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

낯선충격, 온몸으로 번진 아픈 응어리들을 뱉어낸다.
뜨끈뜨근한 핫팩으로 데우고 덮히고
지즐지즐 전기치료로 근육을 흔들고
안티후라민 마사지, 그리고 되풀이되는 반복.
응어리의 뿌리들, 아픔의 잔뿌리들이 잘리우고,
몸은 뜨끈뜨근, 지즐지즐, 조금씩 아픔을 토악질한다.

세상의, 스며들며 번지는 연고같은 축축함에
전기진동처럼 끊임없이 요동하는 불안에
세상의 뜨거움에
몸을 맡겨,
조금이라도 세상의 아픔의 뿌리가 잘린다면,
조금이라도 세상의 아픔의 응어리가 풀린다면
이렇게 세상의 날선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온몸을 맡긴다. 뜨거움에도 찌릿함에도 후끈함에도.


[스물여섯]

중3 왕따 소란스러움의 시작 싸움과 싸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어느새 걸고
짧은 청춘은 어느새 바닥과 바닥을
오가며 알바의 연속은 세상 멋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 양아치같은 삶의 굴곡
무엇을 어떻게 할까? 스물넷 펼친 삶의 살엔
기름기도 왜도 어떻게도 없다.
삶의 우회가 아니라 얻지 못할 직선을
빨리 몸으로 얻었을뿐. 그에겐 대신이
없어보인다. 생각도 할 것도 해내야하는 것도

삶과 관점은 곧고 풍요롭고 산뜻하다

[10000 피스 세계 퍼즐]

만년의 역사를 조각내다.
물끄러미 맞추어본다. 자유로만 아메리카대륙을 맞추었고
유럽을 끼워넣고 채우고, 그러다 보니 널린 조각들은 어이해. 맞추지 못한 조각들

만번의 민란으로 조각내다.
열과성을 다해 맞추어본다.

만번의 자치로 조각내다.
만번의 연대로 조각내다.
만번의 평등으로 조각내다.
만번의 자유로 조각내다.

어찌하다보니 이번에 맑스로 세상을 맞추었고
어찌하다보니 이번엔 평등으로 세상을 맞추었고
어찌하다보니 이번엔 생태로 세상을 맞췄고
어찌하다보니 이번엔 자유로 세상을 맞추었는데

남는 조각들이 너무 많다. 대륙하나만 채우다가, 바다를 채우다
강을 채우다가 만다. 쓸모없는 조각은 쓸모없거나 보이지 않는걸까


만개의 역사, 만개의 자치, 만개의 자유, 만개의 평등, 만개의 연대
채우지 않으려는 여백들, 만개의 조각을 넘어서는 사유들,
강물한점, 구름한점, 풀 한점, 아무것도 없는 한점의 소중함
그리고 소중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한점. 두점. 세점... ...

 

뱀발.

앞의 친구도 접촉사고로 입원중이다. 과일도 챙기고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84년생, 청년치고는 생각이 깊고 다른 청년들하고 다른 느낌이 배여난다. 하고싶은 것, 나누고 싶은 것, 챙겨야 할 것들이 곧고 깊다 싶다. 원하는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고, 쾌유도 빈다. 음~ 챙겨줄 것은 없을까.

그리고 물리치료를 받다가 지루해서 그냥 끄적거리고 심심해서 퍼즐 맞추다가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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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스치는 생각들

지식 아니 지혜 - 이것이 머리에만 머물러 가슴도 몸도 울리지 않는다면, 머리 속에만 움직여 아무도 가슴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면... ...

