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에 착수한 것은 세기 전환기 이탈리아에서 번성한 저항의 장소들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유용한 민주주의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상조회와 협동조합, 민중회관, 지방자치체의 실상을 관찰하면서, 민주화 과정의 특정한 순간에 내포된 정치적 논리를 발굴함으로써 민주주의 이론의 규범적 핵심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과거에 적합했던 전략이 오늘날에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과거는 미래를 위한 공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현재를 위한 준거점을 제시할 뿐이다. 14


나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저항 공간들을 연구하면서 공간이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이행기 동안에 좌파 담론에는 상당히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농민적인 천년왕국설 및 소부르주아적인 급진주의와 불편하게 공존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동맹체들을 하나로 접속시킨 것은 공유된 언어가 아니라 공유된 사회 공간이었다. ...협동조합과 민중회관(민중의집), 노동회의소가 실상 공간이 아니라 결사 association라는 것이다. 결사에 의해 창출되지 않는 공간도 있고, 목적이 없는 공간도 있다. 여기에서 연구하는 정치 공간은 결사를 통해 형성된 공간으로서, 결사와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범주에 속한다...이렇게 공간과 결사의 차이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9


때때로 주변화되거나 패배한 실천에도 해방의 실천이 남긴 흔적들이 있다. 진화의 논리나 목적을 배제하고서 역사를 본다면, 승리뿐 아니라 패배도 미래의 투쟁을 비춰 주고 인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을 줄 수 있다. 벤야민은 [역사철학에 대한 네 번째 테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역사가에게 실재하는 모든 계급투쟁은 투박한 물질적 사물들을 둘러싼 투쟁인데,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섬세하고 정신적인 것들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계급투쟁에서 정신적인 것들은 승자의 수중에 떨어진 전리품의 형태와 다른 모습을 띤다. 이 투쟁에서 정신적인 것들은 용기와 유머, 간계, 불굴의 투지로 나타난다."


문제는 역사에 대항기억을 주는 것이다 -푸코-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계에 대해 세 가지 설명을 하고 있다. " 계는 회이고, 계는 약이며, 계는 합이다"

 
1. 두레는 순우리말 '두르다'에서 나왔다. 우리는 보통 "둥그렇게 원을 두르다","성곽을 두르다"에서처럼 '두르다'하면 원이나 성곽을 연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이나 성곽 자체가 아니라 원이나 성곽을 두르는 이유이고, 원이나 성곽을 두른 이후의 결과다. -두른 뒤의 결속력은 강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친근한 우애에 기초하게 된다. 결사체를 만드는 것은 구성원 간의 우애와 결속력을 얻기 위해서다.

2.두레의 또 다른 어원으로 '둘레'가 있다. 둘레는 '돌아간다', '돈다'에서 파생한 말이다. 순환을 의미한다.

3. 두레의  세 번째 어원인 '두루'다. 두루란 "두루두루 행복해라"라는 설날에 듣는 덕담에서 보듯, 모든 구석구석마다 빠짐없이 골고루 또 널리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계는 합이다의 합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합일이다.  두레는 일종의 재분배 시스템이며, 이를 통해 두레의 구성원은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두레는 제사이자 놀이, 그리고 노동이다.  36-46

 

생협 안에는 세 님이 있다. '존재하는 님', '의식하는 님', '연대하는 님'이 그것이다. '존재하는 님'은 아직은 생협의 조합원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생협의 조합원일 수 있는 지역의 주민이고, 생협의 다른 님들을 향해야 할 지향이다. '의식하는 님'은 생협의 조합원이면서 생협의 사업과 활동을 지탱시켜주는 사람들이다. '연대하는 님'은 생협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서 생협의 생협이게끔 드러내는 역할의 담당자다....우리는 '존재한 님'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설정을 해야 한다. '의식하는 님'과 함께하는 '연대하는 님'의 활동이 '존재하는 님'에게로 향하게 해야 하고, 이를 통해 협동조합이라는 조합원의 사적 영역을 지역의 공적 영역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생협운동의 주체는, 조합원을 포함해서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로부터 내몰린 지역의 님들까지를 포괄한다.  229-230

 

협동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인식 전환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제까지의 생협과 앞으로의 생협, '존재하는 님'과 '의식하는 님'과 '연대하는 님', 생협을 생협답게 하는 조합원 활동과 생협을 유지시키는 직원 노동 사이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를 포태하고 서로가 서로를 먹이고 되먹이는 관계로 맺게 할 수 있다. 협동은 수평적 균형이 아니다. 협동은 거래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랑이다.  233



