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회를 비오는 날 잠시 쭈삣거리며 다녀왔습니다. 87년체제, 97년체제....학자의 욕망과 학문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일까요. 이것저것 끌어모아 꾸깃꾸깃 잇는 일들이 불편해보였습니다. 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일이 벌어진 뒤 시체나 수습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때문이었죠. 지식인 수입상들이 그나마 발언권이 약해져서 다행이라고 여기지만, 세상은 온갖 아이들까지 데모를 해도 법 한톨, 삶한자락 바뀌지 않죠. 무엇을 어떻게 건드려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두툼한 제도의 껍데기는 요지부동인 듯 싶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인이 드문 시절 그렇게 학문의 실타래를 잡으려 애쓰는 모습은 감동스럽기 까지 합니다. 창밖에 비는 내리고 꽃은 그 비해 더 진해져 향기가 뚝뚝 긋습니다.

 

또 한차례 유행은 협동으로, 또는 조합으로 배회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쪽지처럼 꾸깃꾸깃 버려져 있는 앎의 지도를 다시 펴봅니다. 볼세비키 혁명의 뒷그늘이 얼마나 암담했는지 미국의 여성아**스트가 고발합니다. 청년 마르크스가 몸의 족적이 남은 아나키스트의 삶과 행동을 단지 공상이라는 꼬리표 하나로 질식시켰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에 자취와 흔적은 아직도 흥건하리라 여겨집니다. 불러내고 서로 논쟁의 풍요로움으로 사회를 다시 그리는 일은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환원에 대한 강열한 욕망을 숨죽인다면, 그 숱한 과정을 지금에 조금씩 생각의 정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주의, **키즘 아직도 생디칼**키즘의 흔적을 쫗아 가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직 그늘이 남아 있는 그릇이 시큼하고  어쩌다 막 발효가 될 듯 싶은 데, 날이 더운 듯하여  숲그늘 인적이 드문 곳에 옮겨둡니다.

 

협동의 그늘에 붙어있는 배후들, 삶과 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손에 쥐기 쉬운 것만 가로채려 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늘은 없는 것처럼 눈앞을 쏜살같이 지나칩니다. 민*의 집이라고 하지만 집만 봅니다. 이면과 지금여기의 현실은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맑스의 역사는 아니었을까요. 그 굵고 단단한 매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매듭이 짓는 과정과 역사의 그늘로 밀려난 인물들의 흔적들이죠. 지적인 습속이 남아, 여기 저기 그래도 협동의 씨앗을 근근히 부여잡고 있는 현실을 되새김질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본주의로 서툰 발길을 디뎠다면, 더 서툰 사회주의의 걸음을 디디고 있다면, 그 발디딘 지층은 견고한 것일까? 아마 그리로 가는 길, 그 곳으로 가는 길 사이사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갑각류같이 단단해져만 가는 세상의 속이 얼마나 허술한지 다시 확인해보면서 가는 것은 어떨까요.

 

그 꽃이 더 화려한 봄날, 중견학자는 소장학자?들의 반론에 토론회장은 술렁였고, 그 말들과 의견을 안고 고민하는 중견학자의 모습은 더 아름다웠습니다. 사회학회와 사회학도의 꿈틀거림 속에 열정과 반가움의 물결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87년과 지금의 현실을 자꾸 80-90년으로 부여잡으려는 노력은 허망하기 그지없을 것 같습니다. 출렁이는 현실의 파고 속에 노조조직율 9% OECD최하위이지만 300인이상 노조조직율 60%, 5인미만 업체 노조조직율 0.3%의 대기업공기업 정규직노조의 섬만 남은 현실의 존망은 이제 하나의 가치와 이념으로 부여잡을 수 없습니다. 단추를 잘못끼게 된 시점과 현실의 파고을 깊고 엄중하게 분석하려는 비례균형의 시각의 되짚는 간절함이 깃들여야 되는 것은 아닐까요. 노동만 신자유주의만  만의 문법으로 가두려는 습속, 그 만찬의 세계가 이곳이 어는 순간, 사회면 한줄의 주검에 분개하던 우리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주검의 도살장이 되어버린 피비린내 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 주범은 아닐까요.

