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吐한 흔적만 남는 것 같아 낯설다. 비문만 잔뜩 퍼부어놓아 이게 글인지 난수표인지하는 의아심이 째려본다. 그 황망함 사이로 쓰레기더미같다는 자성이 들어선다. 흔적들을 되돌아보기에 앞서 일상의 바쁨을 놓치지 않으려 도망가듯 걸어놓은 흔적들이 미안하다. 그만큼 삶과 이곳 공간의 격을 두지 않으려 한 것이 오히려 후회로 가끔 밀려오기도 한다. 흔적을 저축하는 것과  자성의 소리를 들어 비문을 정리하는 것이 외려 깔끔한 일이다. 유독 바쁘다는 핑계만 두어, 여유를 살펴 먹지 못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이제서야 그 화살이 면전을 향한다. 정해진 시간도 없이 언젠가 손을 보면 되겠지 하는 미룸증이 노려보고 있다. 그 녀석을 패대기쳐 코피라도 흘리게 하지 못하면 또 다시 슬그머니 어깨를 감싸면서 비웃음을 날릴 것 같다. 작심한 것이 얼마나 잔잔하게 멀리 퍼져나갈지 모르겠지만 [먼 나]의 머리를 붙들어 헤드락을 건다.  바쁨을 핑계로 두어 두장의 종이처럼 널려있는 양면 사이에  깐깐함을 붙인다. 흔적들이 내 속마음만 표현하고 스스로 위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나도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해, 어눌함을 줄여보기로 한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멩이를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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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좋아하는 시들은 서정성이 물씬 나는 것 같아요. 이은림이나 조말선...다른 류의 시인들을 좋아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ㅅ이 ㄹ에게)  평소엔 차분하고 좋은데, 가끔 술이 어깨위로 넘어올 쯤, 권위적인 습관이나 태도가 나오는 것 같아. (가나 나에게)(나가 다에게) 점점 각박한 세상살이에 남편은 남의 편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리고 더 깊이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말이야. 더이상 겹치는 부분이 없을 것 같아. 그것으로 끝이야. 가족의 울타리에서 나란 사람은 무엇일까?(라가 라에게) 당신의 제3자적 시각이 편하기도 한데, 닮아 있는 것 같아 이상해. 아이들과 관계는 그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단말야.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쉽지 않은 것 같아. 문자도 자주허구.(ㅇ이 ㄴ에게) 서울에 있는 국립대와 지방에 있는 국립대 출신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아. (꼬꼬에서 합석자리농담) 누가 나한테 조언하던데 그냥 이대로가 좋아 그래서 난 원래그래라고 했지.(나무카페에서, ㅅ이 ㄱ에게)


이런 대화를 생각의 빨래줄에 널어둔다. 그리고 그 빨래줄에 널린 생각들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멀리있는, 있던 나들]을 가져온다. 도통 이해하기 힘든 동선의 [먼 나]가 조금은 이해될 듯 하면서도 비껴나간다.  삶의 흔적들 속에 먼나를 반추한다.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운 그런 모습들, 그 패턴들. 그 박자들은 나무의 가지들처럼 닮아있다. 울타리 곁을 서성이는 나. 평상심에서 뱉어냈던 나들은 어쩌면 나를 정확히 표현해내지 못해.  이물감이 들고 낯설지만 [먼 나]에게 섞여있는 검붉은 빨강이 나를 표시하는지도 몰라. 그렇게 널린 빨래들. 바람에 흔들리는 다른 색깔들을 보다나니 [먼 나]에 다른 색깔들이 스며들지 않으면 평생 이 몰골의 단조로 살겠다 싶다는 겁이 덜컥나는거다.

그래서 경계에 서성이는 나를 잡아두고 다짐을 받는다.  나란 휴전선의 철책 한 가운데를 오려두어 통행을 할 수 있게 마음 먹는다. 너의 색깔들을 묻혀 색깔이라도 달리내는 것이 어떠냐는 조급이란 물감통을 곁에 두어본다. 생각의 과감은 조금 [더 먼 나]를 넓혀 영토확장이라도 해야되는 것 아니냐구 한다. 아니면 울타리를 바짝 낮추어 너의 파도가 넘어올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너들의 야자수 바람이 살랑거릴 수 있도록 당간 문들을 열어두라고 한다. 이렇게 나란 경계에 숨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한 부드러운 통증을 담는다. 그리고 나란 친구를 발가벗겨 냄새피우는 파스처럼 온몸에 덕지덕지 붙여두려한다.  

