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기계의 설계


 

관료적 조직화는 실상 권력 중심적 문화가 도입한 더 큰 생활 조직화의 일부였다. 상투적 문구가 넌더리 나게 반복되는 피라미드 문서 자체에는, 무엇보다 분명히 단조로움을 참는 굉장한 능력이 나타나 있다. 우리 시대에 절정에 달한, 누구나 어디서나 지루한 앞날을 예상케 하는 능력이다. 말로 하는 이런 강제는, 노동기계를 낳은 체계적인 보편적 강제의 정신적 측면이다. 명령에서 시행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이런 통제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유순한 - 또는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유치한 - 사람들만이 인간기계의 쓸모 있는 단위가 될 수 있었다.  376


잉태도 성장도 결실도 없고 노화도 없는, 고정되고 불임이며 사랑도 목적도 없고 미라 왕처럼 불변의 존재인 '영원한 생명'이라는 관념은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일 뿐이다.....인간의 생명, 실로 모든 유기적 존재라는 견지에서 보면, 이런 절대적 힘의 주장은 심리적 미숙함, 곧 나서 자라고 성장해서 죽는다는 자연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를 고백하는 것이다. 379


문명의 '짐'


어떤 정밀 과학도 또 어떤 공학 기술도 그 체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비합리성을 방지하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거대기계가 제 아무리 강하고 효율적이라고 해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실수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시대의 붕괴가 입증한 것은, 거대기계의 기초인 인간의 믿음은 무너질 수 있고, 인간의 결정은 잘못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동의는 그 주술을 불신하게 되면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대기계를 구성하는 인간 부품은 본래 기계적으로 불완전하며 결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421


사실상 안식일 제도는 인력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거대기계를 주기적으로 멈추게 하는 고의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작고 밀접하게 결합된 기초단위인 가족과 유대교 회당이 차지하였다. 이것은 실상 거대 권력 복합체에 억눌린 인간 부품들이 다시금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424


작고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조직이라도 내적 결속력과 독자적 정신을 갖고 있다면 결국은 어떠한  큰 군사단위보다도 전횡적 권력을 이겨내는 데 효과적임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 조직을 억누르며 다루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권국가들은 신비주의적 종교, 친교 단체, 교회, 길드, 대학, 노동조합이든 뭐든 그런 조직들을 역사 내내 제약하고 억압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적개심은 앞으로 현대기계를 제한하고 어느 정도의 합리적 권위와 민주적 통제 아래에 둘 방법을 시사한다. 427


발명과 여러 기술

 

기술적 진보의 방향은 오랫동안 거대기계의 영역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식물 재배와 동물 사육을 시작하여 인류 공동체의 에너지 잠재력을 크게 놓인, 경험적 지식에 기초하여 인간이 폭넓게 경험하고 갈고 닦은 소규모의 진취적 기획들이 이어진 것이었다. 이런 진보는 거대기계의 대규모 건설과 파괴에 비하여 훨씬 볼품이 없었다. 또 그 대부분은 농업처럼 서로의 경험을 모으고 전통을 지키며, 단순히 권력이나 물질적 부를 양적으로 과시하기보다는 자기가 생산한 것의 질과 인간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낸 결과였다. 433


문명이 시작될 무렵부터 별개의 두 기술이 나란히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민주적'이며 분산되었고, 다른 하나는 전체적이며 집중화되었다. 소규모 수작업에 바탕을 둔 '민주적' 양식은, 성장하는 읍락으로 퍼져 마침내 도시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지만, 농경이나 목축과 함께 협력하면서 수많은 작은 마을 속에서 살아 있었다. 이 경제에는 기능의 전문화와 물물교환, 매매 교환이 필요하였다. 433


양적 조직에 숙달된 권위주의적 기술은 수많은 사람을 다룰 수 있고 교역이나 정복으로 다른 지역을 이용할 수 있으며, 공정한 분배를 확립하기에 충분한 정치적 지성을 지닌 통치자 아래에서는 잉여를 더 잘 생산하고 분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기계는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업장에서도 탐욕과 가학적 착취때문에 그것이 이룬 효율성의 증가분을 갉아먹어버렸다. 436