새로운 노동의 가치와 기술

 

그림자 노동이후 일리히는 사용가치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표현으로 환경의 '유용화 가치 utilization values'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한다. 이것은 시장과 관료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만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상품가치가 상품을 얻는 get 행위고, 사용가치가 스스로 하는 do 행위라면, 유용화 가치는 생태적 환경의 유용성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하는 행위다. 상품가치의 노동이 보다 많은 상품을 얻기 위한 노동이라면, 사용가치의 노동은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가는 노동이고, 환경 유용화 가치의 노동은 생명의 창조걱 진화를 기르는 노동인 것이다.  240


기술을 민중의 손 안으로 되돌리는 것을 일리히는 '컨비비얼리티를 위한 도구'로 설명한다. '컨비비얼리티'는 영어로 '연회' 혹은 '연회장에서 조금 술에 취한 기분 좋은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일리히의 컨비비얼리티는 영어에서가 아닌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페인어세서의 그것은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온 역사적 결속, 자신의 공유지를 지켜올 수 있게 했던 마을 사람들의 결속"이다...자율적인 공동노동이고 자립적인 공생관계이며 나아가 공동의 유희행위인 것이다.  241


나는 일리히의 버내큘러를 우리말 '울력'으로 전환시킬 것을 제안한다. 울력은 두레에서의 노동이면서 동시에 선불교에서 스님들이 수행의 일환으로 삼는 노동이다. 고려시대 지눌 스님은 불자가 행해야 할 세가지 일로 예불하고, 경 읽고, 울력하는 것이라 했다. 울력의 '울'은 모두를 나타내는 '우리'와 그 모두가 함께 하는 조직으로서의 '울타리'에서 나온 말이다. 울력의 '력'은 힘이다. 따라서 울력은 '한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제 나름의 힘씀을 모아 모든 생명을 더욱 이롭게 하는 것'이다. 246


결사체


사회학자 사토에 의하면, 결사체는 사회 구성의 기본 개념으로서 공동체와는 대치되는 개념이다. 공동체가 일정한 지역 공간에서 개인이나 가족이 그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가족과 상호 연대하는 행동인 반면, 결사체는 이런 공동체 위에서 목적 기능별로 형성된 것이다. 결사체에는 국가, 정부, 정당, 의회, 행정기관, 학교, 병원, 교통기관, 회사, 레크레이션 시설, 노동조합, 협동조합, NPO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결사체는 자발적 결사체이다. 여기서 자발적이라 함은 가족이나 친족의 구성원인 한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법률이나 사회 규범에 따라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이익과 이윤이나 생계를 목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가족 국가 시장의 제약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의지에 따라 결성한 결사체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자발적 결사체는, '자발적이고 자립한 개개인 간의 연합에 의해 성립하는 네트워크형의 결합체'라 할 수 있다. 251

 

결사체란 한마디로 '자립한 개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이다. 따라서 '결사체에 의한 노동의 조직'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개개인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해서, 자본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협의를 통해 각자의 노동을 조직해가는 것을 의미한다.253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의 구별

 

사회적 기업과 전통적 협동조합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은 모두 사회적 목적과 경제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업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그 '조합원'의 공통된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한 사업체인데 비해, 사회적 기업은 '지역사회'의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한 사업체이고, 때문에 협동조합은 조합원 간의 내부적 연대, 조합원을 향한 이윤 분배, 조합원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반면, 사회적 기업은 지역의 다양한 관계자 연대, 지역을 향한 이윤 분배, 관계자 전체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 264


 

볕뉘.

 

1. 저자들이 결사를 논해 반갑다.  앞의 저자는 공간에 붙어있던 맥락과 이면에 천착하고 러시아혁명이후로 안타깝게도 결사에 대한 논의가 없던 것을 애석하게 여긴다. 한차례 민중의 집에 대한 논의와 진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사(모임)에 대한 논의로 번지지 않아 무척 아쉽다. 우리 역사에도 무수한 결사의 시도와 저항의 응어리들이 산재해 있다. 혼자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모임, 결사, 숱한 흔적들이 정교해지지 않으면, 대안의 회계가 있지 않으면, 공간의 거처를 마련하려는 의식하는 노력이 없다면, 가치가 다른 이들일 수록 같은 거처에 밥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품어본다. 사유의 거처, 활동의 거처...어쩌면 아무 것도 품을 줄 모르거나 품지 못하는 습속을 가진 것이 우리의 수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 두레생협의 윗글들은 소화시키기가 힘들다. 말이 쉬움에도 밀도가 몹시 떨어진다. 일단 모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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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가 쑥쑥 올라오는 날들입니다. 개망초의 꽃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있는 사람은 가까이 오게 해준다 ' 랍니다. 이런 게 '정치' 아닐까요. 정치가 지천인 유월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요원하지만 그래도 님을 만나면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정치' , '좋은 삶'들.