쇠고기관련 집회 - 산불은 늘 먼저 일어나지만, 산불이 왜 일어나는지? 왜 일어난 것인지는 관심이 있는 것일까? 늘 후미에 진보는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머무르면서도 왜?에 대한 질문은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아픔이 전달된 것일까? 유사한 사안에는 미동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내문제로 아프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아픔이 사라진다면 유사한 것들을 아프게 느낄까? 또 지나가면..내새끼 내식구만의 문제인식이 과대포장된 것은 아닐까? 왜 다른 문제들은 같이 느낄 줄 모르는가? 아는가?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가? 행동하기까지 가슴으로 가져가기까지 힘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디워와 화려한 휴가와 또 다른 코드인가? 같은 코드인가? 늘 진보는 깃발도 나부끼고 꽂기도, 아니면 차라리 뒷감당이라도 잘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선입견에 대한생각 - 20개의 문화코드라는 책은 약간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개인적인 가치나 생각도 이틈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다. 구석기시대의 야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의 야생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무의식을 바탕에 두고 움직인다.는 사실. 그 각인이 7세부근에 고정된 것이 많다는 사실. 학습이란 것이 감정이 없으면, 감정이 충만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각인으로 남지 못한다는 사실. 이 겹친다. 잔잔한 모임,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 사이. 잔치도, 축제도, 아름다움도, 승리의 만끽도, 화려한 아픔도 상흔도 승리의 혼도 없던 것은 아닐까? 온몸 곧곧이 눌러붙어 있는 무의식과 예속의 그늘은 없는가?

학교운영에 대해서 - 체육대회가 토욜날이다. 전날 아**미 강좌. 계주선수로 불쑥 넣어두어 부담스럽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 교장선생님과 낯익은 얼굴들. 5분동안 팽팽해 움직이지 않는 학부모 청백군의 줄다리기. 아빠들이 유난히 많아 즐겁다. 7-8살의 보기만해도 천사같은 아이들. 여전히 보이는 경례구호나 줄서기..그리고 끊임없이 편해지고 싶은 행정. 저녁 지인들과 이야길 나누다가 관심을 놓치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관리에 대한 일이라구. 끊임없이 학부모들 부담분, 운영에 대해 관심이나 관리의 끈을 놓치면 그저 편한대로 가는 것이 학교일이라구. 예비학부모와 이야길 나눈다. 앨범도, 급식도 돌연 퇴행의 조짐이 보이는 것일까?  그나물에 그 행태를 답습하는 것일까? 술살도 오르고 무거운진 몸. 뜨거운 햇살. 달리는 내내. 서서히 날렵한 상대편 선수의 거친 호흡이 다가서는 듯. 아~ 밀리는 몸, 넘겨지는 바통... ...   몸차려야 겠다싶은데, 주말 술약속. 통영산 장어로 몸도 이야기도 고민도 익힌다. 그래 먹자, 이야기하고 마시자. 고흐에 별이빛나는 밤. 클림트의 모조가 호프집을 감싸고 있을지라도.. ...

비교문화인식에 대해 - 박교수님과 뒤풀이에서 이야기하다보니, 미국의 잘된 시스템, 복지까지, 그리고 그것과 우리에 대한 인식. 우리는 삶을 돌아볼 여력도, 생활도 미국사람들보다 더하다 싶다. 더 바삐 돌고 돌고, 그 사이 비교할 여유도, 그 일상을 가져오는 일도 담론이나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이 여행을 하고 돌아오더라도 그저 한국사람으로 돌아오고 무화된다. 그래도 비교문화, 비교삶의 관점은 논의의 수면위로 올라와야 한다. 아주 작은 곳, 동네 단위로 내려오면 올 수록, 좀더 담론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돈도, 사랑도, 유혹도....비만도 다른 관점과 삶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삶이 비교되고 일상에서 녹지 않으면 달라질 수있는 시작점은 늘 없는 것은 아닐까?

자기문제에 자기결정력이 없는 사회 - 대구초교 어린이 성폭행 사건 관련하여. 어린이 학급회의나 그 닫힌 구조를 생각해본다. 늘 위임의 나날을 보내는 어린이들. 정해진 생각-정해진 행동으로 그 아이들의 생각을 닫는다. 현실의 자기문제를 한번도 드러내고 논의할 수 없게 만든다. 한번도 그 어린이들과 사회,학교와 관계로 생기는 문제를 논의를 불온시한다. 늘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게 하느냐에 성공이 달려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임들은 - 늘 상보성보다는 지배/획일화의 유혹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은 아닌가?
홈 스테이를 생각해본다 - 외국에서 홈스테이가 아니라 우리 엄마-아빠들, 습관과 잔치와 다른 어떤 것들이 있다면, 다른 가치관, 취향이 다르다면 아이들도 어린이도 방목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홈스테이를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려면 많은 것이 준비되어야 할 것 같다. 다를 것, 나눌 것,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치차이도 미리 조사가 되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된다는 생각, 부모가 모두 감당해야한다는 생각은 맞는 것인가? 합당한 것인가??

