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 동양고전산책- 서양고전읽기



책읽기가 얕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인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책속엔 책이 없다. 인문학 교수들에겐 인문을 찾아볼 수 없다. 재야의 그늘에서만 통찰과 고전읽는 방법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바닥의 책읽기에 대해서 말이다.세상엔 공짜가 없다. 아마 책읽기도 그러할 것이다. 다이제스트도 없고, 요약도 없다. 시간의 함수에 바래고 잊어지고 희미해져 골간마저 건져내기 힘들다. 어쩌면 공짜심보가 그렇게 마음 속에 딴 사람처럼 들어앉아 들어가는 족족 제것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결국 제것이 된 것은 별반 없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그물망도 바래고 툭툭 끊어지기만 해서 별볼일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의 시선으로 저기를 재단하는 습관들. 숱한 논문들. 결국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없이 거짓처럼 거품처럼 부화한 지식들만 부랑하는 지금. 삶도 없고, 함도 없고, 풍선처럼 바람만 잔뜩 든, 현실에 실뿌리하나 내리지 못하는 앎들만 왕왕거리는 지금.

부끄럽고, 답답하고, 마음나눌 곳 없이 흔들거린다. 지난 토욜. 조금씩 읽기 시작한 김영민샘 동무론을 마저 본다. 앞저트로 대나무와 매화의 그림들을 훑다. 커피 한잔 놓고 마주한다. 자아라는 것, 주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들의 학문 근간이 흔들린다. 머리가 끄덕여지고, 아쉬움. 학문의 자기생산이란 것이 결코 혼자 설 수 없는 자아나 주체나 인간을, 혼자로 놓고 사고한 산물이란 것. 그리고 친구처럼 인문하는 앞선 학자를 불러내세우는 능력에 숙연해진다.

동무는 무엇일까? 서늘함. 욕심없는 의욕. 생각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늘 중동나는 모임의 시공간. 호의와 호감, 고백과 소문에서 별반 진전이 없는 생각시공간들. 모임시공간들

들어가고 나오길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눈물이 비치고, 설움도 함께 울컥한다. 손수건으로 매듭한다. 어디 혼자 엉엉 울고 싶기도 하다. 여러 느낌이 교차한다. 답답함과 시원함. 인문학자들이 이렇게 마음 결 속에 단단히 숨쉬고 있음이 기쁘기도 하다.

뱀발.  밤, 일년 외국으로 다녀올 동네지인의 환송 겸 모임이다.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진다. 태생이 서늘하여 별반 호의나 호감을 온전하게 내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사실 그럴 생각조차 없다. 만나고 약속하고 또 만나고 삶에 대해 수직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얇게 수평만으로 흐르는 것, 기분을 의탁하고, 품고 깊어지는 것 없이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동무의 접선으로 소내하기가 무척 버겁다. 접점이 생기지 조차 않고, 얕은 소문-호의-호감의 덫에 걸려 다른 것을 상상해내고 둘이 품어낼 것 조차 없다. 시도하지도 않는다. 고민은 나로 함몰하고 나-너의 씨앗으로 품어지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상으로 유랑만 할 뿐이기 때문인가? 아무튼 좀더 깊이 품어보기로 한다. 제법 개념이 어렵다. 단지 앎을 얻고자 한다면, 난해하여 얻은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삶을 한가운데 놓고 생각길을 따라가본다면, 함께 산책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수확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렇게 대면할 수 있음이 행운인 것 같다. 

 

꼬리들.

   
 

(말이 필요없는)친구와 (말이 통하지 않는)연인이라면 낯선 타자성의 관계 속에 길을 내는 일(동무)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는체하기'가 아니라 '알면서 모르는 체하기', 무관심한 관심, 차림새가 없는 차림새, 수동적 긴장

사치의 부재가 아니라 부재의 사치, 비움과 나눔으로의 사치, 산책-부사적 사귐의 공간, 체계와 생산적으로 불화하려는 자들. 초인이 아니라 동무. 인문의 목자

부정적-부재적-부사적 연대의 사이길. - 공사의 사이, 가족인간과 회사인간의 사이, 애착과 기능주의의 사이, 애인과 타인의 사이, 좌우의 사이, 형이상학과 니힐리즘의 사이, 기계적 체계와 원자적 개인의 사이.

