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강렬하지도 않고 절박하지도 않은데, 왜냐하면 당신은 에너지, 정열로서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정열이란 그 뒤에 맹렬함을 갖고 있는 정열이요, 아무 숨겨진 바램이 없는 정열이다. 정열은 말하자면 무서운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이 정열을 갖고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데리고 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253
당신은 책을 덮는 순간 잊을 것이고 아니면 여기서 읽은 것과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을 비교해 볼 터이지만 당신은 당신의 삶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의 전부다. 당신의 삶, 당신 자신, 당신의 왜소함, 당신의 경박감, 당신의 잔인함, 당신의 폭력, 당신의 탐욕, 당신의 야심, 당신의 일상적 괴로움과 끝없는 슬픔. 그것들이 당신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당신 이외에 땅과 하늘의 아무도 당신을 그것에서 구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249
에너지는 행동이며 운동이다. 모든 행동은 운동이며 모든 행동은 에너지이다. 모든 욕망은 에너지다. 모든 정조는 에너지다. 모든 삶은 에너지다. 모든 생명은 에너지다. 만일 그 에너지가 아무 모순없이, 아무 마찰없이, 아무 갈등없이 넘쳐 흐르게 놔둔다면, 그 에너지는 한이 없고 끝이 없을 것이다. 마찰이 없을 때 에너지는 경계가 없다. 246
우리는 우리의 자기 중심적 행동에 의해, 우리의 편견, 우리의 증오, 우리의 민족주의에 의해 이 세게를 현재의 혼돈 상태로 만들었으며, 우리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속의 무질서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쪼개어 조각내 놨으며, 만일 우리들 자신이 부서지고, 조각나면, 우리의 세계와 관계 또한 부서질 것이다. 244
내적 고독과 내적 공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하고, 가고, 기능하고, 나는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미덕이 자유가 있을 때에만 꽃피듯이 선은 공간 속에서만 꽃필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적으로 우리는 자유롭지 않으며 따라서 거기엔 공간이 없다. 자기 자신 속에 이 광대한 공간 없이는 어떤 값진 미덕이나 성질도 기능하고 자라나지 못한다. 219
우리는 언제나 짐을 지고 다닌다. 우리는 짐들에 대해서 결코 무심해지지 못하며, 그것을 어디에 놔둔 채 잊어버리지 못한다. 오직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완전한 주의를 기울이고 즉각적으로 해결할 때에만 고독이 있다. 그것을 다음날이나 다음 순간으로 옮겨가지 않을 때만 말이다. 그 고독은 새로운 마음, 천진한 마음을 암시한다. 218
관념들이 교활하고 기묘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을 숭배하고, 그것들이 담겨 있는 책들을 숭앙한다. 우리가 그 책들이고, 우리가 그 관념들이며, 우리는 그것에 의해 아주 무겁게 제약되어 있다. 우리는 영원히 관념과 이상을 토론하고 있으며, 변증법적으로 견해를 내놓는다....우리는 관념을 행동에서 분리했는데, 왜냐하면 관념은 언제나 과거의 것이고 행동은 언제나 현재의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현재이다. 207
당신과 당신이 바라보는 것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때 거기엔 사랑이 없다는 걸 당신은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사랑이 없이는, 당신이 아무리 세계를 개혁하려하거나 새로운 사회질서를 가져오려고 애쓴다 해도 또는 아무리 당신이 개선에 관해 말한다고 해도, 당신은 단지 심한 괴로움만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당신에 이르게 된다. 지도자도 없고, 선생도 없으며 당신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이 광적으로 잔인한 세계 속에 홀로 있다. 191
당신이 어떤 문제에 쏟는 주의력 바로 그것이 문제를 푸는 에너지이다. 당신이 당신의 완전한 주의력을 기울일 때 거기엔 관찰자가 없다. 거기엔 순전한 에너지로서 주의 상태가 있을 뿐이며, 그 순전한 에너지가 총명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그런 마음의 상태는 당연히 완전한 침묵일 터이며, 그 침묵, 그 고요는 완전한 주의력이 있을 때 찾아온다. 187
아름다움은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의 전적인 포기에 있으며, 자기 포기는 완전한 엄격함이 있을 때만 가능한데 이 엄격함이란 성직자의 그것처럼 가혹함, 제재, 규칙, 순종이 아니고 옷, 생각, 음식 그리고 행위의 엄격함도 아니며, 완전한 겸손인 완전한 순진하게 되는 엄격함을 말한다. 그럴 때 거기엔 성취도 없고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도 없다. 거기엔 첫발이 있을 뿐이며 이 첫발이 영원한 걸음인 것이다. 고립이 아니라 고독, 고요 속의 고독이며 그 고요가 아름다움이다. 당신이 사랑할 때, 거기 관찰자가 있는가? 사랑이 욕망이고 쾌락일 때에만 관찰자가 있다. 욕망과 쾌락이 사랑과 결부되지 않을 때, 사랑은 강렬하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184-5
정말 보살핀다는 것은 당신이 나무나 식물을 보살피듯 하는 것, 물을 주고, 그것이 필요한 것을 에의 검토하고, 그것을 위해 가장 좋은 토양을 조사하고, 친절과 부드러움으로 그것을 보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아이들을 사회에 맞도록 준비시킬 때, 그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168