 

뱀발.

정신없이 왔다갔다 몰려다닌 것 같다. 일터일은 일터일대로 이것저것 생각들이 들쭉날쭉, 주말 독서를 하고서야 조금 추스려지는 듯하다. 바람이 일고, 부탁받은 원고도 오늘 아침에서 마무리하여 보낸다. 청탁받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품이 많이 든다. 그저 편하게 끄적이면 좋으련만, 한마디 토씨하나 신경쓰이고 주저스럽다. 글하고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듯하다. 늘 새벽 잠결 생각이 점점 많아지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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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도 할 겸해서 허한 도서관 매실도, 짙어지는 목련도 구경할 겸 나선다. 흐려지고 색은 점점 짙어진다. 몇 주 사이, 한눈을 팔 즈음 목련가지는 새가지를 내놓고 있다. 새잎도 총총총. 만들어 놓고 있다.

덧셈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다른 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다른 색으로 이어져 수액이 스르르 흐르고  같이 햇살을 받아 같은 색으로 커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총총총 크는 것 말이다.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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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시인은 말미에서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라한다. 하지만 노시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눈물을 별빛처럼 그렁그렁하게 하는 슬픔의 悲景이다. 사람은 삶과 마음의 결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깊은 심연과 창연한 하늘과 숲과 나무와 강과 골짜기로 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를 쓴다는 것이 사람구경이라 하는데, 없는자 목소리마저 얿는 사람의 형상화는 차마 읽지 못할 정도로 마음 아프다. 젊음이란 감수성과 상상력만으론 사람의 결을 녹여내지 못할 것이다. 시가 시다워지는 일은 어쩌면 엄청난 슬픔과 고통에 연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생태학의 담론]/[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아느네스 deep ecology 팀룩 근본생태론의 꿈 머레이북친 social ecology

머레이북친  키워드
생태적 감수성(경쟁보다는 상보성), 비위계적인 관계들,상보적 자원, 마음의 자연사,감수성의 자연사, 자연의 지배라는 무의식,불균등관계,위계조직

[생태학의 담론] 머레이북친
1. 자연과 사회 사이의 뿌리깊은 연속성 회복이 목표다.
2. 세계는 공생하며 상호관계적이다 = 다양성 속의 통일원칙, 전일성 wholeness
3. 자연 종들의 관계는 지배종속이 아니라 불균등관계다
4. 2세기, 특히 빅토리아시대의 '냉정한'자연에 대한 관점이 인문사회과학의 토대가 됨--> 이원론 생성의 토대가 되고 이원론의 역사적 상속자가 됨
5. 조직화된 사회의 장점은 어린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을 열어놓고 부모자매와 같은 유대를 함께하고 창출한다.
6. 새로 형성된 공동체나, 새로 등장한 사회는 잠재적 가능성이 유기적으로 만개하는 것. 단순한 변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7. '지배'와 '복종'으로 인간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불등한 관계로 표현해야 한다.
8. 계급보다 위계조직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사회생태학은 질서와 위계조직을 묶고있는 연결성을 파괴한다.
9. 위계질서는 사회제도적인 현상으로  인류의 제도화된 명령-복종체계는 다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다.
10. 맑스의 주장대로 계급,착취,국가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연령,성,인종, 폭력, 가끔 비합리적인 범주에 따라 위계적이고 서열화되는 지배를 막아주지 못한다.
11. 자연은 창조적이고 자기지시적이며 호혜적이며, 비옥하고, 상보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지배하는 자연은 가부장적인 위계조직, 계급과 국가주의적 유해로 이어졌다.
12. 사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 사회의 이원론적 복음을 받아들였다.
13. 근본생태주의 등 낭만주의 신비주의, 유전학과 과학이론들이 문제다 oneness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원제 remaking society 1989

