도 없는데요. 있다고 해도 조직적인 차원이 아닌 듯한데요. 홀홀 단신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말에요. 그런데 시의회로 하여금 법률권한이 있는 마을의회?? 아니 마을의회를 만들게 하는 것이라구요. 북친씨!! 당신은 만들고 바꾸자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구요. 당신 속마음은 거기에 있는 것인가요? 그 마을회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사회적 실험으로 할 수 있다는 거죠. 뭔가 있죠!! 물에 물탄 듯 다음단계로 자치체가 동맹을 맺고...슬쩍 넘어가지 마시구요.!!

 

3. "코뮌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회에 참석하는 다양한 직업의 노동자들이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민회에 참석한다. 그러니까 직업은 특수 직종의 노동자지만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시민으로 참가한다는 말이다. 시민은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 전문가, 개인이라는 편협한 신분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자치체의 삶 자체가 이런 시민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시민을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을 교육한다. 결국 민회는 의사결정 기구일 뿐 아니라 복잡한 공동체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가운데 사람들을 시민으로 키우는 교육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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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대체 알듯 말듯한 소리를 해대고 계시는군요. 민회?! 노동자의 자격이 아니라 시민의 자격으로 사회의 이해를 대면하여 참가하여야 된다구요. 지금 여기처럼 부문 이기심이 많은 곳에서 편협한 신분 의식을 버려야 한다구요. 자치체나 공동체가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수단 말씀하시는 건가요? 민회가 지역의 문제를 다루고 시민으로 키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구요. 음~ 이해하기 벅차군요. 권력을 만들고 갖는다에만 방점을 찍고 돌이켜 볼께요. 북친씨! 오늘 너무 많은 말씀을 하셨어요. 이것저것 헛갈리게 말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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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생태론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이론이 아니다. 계몽주의의 이상, 그리고 (1)지난 두 세기의 혁명적 전통이 사회적 생태론의 뿌리다. 사회적 생태론의 사회분석과 목표는 마르크스, 그리고 표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급진 사상가의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특히 그들 이론에 내재해 있으면서도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근거한다. 또 사회적 생태론은 (2) 1936-37년 스페인 혁명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위대한 혁명 유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론이다. 한편 사회적 생태론은 제 사상의 신자유주의적 개량 내지 구역질나는 온건중도주의의 입장에 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좌파 전통을 욕되게 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산업주의" 입장이 그런 행보를 보여왔다. 그리고 "탈유물적" 영성주의는  두말할 것도 없다. 탈유물론적 영성주의는 에코-페미니즘,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즘, 심층 생태론, 그리고 소위 "사회적 심층 생태론" 내지 "심층 사회 생태론"에 의해 조성되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념인 "에코-아나키즘"과는 달리, 사회적 생태론은 친환경적으로 구성된 사회란 (3) 과거로 돌아가는 형태여서는 안 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적 생태론은  전자처럼 원시적 삶, 내핍 생활, 극기 등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4) 물질적 향유와 여유를 강조한다. 사람들이 즐겁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5)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문명 창조와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려면 지적, 문화적 자기 계발의 여유가 필요한데, 삶의 이런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술과 과학을 거부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행복과 여유 창조를 위해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생태론은 배고픔과 물질적 궁핍의 생태학이 아니라 (6) 풍요의 생태학이다. 요약하면, 사회적 생태론은 일정한 계획과 관리의 중요성, 또 민회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각종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코 개인의 이탈행동이나 기행같은 멋대로의 행동을 예찬하지 않는다."

 

 

좀, 따분하죠. 이론적인 글이라 더욱 그렇죠!!! 이래서 지성을 믿으면 안된다나봐요. 그래도 잘 따라오셨잖아요. 중산층, 소부르주아와 함께 가야한다구요. 혹시 당신이 근본 생태주의자라구요. 그럼 더욱 잘 되었군요. 진 녹색이라?? 그렇다면 논쟁까지 마다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근본종교주의....그래도 알고 생각 엿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죠.  북친씨는 이렇게 물었죠. 지구에 인간이 필요없다면 환경만 지키고 필요하다면 인간을 없애는 것이 논리상으로 맞지 않느냐구요. 이런 모순에 빠져드는데 정말 당신의 순수한 열정에 의문을 품어달라고 했죠. 아마 그 책이 Social Remanking 이었죠. 이후 북친씨는 이론과 사상을 좀더 발전시켰다고 하네요. 한번 들어나보죠.

 

첫째 크로포트킨, 둘째 스페인혁명의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스트의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수용하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데요. 어떠신지요. '배 위에서 뛰어내려라!"라고 하나요. 잘못 이해했나요. 과거로 돌아가야한다. 모든 관계를 끊자라고 하지 않죠. 엔진을 꺼야한다고 하지 않아요. 네째, 다섯째, 여섯째 과학기술을 적극활용 하여야 된다. 물질적 여유와 풍요의 생태학이라고 하네요. 어때요. 당신이 갖고 있는 논리나 생각틀에서 벗어나나요. 양립할 수 없다구요.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면 다 꼬리표를 붙이시나요. 아니면 누구에게 물어보셔야 하나요? 그대로 서로가 부합하는지 곰곰이 진중하게 생각해보면 안될까요?