민주주의의 중추적 원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특질, 욕구, 관심이 어느 특정 조직이나 제도, 집단이 주장하는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타고난 빼어난 재능이나 특별한 지식, 경험, 기술적 기량이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민주적인 원시 집단에서조차도 이런 수월성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정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부분보다 전체에 좋은 것, 그리고 혼자 하든 남의 도움을 받아 하든 간에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인간만이 전체를 구현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는 인간의 확대된 그림자이다."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부분적 그림자일 뿐이다.  434


일하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도구와 근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노동은 다양하고 율동적이며, 때로는 목적이 뚜렷한 의례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솜씨가 늘면 바로 개인적인 만족감을 안겨주었고, 숙달된 감각은 만들어진 물건으로 확인되었다. 직인에게 일에 대한 주된 보수는 임금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속에서 수행되는 일 자체였다. 이 고대 경제에서는 땀 흘리는 시간과 편안히 쉬는 시간이 있고, 금식의 시간과 잔치의 시간이 있으며, 규율에 따른 노녁의 시간과 홀가분하게 노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을 일과 동일시하고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였다. 437


도시의 수많은 직업들이 점점 더 분업화되면서 개인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활동 분야는 축소되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농사일을 하듯이 일을 바꿔가며 할 기회는 멀어졌다. 한때 천국의 표상으로서 고안되었던 도시는 아주 일찍부터 군 부대의 특징들, 곧 구금과 반복되는 훈련, 징벌의 장소라는 성격을 많이 갖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올해도 내년도 같은 직업, 같은 작업장에 묶이고, 마침내는 일련의 그런 일의 일부에 불과한 단 한 가지 수작업에 묶이게 되는 것,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운명이었다. 441


거대기계 조건이 억압으로 나타나는 암울한 상황에서, 노동 자체가 본질적으로 저주라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손이 닿지 않아도 마법 같은 기계나 로봇이 자기네 힘으로 모든 필요한 동작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생활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게 이상스러운가? 요컨대 모든 명령에 복종하여 모든 일을 하는 기계적 자동화의 착상이 바로 이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꿈은 역사 내내 문명에 붙어 다녔다. 마침내 "자동화로 모든 일을 없애자"는 현대의 슬로건으로 나타났다. 이 꿈은 떼로는 또 다른 꿈을 동반하였다. 가난으로부터 인류를 벗어나게 하려는 꿈이었다.....일의 저주는 권위주의적 기술의 통제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통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없애고, 손의 기능을 정신의 상상력 없이 기계로 넘겨 버린다는 발상은 노예의 꿈일 뿐이며, 필사적이지만 상상력이 없는 노예의 바람을 드러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육만이 아니라 정신의 모든 기능을 일체화하는 일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필생의 일을 찾았고 그 보상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환상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살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442-443


아테네인은 거대기계의 또 다른 필수 요소인 훈련된 영구적 관료 조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해두기로 하자. 아테네인은 행정 기능을 시민권의 자랑스런 표식으로서 보전하였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면, 행정 기능을 전문직에 위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행정을 평생의 직무로 만드는 대신, 시민들이 직책을 돌아가며 맡았다. 451


기계에 홀린 우리 시대는, 야채나 과일의 육종을 기계 발명과 동등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소금절임, 훈제, 요리, 양조, 증류에 의한 식품 가공을 다른영역의 발명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맥주 맛이 좋아졌다고 기뻐하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생생한 기록은 다른 부문에서의 비슷한 노력에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한다. 올리브기름을 처음 짠 것이 언제인지 소시지를 처음 만든 것이 언제인지를 꼭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둘은 모두 그리스 고전문학에서 입증된다....이런 구체적인 진보들은 어느 하나도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기계적 정교함이나 생산성과는 다른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55


지금까지 기술사가들이 경시했던 산업적 지체 및 사회적 지체의 큰 원인은 거듭된, 실로 만성적이었다 해도 좋을 전쟁에 의한 파괴와 학살로서, 노예제보다 훨씬 더 중대한 원인이었다. 이 엄청난 부정적인 측면을 수많은 긍정적 발전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456


대중목욕탕, 체육관, 극장, 공원 등은 모두 진짜 발명이었다. 기계적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동성, 산업 효율, 고속 수송에 몰두한 우리 현대인은, 안정된 용기가 없는 생활은 실제로 지금 급속하게 그렇게 되고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을 산산조각 낸다는 사실을 간과했왔다.....지금까지 나는 오늘날의 서구인들이 도구와 기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제로 발명과 그 응용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였다.  458


