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벌써 익어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면 곧 잊혀질 듯.
마음이 숲으로 번져 마음이 숲의 색을 뚝뚝 떨어뜨릴 듯.


#1.

몇권의 책들을 조각내어 보다. 물끄러미 응시하지만 읽은 단어들이 달라붙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몸과 이물감을 갖는 언어들과 책들은 늘 낯설다. 바람결처럼 내리는 아카시아향들만 몸을 환기시켜 몸을 불러 세운다. 며칠 내리는 비 사이로 지난 주를 돌이켜본다. 비가내리는 주말 아침 참*, 점심 뒤 참* 세미나, 간만의 항*씨는 여전하다. 공부의 깊이가 더했는지 세미나의 설명이 거침이 없다. 별똥별...의 저자님도 부군과 함께 해주셨는데 큰 질문은 없었지만 신선하고 공감가는 듯 싶다. 질문의 방향이 모임에 대해 직접적 대응이 몇꼭지 있다. 이로인해 뒤풀이에도 모임이나 공동체, 조직의 자정기능이나, 순방향의 예스만이 좋지 않다는 매듭을 엮는 듯하다.

 #1.1  *국장하구 좀 급하게 마실 술 덕분에, 공동체와 모임과 조직을 생각하는 수준이, 게임이론도 좋지만 기본적인 인식이 기계적이거나 물리적인 한계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기계라는 말도 식상하지만 모임기계 그 수준이 아닌가 싶다란 이야기를 건넨다. 거기에 덧붙여 모임이기주의라는 말까지 첨언한다. 생태이거나 생물이거나 식물이거나 하다는 시선이라도 있다면, 모임을 조직을 자라게 하기위해 키우기위해 해야하거나 통증을 느끼는 것이 비슷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모임기계주의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모임에 집착하고, 경계를 열어줄 때의 기준을 통증으로 삼지 않는다. 유불리만 따질 뿐, 자신을 증식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래서 결국은 얻으려는 것도 얻지 못한다. 서*샘이 비가 짙어질 쯤, 막걸리 한잔을 더하고, 이야기 한 술을 더 더한다.

 #1.2  멀리있는 분들을 호출해놓고, 이야기보단 몸에 눅은 술만 관심있는 것인지? 이야기의 밀물과 고민의 밀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인지? 그저 달이 저편으로 진 것인지? 달이 또 차오르면 또 다시 고민은 풀려나오는 것일까? 왠지 미안한 마음들만 희미해져가는 기억들 곁에 짙어진다. 100522

#2.

잠깐 태울관에서 독립영화 상영이 있다. 얼굴이나 볼겸 잠시 들르다. 약속이 겹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정겹다. 한** 강사의 숙제가 있어 참여율이 높다는 말들. 보지 못하는 영화들이 아쉽다. 100521

 


#3.

새것에 대한 찬미, 아니면 공감에 대한 갈증, 그런데 정말 공감에 대한 굶주림일까? 시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롯해 보지 못함이 과잉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애석하게도 공감의 갈증은 그 굶주림만큼이나 본 뒤에 회자되지 않는다. 여전히 새것에 대한 대기, 굶주림만 키우므로 누리거나 회자는 이 세상에 덕목이 아니다. 진득하게 썰을 푼다거나 작품을 곱씹는다는 일 역시 무리에 가까운 일이다. 또 다시 일용할 날 것을 찾기만 하기 때문이다. 뉴스에 출몰할 뿐, 출몰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것이 일상과 닮아있다. 사람들도 일회용을 닮아간다. 생각들도 벌써 재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저기 폐기할 즈음 되는 것들이 새것의 옷을 입고 나타나도 새것인지만 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활하거나 날것이 곰삭은 맛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그저 새것일 뿐이다. - 그것도 못봤어, 그것도 몰라에 반기가 아니라 백기를 들고 싶다. 그런데 네가 대체 아는 것은 뭣이냐??

#4.

결혼식과 상가를 오가면서 몇줄을 읽지 못하다. 몸도 가라앉은 연유도 있지만, 낯선 말들에, 날선 말들에 몸이 담아낼 수 있는 것들도 걱정이다. 100523

#5.

딸래미와 책을 살 겸 나들이다. 동네서점을 들러 모임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을 고르니 오늘은 비교적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몇권, 주제별 부스에 가니 있어주어 고맙다. 점심, 데이트 그리고 책마실. 몇년 뒤, 그래도 어제 모임 뒤풀이에 나온 꼬마 대학생의 모습을 보니 여러 느낌이 다가선다. 100521  100520

#6. 