일상 - 회색 톤의 단조, 벡터가 없는 모노로그의 퇴행, 벡터가 없는 지식, 자기애 나르시즘. 모든 것을 아는체하고 젖먹이처럼 보챈다.

 
   

[ㅁ 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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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한 것만 먹다보면 장운동이 퇴보됩니다.
가끔 딱딱한 것, 쓰거나 매콤한 것도 먹어줘야 혀도 좋고 장도 좋고 몸도 균형을 이루지
않을까 해요. 인문학, 골 아픈 걸 거부하는 소비패턴지향주의에 흠뻑 젖은 현대인들에겐
바위 덩어리 만큼이나 부담가는 책일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지금도 만만한 콩떡이 되지 않지만(영원히!)시간과 정신을 투자한만큼 인식의 지평은 확실히 달라집디다.

여울 2008-08-07 18:03   좋아요 0 | URL
흠뻑 젖은 현대인...여기요!! ... ...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들어오네요. .... 여우님 말씀에 백십프로 공감합니다.

밀밭 2008-08-0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란여우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저도 읽고 싶은 책들인데 혹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까요?
슬픔, 아픔, 울음, 삶, 앎, 마음, 배고픔, 열매, 장미(?) 매미(?) 'ㅁ'의 변주 몇 점?

여울 2008-08-07 18:25   좋아요 0 | URL
80점이군요. 마지막 둘. 지구를 [ㅇ]으로 보면 어떨까요! ㅎㅎ. 아~ 장미도 보이는군요. ㅎㅎ

밀밭 2008-08-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하나 더요. 소음 또는 음미? 아님 말고요...ㅎㅎ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형이라...^^
 

냉가슴, 면역과 불편



어쩔거나 천일동안 제몸 불살라도 세상은 눈길 한번 주질 않는다. 그 역동성은 어디로 숨었는지? 숱한 목숨이 앗아가도 이제 세상은 이내 면역이 된 듯. 그 또한 남의 일이다. 아프리카, 지구반대편에 일어나는 굶주림과 기아에 다름 아닌 듯이 말이다. 고공농성등 해보지 않는 싸움은 없다면서, 몸속 깊숙이 갉아먹는 단식농성이 죽음의 저편까지 들어서있다.

하루 소식 끊은 오늘은 어김없이 제기미발랄한 엽기소식으로 도배한다. 집회시위대를 몰이꾼과 포획자로 구분짓는 포상한다는 미친발랄 소식과 북한의 인권을 염려한다는 b(ush)mb는 굶주림으로 사람이 죽어가도 그것은 인권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포옹프렌들리와 근친미소다.   속이 미식거리고 토할 듯하다.

주지육림하는 휴가내내 불편하다. 통각도 둔화하고 무뎌진다.  일상의 바다는 이미 다른 삶, 다른 생각으로 넘실거린다. 가족의 바다도 낚시대 하나 드리우고 생각 한점 낚아 올리기 어렵다.  아파하기에 바쁘고 서럽고 조울이고 숨쉴 틈하나 없이 생각도 맘도 꽈악 조이고 산다.

범벅이 되어 마음 한가닥, 몸한가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날. 휩쓸려가는 삶. 일상에 속은 미식거리고 토할 듯하다. 복제되는 일상은 늘 불편하지 않고 건망에 강하다. 통증에 지속력도 연관성도 없다. 하루의 안녕만 중요할 뿐. 일상의 먹구름은 쓰고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하고 또 쓰고 광속의 속도로 소비하면 될뿐, 독립채산인 일상은 남의 삶을 넘겨보지 못한다. 남의 밥숟가락하나 헤아리지 못한다. 죽든 말든 일상의 아편은 이리 맹독성이다. 보이는 것 하나 없을 정도로 ...