1993이 아나키즘 2백주년 1992년이 페미니즘 2백주년이었고, 유럽은 물론 일본마저 많은 행사를 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1793년의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 1792 [여성권리에 대한 옹호] 와 같이 아나키즘에 대한 왜곡은 물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데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다고 한다. 이미 1952년 머레이 북친은 [음식에 화학첨가물의 문제]란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독일의 녹색당창립은 물론 실천적인 삶도 너무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주의도 아닌 자본주의도 아닌 다른 길에 대한 사상사나 역사에 빈약한 인식이 문제라 한다. 기본적인 관점에 있어 문제제기를 하는 시각이나 관점의 성숙선상에서 보면 좋을 듯하다. 역자는 자치적인 중세도시, 중세의 예술, 예술과 시인에 대해 새롭게 보고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공화주의]

공화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

공화주의적 문제의식이란 무엇일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그리고 그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한다. 공화주의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우정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 공화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실현과 유지에 꼭 필요한 열정들에 대한 이론이라면?

 멀리 중세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고민을 가져간다. 이 역시 최근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다. 인류지성사에 가장 뼈아픈 손실이 고전적 공화주의가 변형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전통으로 나눠진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로크와 몽테스큐로 하는 한쪽과 루소로 하는 다른 한쪽으로 나눈 것 때문이라면 말이다.

정치적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의 오래 전 생각이라 한다. 권력분립 역시 그러하다고 한다. 단 하나 양도불가능한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이 자유주의만의 창작물이라 한다. 물론 명백한 이론적 약점은 어떠한 권리도 오직 법과 관습에 의해서만 많든 적든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권리라는 것은 좋은 정치제도와 군사제도, 개인들이 충분히 시민윤리를 체화하고 있어야하고, 운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힘세고 공격적인 국가들에 너무 가까이 있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자유롭다는 것 역시 자유주의가 우리가 외부의 간섭에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공화주의는 타인에 예속되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예속이 간섭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침해다라고 한다. 민주주의 사상가들이 정치적 참여를 민주적 제도들에 대해 강화되어야 할 목적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공화주의사상가들은 자유라는 것이 생래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거나 앉아 있기만 하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만 가지며, 또 그만큼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 한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오직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간섭하는 여러 움직임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반해 공화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모든 예속의 조건들로부터 개인들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인민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자기 수중에 쥐고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뱀발.

0. 자본주의는 초기 사회의 가장 사악한 특성을 가장 존경스럽고 명예로운 가치들로 만든 사회다. 청년맑스의 관점이나 또 다른 관점들, 또 다른 중세 혼합정의 관점으로 다시볼 때, 지금은 어떠해야할까? 어떤 것이 이야기되어야 할까? 어떤 것이 이야기될 것인가? 사회재계약이 가능할까? 많게는 100년전, 200년전 멀리 500년전의 시선으로 다시 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을 보기위해 지금의 구조와 습속와 애초 인류가 하려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세계일까? 관점의 전환이 열정을 살려낼 수 있을까? 관점을 지금으로 녹여내면 열정에 훈풍을 드리울 수 있을까? 국민들 사이에 권력과 힘의 서열을 벗겨내고 정치적 우정을 만들어내는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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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못하는 말이나 표정들

모임을 하다보면 저기 한 모서리에 선명히 박혀있으나 드러나지 못하는 문장들이 있다. 성급히 말들을 드러내어 그 말들에 가려진 감정들이나 호흡들이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검녹색사이 비추는 별빛도 있다.  점멸등 처럼 모임때마다 희미하게 드러나고 말없이 사라지는 신호가 있다. 주파수채널을 맞추지 않고서는 드러날 수 없는 열정도 때론 점멸한다. 모임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하고, 자신의 색깔을 줄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울림들이 때론 섞여있다.