북친씨!  오랜만에 뵈니 잊고 있던 거 있죠. 당신이 민회와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과 매개와 역할로서 과학기술에 대해서 말입니다. 생태론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겠죠. 더 많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볼께요. 당신이 생각하는 과학기술하며, 풍요와 여유에 대해서도 말이죠. 조금 흥미로워지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가죠. 오늘 급히 달렸네요.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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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들은 오래전부터 모든 정부를 곧 국가로 간주하여 비판했다. 모든 종류의 사회 조직을 제거해야 한다는 그들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하지만,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국가는 억압하고 착취하는 계급이 피착취계급을 규제하고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임이 분명하지만, 정부 내지 정치polity는 협의가 필요한 삶의 문제를 평화롭고 공정한 방식으로 다루기 위해 고안된 제도들의 총체이다. 공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으로서의 모든 제도화된 협의기구는 국가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정부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한편 모든 국가는 응당 정부의 한 형식이긴 하지만 계급 억압과 통제를 위한 폭력수단이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에게는 공히 곤혹스러운 것이지만, 피압박 민중들은 수세기에 걸쳐 군주, 귀족, 관료계급의 횡포에 저항하여 헌법의 제정을 요구했고 입헌 정부의 수립, 심지어 법률과 규범의 제정을 요구했다. 그뿐인가. 이를 문서로 공식 천명하는 운동을 해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리버테리언들이 정부 자체를 반대하고 심지어 법률까지 반대하는 것은 자기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국정운영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 뿐 아니라 상호 반대되는 긴장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파들은 계속 이 둘을 같은 것으로 혼동해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는 국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특권 계급의 이해관계 아래 시민을 지배하고 시민을 손쉽게 착취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이다. 반면 정치란, 그 말 뜻 자체가, 자유 시민이 공동체의 일 처리와 자유 수호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는 1790년대 프랑스 혁명가들이 일컫던 시민주의의 구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라는 단어 자체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고대 아테네에서 이 말은 늘 민주주의와 함께 사용되는 가운데 시민에 의한 도시의 직접 지배를 의미하였다. 그러다가 수 세기에 걸쳐 이런 시민참여의 정치가 퇴락하고, 특히 계급이 형성되면서, 필연적으로 국가가 등장하고 그 국가에 의한 정치 영역의 침식과 합병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국정운영과 정치, 국가와 정부 그게 그거 아닌가요?  국정운영 잘 하면되고, 정치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구요. 하지만 북친씨가 토를 달죠. "정치란 자유시민이 공동체의 일 처리와 자유 수호에 적극 개입한 것"을 말한다 잖아요. "시민참여의 정치가 퇴락하고, 계급이 형성되면서 정부의 기능도 국가의 시녀역할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하네요. 그런데 북친씨의 지적처럼, 그  결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해본 적도 없어 대응도 천변일률인 것이 진보의 관행인 듯 싶은데요. 아닌가요? 민주진보세력이 있기나 한지? 집권에만 관심이 있어 잔잔한 변화의 키는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가요? 이리저리 유행처럼 쓸리고 쓸려가는 것이 정치인 것처럼 말에요.  "정부 내지 정치polity는 협의가 필요한 삶의 문제를 평화롭고 공정한 방식으로 다루기 위해 고안된 제도들의 총체이다." 공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으로서 정부나 정치에 대한 구분을 할 필요가 있고 집요한 관철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여기지네요. 그런면에서 세세히 그 구조와 시스템, 관행에 대한 여러 제어기능에 대한 살핌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싶네요. 당연히 해야되는 것이나 해줄 것으로 아는 것. 권력과 실행의 문제는 다른 것, 국정운영과 정치는 별개로 구분해서 이슈를 살리고 만들어가야 함에도 오로지 한가지 문제로 뭉뚱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소비자로서 상품의 미묘한 차이는 구별하지만,  정치와 국가폭력을 구분해지 못해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자기발등을 찍는 것이 일상이잖아요. 살려야 할 것은 2트랙이든 3트랙이든 정치란 고기맛이 부위별로 차별화되면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되는 것 아닐까요? 소비자로서 미묘함은 정부와 정치의 미세함으로 넘어서서 그 굵직굵직한 질곡, 거꾸로 자본으로 수혈하는 정책과 정치들을 말라버리게 해야되는 것은 아닐까요? 진보는 구분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가는 길을 뚜벅뚜벅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진보의 로드맵은 정치나 정부의 설계도에서 공용이나 공유하는 부분이 정말 많은 것은 아닐까요?  30년뒤, 20년뒤, 10년뒤의 지점부터 거꾸로 거슬러올라오는 시나리오를 서로 쓰다보면....같이 쓰다보면....큰정권의 길도 좋지만 작은 숨결같은 작은 정치의 길들을 서로 샘나게 그리는 일들... .... 이렇게 하면 북친씨!!  조금 마음이 놓이나요?? 알아들어 먹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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