 

뱀발. 비틀비가 오랜만의 산책이라 주책이군요. 알량한 동전하나 줏고서는 ... ... 거침있는 로우 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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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원문으로 출력해서 보다가 끙끙대던 러셀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제서야 건너건너 알게된다. 반갑다. 피터싱어의 책도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 러셀의 책도 아나키즘의 왜곡된 현실과 맥락을 짚어주는 좋은 책이다. 마르크스 이전과 논쟁까지 흥미롭지 않은가? 지금을 다시보고 풍부해지기 위해서 꼭 거쳐야 될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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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과학의 달을 마감하며

척박한 과학문화 현실을 돌아본다

 

과학의 달 4월이 지나갔다. 한 달 내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과학행사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에 과학기술이 옷 입혀졌음에도, 정형화된 행사들 속에 과학의 향기는 없었다. 마흔여섯 번째 과학의 달을 보냈지만,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토양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

 

월초부터 창조경제가 화두가 되었고,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상상력 및 창의성, 나아가 창조경제에 대한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는 과학문화에는 관심 없이 경제적 성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규모가 큰 과학기술 전담부처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했지만, 과학문화와 과학기술의 사회적 토대 강화 업무는 여전히 미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은 아직까지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는 유독 시민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비자만 존중될 뿐이다. 시민들이 수동적 존재로만 취급되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성의 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과학기술에서도 시민참여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가 과학의 달을 맞이한 그 햇수만큼이나 서구 여러 나라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역사는 깊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만나고 활용하고 과학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우리는 올바른 과학문화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과제를 제시한다.

 

1. 파행 위기에 있는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을 시작으로, 과학기술과 시민이 만나 창의적 문화를 싹틔울 수 있는 새로운 과학문화 공간의 창출과 확산이 필요하다.

2.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책임성 있는 연구개발과 결과물의 사회적 활용, 전문지식을 활용한 사회적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

3.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온 시민들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및 제도적 기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4. 과학문화 창출 및 확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정책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기반의 확보가 시급하다.

5. 과학문화의 확산과 시민참여 확대,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감시 및 견제와 대안 마련을 위해 국회 내에 과학기술 전문기구의 설립을 제안한다.

 

 

2013. 4. 30

시민참여연구센터

 

 

 

[입장 전문]

 

4, 과학의 달을 마감하며

뿌리 깊은과학기술 문화를 위한 사회적·정치적 과제를 제안한다

 

 

창조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과학의 달 4월에 창조경제논란이 뜨거웠다. 정치권은 물론 산업계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다뤄졌지만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해 미래창조과학부 장차관까지 나서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추격형 경제로부터의 탈피 필요성을 언급하고, 구체적 모델로 이스라엘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대부분의 설명이 모호하기만 하다.

 

경제규모 15, 무역규모 8, 과학경쟁력 5, 기술경쟁력 14. 세계 속의 대한민국 현주소다. 모방 위주 기술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인식변화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분명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은 관점의 변화를 기본으로, 목표의 수정과 수단의 변경, 나아가 관심사의 범주와 현실을 해석하는 기준 및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미래부 정책은 여전히 산업과 경제 위주의 성장주의 관점과 이의 달성을 위한 기존 정책요소들의 재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4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인 한마음대회의 박근혜 대통령 축사 중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란 언급이 눈길을 끈다. 미래부가 놓친 중요 시사점이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경제·기술적 수준에 걸맞게 창의와 혁신을 밑천으로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오히려 창조경제에 담긴 경제 중심 가치를 내려놓고, 상상력과 창의성 발현을 돕는 사회문화적 환경 조성을 핵심으로 내세우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과 시장, 일자리 창출은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열매들 중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2. 뿌리 내려야 할 과학기술

과학기술에서 창업과 혁신으로, 다시 경제로 이어지는 정책 마인드는 해묵은 선형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이런 정형화된 틀 바깥에서 이질적 사회문화 요소들의 충돌 속에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경제적 성과를 최고 가치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효율성과 속도의 논리에 창의성이 질식될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 열매를 얻겠다고 꽃 달린 가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의 발현을 위해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그렇기에 오히려 경제가 아닌 과학기술적 문화의 토대인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통찰 없는 상상은 공상에 지나지 않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발상들이 맞부딪히지 않고서는 창의가 꽃피지 못한다.