 

 

 뱀발. 일터엔 벌써 허리춤에 오는 개망초들이 쭈빗 고개를 들고 있네요. 혹시나 하여 꽃말을 찾아보니 마음에 콕! 드네요. '계란꽃'이라고도 한다죠. 오월을 마무리하기에는 좋은 꽃이네요. 장미 꽃잎은 떨어져 초록비에 흩날리고 쌓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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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문제는 물론 만성적인 고질적 빈곤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박탈과 갑작스런 궁핍은 불평등의 성질-과 인과적 영향-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분배와 함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널리 그리고 정당하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정치가 부재한 가운데,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공정한 정치적 관심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이 나라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보충적인 보호를 위한 빠른 반응 체계도 마련하지 않았다. '평등과 함께한 성장'이라는 예전 경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불평등과 거침없는 궁핍의 사태는 나타날 수 있다." 277

 

 

기근과 기타재난 - 기근의 발생 현장에 농산물이 남아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잊기 쉬운 것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그물망처럼 출렁이는 상황에서 원론적인 대응은 기근을 해결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아마티아 센은 기근은 대부분 가난한 이에게 먼저 덮치므로 이들에게 고용의 형태나 소득을 올려주는 방향만 잡더라고 역사상이나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기근의 참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사회문화적인 양태로 그 나라는 야당의 존재이나 정보에 대한 공개여부만으로도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결국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문화자본이 불현듯 닥친 기근같은 참사를 줄이고 해결하는 기본적인 사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북한의 경우도 야당의 존재부재나 정보의 통제로 인한 문제점 노출,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정보의 통제와 민주주의의 후퇴가 사회적 약자의 기근이나 재난에 지극히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뱀발. 서구학자들의 말이라면 꾸벅거리다 못해 굽신거리는 이들은 벌써 1999년에 지적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거꾸로 살리겠다고 한 것이 국민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누리던 군사문화의 향수와 무지와 몽매를 즐기고 싶던 것은 아니었는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기본적인 정보, 언로의 소통과 표현의 자유가 안전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한다. 사회의 음지에 대한 세세한 통계 역시 필요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시 찾은 10년이 이렇게도 처참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인가? 정치꾼들은 제발 이 책의 한국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라도 읽어보고 시정과 국정에 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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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중국의 버스44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례를 들면서 벗이 물음을 건네온다.  뭔가 마음을 건네야 할 것 같아 흔적을 남겨본다.

 


 

 

선거로 합종연횡만 해서 당선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바닥, 발판을 건들일 수 있을까 뭔가 흐름을 만들어 보고 벡터의씨앗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  '새누리지지자에게 왜 말을 걸어야 하는가', '새누리지지자를 왜 존중해야 하는가' '왜 그들의 맘을 흔들려고 해야 하는가' '새누리지지자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새누리지지자들과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새누리지지자들과 이것만을 정리해내야 합니다'


5. 28 한청년이 버스를 기다린다 - (7일전) 작년 대선 48.5%로부터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야권?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율이라고 하자.  압축적 민주화의 양면을 거치고 있는 지금, 진보?가 대안의 삶을 살지 않아 정치의 불신은 극대화되어 있다. 새누리지지자는 야당이든 정치인이라고는 다 믿을 수 없다. 덧붙여 온갖 단일화버전은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 새정치도 그러하다. 새누리지지의 지역연고와 집단적 투표형태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남이가란 문화적 유대는 투표쏠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차별화된다고 따지지 마라. 논리와 합리의 문제는 너머 서있다.