제 박자를 줄이지 않고 보이지 않거나, 자신의 골짜기를 깊이 파지 않고서는 흘러들어오지 않는 샘물들도, 끊임없이 어둠 속에 제빛을 내는 별빛들도 내 빛이 너무 밝아 도저히 볼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따듯한 여름이어서 따듯함이 보이지 않을 수도, 차가운 겨울이어서 냉철함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 내가 소유하는 단 한번의 모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남이 조금씩 묻어나 한 계절이 지난 뒤에서 색이 조금 입혀지는 모임이란 숲은

들리지 않은 베이스 톤이나 콘트라베이스톤이나 목소리 없는 소리들도 목소리없는 바람소리도 겨우존재하는 반복되는 들리지 않는 리듬들.

가끔 서로의 생각들이 고민들이 접혀서 드러났으면, 마음의 소리들이 알맞은 주파수로 지지직거리다 서로에게 또렷이 들렸으면 하는 바램들이 생긴다. 수번의 수십번의 만남뒤에 문득 들리거나 눈이 들어오는 표정들이 접혀서 빨리 볼 수 있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들도 생긴다. 시간이 필요하거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시선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 관점도 그러하며 높아지고도 낮아지기도 받는 마음의 강약도, 삶에 녹아나는 시간에 대한 여유도, 여백도. 그날 별빛은 무척이나 밝았는데. 가로등도 뚫을만큼..ㅎㅎ. 철쭉잎은 유난히 짙은 풀이눕는 색이었는데. 유난히 톤이 평상시보다 한톤이 높은 분들이 꽤나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되냐의 질문을 시간내내 돌아가는 길목에 곰삭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아 좀더 쾌속의 질주를 하고싶은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생각도, 고민도, 저기 보이지 않는 원심력이나 구심력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도 끄집어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강연은 어쩌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은은히 부는 바람의 성대에 감응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주제넘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책임은 오로지 제몫.

 뱀발.

0. 첫강좌다. [글로벌 자본주의론] 박교수님은 원고를 새로 준비하셨다. 오기전까지 난산을 거둔 것일까? 로빈슨의 글로벌 자본주의론, 경제지구화-트랜스내셔널 계급형성-트랜스내셔널국가-글로벌자본주의의 전망, 그리고 생각해볼 것들. 빼곡히 첨부된 데이터, 그림들, 그리고 그리고

데이터하나하나가 교수님의 땀과 밤잠 못주무신. 행여 바느질하다 찔린 피들은 아닐까싶다. 고민고민 고생고생. 쉽게 질문하기도 미안한 마음. 여전히 날로 먹으려는 회 좋아하는 욕심보 때문일까? 글로벌 자본주의론을 강의하시는 줄 알았는데, 글로벌자본주의론을 내놓으시고, 그것 만으로도 마음에 담기 벅찰텐데. 이것만으로도 생각길에 접어들어 헤매이기 쉽상일텐데.

조목조목 짚어내신다. 자본주의의 살들을 하나씩하나씩 발라내시려고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유형도 소유구조를 살펴보니 트랜스내셔날하지도 않고 매우 내셔날하거나 기껏해야 인터내셔널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현실까지.  어제 모 기관의 장?을 체육대회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당일까지 민영화 계획서를 내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민영화란 것이 사실은 그 관료들이 진행하는 과정가운데 떨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이 많을지 모른다는 지적까지 강의를 받는다.

진폭이 큰 거대기획에서 매각실적이나 방법까지 던져놓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싶다. 그 진폭이 큰 사고의 진동은 무엇을 바라고 계실까?  겨우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일까? 날름 요약만 가져가면 되는 것일까?

1. 2차 뒤풀이도 늦었다죠. 음 흔적은 다음에 남길께요.



실루엣에 대한 시선이 별과 달, 동시에 가지만, 실루엣 아래는 머물지 않는다. 수면아래에 대한 관심은 어떨까?  서로에 대한 관심은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실루엣 아래를 먼저두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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