 

과학의 달 4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과학문화행사를 표방하며 다양한 경진대회와 체험행사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들이 의례적 기념행사에 머물고 과학기술문화의 성숙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고 작동 결과에 따라 순위를 정하는 행사에서 남는 것은 단지 수상 여부일 뿐이다. 체험·견학행사 또한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보다 단체나 기관 홍보와 성과 자랑에 머문다. 이런 행사들에서 과학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 과학이 우리 삶으로 한층 다가온 느낌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일반인들에게 과학기술의 의미는 누군가에 의해 제공된 것을 잘 수용하는 것이며, 과학기술 행위란 자신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이란 인식을 재확인하게 할 따름이다.

 

3. 문화적 토양 강화를 위한 과제

과학기술도시를 표방하는 대전에 연구기관들이 자리 잡은 지 35년이 흘렀다. 그러나 대덕연구단지는 여전히 지역에 융화되지 못한 채 동떨어진 섬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문화 현실이 이보다 더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있을까? 대덕연구단지에서 국립중앙과학관과 더불어 일반시민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바로 엑스포과학공원이다. 그러나 1993년 대전엑스포 이후 몇 차례 활성화 계획의 좌초를 겪었고, 지난해 롯데 복합테마파크 조성 관련 논란에 이어 올해는 미래창조과학산업단지 조성과 기초과학연구원 이전 논의가 불거지며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이런 방안들은 모두 엑스포과학공원의 조성 취지와 지역특성, 주변여건을 무시한 개발 관점의 빗나간 계획일 뿐이다. 엑스포과학공원이 박제화된 전시·홍보 공간이 아닌 과학기술과 시민의 자유로운 만남의 창구로, 또한 창의적 과학기술문화가 싹트고 지속적으로 자라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전시,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문화의 기반 강화에 정부·지자체 뿐 아니라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책임과 역할 또한 중요하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고,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해결해 할 새로운 과제들도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여전히 사회적 소통 필요성을 간과한 채, 정부·민간기업 등 연구비 지원 주체만을 어쩔 수 없는 소통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드물게 발생되는 일반인과의 공개적 소통에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한 장점과 정당성만 내세우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길 기피하고, 특히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과학기술을 사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데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카르텔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성에는 항상 그에 맞는 책임성이 따른다. 과학기술 전문가들 또한 연구개발 결과의 사회적 활용과 전문지식에 기반한 자문활동 등 다양한 방법의 사회적 기여 방안을 이제 모색해야만 한다.

 

과학기술 영역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참여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들을 기술홍보의 대상이나 제품소비의 주체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기술영향평가, 합의회의 등의 시민참여 제도가 국내에서도 시도된 바 있으나 아직 안착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전문가와 시민의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과학상점 활동 또한 전문가들의 사회참여 부재 현실에 부딪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기술의 활용이나 거시 기술전망 혹은 정책수립 등의 범주를 넘어 구체적인 연구의 기획과 수행에 있어서도 시민참여를 도입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현실적인 활용 적합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참여의 확대와 안착을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 기회 마련과 함께 전문가들의 자세 전환과 지원 또한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만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 발굴과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과학기술의 성과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국민들의 창의성이 자유롭게 발현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과학문화와 관련된 정부의 업무는 과학관 운영, 과학의 날 등의 행사 추진, 과학기술 관련 단체에 대한 지원 정도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문화 육성을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변변한 법적 토대조차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학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관심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회 차원의 제도적 기반 또한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과 시민참여의 필요성이 커지는 현실에 맞추어, 과학기술 문화의 확산과 시민참여의 확대, 과학기술에 의한 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및 이슈에 대한 개입과 중재, 그리고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및 투자 방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위한 국회 내 과학기술 전문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영국, 덴마크 등의 나라에서 과학기술국, 기술영향평가위원회 등의 전문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바람직한 국내 모델을 정립하고 관련 조직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을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2013. 4. 30

 

사회적 약자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참여연구

시민참여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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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질문보기 - 사회단체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질문의 의도에 끌려갈 필요가 없겠지. 되묻기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박원순시장의 추천사와 들어가기전 90%를 위한 기술의 시대만 인상적이다. 다른 내용들은 별반 다가서지 않았다.