우리 대부분은 분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종합적이어서 논리만 밝히는 이들의 습속으로는 새누리지지자의 정서적 역치를 넘을 수 없다. '진보는 개인적이고 논리적이고 말빨만 끝내준다'에 갇혀있다. 새누리지지자와 2백만원 미만 소득자에게 넘길 수 있는 정서적이거나 감동의 벽은 없다. 삶에 허덕이고 치일수록 합리적이고 개인적이고 위계도 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다.  누가 정치해도 다 똑같았다. 더 불안해한다. 있는 놈들의 협박과 공갈이 더 짜릿하다. 마음에 남는 말은 욕설 비슷한 자극만이다. 감정상의 응집력이 세다.

 

5. 29 - 강도가 버스를 세운다. - ( 6일전) 야당에 대해  .... 야당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반대에 대한 급부로 지지를 얻고 있을 뿐 감동도 마음을 울려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의 무능과 내부 민주주의도, 실험 시도 등 상황을 뚫고가는 노력도 없는 정치무임승차자이다. 되어도 문제다. 지역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똑 같은 레퍼토리, 똑 같은 자극, 장기비전을 물어봐라. 밑그림도 없다. 어떻게 당신의 지역을 만들고 싶은지 추궁해봐라. 공약이라고는 빈한하기 그지없다. 당신 삶과 당신 자식들을 맡길만큼 가슴에 뛰는 공약이라도 있는가. 당선시 향후 일정과 행보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호혜와 평등을 실험하는 제안, 제언을 받아들을 것을 약속하며, 시정의 파트너와 정책의 동반자로 사회단체연대체를 구성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단체연대체는 정당별로 정책위원 1인이상이 참여하는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 선거가 끝난 뒤 소수정당의 정책제언이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의회의 의정을 보고받고 공유하며 의정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연결망을 구성하고 정례화하여 시민의 아이디어가 수렴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새누리당의 경우 독주와 독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므로 노동, 사회적 약자, 교육, 지역에 대해 정책참여 할당을 하며 3당이상 합의한 정책은 심의, 의결과정에 넣고 참관할 수 있도록 한다.

 

5.30 - 강도가 승객을 협박해 돈을 강탈한다. - 5일전(4.16으로부터 44일이 되는 날)에 선거자로서 소수정당에게 비례대표로 선거 본연의 취지를 살리자. 정당명부 비례제도를 알려 선별투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룰자체를 바꾸지 않는 거대당의 분위기에서 조금 더 다른 투표성향을 볼 수 있는 지표이지 않을까?  '비례대표에겐 다른 선택을' '비례대표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줘야' '비례는 녹색, 정의, 진보라는 가치에게 투자를'

 

5.31 - 강도가 버스에 내리며 여성운전자를 겁탈한다 -(4일전)에 우리는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겁에 질려 쳐다보기만 한다. 엄청난 세금을 고스란히 내며, 수도세 전기세, 휴대폰 요금에 절절매는 우리는 뭉텅뭉텅 살을 배어 물고 가는 세금에겐 끽소리도 하지 못한다. 음식값 천원과 서비스에는 핏대를 세우며 불만을 제기하지만 강도같은 큰도둑에겐 겂에 질려 꿈적도 하지 못한다. 얼굴을 연신 맞으며 빼앗긴 지폐를 보고도 아무말도 할 수 없다. 누구에게 외쳐야 하는가. 강도겁탈자 돈뜯어내고 담는 자에게 우리를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는가

 

6.1 6.2   D-3, D=2  김기춘은 선거 며칠 남겨두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돈도뺏고 온갖 추악한 짓을 한다. 눈으로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투표만 한다고 투표란 블랙홀에 빠져버린다고 우리는 의무를 다한 것일까. 여전히 무늬만 바뀌고 자본의 수장들이 두는 장기판에 졸만 바뀌었을뿐인데...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누리지지자들의 심금은 울리지 못하겠지만 동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가만 있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오히려 도와준다고...그렇다면 당선되면 무엇이 달라지는데....2년에 한번 대리해서, 차 펑크라도 떼워주는 보험이라도 선거가 되어본 적이 있는 것이냐구. 허구헌날 거리에 나가 촛불하고 데모해도 꿈적도 하지않고 입과 몸을 막는 것이 이 세상인데... ....

 

6.3 선거전날 4.16 49재....

