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과  '냉장고 속'
 
"물병을 냉장고 안에 넣었다"와 "물병을 냉장고 속에 넣었다" 중 어느 쪽이 맞을까? 답은 그냥 "냉장고에 넣었다"다. 원래부터 물건을 넣어두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사물에는 '속'이나 '안'을 붙여서 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런 한국어다. 호주머니, 서랍, 가방, 그릇, 상자, 장롱, 창고 따위가 모두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물병을 냉장고 속에서 꺼냈다"나 "물병을 냉장고 안에서 꺼냈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다. 그냥 "물병을 냉장고에서 꺼냈다"가 무리 없는 어법이다.

짐작건대, 이렇게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속'이나 '안'을 써 버릇하는 경향은 영어의 전치사 'in'을 어떻게든 한국어로 옮겨놓아야 속시원해하는 일부 번역자들의 습관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예문의 경우 '넣었다'에 이미 'in'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굳이 이런 비경제적인 번역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by 알라딘 책소개)


 

 


"안다는 것은 아픔을 요구한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서경식 선생의 책이 그렇다. 타의에 의해 ‘밖’에 자리하게 된 사람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삶의 조건으로 안고 살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그 아픔을 모르고 살아온 다수의 사람들에게 반성과 상처를 요하는 일이다. (by 알라딘 책소개)

 

 

 


(한·중·일) 세 나라의 기본 과제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이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회복하면 실업도 줄이고 불평등이나 빈곤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제부터는 경제성장이 아닌 제도와 정책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럽과 대비되는 점으로, 유럽 국가들에서는 1980년대 이래 불평등보다는 실업 또는 고용 창출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평등과 복지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얼마간의 복지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성 조치를 도입하여 고용을 늘리려 해 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 반대 방향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 본문 294쪽에서 (by 알라딘 책소개)

 

 

 


10여 년 넘게 불가에 몸을 담았던 시인 고은의 문화기행집이다. 동해 낙산사로부터 시작해서 제주도 한라산의 관음사로 끝을 맺는 이 기행집은 모두 산 15곳, 절 46곳의 여정을 피력하고 있다. 1987년 초판을 전면 칼라판으로 개정하고, 바뀐 행정지명과 표기법을 손질하여 새로이 꾸며서 만들었다.

절마다 맺은 고인(古人)들의 단편적인 일화와 절에 대한 아릿한 단상들이 가슴을 훑으면서 지나간다. 고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탐미적 감성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세상에 거칠 것 없이 떠도는 방랑의 피울림이 맺혀 있다.(by 알라딘 책소개)


 

 

 


해열제,진통제,소염제/중추신경 억제제/심순환계 약물/비타민/호르몬/항생제/항알레르기약물,항궤양제/정신작용약물/항암제,항바이러스제 발견자와 개발배경, 개발사에 대해 서술해놓았다.


 

 

 


 자본심?으로 충만한 인물(한상우-정준호)을 따라가본다.  돈이 되지 않으면 10원한장도 쓰지 않는다.  모든 욕망을 돈으로 환산하고 갖기 위해 거래한다. 돈 아래 모든 것을 세팅해둔다.  그러면에서 보면 소소한 일상들, 무관심해져가며 점점 모시는 우리들은 공범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60917(일) 하프*삼촌과 양주한병

060918 (월) 일터**참터** 소주 아주많이

060919 (화) 아카뎀, 사무국장-대표와 함께 3차 

060920 (수) 상가, 밤샘, 대*림과 함께

060921 (목) 학*위, 몇몇분, 하동에서 온 분과 함께

060922 (금) 아카뎀 창립1주년 기념, 뒤풀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는다. 새벽이다.

월요일 일터동료들과 함께한 이후로 몸에 들어사는 나는 부대낀다.  힘에 부침을 느끼면서도 생긴 일들은 머무를 수 없게 만든다. 지난 한주 몸에겐 악몽같은 한주였을께다. 몸에 붙어사는 주제에 한심하기도 하다.  어젠 수선을 떨어 뿌리채소로 음료를 만들고 잠에 골아떨어진다. 그리고 저녁 또 졸음은 곤두박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산 2006-09-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체력이 보통 아니시네요.
싸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안하시나요?

여울 2006-09-2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해 덕?을 많이 보는 셈이죠. 잡아끌고 말리면 좋을텐데. '술, 쪼곰만 마셔~'이러고 마네요. 서로 제한하는 경계는 없지만, 바깥일이 힘드네요. 안해처럼 동네아주머니들 만나고 ....그리 보내면 좋으련만.... 제 꿈 가운데 하나가 마눌 내보내고 내근하는 일이랍니다. ㅎㅎ.

해콩 2006-09-2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몇 년 살다가 위와 장에 거의 구멍 낼뻔 했답니다. 건강 챙기셔요.. 다행(?)히 술이 체질이신 모양이예염.. ^^;

여울 2006-09-2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 몸에 새기겠습니다. 또 새기게 할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긴 하지만, 한번 저도 전도?해봐야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변해야겠죠.
 

060920 (대*림)

뜨거운 햇살에 가을바람이 녹아 무너진다. 그런 한낮 젊은 아낙의 부음소식을 접하자 맘은 횡설, 몸은 정해진 템포를 놓친다. 그렇게 망자를 만나고, 남겨진 남편과 철부지 어린 딸과 아들. 맘과 몸에 붙은 망자의 그늘을 벗긴다.

한밤 망자로 만난, 세월에 밀려나가는 친구들. 얽힌 추억을 되놓고 잡고, 현재화하려는 움직임. 망자로 망자를 통해 그렇게 들썩인다.  모임은 정서의 공유가 아니라 마음의 공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심력과 부질없는 세월에 밀려가는 일. 다시한번 되돌아보거나, 생채기를 내 놓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무서움에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을 덧씌운다.