 

 

 

 

 

 

 

 

 

 

 

 

  자칭진보들은 버림받는 노동자나 노동문제를 직시하지도 않았다. 타협과 진보행세가 사물의 겉만 보고, 그 행태만 따라가 더욱 현상태를 유지시켜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사물을 꿰뚫으려고 하는 노력도, 관점도, 통찰도 부족하여 당위의 깃발만 내세운 것이 현실을 한치도 헤쳐나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현실이나 여기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3부에 중점을 두고 보다.

 

 

노동의 배신에 이은 화이트칼라 취재기다. 상대적으로 나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 선입견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경험록이다.

 

 

 

 

 

 

 

 

 

 

 

나르시소스, 히스테리아....부정속긍정, 긍정속부정....단언하기가 어렵다. 팜플렛이라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다. 굳이 답을 찾으려하지 말고... ...

 

 

 

 

 

 

뱀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돌려주고 몇주지나 흔적이다. 가벼운 책들로 골라보다나니 깊은 맛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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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헬로'와 싸이의 '젠틀맨' 그리고 나무밴드의 '술이나 마시지'의 공통점은 4월에 음원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조용필의 음반은 노래에 버벌진트의 랩이 포함된 사실만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한 문화평론가는 브랜드의 자기혁신이라는 표현으로 조용필의 변화와 트렌드 수용을 주목했다. 스스로 B급 문화를 즐기고 있는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도 강남스타일 만큼이나 재미있다.

조용필과 싸이에게는 비교 되지 않는, 아니 비교하고 싶지 않은 나무밴드의 첫 음반 '세상의 모든 블루스'에는 모두 14곡이 담겨있다. 이 음반에는 절망과 슬픔을 간직한 이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다.

“날 길러주신, 날 먹여주신, 날 때려주신, 날 사랑하신, 쭈글쭈글 기운빠진 내 아버지.”(노래 '아버지' 가사 중에)

“공부 못해 죽고, 취직 못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이다. 세상은 온통 공동묘지.” (노래 '날마다 날마다' 가사 중에)

노랫말에서 보듯 나무밴드의 음악은 비주류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며, 음악적 모티브는 블루스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블루스가 미국에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며 시작된 음악이라는 점을 안다면 그들의 음악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밴드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대전에서 20년 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밴드의 리더 김유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해온 음악인이다. 김유신은 충남문화운동연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1996년 '느티나무'라는 음악그룹을 만들었고, 10여년 전부터 '나무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유신은 10여년 전부터 이번 음반 작업을 해왔다. 준비하다가 무너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마침내 48세의 나이에 첫 음반을 낸 것이다. 음악인이 첫 앨범을 내고 시인이 첫 시집을 낼 때의 느낌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특히, 여럿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밴드 활동은 팀원 간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나무밴드 역시 보컬과 반주자가 여러 번 바뀌었으나 김유신 단 한사람 만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보컬 백금렬, 김정림, 호랑, 베이스 최은진 드럼 조상훈 그리고 기타에 나무라는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다. 그가 이름 대신에 나무라고 표기한 것은 밴드를 이끌어 온 사람이 자신이지만, 나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음악인들을 존중하는 의미이자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조용필의 음반 2만장이 하루에 다 팔렸고 싸이의 뮤직비디오 조회 숫자가 2억 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무밴드의 음반이 몇 장이나 팔렸는지 궁금했다.

필자는 요즘 출퇴근길 차안에서 조용필의 신곡과 싸이의 젠틀맨이 담긴 음원파일 그리고 나무밴드의 CD를 듣는다.

조용필은 직접 곡을 만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노래로 소화했고, 나무밴드의 김유신은 모든 곡을 자신이 만들었지만 다른 보컬의 힘을 빌려 블루스를 지향하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밴드는 지난 20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음반발매 콘서트를 가졌다. 그곳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관객이 모였다. 오는 6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조용필의 공연에는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 것이다. 작은 카페와 수만 명이 들어가는 공연장은 차이가 있겠지만 무대에 서는 음악인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용필과 싸이, 나무밴드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문화의 종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무밴드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조용필과 유명하지 않은 김유신 모두 심장이 항상 “바운스, 바운스”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뱀발. 중도일보에서 옮겨오다. 하고싶은 말, 건네고 싶은 마음 모두 있다. 중독성이 있다. 반복해서 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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