 

6.4

선거하고 인증샷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우리는 왜 선거를 일년 가운데 하루만으로 투자를 해야하는가. 당신의 답답함. 당신의 노동의 가치를 이 나라가 실현해주는가 당신의 정치인이 당신 삶을 헤아려주는가 정치는 카페에 커피시키듯, 식당에 음식과 서비스를 확인하듯 당신이 직접 헤아리지 않는 순간, 우리를 떠나 날아가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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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다른 내부 여행지 속의 잡담 - 기획과 선거, 그리고 정치 대한 감수성
    from 木筆 2014-06-02 11:42 
    1. 꿈 - 약속장소에 돌아가신 분이 양복차림으로 나왔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또 다른 이가 왔다. 자리 같이 해도 되냐는 고인에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같이 계시라고 얘기를 나누고 반가움에 안았다. 2. 회원제안벙개 - 6.4선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 얘기를 나눈다. 패널토론을 진행하다보면 질문을 들으려는 후보와 하고싶은 말만 하는 후보로 나누어진다.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후보의 생리와 행동차이가 있다. 20
 
 
 

 

1. 나스메 소세키는 런던 유럽생활을 2년반동안 했다. 창문으로 꽉 막힌 런던의 건축물은 끊임없이 남들이 그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했다. 툇마루도 바람도 없는 이질적인 시공간은 늘 그를 불안에 떨게했다. 바다에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가 도시에 와서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파김치가 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몸이 앓고 있는 것은 따듯한 바람일 수도 햇살일 수도, 아니면 품에 그리던 바다에 대한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우울일지 모른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일본인에게 서양의 관문은 그렇게 낯설뿐만 아니라 병적이다. 도대체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서양의 것을 몸으로 뱉어내기도 하는 그가 서구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주장했다. 어쩌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툇마루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치유되는 과정으로 도련님이란 작품을 써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는 아니지만 어정쩡한 돌출의 인물인 주인공들에게 파편적으로 그 주의를 입혔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 졌다. 그리고 옛 일본의 향수인 기요를 그리워하며 작품을 끝내고 있기도 하다.

 

 

 

 

 

 

 

 

 

 

 

 

 

 

 

2. 불편


우리는 소비와 음식맛의 분류와 구분에 지나치게 익숙해있는지도 모른다. 요구와 욕망은 맞아떨어지고, 또 다른 도락의 유토피아는 가까이 있고 주문할 수 있다. 과노동과 과응대에 허덕이는 우리의 일상은 언제 어디든지 부릴 노예가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아직도 식당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더 시킨다는 것에 종업원의 불편에 대한 앙금이 있기때문이다.  작년 KTX열차의 한 여승객은 열차직원을 두고 서비스는 물론 고객에 대한 기본 응대가 어쩌느니 하면서 한시간 내내 통째로 전세낸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힘들면 힘들다고 악소리를 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것이 맞다. 그 고객을 보면서  어디서 뺨맞고 어디와서 화낸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화가 나더라도 표정과 속내는 절대보이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매뉴얼에 나오는대로 고객응대를 하라는, 그 감정노동의 양과 질은 일상에서 또 다른 출구를 찾는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는 있긴 있는 것 같다. 맛의 유토피아가 있는 맛집에서는 온갖 불편을 감수하지만, 외식과 회식에서는 무릎을 꿇고 복장을 단정히 하면 솔의 톤으로 고객의 눈빛을 보고 어쩌구 감정의 호사를 누리려는 무의식이 내장되어 버린다.

 

3. 좀더 불편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터에서  과노동과 과응대에 덜 시달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노동과 응대에 덜 주눅들어 돌아왔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그러다보면 가족 공간은 그렇게 쌓인 긴장을 자식을 위한다는 스트레스해소가 반쯤 섞여있는 밥상머리 교육도 줄어들지는 않을까 싶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다 같이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정치가 경제를 왜곡시키지 말고 굵직굵직한 물꼬만 트게 만들더라도 이런 변태같은 일과 증상이 현저히 줄 수 있다.

 

4. 신은 죽고, 신에 의탁해 생긴 유토피아는 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그 사라져버린 시공간에 낭만적 사랑이라는 은신처를 제공한다. 상품을 모시고 로망을 내장하고 아무도 없는 둘만의 유토피아를 갈구하게 한다. 사랑은 불편하지 않다. 계급적인 제약과 어떤 힘든 노역도 어떤 핍박도 낭만적인 유토피아란 찰나의 환상은 현실의 고단을  지워버린다. 자본주의의 진화와 도피처의 제공은 점점 교묘해지고 양가의 모습으로 자라난다.  이름도 색깔도 끝이없는 명품의 행렬, 향수, 양주, 포도주, 다이아몬드, 여행... ...