사회제도나 기술적 전통을 어지럽히지 않고서도 기술 진보가 가능했으리라 여겨지는 여러 지역에서, 설명할 수 없는 지체가 있었다. .....당시에는 종교적 의례, 주술, 문학, 조형예술과 도형 예술 같은 주로 다른 부문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기본적 기술과 간단한 기계들이 일단 확보되면, 그 기술 내에서 주로 기능 증진, 모양 다듬기, 세부의 세련화를 통하여 진보되었다. 생산을 곱으로 늘리고 생산 과정을 서두르기 위해 심미적 발명이나 기능적 '적실성'을 희생한다는 것은, 민주적이든 권위주의적이든 기계화 이전의 모든 문명 체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고대와 현대기술을 조잡하게 비교하기보다는, 이처럼 권위주의적 기술과 민주적 기술 간의 모순을 고려한다면 기술의 발전상을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459-460

 

볕뉘

 

1. 기술이나 발명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그가 많은 사례를 들며 설명하는 부분이 그 대목이다. 기술이 가치 중립적이지 않고, 발명이라는 것도 기계적이고 거대한 획기적인 것만을 고려하는 현대인에게 선뜻 이해가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야채나 과일의 육종이나 식품 가공, 대중목욕탕, 극장도 당시로서는 생각지 못한 발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기술의 지체로 오해하고 있는 중세나 다른 문명에서 있던 일은 이런 기술적 진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연속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기술을 사회제도나 전통에 다가서서 보게 되면 기술도 권위적인 양태나 민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가기 시작한다.

 

2. 흔히들 고대의 유리기술, 시멘트 기술 기타 여러 생각지도 못한 현대에서 나타난 기술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이 존재한다. 권위적인 기술로 인한 거대기계는 양과 공간을 좁히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시간을 고려한 효율의 측면에서 지극히 떨어진 것이 역사에서 살펴본 것이라 한다.  기계도 기술도 제도도 인간의 확대된 그림자가 아닌 이상, 그 외화된 결과는 거꾸로 인간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은 당혹스럽다. 일만하는 노예기계로서 만들어진 꿈이 자동화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런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예의 꿈은 여전하다. 자동화가 일의 고역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이다.

 

3 그렇게보면 우리는 심각한 노예이다. 스스로 뒤돌아보지 못하는 앞만보는 맹인이다. 기술을 사회에 접붙여내면서 생각하고, 인간의 모습이 비추는지 헤아리지 못할 때, 불행은 늘 인간의 인류의 몫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몽과 미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녕없는가?  모세의 월드, 모세의 세상을 꿈꾸는 세월호의 작명처럼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기술은 부질없다.  세계 최강국의 조선대국, 인터넷강국이 사람 목숨을 구해내는 민주적인 안전기술의 수준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권위적인 기술이 더 필요한가? 걷지도 못하는 수준인 민주적인 기술이 더 필요한가?

 

 

 

 

4. 서민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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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토피아의 전망

 

 


토머스 모어는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하는 오우토피아란 말과 좋은 곳을 뜻하는 에우토피아를 섞어 유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었다. 269


한때 지식의 세계와 몽상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실천적 목표를 위해 예술가와 과학자가 '외부세계'를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았다. 지금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초기 단계에서는 공통의 지식과 신념을 가진 공동체 문학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이러한 중심적인 문학으로부터 과학이 분리된 것은, 서양 세계에서는 아마도 플라톤이 죽은 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사에 대한 여러 저술이 나왔을 무렵이었으리라..그의 저술을 공개적인 것과 비교 秘敎적인 것으로, 대중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으로 나눴다. 철학자, 예언자, 시인, 일반 대중의 영역의 배경은 인간 경험의 보편성이고, 그 방법은 토론과 회의이며, 그 기준은 형식논리였다. 이 분야는 특히 공동체와 관심을 공유하고, 인간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붕괴에 이어 그리스 사상이 경직화되자 과학적인 분야가 서서히 독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세기 그 신봉자들은 더욱 인간적인 분야를 다루는 학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자연과학자로 불렸다. 그 주제가 과학으로 알려지고 그 담당자가 과학자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271-272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는 반면, 과학자는 "인간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알라"고 말한다. 과학의 진보에 따라 이러한 태도는 불행히도 더욱 굳어져 문학과 과학 사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알력은 더욱 커졌다. 이는 예술과 과학 모두에 특이한 왜곡을 낳았다.  272


