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권, 2권의 책과 지난번에 보았던 <...하녀>를 한묶음으로 묶어 본다.
1권은 하청노동조합위원장님 시, 1권은 김진숙님, 한권은 5년동안 접시닦이와 부랑자생활을 한 블레어(오웰)의 글이다. 네권의 책 - 시공간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하는 상황이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현재화할 상황이다.
밑천없는 삶의 테두리와 함몰, 빠져나오려는 발버둥, 그리고 끊임없이 제자리하는 시공간 , 그 틀에 한사람이 건져올려진다. 고통과 삶, 저항이 송두리째 올라오는 듯하지만, 우리들의 시선은 그 실핏줄같은 잔뿌리는 모두 없는 것으로 응시한다. 대단한 것으로, 흉내내거나, 함께할 쉬운 잔가지들은 모두 사라지고, 일상과 관계없는 영웅으로 응시된다. 어쩌면 응시되는 순간, 별난 사람으로 영웅이되거나 타자가 되어 내가, 우리가 범접할 수 있는 일이 되거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겨우존재하는 삶은 테두리가 쳐지고, 사고로, 보증으로, 우발적인 불행으로, 덫에 걸려 끊임없이 제자리하는 시공간. 그렇게 채워지고 넓어진다. 간신히 탈출하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용케도 벗어났으므로 내일이 아닌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직해지는 시공간으로 들어가라고
존경스럽고 치열한 삶 - 하지만, 표현의 전제들. 이 정신나간 덫을 어이하란 말인가? 갑돌이 갑순이가 을돌이 을순이로 치환된다고 바뀐 것일까? 병돌이 병순이가 보탠다고 바뀌는 것일까?
<..가 된 하녀> 감정적이지도, 울분을 토하지도, 선동하지도, 무심하지도 않다. 말을 건넨 사람들, 교수이던, 전태일이란 책이든, 부끄러운 것이아니고, 모자라는 삶이 아니라는 한마디가 그들의 삶을 마음을 뺏어갔는지도 모른다.
오웰의 이야기처럼, 식당 한켠 안쪽에 있는 삶을 우리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도 지긋지긋할 뿐 우리의 문제로 가져오거나, 이야기 나누질 않는다. 김진숙님 삶의 단편인 빵집의 한켠은 오웰이 이야기하는 빵집의 한켠과도 70년의 시공간이 차이가 남에도 너무도 흡사하다. ‘자본’이란 핏줄의 끝단,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모세혈관은 그렇게 제한된 잉여과 삶의 방식, 시간의 공간으로 이뤄져있다. 그 공간은 누구든 피하고 싶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공간이기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구나 드러내놓고...
블레어(오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5년간의 겨우겨우 존재하는 삶을 통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때론 신비화한 모습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게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즉자적이 아니고, 대자적인 삶, 존재를 인정하고, 삶을 감내하며 사는 삶, 온정으로 한 순간 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공간으로 서로 녹여내고, 말걸고...만들어내는 일. 또 다른 나와 함께 하는 길.
몇가지 스치는 생각들
1. 임금 70-80만원, 비정규직의 삶.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이동할 수 없는 일상. 단신 70-80만원, 가족 70만원, 장애인를 생활, 엄마는 집을 버리고 나가고, 노인들이 얻을 수 있는 70-80만원은 모두 같은 돈일까? 비정규직이라고 아무런 차이없이 보는 선입견도 고정되어야 할 것은 아닌가? (55세이상 구직 고령자의 대부분이 70만원이하)
2. 헌신,매진 - 독립운동과 가족, 여성, 관계 맺어진 모든 것이 서열이 매겨지는 것은 합당한가? ‘노동자’라는, 노동운동이란 묶음으로 모두해석하고 이해해내고 투쟁해나가는 것. 선입견이 갖는 보지 못하는 자라나는 다른 부문은 없는가?
3. 불감증은 강도를 더 높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공포가 더욱 더 강하게 내 안의 것만 움켜쥐게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나온 길, 옆, 앞을 유심히 보면, 나만의 공간으로 사고하는 것을 조금 줄이고, 둘러본다면... ..
4.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 없는데 똑똑한 것이 가장 서럽다라는 글이 <소금꽃나무>에 나온다. 요즘 교육풍토를 빗대어 나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테두리, 홀어머니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오빠, 동생 둘을 키워야만 하는 13세 가장. 능력의 문제도, 기회의 문제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영역은 점점 그림자처럼 넓어진다.
5. '가난한 사람들'은 불쌍하지도, 정신노동을 적게하지도, 해학이 없지도, 게으르지도 않다고 한다. 다른 그룹의 확율보다 현저히 낮은... ...
6. <장석조네 사람들> <기형도> - 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