그렇게 새벽이다. 망자는 운구에 실려 한줌 뼈로 . 아무런 조짐도 건강상에 아무런 증후도 없이 그렇게 맥없이 운명을 달리하는 일. 죽음은 늘 곁이지만 삶은 앞만보고 달리는 것일까? 지금도 과거도 핑계로 추억으로 현재의 아픔을 망각하는 노력만 있는 것일까?

망자로 만난 생각들을 품어질 수 있을까? 또 반복되는 일상은 삶을 넋놓아버리게 하고....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결된 모든 분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르시즘

쪽빛 하늘 한 가장자리가 울어 빛에 비친다.  사람들 뒤란, 빛이 울어 비추인다.  눈동자에도 되비추는 빛은 일렁인다. . 무수한 거울 속에 갇힌 나,  가속의 시간이 점점 좁혀지는 공간.  굴절되고 모인 반사광은 끊임없는 나로 함몰.  침몰하는 자아의 복제.  끊임없는 자맥질.  그곳으로 자살.  자살하고 있는 시대의 우울. 시대를 감싸고 있는 거울집같은 쪽빛하늘.

 

몰지각

오늘도 일용했다. 중독된 몸을 추스리러 오늘도 복용했다. 속이 편하다. 이렇게 중독되다보면 파렴치가 필요하다. 파렴치.

 

벙어리

한노인은 겨우 40년 걸려 350미터짜리 한강그림을 완성했다.  이 사회는 똑똑한 졸업장만 찍어낸다. 뭘하고싶은지, 뭘하고 노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자본의 풀장

사람밖에 사람이 없다. 나만 있을 뿐. 나만 있을 뿐. 관계엔 남이 없다. 사람의 합은 사람이 아니다. 잔인한 관계만 남는다. 자본의 풀장엔 언제나 외로운 나만 있을 뿐이다.

 

일 상

끊임없는 , 만족을 모르는 허기.  만들어진 과잉욕구. 끊임없이 채워넣는다.  그 쳇바퀴란 무한궤도의 순환. 다른 세상은 없다. 조작된 욕망과 기계적으로 채우는 반복된 동작만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젊은 세대를 각성시키는 힘
진/우맘(mail) 2002-03-16 08:43


황석영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다.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주저 없이 뒤엎는 단호함과 논픽션일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길정도로 존재감이 느껴지는 등장인물들. 게다가 손님은 마치 미스테리물을 읽는 것 같은 스릴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아 재미까지 더해준다. 현재와 과거를 공백 한 줄 외에는 일언반구 설명이 없이 넘나들고, 더 기막힌 것은 화자마저도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순간순간 바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고 내가 페이지를 건너뛰었나...하는 생각에 앞장을 들춰보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중반부즈음에 이르자 그 불친절한 글쓰기가 읽는 이의 사고의 벽을 깨고, 책 속 세상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동족상잔의 비극...반공교육 시간이면 육이오를 칭하면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던 그 문구가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져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민족, 역사, 전쟁, 분단, 나아가 통일. 그러한 단어들을 진부하다고만 느끼고 잊어가는 젊은 세대들을 새로이 각성시킬만한 반가운 소설이다.


빗소리가 적적하다.  어제 아버님 당신의 전화도 맘에 걸린다. 장남인 나는  가족 홈페이지에 집안 대소사라는 란을 두고 조모 이장문제를 꺼낸 적이 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별다른 것을 한적이 없다. 어르신네는  자식들 문제와 묘소,꿈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 삶과 함께 공유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의만이라고 생각하기는 그렇지만,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가급적 자식들에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당신은 들키곤 한다. 

그런 당신이 벌써 십오년전 찾아낸 증조할아버지 묘소를 군제대후에 찾아내어 갔다. 그리고 함께 한 오촌당숙이 돌아가시던 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 자식들 관심밖에서 이장이 되었고, 매년 일정비용을 들여 금초를 하게했고, 이제는 연고마저 없어지고, 모실 수 없어 당신이 내려가 마무리를 지으시려는 것 같다.

어르신 맘속엔 늘 함께 숨쉰다. 내 맘속에도 늘 걸려있다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복이라거나 운이라거나, 또 다른 하나로 폄하시키기엔 부적합한 것 같다. 이미 고인이 되신 숙부님과 대학교다닐때 다툰 적이 있다.  부모생각하지 않는 자식과, 경도된 생각에 가족이란 테두리가 부담스러워 허우적대던 학생과... ...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지만, 내내 맘에 걸리고, 맘에 걸려들 하신다.

군대제대를 하면서 남도에, 증조할아버지 흔적을 쫓으러갔다. 부친의 배려도 있겠지만, 가는 길 동행한 오촌 당숙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고모님들의 삶. 고인이 되신 조부의 삶. 부친의 삶이 일목요연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지난 해, 이제는 아무런 연고마저 없을 마지막 걸음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알기 무섭고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가족사나 혈연의 꼬리를 잡고 가다보면, 친가나 외가나 상관없이 두려움이 앞선다. 고스란히 담겨있는 일제의 잔재와 전쟁의 그늘과 근대의 막막함, 지금의 암울함이 겹쳐있어 아는 것 조차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묻어서 삶 속에 배여있을 엄청난 폭력과 삶의 난장에 꺾여 차마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를 것 같다.

<손님>을 읽으며 일그러진 우리의 <근대>, 울컥거리는 삶을, 그저 지나치는 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 ... 가족을 동네를 돌아볼 수 있을까? 갈기갈기 찢어논 우리는 어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손님>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붙어있는 연을 끊으며 그것이 전부라고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담배연기처럼 흩어지며 흩어지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보기나 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