 

뱀발.  큰딸래미 식구와 용평을 다녀오다. 움직이는 동선의 폭 만큼 숭덩숭덩. 에너지플로우는 강열하다. 이틀밤을 묵었다. 마음이 편치 않는다는 것은 움직임에 불편한 마음들이 묻어나기 마련이었고, 동선을 넣으려는 마음의 표독이 읽힌다. 어렵고 예민한 자리였다. 안스러움이 안타까움이 되는 듯 싶고, 불편한 마음은 이내 전염이 되는 듯하다.  마음이 자리잡고 편안하고 흔들리지 않으면 좋을텐데.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그 사이사이 생각과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하고 자책이다. 시집한권 든 것도 가뜩이나 그런데 잠깐 본 소식들에 신경이 곤두선다. 시사투데이를 보다 기륭전자 소식에, 오늘 또 다른 소식들에 그리고 가볍게 지나치는 일상마저 확대되어 들어오고 마음을 져민다. 무슨 짓을 하며 하루하루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일상은 촌각을 다투며 전태일로 치닫는데 목숨이 목숨이 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이 되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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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8-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울님, 너무 많이 아파하는게 눈에 보여 덩달아 가슴이 저려오네요. 가족들과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여울 2008-08-07 11:13   좋아요 0 | URL
하하. 넘 걱정마세요. 일기를 엄정하게 쓰는 편이라. 휴식은 휴식이고 생각은생각이구요. 덕분에 잘 쉬다가 왔어요. 고마워요.
 



자전거 080803 7k, 080802 30k  유*도서관 나무수국. 어찌 더위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

 

 

 

 

 

빌려보거나 보는 가운데. 그래도 읽고 싶던 책들이 야금야금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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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여도 축여도 입은 탄다아
꼬리를 문다

 

 상가집을 다녀온 뒤, 작정 좀 하고 읽을 것 좀 준비를 하려는데, 칙칙한 더위와 몽롱한 습기에 어질어질 한다. 좌탁을 꺼내고(밥상이다.) 영화구경차 몽땅 나가버린 빈 거실. 설겆이를 하고 나름 애를 쓴다. 도저히 이 상태로 지구력을 발휘할 것 같지 않아, 가벼운 달리기와 몸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힘들 듯하다. 이것저것 챙겨 완보에 가까운 달림이다. 흐느적거리며 몸을 조금 덥혀진 뒤에서야 샤워를 하고나서야 정신이 차려진다.

 070 인터넷에 클래식 에프엠 방송은 지지직거리고, 공칠공을 언플러그하고 나서야 온전하다. 오보에를 연주한다는 음악 소개자는 아무래도 태양과 음악이라는 주제로 아나운서에게 소개와 동시에 동의를 구한다.  적도와 지중해와 중부독일과 노르웨이...위도에 따른 음악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노르웨이 위도 60도의 곡이 적도 부근의 말레이지아나 아프리카선상의 사람들에게 체질적으로 이해가 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중부독일로 노르웨이로 옮겨가는 선곡은 그럴 듯하다. 늘 이 소개자는 이렇게 음악가가 태어난 곳과 연관을 둔다고 한다.

 그렇게 몸차리고 책을 보는데 다른 곳에 정신이 있으니 꾸벅 졸게 된다.  온전히 날밤 새어 보자던 작정은 어김없이 무너지고, 11시간 숙면.  아침결에 잠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를 반복하는데, 아이들의 수다가 볼륨이 커지기를 반복하다. 이미 열한시도 훌쩍넘고 반을 더 가르치고 있다한다. 거짓말이라고 잠을 더 청하는데, 증폭된 볼륨에 잠도 달아난다. 패잔병처럼 좌탁에 널부러진 책들이 안스럽다. 이것저것 아침도 챙기고 아*** 셀브르 도자기전 행이다. 잔차는 날카롭게 달리고, 빗방울이 도착할 무렵 후두둑 거린다.