만일 과학이 다시금 확고한 인간의 가치 체계에 준하여 교화되고자 한다면, 과학은 개별 지역사회와 그 사회가 제안하는 해결책에 초점을 다시 맞추어야 한다. 이집트에서 기하학이 생긴 것은 매년 나일강변에서 없어지는 경계선을 조사해야 했기 때문이었고, 고대 바빌로니아 남부의 칼데아에서 점성술이 발달한 이유는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현대의 지질학은 휴 밀러와 같은 실제의 석공이 직면한 의문에서 발전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과학은 개별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상황과 지적 유산을 조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해 온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279


과학의 방향을 바꿀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식은 원동력이 아니라 도구이고, 따라서 세계를 안다고 해도 세계에 반응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목적 없는 실용주의를 낳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그 실용주의로 인해 목적 없는 모든 종류의 정교한 기계를 고안해 내고도 그 기계를 일관되고 매력적인 행동양식에 종속시킬 수 없게 된다. 282


르네상스의 위대한 업적은 그 능력을 완전히 불태우는 인간이라는 이상, 즉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철학자 등으로 삶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인간의 이상을 보여 준 점이다. 283


내가 이해하는 한, 과학과 예술, 지식과 몽상, 지적 활동과 정서적 활동을 분리시키는 순수한 논리적 근거는 없다. 그 두 가지의 분리는 단지 편의의 문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지적 활동과 정서적 활동은 그 형식이 달라도 모두 혼동 상태에 있는 자신을 깨달은 인간이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휴머니스트의 관점이다. 284


17세기 중반이후 과학자와 예술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간주됐고, 과학의 이돌라와 예술의 이돌라는 하나의 인격 속에 결합되지 못했다. 그 후 실제로 예술과 과학의 비인간화가 시작됐다. 그러한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와 함께 예술과 과학은 별도의 길을 걷게 됐으나, 그 각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분리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음은 흥미로운 점이다. 가령 예술과 과학 양자는 더 이상 공동체의 공동재산이 아니게 됐고, 그 각각은 다수의 전문 분야로 분리됐다. 285


교양 있는 계층의 예술이 공동체 전체의 예술과 분리됐기 때문에 예술가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 이상의 수준을 낳지 못하게 됐고, 이 점에서도 과학과 지극히 유사했다. 예술 세게는 어떤 의미에서 분리된 세계가 됐다. 공동체에서 나오기 마련인 예술이 공동체의 소망과 감정과는 무관하게 세련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는 실제로 전혀 다른 의미, 즉 예술은 예술가를 위한 것이라는 전혀다른 의미를 갖게 됐고,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예술은 외부의 평가 기준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그 신경증을 극복하거나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경우가 많다. 공동체와 분리된 탓에 예술가는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86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려고 추구하는 대신, 그의 개인적인 비전을 극단적인 시점에서 보는 것에 몰두했다. 이러한 시점을 '탐미'라고 부른다. 이러한 분리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 예술가만 문책할 수 없다.  '미'와 '탐미' 사이의 분열은 아마도 모든 예술에 공통된다. 문학과 음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실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287


만일 우리의 순수한 예술가들이 자기 책임에 등을 돌리지 않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정도로 지적으로 성숙된다면, 젊은 세대는 소포클레스, 프락시텔레스, 플라톤이 만든 사고방식을 익힐 수 있으리라. 현대의 순수예술이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사회와 철저히 단절된 것은 무서운 신경병증의 징조이지 어떤 예술적 소질의 징후도 아니다......예술은 예술가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생각은 신경병적인 개인주의의 표현이다. 그로 인해 예술가는 일반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제멋대로 구는 창조신으로서 고독 속에 통치할 수 있는 사적 세계에 차단된다. 반면 예술은 대중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내향형 결함을 외향형 결함으로 대체시킨다. 내가 예술은 공동체와 활발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할 때, 이는 예술가가 대중의 변덕이나 요구에 영합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카타르시스를 얻는 수단이 아니고, 공동체의 무한한 허영심을 달래는 노예도 아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완전히 공유할 수 있는 양식과 형식으로 변화시켜 정신적인 배출구를 부여하는 수단이다. 292-293