상가에 돌아오는 길 문자를 받다. 아시는 전*조 샘이 민**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6월 말일자로 파면된다는 소식, 복직을 하려해도 일년반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소식. 미*광이짓을 눈을 뜨고 봐야한다니 정도를 넘어선다. 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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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선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잎이 가슴에 맴돈다. 잡으려고 남기려는데 갓난아이의 얼굴처럼 선명하지 않다. 첫사랑의 얼굴처럼 뚜렷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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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참*, 도*관, 책구입 등 책욕심이 화근이었던 것인지? 책읽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동난 생각들이 이리저리 접붙지도 못하고 달랑 달랑 제자리에 있거나 뭉게져서 살펴볼 수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을 키우는 것이 나은 것인지? 정교해져야 하는 것인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비에 불쑥 자란 잡초들처럼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생경한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이다. 굵직굵직한 방향을 가진 책들이라 그리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펼치기가 두렵거나, 남겨두어도 염두에 박혀 있다. 날이라도 잡아 무진기행이 아니라 핑계삼아 섬 버스라도 잡아타거나 기차를 타고 눈에 밟히는 남도자락이라도 안주 삼아 책을 봐주어야 할 것 같다. 문득문득 지도를 보다나면 섬들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스스로 발견하고 멈칫한다. 

2. 읽어야 할 책 

 

 

 

 

 

 

 

장마비처럼 내리는 비는 느티나무 잎새가 가려진다. 밤은 익고, 눅눅한 습기에 잠을 깨는 아침. 점점 짙어가는 초록은 진초록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서야 거꾸로 5.18의 밤을 맞고 있음을 실감한다. 왜 이리 검은 먹지로 덧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처럼 일상을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향수에 취한 자들은 기억을 검게 덧칠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일터점심 곁의 정치이야기들이 생경하다. 밀려두며,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 구입해야할 책들...노신의 묵자, 장자, 공자, 노자의 이야기는 단편임에도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3. 읽어야 할 사람들 

사람들과 대면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길이 문득문득 난다. 사람이 열고 내고 있는 길들 사이로 들어가 말도 걸고 싶게 생각을 번지게도 하고 싶은데 열길 사람 속으로 향하는 길들을 모르겠다. 불쑥 불쑥 앞에 서있는 사람도, 저기 있거니 했는데 어느새 옆으로 바삐 지나가고, 어느 새 삶을 빨리 들어, 체하기나 한 것은 아닌지? 불쑥 아카시아향과 등나무꽃의 실루엣을 보며, 열정의 깊이만큼 느리게 가지 못함이 안스러워진다. 연두색이 짙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바쁨이 얄미워지기도 한다.  

 

4. 품에 안고 싶은 나무들, 기대고 싶은 나무들 ...

연두색 잎새엔 쌀밥이 한가득이다. 고봉가득 나무 마다마다 이밥은 천지다. 배부르지만 배고프다. 아카시아향이 묽어졌다. 벌들도 지친 듯, 여기저기 벌들이 사라졌다. 목련 잎에 목련을 품에 안고 싶다. 그 질감과 잎새의 흔들림....갈수록 한촉 한촉 더 피는 느티나무 새순과 그늘에 기대고 싶은 낮...저녁....달콤한 땀 한줌이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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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수신문,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2003)
    from 노는 사람 Play In 2010-05-19 03:37 
    book_title: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subtitle: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editor: 교수신문 cover_design: 김경아 publisher: 생각의 나무 date_issued: 2003-10-17 list_price: 22000 list_price_currency: KRW ISBN: 898498275X (via) 책을 펴내면서 -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의 학문사적 의의, 이영수(교수신문 발행인) 글머리 '..
 
 
2010-05-2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성공해야 하는 것인가? 

 성장해야 하는 것인가?   

 

2.  

성공해야 한다는 반의식이 끊임없이 성공한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성장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한없이 더 가져야하만 한다는 초조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3. 

 그렇게 강박이나 초조함이 우리 의식의 절반이상을 점유하여 나날을 우일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도 없는 성공한 자를 만들어내어 자신을 추락시키고, 소수를 위한 성장의 풍선을 만들어내어  점점 비굴을 키우는 일이라면 

  

4. 

 성공하지도, 성장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들이 

 성공해야한다는 사람들의 강박을 다독이고 

 성장해야한다는 사람들의 초조함을 풀어내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성공과 성장의 수혜란 무게중심을 내려오게 하는 것은 아닐까? 