 이종수전과 셀브르전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250년의 전통이라곤 하지만 비스크 작품들이나 도자기들은 그다지 같은 톤의 반복에다 장식위주여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자본주의가 상품화엔 성공했지만 심미안이나 다양성에는 한치도 진보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100년동안의 작품이 어찌 이리도 한결같은지. 차한잔하며 나누는 관전평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 정서와 맞는 이종수도자기전은 더 낫다는 평이다. 그런데 설명하시는 분(이렇게 들을 수 있는 배려까지? 혼자가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슬쩍슬쩍 들어본다. 오고가며 딴짓만 일삼았지만)은 어찌 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만드는 기술이나 과학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사를 이야기한다. 어찌할까?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더 적절한 것 아닌가 싶다. 동선내내 같은 톤의 같은 설명이다. 이것이 눈높이 설명은 아닐터일텐데. 아이들의 역시 숙제형 접근방식. 다른 팀은 해설자의 안내를 받고 작품보다 연신 설명을 적는다.

건축이나 회화나, 조각이나 모두 따로 떨어져 전시되지 않았다. 그 자체로서 감흥을 준 것이지 따로따로 박제화되도록 장식으로 떠돌지는 않은 셈이다. 찻잔이나 도자기나, 장식품으로 박제화된 19세기 비스크나 작품들에는 오히려 우리는 유사품에 익숙해있다. 금박을 입히든 우리는 모조에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면에서 늘 작품으로 이어져온 이종수 도자기들이 더욱 그윽하고 익숙한지도 모르고 은근히 배여있는지도 모른다.

관심있던 작품에 대한 평이 혹시나였는데, 듣고 나선 역시나이다. 태양의 위도론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점이 있겠다 싶다. 뭘까? 선채로 비평에 솔깃했다면 느낄 수 있을텐데. 깊고 그윽한 맛이 아니라 뭔가 달콤하지만 표면에 묻힌 단맛은 아니었을까? 프랑스엔 널린 것이 석고광산이다. 우린 흙으로 빚어내지만 그들은 석고로 빚어낼 수밖에 없다. 혹 이런 여건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죠.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혹시 이종수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셀브르전을 동일하게 배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음모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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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8-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종수도자기와 셀브르 도자기의 차이점을 말하라면 "만져보고 싶다, 보고만 싶다" "향기가 날 것 같아 코를 대고 싶어진다, 무취무향이거나 유약냄새뿐일것 같다" "자연이 빚은 빛깔과 무늬에 작가의 혼이 어우러져 있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무늬와 색깔에 금방 싫증이 날듯 싶다." "또 보고파진다. 한번이면 족하다." "갖고 싶다. 선심쓰듯 주고 싶다." 등등. 그러나 이것은 단지 저의 취향일뿐입니다. 이종수선생님의 작업사진이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주인허락도 없이 마음은 벌써 작업실에 가있습니다.ㅎㅎ (여울마당님, 저도 무지 반가웠어요.^^)

리즈 2008-08-0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슨트 설명 다 듣고 저희 남편도 마당님과 비슷한 이야기 했는데, 저는 좀 다른 생각이예요. 미를 추구하는 방법이 많이 다르다고 할까? 이종수의 도자기는 은은하면서도 미세한 색깔과 질감과 모양의 차이를 관람객(?)이 발견할 수 있어야 진정 미를 알 수 있지요. 내가 적극적으로 그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지요. 반면 세브르 도자기는 내 주의를 시각을 끌어당기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지요. 저절로 눈이 가요. 선명한 색깔, 아기자기한 모양에서 현대 미술의 절제되고 기하학적인 모양까지... 초기 작품들은 별 감흥이 없었는데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좋았어요. 상업성에 예술성을 가미하려하는 그들의 시도가 인상적이었답니다. 암튼 아직 가보지 못하신 분들은 놓치지 마세요.

