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로 된 방

 

 

어느날 벽면의 거울을 들여다 봤다. 음 괜찮은데
어떤날 바닥의 거울을 들여다 보는 이가 왔다. 음 저 녀석도
그리고 어떤 날 천정의 거울을 들여다 보는 그녀가 왔다. 음 그녀도
거울이 세면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렇게 거울 하나씩 가져와 거울로 된 방을 만들었다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더구나 서로를 볼 수 있다니 말이다.

 

 

거울은 시간이 지나 어느새 육면체로 된 방이 되었다. 놀라운 진화는 계속되었다. 거울은 또 몇면이 늘어 팔면체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손을 들면 보고 싶지 않던 곳에 손길이 닿고 다시 나에게로 왔다. 신기함에 신기함이 더해질수록 거울은 스스로 자랐다. 팔면체 12면체로 그럴수록 시선과 손길은 저 멀리 가는 듯했다.

 

 

어느 날 문득 날카로운 빛이 날아들었다. 낯익은 목소리, 낯익는 웅성거림에 빛은 더 반짝였다. 그들은 손을 들었고, 꿈 속에서도 거리를 나서도 더 반갑게 인사했다. 그 거울은 손가락질을 하면 수십개의 손가락이 되어 되받았다. 화를 내면 수십개의 화가 되어 되받았다. 옳다고 하면 수백개의 더 옳음이 되받았다. 더 벼리면 더 벼렸다. 실금 사이로 더 빛났다.

 

 

거울로 된 방에서 산다.
거울로 된 방에서 할일하며 산다. 실금은 신기하게도 자랐다.
실금이 자라는 만큼 거울을 보며 컹컹 짖었다. 거울은 따라 컹컹 짓었다.

 

 

그래도 평온하다.
비누방울같은 거울로 된 16면체 속에 할일하며 산다.
실금간 한쪽면의 거울이 쩍 갈라지더니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비눗방울이 펑~ 터지는 사이 거울은 조각조각되어 바닥에 쏟아져 거울로 된 방의 틈사이를 되비춘다. 

 

 

조각난 사금파리 같은 거울파편들은 햇살을 와르르 먹고 분수처럼 뿜는다.


 

그래도 비눗방울 같은 32면체 속, 거울로 된 방에 산다.


 


 

뱀발 

 

그렇게  뒤집힌 거울에 비추는 많은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보고싶은대로만 보지 않는다면
보고싶지도 않아도 애써 그 결들을 살필 수 있다면
거울에 비추인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어디로 쏠려다니는지도
거울에 비추인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마음길을 걷는지도 
거울을 하나씩 거꾸로 돌려  그 많은 면으로  그들의 몸질, 마음길을 살피는 이력과 구력, 근력이 있다면

암흑물질처럼 뭉뚱그려 하나로 보지 않고

그들을 원하고 바라는대로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다른 시작을 해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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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일상,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민주화 없이, ‘정치개혁이나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겠는가?(...)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우리 모두의 이중성

 

한국인들에게는 언제나 나말고 다른한국인들이 문제이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은 없고 다른한국인을 향한 비판만 도처에 넘쳐나는 탓에 때로는 그 많은 문제 있는 한국인들은 다 어디 있단 말인가싶을 정도이다.

 

- 한국인들이 스스로 이중성을 합리화할 때 쓰는 주된 논리는 남들 다 그러는데 나만 중뿔나게 원칙 지키다가는 바보가 되거나 손해를 본다는 경험에 근거한다. 이는 한국사회는 공적 영역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분석과 상통하는 것으로, 여기에 따르면 이중성은 외부의 통제 불가능한 구조적 상황으로 말미암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사회가 규범적 원리에 따라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개인들은 실제로 작동되는 원리를 좇아 살아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데 있으므로 개인의 책임은 면제, 혹은 합리화된다. 따라서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실제로 간난신고의 한국 현대사를 생각하면 이중성이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라는 논리는 섣불리 비판할 수 없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195-196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서구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서구 지식인 사회와 한국 지식인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주 제기하는 문제인데, 한국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념과 삶, 지향하는 가치와 구체적인 일상을 일치시키려는 윤리적 긴장감이 떨어짐을 비판하는 말이다. (문제제기는 진보진영에서 주로 일어나지만, 보수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한국의 보수 인사들은 국가안보를 주야장천 부르짖으면서도 자기 자식들은 군대에 잘 안 보낸다.) 193

 

소수자에 대한 시선

 

미국과 호주의 장애인 정책을 둘러볼 기회를 가진 박영주씨는 그 두 나라와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차이를 우리나라는 아직도 장애극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그 사람들은 장애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요약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재활훈련을 통해 기능을 좀더 정상인에 가깝게 향상시키고, 안마나 침술 같은 직업교육에만 신경을 쓰는데, 그들은 직업교육과 함께 요리와 세탁 등 일상생활을 혼자 힘으로 꾸려갈 수 있도록 하는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수교육의 가장 큰 궁극적인 목적은 일반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더불어 사는 것인데, 아이들을 따로 빼내서특수학교에 모아놓는 것은 또래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아이들이 삶을 향유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볼 때 불편하지 않도록, 또한 아이들을 화장실까지 실어 날라서 앉혀주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있기 때문에, 장애 학생들을 위해 운영한다는 특수학교가 결과적으로는 특수교육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을 배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175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라는 사실로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그냥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대할 때와 같은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른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을 향한 귀기울임이 필요한 것이다. 163