 

헉슬리, 틴들, 카롤루스 뒤랑, 바스티앵르파주 일파는 예술가와 시인이 그들이 속한 시대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야 한다고 단언한다....국민의 정치에 대한 열정을 심화하고 예술가와 시인, 수공업자와 일용 노동자에게 공통된 계획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같이 결합된 이미지는 강인하고 거친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게 되리라.....예이츠의 생각을 인용했다고 해서 나는 예술가의 역할을 하나의 단일한 기능인 좋은 생활의 패턴화에 한정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순수하게 미적인 체험이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체험을 예술가가 그림, 시, 소설, 철학 등의 형태로 표현했을 때 그 예술가는 독자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작업을 하게 된다. 294-295


새로운 사회질서를 향한 계획이 우둔한 이유는 첫째, 그것이 추상적이고 도시적이며 인간 환경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생생한 양식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은 "과학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하고 예술에 의해 고상하게 되지 못한다."

 

예술과 과학이 마비 상태에 있기 때문에 현대의 혁명과 개혁의 계획은, 우리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무질서하고 더러운 환경으로부터 우리의 머리를 드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297 폐해를 낳는 사회 신화들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해서 우리는 무작정 허공으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에 의해 언제나 생기를 부여받고 풍부해지는 다른 사회 신화의 질서와 결합하는 것이다. 301

 

 

볕뉘.

 

지식과 몽상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 예술가나 과학자는 실천적인 목표를 위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예술과 과학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어느 사이에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것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있는지 조차 모른다. 시대정신도 읽는 능력도 잃어버렸고 시대를 만드는 감각도 무뎌졌다. 정치와 경제의 틈바구니에서 과학과 예술은 신경증을 토로한다. 발작적으로 자신을 낳은 자신마저 먹어치우려고 한다. '안다'는 것이 스르르 풀려난 뒤 아무도 현실과 그 앎의 사이를 재려고 하지 않는다. 깨달음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그렇게 미친 듯이 흘러간다. 그는 떨어져나간 과학과 예술을 애타게 찾는다. 삶을 불러들인다. 인간을 위해 우리가 해놓은 것을 상기시킨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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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적 유토피아


 

고전적 유토피아 개혁안의 대부분이, 산업 기구는 사회주의나 길드주의나 협동조합 하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거기에 결여된 것은 전체의 이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 인식이었다.  245


설령 과거에 산업주의가 이록한 것에 대한 각 당파의 태도를 건전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그들의 행동과 사회상 전반에 대한 태도는 거의 무관심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임금, 정치적 통제, 생산물의 분배 등에서 일정한 개선이 있어야 했음에도 그러한 개선의 실현은 어떤 명확한 형태로도 반영되지 않았다. '대중 교육', '기성제도의 개혁', '혁명의 실현'을 향한 운동이 일상화되면, 그 뒤에는 풍요로운 평화 시의 들뜬 혁명 슬로건 하에서 애매한 동료 의식만 남았을 뿐이었다. 246


당파적 운동이 다양한 구체적 성과를 낳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령 소비자협동조합도 영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물리적 중압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경감시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운동들의 결함은 분배의 방법을 변화시키면서도 당대 사회체제의 핵심을 변화시키지 못한 점에 있다. 나아가 이러한 당파적 유토피아의 대부분은 명확하고 일관된 가치 체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코크타운이나 컨트리하우스와 같은 강력한 집단적 유토피아와 대립한 즉시 붕괴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중산계급-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외와 컨트리하우스-에 흡수되면서 마비되었다. 영국에서도 더욱 세분화된 집단 속에서 거의 같은 정도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노동당으로부터도, 당시 각지의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지도자는 조직을 이탈했다. 247


