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여무는 날

품에 기대어
품에 안겨
바라본 하늘
눈이 시려 ...
핑계삼아 눈물 질끔

훔쳐 말린다

핑계삼아 안은 바다
파도소리에

아픈 신음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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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뮌주의는 위계적인 자본제 사회 전반을 비판한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 모두를 바꾸고자 한다. 코뮌주의의 목표는 경제의 국유화냐 아니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유지냐에 있지 않다. 그것의 목표는 경제를 자치체의 통제 아래 두는 데 있다. 코뮌주의는 생산수단을 자치체의 생존과 지속의 한 방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모든 생산 기업에 대한 권한은 지역 의회가 갖는다. 그리고 지역 의회는 공동체 전체의 이해관계 충족을 위해 생산 기업이 맡아야 할 역할을 결정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만연한, 삶과 노동의 분리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다양한 욕망과 욕구가 상실되지 않고, 생산 과정에서도 예술적 창조의 도전이 이루어지며, 생산이 제반 사상과 자기정체성의 확립에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 고든 차일드가 신석기 시대 말기 도시 형성에 관해 쓴 글의 제목처럼,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Humanity makes itself." 그리고 인간이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적 발전, 심미적 발전일 뿐 아니라, 욕구의 확대를 통해서, 또 욕구충족을 위한 생산 방법의 확대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인간이 자신을 발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잠재력과 그 실현을 확인하는 것은 창조적이고 유용한 활동을 통해서다."(머레이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에서)

 

 

북친씨! 말씀을 따라가다보니 러셀씨와 겹친네요. 이렇게 마음도 바투 계시는군요. 자신의 잠재력를 실현하고 삶과 노동의 분리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 코뮌주의는 경제적 해결만이 아니라 정치적 해결을 동시에 바란다고 했죠. 경제가 정치를 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치체의 통제 아래 두는데 있다구요. 러셀씨의 생산자조합주의와도 맞닿아있는 듯 보입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시스템은 살아가는 것, 스스로 열정을 확인하고 설레임을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들어오네요. 그 과정은 지적발전 뿐만 아니라 심미적, 욕구의 확대와 욕구충족을 위한 방법의 공진화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네요.

  

 

"코뮌주의의 삶이 실현되면 기존의 경제학은 윤리학으로 바뀐다. 기존의 경제학이 가격 문제와 희소자원에 주로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윤리학은 인간의 욕구를 실현하는 일, 좋은 삶을 추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물질욕과 이기주의 대신에 사람들 사이의 연대, 그리스어로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사랑philia이 자리 잡는다."

 

 

이렇게 경제학이 손아귀에 들어오고, 최적의 삶이 먼 일만은 아니겠죠. 그래서 당신은 풍요의 경제학이라고 했죠. 정치와 경제, 그리고 권한에 적절하게 조율하는 과학기술들이 조화롭게 조응한다는 조건을 곁들인 거구요.  그 바탕으로 좀더 좋은 삶을 추구하는 일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라고 하시네요. 하고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하는 것의 간극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시는군요. 북친씨! 귀가 간지럽지 않으신가요? 너무 낭만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낭만적이라 주장하는 이유를 되어 보시라 말하는군요. 북친씨가 만들어 놓은 그물에 그물코들은 좀더 생생하게 상황을 넣고 시도 해볼 수 있다. 낭만이라고 하는 것이 질문자의 선입견이, 주장의 축이 과도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그 주장을 그물코들은 대위해서 서로 견주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건가요. 어떻게 보면 북친씨가 말한 역사적 경험들을 이론과 사상에 반추를 적게하거나 안하거나 다르게 견주어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네요.