 

우리의 허약한 육체를가리고 있는 의복들, 우리가 쓰는 불충분한 언어들, 우리의 가소로운 관습들,우리의 불완전한 법률들, 우리의 분별없는 견해들,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불균등하지만 당신이보기에는 똑같은 우리의 처지와 조건들 사이에 놓여 있는 작은 차이들, 즉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 볼테르 [관용론]

 

Larry Flint 그래, 나는 쓰레기다. 나 같은 쓰레기가 보호받는다면 당신들 모두가 보호받을 것이다.” - 미국의 도색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으로 표현의 자유를 놓고 20년 간 법정다툼을 벌였다. [허슬러]는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자나 여성운동 그룹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는데, 그는 연방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이렇게 말했다. 154

 

어떤 사람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맑스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라고까지 말했다. 게이로 소개되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고, 따라서 그만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머니에게 아들이고, 직종 분류상 영화인이고, 20대나 40대가 아닌 ‘30이고, 서울시의 시민’,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동시에 어떤 신문이나 잡지의 구독자이고,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유권자이기도 하고, 어느 정당의 지지자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복수의 정체성을 가졌음에도 한성호 씨는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이면 가장 먼저 게이로 소개된다. 성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자들이 이와같은 방식으로 정체성을 규정당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 중에서 공유의 범위가 가장 좁은 차이속에 소수자들의 정체성을 가두는 것이다. 159

 

권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책임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90년대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환경운동, 정치개혁도 시민의 권리의식에 기대어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그 권리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책임이 필요한데, ‘책임하면 너무 무겁기 때문에 사회와, 공동체와 나와의 올바른 관계가 어떻게 맺어질 것이냐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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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일상,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민주화 없이, ‘정치개혁이나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겠는가?(...)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나는 연속선상의 한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시민교육 우리 시민사회가 사실상의 이행기를 얼마나 치열하게 몸으로겪어내느냐에 따라 시민교육의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사회 전반에 계통발생된 미시적인 체제들과 행위규범, 습속을 민주주의의 눈으로 성찰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87년 협약의 공식적 의제로 등록되지 못했다. 독재정권을 퇴진시켰다는 의미에서 시민혁명이었을 뿐,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민혁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민사회 내부에서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고,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경합하며, ‘구체제의 구조물과 새로운 사회의 싹이 씨름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어쩌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이행기인지도 모른다.138-139

 

생활조직 속에서의 개혁, 일상 속에서의 개혁은 어떤 점에서는 독재권력을 타도하는 투쟁보다 힘들다. 구속이나 투옥은 없지만, 우리 사회의 비합리적인 습속과 관행에 맞서며 인간적인 갈등을 견뎌내야 한다. 일상의 습속을 거스르는 투쟁은 최루탄 속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투쟁만큼 격렬하지 않지만 결코 그것보다 쉽지 않다. 그것은 다른 마음가지, 다른 능력, 다른 방법론, 다른 어법을 요구한다. - 학생운동에 심정적 동의를 보내는 비율이 1987년에 10명중 8명에서 3.5명으로 줄었다. 정치적 사회적 의제가 관심사의 90%를 차지했는데 2005년 공부, 취직 준비, 인간관계 확대가 관심사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적인 삶의 양식을 자기들 스스로 만들어낸 경험이 없으며 공적가치에 대해서 배우고, 익히고, 느낄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동네정치의 공간에서 인간적 상수로 자리잡고 있지도 못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특수학교가 들어설 때 반대하지만, 자원봉사를 나서게되는 체험은 이해의 폭을 넓혀주며 변화시킨다. 독일에서 공부한 어떤 분은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반파시즘 교육을 받을 경험을 이야기 한다. 거창한 단어를 쓰지도 않고 일상의 평범한 사례들을 들며 이야기하고, 이 프로그램을 반파시즘 교육에 써달라며 유산을 기부해서 만든 프로그램의 결과였다고 한다. 이론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구성요소가 크게권리의 요소와 책임의 요소가 있다. 권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책임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90년대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환경운동, 정치개혁도 시민의 권리의식에 기대어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그 권리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책임이 필요한데, ‘책임하면 너무 무겁기 때문에 사회와, 공동체와 나와의 올바른 관계가 어떻게 맺어질 것이냐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 논평과 성명서식, 칼럼식은 한계가 있다. 대신에 사람들한테 관심 가지고 그래,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것 좋은데 혹시 이런 것은 생각해봤니?”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국가에 요구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시민사회 스스로가 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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