죽음에서 분리된 삶을 갖고 있으며,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이 공포이다. 그 간격, 그 시간을 공포가 나은 것이다. 삶은 황홀한 바다로 향한 창을 가끔 여는 나날의 괴로움, 나날의 모욕 그리고 슬픔과 혼란이다….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 때, 죽음은 엄청나게 삶과 비슷하다. 당신은 죽음없이 살 수 없다. 매순간 심리적으로 죽지 않는다면 당신은 살 수 없다. 이것은 지적 역설이 아니다. 하루하루 마치 그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인 양 완전하게, 전적으로 살려면 어제의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고 그리고 기계적인 마음은 사랑이 무엇인지 또는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153
어떤 쟁점과 불완전하게 만날 때, 문제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쟁점과의 불완전한 만남이 문제를 낳는다. 우리가 어떤 도전과 부분적으로, 단편적으로 만날 때 또는 그것에서 도피하려고 할 때 – 우리가 완전한 주의력 없이 그것을 만날 때-우리는 문제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불완전한 주의를 계속하는 한, 요 며칠 사이에 해결하고자 하는 한 문제는 계속된다. 147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어떤 것과 비교하고 있다. 더 돈 많고, 더 훌륭한 사람, 더 머리 좋은 사람, 더 애정 깊고, 더 유명하고, 더 이렇게 더 저렇고…그 ‘더’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을 항상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갈등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127
생각이 탐색한 것은 무엇이든지 단편적일 것임에 틀림없으며, 따라서 생각이 끼여들지 않을 때에만 나는 어떤 것을 전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야만 나는 나의 의존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즉 나는 있는 것을 정말 본다. 나는 좋고 싫고 없이 그걸 본다. 125
전적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걸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어떤 특별한 관점이나 소중히 여기는 독특한 체험으로 삶을 볼 때, 또는 내가 모은 어떤 독특한 지식으로 삶을 볼 때 나는 전적으로 볼 수 없다. 124
당신의 분노라는 사실을 조사하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려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의 반대를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비난하게 되며, 그리하여 당신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당신이 누구를 싫어한다거나 증오한다고 말할 때, 비록 그 말이 아주 심한 소리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다. 당신이 그걸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 속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면 그건 끝나지만, 그러나 당신이 “증오하지 말아야 해, 내 가슴 속에 사랑을 지니고 있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중의 기준을 가진 위선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순간 속에 완전히 산다는 것은, 아무 비난이나 합리화없이, 있는 것 속에, 실재하는 것 속에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걸 완전히 이해하는 나머지 그걸 끝낼 수 있다. 당신이 명징하게 볼 때 문제는 풀린다. 113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폭력적이라는 사실이지, 왜 폭력적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모든 분노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 있다. … 104 당신이 공포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의 일부임을 알 때 – 즉 당신이 공포임을 알 때- 당신은 그것에 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95 관찰자는 공포를 원치않는 검열관이다. 즉 관찰자는 공포에 관한 그의 경험의 총체이다. 그러므로 관찰자는 그가 공포라고 부르는 것과 분리돼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래서 그는 끝없이 그걸 극복하려 하거나 그것에서 도피하려 하며, 그리하여 그 자신과 공포 사이에 끊임없는 싸움이 있다. 그렇게 정력 낭비인 싸움이.. 95
공포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과 직면하기를 원치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포를 없애기 위해 발전시켜 온 도피의 네트워크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마음이 공포를 극복하려 하고, 그걸 억누려하고, 길들이려 하고, 통어하려 하고, 어떤 다른 개념들로 번역하려 한다면, 거기엔 알력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그리고 이 갈등은….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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