그 결과 개혁운동은 윌터 웨일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지친 급진파'라고 부른,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문제로 됐다. 실제로 대도시의 개혁 운동은 유명무실하게 됐다. 그곳 사람들은 집요하게도 추상적인 개혁 계획이나 그 실현이 가까이 왔다는 실감을 전혀 갖지못한 운동에 계속 매달려 왔다. 247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당은 혁명적인 의지를 갖는다는 데서 구별되지만, 심리적인 연출의 면에서는 풍요로운 식사를 특별한 선전 문구로 삼은 공화당과 다르지 않았고, 진보당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당시 진보당은 강력한 도덕적 신념을 수반한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을 실현하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리라고 믿었고 이와 동시에 사회혁명가들은 진보된 온건 노선으로 변했다. 248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당파적 유토피아는 하나의 물신주의다. 물신주의란 부분을 전체로 바꾸고, 대상 전체에서 느껴야 할 정서적 내용을 모두 하나의 부분에 주입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남자가 어느 숙녀의 손수건이나 양말대님을 물신적인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주의와 금주운동과 제한선거의 철폐를 위한 운동과 같은 추상적인 '주의 주장'이 당파의 경우 물신적인 것이라고 본다...사회 속의 인간 활동 전체를 대상으로 삼기보다도 금주만을 문제로 삼거나 기계와 토지의 소유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치명적이다. 249


무엇보다도 그들의 근본적인 오류는, 그들의 문제를 정치와 경제라는 부문에만 집중하였지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한 문제로 보지 않았다고 하는 점에 있다. 다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활동이나 제한만을 수정하는 것은, 그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장애를 회피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250


어떤 의미에서 기관차는 그것을 만든 인간보다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회체제의 경우에는 그곳에 참가하는 인간보다 완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관차는 기관사와 독립한 존재고, 설령 기관사가 기계 조작 이외의 점에서 불완전하다고 해도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체제는 그것이 만들어진 것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2


개혁가들의 계획은 사실 그 자체가 허약한 날림이었으나 그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존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 사실을 자유자재로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춘 인간, 동료와 협력하고 화합할 수 있는 치밀하고 정확한 사고방식을 익힌 인간, 개혁을 요구하는 여러 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비판할 수 있는 인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비올라 패짓의 말처럼 "인류의 개선을 목표로 한 사고와 직관의 대부분은 그 목적의 달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유효하지 못한 이유는 객관성과 자기 억제를 결여했기 때문"이었다. 253


중요한 책을 읽고서 그 저자를 만나거나, 중요한 사회운동에 동의하고 그 지도자를 만난 경우, 그 인물의 개별적 특성에서 비롯하는 불쾌감, 편견, 접근하기 어려운 성격을 그의 이론에 대한 공감과 제대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254 대규모 공동 사업의 성공 여부는 핵심적 문제와는 무관한 인간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숨어 있는 악의를 감안하지 않고 그것을 정화하고자 하지 않는 재건 계획은 , 사회질서라는 그릇을 변화시키지 않고 인간을 신의 은총 속에 살게 하고자 한 낡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것이다. 눈이나 몸이 부자유한 사람, 병자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죽기 전에 신의 나라에 이르게 하기 위해 치료했던 저 고대 선동가들의 이야기 속에는 배울 점이 있다. 254


역할의 경우에도 인간이면 누구나 주역이 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애나 재판, 모험과 경쟁과 성공이라는, 그 역할 자체는 그들의 의식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의 가치는 인간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치란 상공업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진 가치, 즉 능률과 적정 임금 등의 것이었다. 여하튼 이러한 것들이 노력의 직접적 대상이고, 인간적인 가치 등은 설령 그것이 배경 속에 희미하게 떠있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멀고 불확실한 미래에 실현할 과제에 불과했다. 256


미국 남부의 일부 백인 집단은,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진위를 따지지도 않고 그 흑인 남성에게 목펵을 가한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잔인한 측면을 부각한다. 인간은 본래 생각이 아니라 행동하는 쪽이 먼저다. 왜냐하면 심리학자가 말하듯이 생각은 억제된 행동이고, 태어나면서 억제란 우리와 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분노에 몸을 맡겨 장애를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그  장애로부터 후퇴하여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우회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것인가 하는 어려운 선택에 부딪힐 때, 우리의 본능적 충동은 전자를 따르게 된다. 259


당파성에 따르는 두 번째 결함은 공동체를 수직적으로 분할하고, 인간 생활 속의 수평적 연대와 충성심에 대립하는 가공의 적대감과 동족 의식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존 어빈의 희곡에 나오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대신에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기병대와 인디언, 사회주의자와 자본가, 금주법 지지자와 반대자를 대치해도 결과는 유감스럽게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생활은 사실 그러한 범주를 넘는 여러가지 관계로 성립된다. 그러나 당파의 인간은 유토피아 사상과 대조적으로 이러한 사회 일반의 관계를 경시하고, 사회를 '주의'에 봉사하게 하며, 사회관계를 무시하여 '운동'에 몸을 바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당파주의의 가장 큰 죄악이다. 관계를 경시하는 최초의 방법은 국가주의의 주장자들에 의해 이용돼 왔다.  261