여울 2008-08-0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밭님, 리즈님, 제가 눈구경꾼이 된지 얼마되지 않아, 심미안이 없답니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끌리는대로 움직일 뿐이죠. 많은 기대하지 마세요. 하하. 최근 것도 리즈님 말씀대로 끌리는 것들이 있었죠. 그런데 벌써 마감이 되었군요. 사진으로 몇 조각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마음가는대로 보세요. ㅁ

여울 2008-08-0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종수님은 지난 8월 6일 운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서야 소식을 들었군요. 안타깝습니다.
 

요즘 신상에 대한 반추



마치 청춘으로 돌아간 듯하다. 100일 작전도 아니고 100일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나이도 그 나이가 아닐텐데. 쯧.  일도 겹치기에 동선도 복잡해져 버렸다. 서로 엉켜있어 온전한 동선이 없어보인다. 체력이 부치는 느낌도 들고, 아니나 다를까? 혹사 아닌 혹사 덕에 간수치들이 올라서있다. 술경향-술절임 간수치말이다. 조금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호흡조절도 해야겠는데, 역시 예민하게 생각을 벼려야 할 일들이 간간이 생긴다.

100일 남짓. 여러 소용돌이의 와중에 생각지도 않은 모임도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지고, 2mb때문에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을 상상하고 캐내게 된다. 취미로 한다고는 하지만 맡은 일들, 아니 일터 일들이 반틈이고 동선도 깊고 예민하다. 온전히 스트레스 한말로 전이되기도 하지만, 제법 상황이 그다지 예측의 통로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예측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인가?) 그리고 취미아닌 취미(남들에겐 그렇게 이야기한다.)의 나머지 일들도 야릇한 재미를 선사한다.

100일 전, 정신도 있고 경황도 있는 것 같은데, 센서가 느끼는 것은 경황이 조금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이나 동선도 만만치 않고 강도가 세어지기도 한 연유이기도 하다. 눈의 피로도 그러하며(아무래도 피씨중독이겠지) 덧붙여 무지에 대한 통감. 예민하고 깊숙하지 못한 책읽기에 대한 반성도, 그로 인해 소나기처럼 오는 스트레스가 요즘 들어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게을러지고 이기적이 되기로 한다. 혼자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와 개인을 직선관계로 보는 시선에 그리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에 들러붙는 에너지를 줄여야겠다. 몸이 붙이고 다니는 에너지흐름들을 좀더 간소하게 해야겠다 싶다.  관리 좀 해서 계정만들고 열심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과 프로세스, 시스템 변화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모임들에게 줄여서 기부(그러고있는 것 아닌가 술푼?)도 구체적으로 해보아야겠다.

육식도, 마음을 넘어서는 술들도, 체력을 넘어서는 미안함도 줄여야겠다. 음 그러면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인가? 이기-이타적인 인간이 되는 것인가? 이기-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인가? 암튼 인간이 되거라~는 맞는 말인가 보다. 어쩌면 불쑥 불쑥 들어온 책머리의 마음들이  감당할 마음틀, 마음댐의 수위를 침범해서 넘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색깔들이 아주 조금 들어와 증식이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사회를 나와 관계로만 설정하고 움직이는 것에 혐오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불쑥 사회와 나도의 관계와 병행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하기도 한 것 같다.

음. 취미활동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도 주절거린다. 좀더 재미있게 더 난장트고 잘 놀려고 몸관리 좀 하겠다는 이야기를 어렵게도 한다. 가끔 요령 피우고 일찍 들어가겠다는 소리도 어렵게도 한다. 나이살 먹어 이젠 일찍 기어들어오는구나 하는 욕지기 들을 각오를 한다는 소리겠다. ㅎㅎ. 건강을 핑계삼아 준다이어트 하겠다는 소리를 이리 비틀어서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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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8-0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 ^0^~~~~~ ㅎㅎㅎ 왜 자꾸 웃음이 나오죠? ㅎㅎㅎ 지송.^^

여울 2008-08-02 15:05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이야기 한자락 할 시간들이 있어야 할텐데. 뵙기만 하는군요. 반가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