어쩌면 아픈 줄도 모르던 통증을 찾아 후끈후끈하게 하다가 그 속병을 고쳐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진통을 누그려뜨려 아프던 것을 덜 아프게 해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조말선파스로 다른 모둠의 시인이나 그들의 생각이 말투에 배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제3자적이란 냉소가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 관조적 파스때문에 2.5자적 파스향에 골몰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느 순간 술이 코끝까지 올라올 즈음 나타나는 파쇼적 습관이 배시시웃는 웃음으로 그칠지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한 가족 안에 새롭게 피는 나로 인해 너도 즐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봄날 아지랭이처럼, 봄날이란 잔바람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 풍력발전기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나란 휴전선이 열리거나 너로의 장벽이 열려 너-나가 새로움으로 넘쳐 다른 너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학연의 고리가 구멍숭숭하거나 너덜너덜해 바래 삮는 숙명을 목도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뱀발. 모임들 사이 간간이 굳은 너,나를 자극하는 말들이 생각보따리로 스며든다. 예전 같으면 지긋해 하거나, 왠만한 통증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말들일텐데. 한번 모셔본다. 흘려버리지 않고 오목한 그릇에 모아본다. 그리고 하나하나 셈을 하고 등에 붙여본다. 코밑에도 붙여본다. 목주위에도 붙여본다. 헌데 아직도 조말선파스를 보지도 않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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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달콤새콤하다. 오랫만에 만나는 봄날. 온몸에 새싹이 돋아날 듯 근질거린다. 바람내음에 땀이 비칠 듯 달려주고 싶다. 한낮은 달콤쌉싸름한 아지랭이가 올라올 듯 몽글거린다. 마음도... ...

뱀발. 출근길 안개가 짙었지만, 점점 볕은 따사롭고 무척 당황스런 날씨다. 달님을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저녁을 나다. 꽃 생각은 왜 간절한 것인지? 매화도 목련도 영춘화도...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만 속절없이 짙어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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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0221 잠깐 쪽잠을 자고 나서다. 뒤풀이에서 민*련 지인분들과 합석하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모임과 모임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고 설다. 겹쳐지거나 고민이 움직임의 폭과 함께 가지 않으면, 생각지 못한 일들이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같이 한다는 것, 모임의 진폭과 사람, 삶의 테두리를 겹치는 일에 마음이 간다. 어쩌면 그러한 겹친 일상이나 겹친 고민이나 활동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가교를 잇는 분들부터라도 고민을 겹쳐 자라게 하지 않으면,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현실을 그나마 지금보다 낫게 나아갈 확율이 아주 조금 높아지는 것이겠다 싶다.

 

토요일 0220 참# 자원활동 발표회, 청소년아카데미 모꼬지와 단체의 창립대회가 겹친다. 참@는 주목할 발표들과 노력이 있었고, 부모의 반응도 교감이 있어 보인다. 마무리하는 시점 함께 있지 못해 미안했다. 오후 학생들은 나무에 데려다주고 새로운학교네트워크라는 단체 창립대회에 다녀오다.내년 3월경 학교설립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였고, 얼떨결?에 참석하여 설레이는 마음들을 표시낸다. 빈틈없이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십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 나무 주인장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이제서야 이 지역의 노래운동 맥락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관조가 아니라 상황에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덧셈이란 다짐도 점점 짙어지는 별빛들 사이에 밝아진다. 십여년이 지나 만남조차 희미해지는 관계보다 현실을 딛고 선 약한 연대의 교집합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부모의 연대감이란 것이 이미 들어온 것이겠지만, 추억을 향유하지 않고,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란 주문을 걸어본다.