 

5. 이 모든 불편한 생각을 한계효용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면  위의 얘기를 다 지워버릴 수 있다. 모든 것은 휘발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더 좋은 곳, 좋은 것에 더 호사를 누린다는데 무슨 말이라구.  나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너를 건네고 있는 중이다.  내뿜는 매연으로 도로는 점점 혼탁해지고, 짜증과 과도한 요구로 강물은 점점 먹을 수 없게 되고, 여유하나 없는 일상은 폭염지수가 점점 더 올라가 비지땀이 비질비질나는 지경에 다다른다. 여기저기 짜증도 곤란함도 끓기  직전은 아닌가? 

 

6. 불손

 

금전에 대한 감수성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교사인 집은 부부교사를 비교하고 부부교사인 집은 의사를 비교하고, 의사인 집안은 사업을 하는 집을 비교하고...하루하루가 부족한 것 투성인 것은 아닐까...돈을 많이 모은 사업주는 죽어서도 가지고 가지 못할 정도로 쌓아두기만 하는 비참의 순환고리때문에 허걱거리는 것은 아닌가? 교사인 집안, 공무원, 군인들을 보는 시민들은 그들의 정년과 연금을 본다. 우리 강남 사람은 옆집 앞집 윗집의 살림살이만 보인다.  그렇게 집값,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팍팍해 푸어의 우리집 살림만 커보일 뿐, 비정규직과 계약직, 그날벌어 그날을 사는 이들의 금전에 대한 헤아림도 감수성도 없다. 10만원 100만원에 대한 일상과 삶의 다른 강도와 충격을 헤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문율이 이렇게 심한 사회가 있을까? 아마 지금여기의 불평등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이렇게 우리가 서로 보듬으려는 공유문화자본이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똑 같은 모듬끼리 300만원되는 과외를 시키지 못하면, 100만원 되는 과외, 30만원되는 과외라도 시키지 않으면 영원히 추락하듯 삶은 인질처럼 저당잡혀있다.  낮은 곳에 임하지 않더라도 차상위계층이나 소득분위...우리의 살림살이와 금전관계에 대한 실감을 회복하기만 해도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아파할 수 있을지 모른다.

 

7. 금전과 살림살이에 대한 헤아림과 나눔, 그 시도조차 없는 어색함, 생까기를 비롯해서 그 습속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게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스메 소세키의 작품들 사이에는 금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나의 개인주의] 말미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는 작품들 사이 금전에 대해 다룬 부분들을 모아서 따로 분석, 비평을 해둔 것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명예가 있다고 해서 돈도 따라 절로 들어온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러셀도 책을 출간해서 간신히 풀칠해서 사는 경우도 허다했고, 작가들의 생활도 빈궁하기 이를 데 없기도 하다. 자본주의 속, 금전에 대한 사고와 개방, 논의의 감금의 상자에서 꺼내야 그래도 일상의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현실감있게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볕뉘.

 

-1. 도련님과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들, 나스메 소세키의 책으로 동아시아 세미나가 이어진다. 나스메 소세키는 작품 속의 빨간셔츠처럼 서구가 합리적으로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싫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서구의 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의무 사항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 세째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 이 세가지 사항으로 귀착됩니다. 64 [나의 개인주의]

 

여기에 비한다면 지금여기의 위세가들은 권력도, 명예도, 돈도 모두 움켜쥐려하는 말종의 인간들의 군상만 남겨둔 것 같다. 귀족으로서 품위도 가져오지 못했고, 명예말고 돈을 가지려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권력을 얻으려는 것은 하물며 말할 필요도 없다.  식민지 하수인 근성만 뭍어 있는 것은 아닐까?

 

-2.  한 선배는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곳 얘기를 건넨다.  시간을 늘려야만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식품공장 노동일로 늦게 와 말을 나눈다. 세상과 편안한 일상들과 낯설은 이물감들이 마음에 남는다.  자리를 옮기며 서비스 얘기며 다음날 후원달리기에 다녀온 뒤 전날의 일들을 더 나눈다.

 

-3.  오고가는 길, 책을 한보따리 들고 짬짬이 보고 생각한다. 떨어져 있는 아쉬움만 아니라 현실 속에 감각과 감정으로 부여잡고 밀고 나갈 수 없음이 밟힌다. 이렇게라도 마음의 언저리라도 건드리는 수밖에... ...

 

-4. 위의 흔적엔 다른 벗들의 경험담이 조금씩 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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