 

지금까지 사상과 이론은 완결성에 집착해서 다른 이론과 사상에 열어두지를 못한 거죠. 그저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했던 것은 아닐까요? 미처 생각지 못한 z축의 요소와 허수의 축도 만드는 과감함도 필요한 때는 아닐까요? 좀더 현실을 입체적이고 서로서로 간섭을 미치고 구체적인 삶에 잔잔함이 스며드는 이론과 사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주제넘게 선을 넘은게죠. 그래요. 생각의 삼팔선, 생각의 휴전선을 넘어, 너머 봐야죠. 인류가 걷던 길들 이유가 있었던게죠. 귤화위지만 되지 않은다면 말입니다. 여전히 끝까지 겉넘는군요.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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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 즉 대중도 과거의 진보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도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향후 수십 년간은 더욱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가 초래하고 있는 변화들,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새롭고 광범위한 모순들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우리는 지난 두 세기 동안 거의 모든 혁명운동이 과거로부터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광범위한 중산층을 설득하여 새로운 민중적 프로그램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불만에 찬 소부르조아의 도움 없이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시도는 일말의 가능성도 갖기 어렵다."(머레이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에서)

 

 

북친씨!!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듯한데요. 그렇지 않나요. 무척이나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여기에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념을 수입하거나 빌려쓰는 일들, 낡은 틀에 얽매이거나 계급의 과중심성에 매몰되는 견해들, 환원사고에 익숙해서 세세한 변화를 읽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텐데요. 처음 말씀하셨죠. 당신의 생각틀 가운데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중산층과 자영업자를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했죠. 자영업자나 중산층의 도움이 없이 어떤 가능성도 갖기 어렵다고 한 말요. 신념과 활동하는 이들이 이 밑줄에 흔들릴거라도 생각하시나요. 여긴 무척이나 작은 진보(가족사이도 마음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정견)임에도 그 사이 외부의 시선보다는 서로 다른 노선과 진영의 논리에 익숙하기만 한데요. 아니라구요.

 

이념이나 사상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서로 뽐내거나 견주는 것이라구요. 왜 그렇게 말하시는 건가요?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구요. 알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사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하시는거라구요. 환원이 깔린 이념이나 진영의 논리는 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하시는거죠.  진보가 이념과 추상성으로  시대를 끌고 가던 것은 더 이상 아니라구요. 하나 하나 구체적인 삶과 살림살이, 의식의 흐름들을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더 손에 잡을 듯이 그리고 잡아야 된다고 말하는거죠. 그래야 아주 조금 대안이라는 것이 그려지는 것이라구요.  계급의 눈으로 어느 계층의 눈으로 조금밖에 볼 수 없고, 저 높으신 신자유주의/자본주의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적다는거죠. 자영업자 사장과 대기업정규직, 협력업체, 은퇴자 모두 삶을 구체적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거죠. 그 대안이라는 것도 주장하고 따르라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균형, 형평감각이 녹아 있어야 되는 것이죠. 바꾸어야 한다. 바꾸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고 저쩌구 수다가 개입할 수 있는 느낌있는 현실적인 안이라야 되는거죠.

 

과도한 추상성때문에, 현실감각 없는 논변때문에 대중이 부지불식간에 남이 되어버렸던거죠. 현실에 대한 연구과 공유, 그 대안들이 너무도 생생한 삶에 떨어져 있는거죠. 그런데 북친씨!! 생각있는 진보가 과연 수긍을 할까요? 이땅에는 월급이 얼마인지 가족간에도 얘기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아이들의 삶을 대신살아주며 번돈을 퍼붓고 있는 상황인데요. 비정규직 해법 하나만도 벅찬데요. 당신말씀을 번복하는 방법도 수만가지일텐데요. 천만번 양보해서 얻고 싶은 건 많고 준비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당신의 질책을 가져갈까요. 생각의 주춧돌로 잡고 있는 그 기둥이 썪어있을 줄도 모른다는 사실을 수긍할까요? 튼튼하던 치아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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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 뭐 방법없나요. 의도에 끌려가지 않고 과거의 꺼리에 집착하지 않으며 진보?를 여는 질문들이나 묘책은 없는건가요.ㅜㅜ 질문없는, 조직 정체를 끊임없이 되묻지 않는 모임들의 습속은 별반 차이가 없다죠. 다른 질문, 남다른 고민들의 결은 없어 안타까운 날들이네요. 평당원 앳된진보에게 묻거나 ㅡ 만들어진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씨앗같은 생각은 없나요. 국가대행기관 혈투를 넘어, 너머서는 발랄묵직한 정치는 당분간 없는건가요? 종편애청자들의 관음에 균열을 내는, 시선을 의식해보는 뭐?! 없겠죠. 먹구름이 얕게 드리운 저녁이군요. 아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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