 

정의로운 사람 위에나 부정의한 사람 위에나 비는 내린다. 나아가 우리가 재배한 작물, 우리가 세운 집, 우리가 부설한 도로, 우리가 생각한 많은 사상은 지구와 그곳에 자라는 열매를 계승한 인류의 일원인 우리에게 속한다. 이러한 공동 유산에 동등하게 참가하는 것을 이돌라가 다르다고 하여 배제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263

 

 

볕뉘.

 

1 자주가는 카페에는 몸이 조금 불편한 이들이 일을 돕는다. 이제는  또박또박 말을 건네는 그들이 정겹다. 퇴근 무렵 간간이 아직 닫지 못한 전시회의 흔적도 덤으로 볼 수 있기도 하고 몸마실하기에도 좋아 찾게 된다. 시끄러운 손님들이 없어 오늘은 마음 편하다.  당파적 유토피아 이전의 꼭지가 컨트리하우스와 코크타운이었다. 사유재산이고 의도하지 않은 바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선의는 꼭 선의를 낳을 수 있을까?

 

2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1922년, 그의 나이 27-8세. 책장을 덮다가 발견했다. 세상을 살면서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 수많은 거인과 거장의 그림자 사이에 거닐고, 그들의 어깨에 올라 다시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숱한 한점 한점, 먼지같은 흔적들이 모여 때로는 폭풍같은 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열려있어야 한다. 세상은 덧셈의 의도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는 뺄셈을 응시하고, 확인하고 사회의 한 걸음을 딛기위해 부려먹을 재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눗셈과 뺄셈, 숱한 거인들의 아집이 오히려 파멸의 구렁텅이로 넣어버렸다는 점을 다시 응시해야 한다고 한다.

 

3 그의 문제의식은 확연하다. 인류는 전체를 보지 못했다.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 학문 등등 인류의 재산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쓰인다는 딜레마이다. 혁명과 개혁을 원하지만 원하는 가치에만 경도되어 전체적으로 출렁이는 유기적인 그물로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자장으로, 인간의 호흡으로 어루만져져야 하는 것들이 사람의 결을 빠져나가 거꾸로 사람을 거역하는 칼끝을 겨누고 있다는 점, 그 연원과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문학에서 과학이 빠져나가고, 예술이 삶에서 빠져나가고, 기술이 문학과 예술에서 빠져나가 버렸다고 한다.

 

4 '지친 급진파'로 넘쳐나는 거리가 여기일까? 어쩌면 우리는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의 현실을 목도하고 증명받은 셈이다. 자신이 원하는 진리만 가져가려고 하면 지식을 구하고 탐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의가 팔할은 악의로 번지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면, 우리는 악의가 낳는 패턴과 습속에 그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배워야할지 모른다. 악의가 낳았던 선의의 결과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도 허약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보자면 군데군데 튀는 표현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음미하며 되새겨본다.

 

5  시월 말미다. 하늘은 '어제하루'만큼의 습기가 더 빠져나가 '이틀'만큼 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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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던 차, 점심에 콕 찍다. 아직 은행나무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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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入門

 

 

 

"아~ 녀석!!은 오늘도 하루를 또 넘겨주었군!

고맙게도 하루씩이나!"

 

 

시간이란 그릇 안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원심분리기에 빙빙돌 듯
감정의 즙이 가장자리로 흐르고 있는 것을 눈치채다

 

 

 

팽팽한 시간의 그릇에
물과 기름이
유화되듯 뒤섞이리라는 것을 안다
뭔가 다른 일상과 다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거울 속에 빠져나갈 출구가 있었고
빠져나가고 있는 나의 뒤통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말이다


 

 

 

이대로는 아닐 것이라는 것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 달라진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을

삶의 격이라는 프리즘으로
지난 사건들이 되새겨지면
남루하기 그지 없는
이해할 수 없던 '나'의 行格들이
간추려지는 것이다.

왜 분리되거나 자리잡지 못해
배회한 것인지도 
이대로 머물 수 없다는 일
이대로 머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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