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못하는 말이나 표정들
모임을 하다보면 저기 한 모서리에 선명히 박혀있으나 드러나지 못하는 문장들이 있다. 성급히 말들을 드러내어 그 말들에 가려진 감정들이나 호흡들이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검녹색사이 비추는 별빛도 있다. 점멸등 처럼 모임때마다 희미하게 드러나고 말없이 사라지는 신호가 있다. 주파수채널을 맞추지 않고서는 드러날 수 없는 열정도 때론 점멸한다. 모임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하고, 자신의 색깔을 줄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울림들이 때론 섞여있다.
제 박자를 줄이지 않고 보이지 않거나, 자신의 골짜기를 깊이 파지 않고서는 흘러들어오지 않는 샘물들도, 끊임없이 어둠 속에 제빛을 내는 별빛들도 내 빛이 너무 밝아 도저히 볼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따듯한 여름이어서 따듯함이 보이지 않을 수도, 차가운 겨울이어서 냉철함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 내가 소유하는 단 한번의 모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남이 조금씩 묻어나 한 계절이 지난 뒤에서 색이 조금 입혀지는 모임이란 숲은
들리지 않은 베이스 톤이나 콘트라베이스톤이나 목소리 없는 소리들도 목소리없는 바람소리도 겨우존재하는 반복되는 들리지 않는 리듬들.
가끔 서로의 생각들이 고민들이 접혀서 드러났으면, 마음의 소리들이 알맞은 주파수로 지지직거리다 서로에게 또렷이 들렸으면 하는 바램들이 생긴다. 수번의 수십번의 만남뒤에 문득 들리거나 눈이 들어오는 표정들이 접혀서 빨리 볼 수 있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들도 생긴다. 시간이 필요하거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시선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 관점도 그러하며 높아지고도 낮아지기도 받는 마음의 강약도, 삶에 녹아나는 시간에 대한 여유도, 여백도. 그날 별빛은 무척이나 밝았는데. 가로등도 뚫을만큼..ㅎㅎ. 철쭉잎은 유난히 짙은 풀이눕는 색이었는데. 유난히 톤이 평상시보다 한톤이 높은 분들이 꽤나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되냐의 질문을 시간내내 돌아가는 길목에 곰삭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아 좀더 쾌속의 질주를 하고싶은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생각도, 고민도, 저기 보이지 않는 원심력이나 구심력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도 끄집어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강연은 어쩌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은은히 부는 바람의 성대에 감응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주제넘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책임은 오로지 제몫.
뱀발.
0. 첫강좌다. [글로벌 자본주의론] 박교수님은 원고를 새로 준비하셨다. 오기전까지 난산을 거둔 것일까? 로빈슨의 글로벌 자본주의론, 경제지구화-트랜스내셔널 계급형성-트랜스내셔널국가-글로벌자본주의의 전망, 그리고 생각해볼 것들. 빼곡히 첨부된 데이터, 그림들, 그리고 그리고
데이터하나하나가 교수님의 땀과 밤잠 못주무신. 행여 바느질하다 찔린 피들은 아닐까싶다. 고민고민 고생고생. 쉽게 질문하기도 미안한 마음. 여전히 날로 먹으려는 회 좋아하는 욕심보 때문일까? 글로벌 자본주의론을 강의하시는 줄 알았는데, 글로벌자본주의론을 내놓으시고, 그것 만으로도 마음에 담기 벅찰텐데. 이것만으로도 생각길에 접어들어 헤매이기 쉽상일텐데.
조목조목 짚어내신다. 자본주의의 살들을 하나씩하나씩 발라내시려고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유형도 소유구조를 살펴보니 트랜스내셔날하지도 않고 매우 내셔날하거나 기껏해야 인터내셔널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현실까지. 어제 모 기관의 장?을 체육대회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당일까지 민영화 계획서를 내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민영화란 것이 사실은 그 관료들이 진행하는 과정가운데 떨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이 많을지 모른다는 지적까지 강의를 받는다.
진폭이 큰 거대기획에서 매각실적이나 방법까지 던져놓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싶다. 그 진폭이 큰 사고의 진동은 무엇을 바라고 계실까? 겨우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일까? 날름 요약만 가져가면 되는 것일까?
1. 2차 뒤풀이도 늦었다죠. 음 흔적은 다음에 남길께요.

실루엣에 대한 시선이 별과 달, 동시에 가지만, 실루엣 아래는 머물지 않는다. 수면아래에 대한 관심은 어떨까? 서로에 대한 관심은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실루엣 아래를 먼저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