금요일 0219 창립 다섯해 총회. 꼭지활동가들이 많아 풍성했던 한해가 아니었던가 싶다. 뒤풀이 틈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모임의 색깔을 넘어서는 기획들이 많으면 어떨까? 모임을 넘어서서 관통하는 기획들이 나오면, 열정과 활동력이 많은 분들 사이로 여러 사회적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왕년은 저물어가는 지난해에 건네주고, 산뜻한 시작은 해볼 수 없는 것일까? 에세이도 세련된 작품이 아니라, 날 것의 신선함이나 겹눈의 새로운 시선을 자라게 하는 공모도 그러하고 말이다. 간간이 스며드는 퇴행의 언어와 습관은 무척 불편하다.  

수요일 0216 홍*이님과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했는데, 의외의 결정에 많이 놀라다. 활동가로 삶. 지켜보아온 열정과 힘, 능력이 겸비된 분이라 걱정되는 바는 많지 않지만, 좀더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나 고민을 나눴으면 좋을텐데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책을 나눠갖다. 지금부터라도 늦은 것은 아니겠지. ...  

화요일 0215 명절, 처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건너와 가까운 지인부부들과 함께 보내다. 생협, 여성활동......이야기들이 생생한데 기억은 선명치 않다.  

 뱀발.  

1.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반의식.....술을 많이 마시거나, 보통 이상 흥분된 상태, 아니면 약간의 극단을 요구하는 상태의 행동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라 경계에서 나타나는 모습들. 문화나 연이 누르는 경계. 군대의 경직됨이 흐르는 곳의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그것들이 속 민주주의의 지표를 나타내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문화나 공동체가 갖는 자장이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까지 바뀌지 않거나 바꿀 수 없으면 서로 곤란이 끊임없이 체험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 반복된다면 그만큼 서로나 많은 것을 바꾸거나 만드는 것은 그만큼 요원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대낀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도 각성의 파스를 군데군데 붙여놓고 후끈거려야 할 것이 많은 듯 싶다. 

2. 원고를 일요일에 넘기려했는데 여차하다보니 하루를 넘겨 보냈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며칠 짜투리시간을 활용해 원고를 덧보태다보니 글쓴이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한편 차라리 써 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따로따로 좀더 가필하여 써두는 편이 유리하단 생각을 해본다. 날 것은 공개하지 않고, 그래도 숙성시켜야겠고, 약속한 것이니 열리게 될 시점을 맞추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 같다. 

3. 모임들 사이로 책볼 짬들이 나지 않는다. 몸으로 견디고 틈을 내서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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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쟈니님의 "답은 없을지도.."

쟈니님 이제야 새해인사 드리네요. 복 예쁘게 만드셔서 쓰시길.ㅎㅎ. 저도 비슷한 생각을 품어보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1900년에서 1910년생..그리고 그들이 맞은 1930년과 1940년..그들이 서른 마흔이 되었을때죠. 평범한 그들의 삶과 생각..어떠했을까요. 기차도, 영화관도...찻집도...서울의 거리는 어떠했을까요......그리고 자본주의....우리는 스물이고 서른이고 마흔입니다.....그러다가 또 생각을 해봅니다. 1년짜리, 3년짜리 10년짜리, 30년짜리...그리고 우리의 삶도 말입니다. 늘 포트폴리오는 있어야되는 것인데..세상은 당장 바뀔 듯 이야기합니다.....자본주의에 비해 삶은 짧고..어림도 없음을 알지만.....과연.....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제시대라고 하지만 뒤에 거슬러 쓴 역사입니다. 만약 지금 이대로의 삶이 거꾸로 자본의 시대로 기술된다면...지금 우리는 어떠할까요. 1930, 40년의 흥청망청한 서울의 풍경과 일상, 지금과 너무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요....그러면서 어쩌지도 못하는 스스로를 되새김질하면......그렇다고 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이렇게 막막함을 나누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 다. 

 

 

 

 

뱀발. 오늘도 출근길 눈이 내립니다. 남도에서 지난 달도 매일 눈이었지만, 이곳 금강을 따라 내리는 눈, 그리고 눈빛 사이로 뜨는 햇살이 포근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포크레인은 강을 뒤짚고 있습니다. 눈물을 삼키고 다독거려주던 갈대숲도 이젠....울어줄 사람도 찾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알고 있을까요. 강물로 제몸을 사르는 눈꽃들은 알고 있을까요. 출근길 퇴근길 품는 마음을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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