 

5. 

성공하지 말자. 성장하지 말라라고 외치는 것이 좀더 많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고, 좀더 성공을 저 높은 것이 아니라 좀더 낮은 곳으로 이끌며, 좀더 옆과 아랫 사람들을 안중에 두는 성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6.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제발 성공하지 말자. 제발 성장하지 말라란 기도문을 자본주의 신자에게 내리는/올리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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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부터의 자유

1. 

행복한가? 행복을 밝히다보면, 행복의 지침서를 보면 행복의 길이 보이는가? 행복의 길이 나를 열어 젖히는가?  그 행복의 길이 부푼 풍선처럼 머리의 위안만 되는 것은 아닌가? 쾌락과 현실의 간극처럼 꿈만 부풀리는 것은 아닌가? 행복안내서가 한결같이 나를 빵빵하게 만들고, 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의 기획이 홀로 행복을 전제로 해서 애초부터 너는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닌가? 행복 지침서는 너를 배제하였으므로 오로지 나에 대한 문건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처음부터 서로행복을 기획하지 않았으므로 이것 역시 고독의 지침서가 되는 것은 아닌가? 처음부터 어깨동무는 안중에도 없으므로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위안의 약물 복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없고 그리운 너로인해 내가 있는 것이라면 같이 보고 느끼고 감응하는 우정은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겠지. 같이 다르게 또 풍부하게 전달되고 느낌의 화수분, 고갈되지 않는 시선들. 너와 나의 통로가 어깨동무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고독의 행복은 저리가버리고, 우정도 사색도 자유도 이루어야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거나 한몸이 되는 나-너의 어깨동무 시선으로 시작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그런 것이 서로 행복이라면, 자유도 사색도 우정도 곱씹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라면, 서로행복할 꺼리는 무엇일까?

그러면 질투, 걱정, 열정, 권태, 죄의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토의 확장이 나만에 갇히지 않고, 환대의 경계가 어디까지 열려있는 것일까? 아픔의 확장이 어디까지 넓혀지는 것인가? 너를 찾는 이들이 너를 찾아 행복했던 과정은 늘 닫힌 [나-너]의 1인칭으로 끝나버렸던 것은 아닐까?

2. 

행복이란 것이 나만의 에세이가 아니라 -나 - 너-의 에세이라면 너로부터 대여받은 나의 행복은 필연으로 너를 확장하는데 있다. 나만으로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너로, 저기 먼너로 넓혀질수록 나는 행복하다. 너의 행복에 민감하므로, 나만의 행복으로 가두는 것은 행복의 몫이 줄어드는 것이다. 머리란 자족의 외피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몸의 확장과 몸의 사유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머리와 몸 경계의 차이와 간극이 될 수 있으면 작아지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행복이 머리에서 배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영역으로 내려오는 일이다. 몸의 행복에 닿아서야 행복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이 나의 머리에 그친다면 끊임없이 또 다른 머리의 행복이란 약을 주입해야 한다. 머리는 또 다른 행복의 자극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독의 철학뿐만 아니라 고독의 행복도 행복을 독점하는 엘리트만 키워내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행복해지는 행복은 홀로행복이 머리 속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나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너를 깨운다. 나는 너로부터 있는 것이기에 너에 붙어있는 모든 것에 민감하다.  나는 없는 것이라거나 깊숙히 판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이 너로부터 채우는 것, 주체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버리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징검다리는 아닐까... ...

 

 

뱀발.  작은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해보다. 일터일로 시간이 겹쳐 저녁 시간에 대기 힘들 줄 알았는데 묘하게도 서울출장부터 몇템포가 바뀌니 행복하게 시간이 난다. 덕분 이렇게 참관과 참석을 번갈아 모임 속을 들어가본다. 보거나 느끼는 시선들이 다를 것이라고 여겼지만 선입견의 그늘은 선명한 듯 싶다. 말과 느낌이 섞이다보니 별반 대별될 것도 없지만 내내 이야기의 전제가 스며든다. 모임에서 서로 나눌 자리가 없다면 이 책도 홀로대면하고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누다보니 당위의 말들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리고 한번쯤 생각을 좀더 키우고 싶다는 건넘는 만용도 서는 것이다. 그래서 두서없이 생각의 고삐를 당겨본다. 말들이 어디로 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닿는 이가 있다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삐뚜루한 시선이 들어서면 여름에도 춥고 낮에도 외로움이 칼날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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