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지난 일요일, 동네를 길게 달린다.  목련에 정신 팔려 달리는데, 난데없는 대죽부인이 아담한 자태에 끌려 한방 누른다.  난 목련이 좋다. 봄의 황홀함도 좋지만, 더욱 더 좋은 것은 몸매의 곡선이다. 목련가지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한삼자락처럼 하늘을 향해, 여백을 향해 내미는 터치가 정말 좋다.   달리다 정말 근사한 목련하나 있어 담았다.

동네 야산을 오르내리다. 연단운동장의 목련 새순도 담아보았다. 봄을 너무 일찍 시작한다. 매끈한 피부역시 비길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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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훈련일지에 몇 가지 사항을 기록하여 자신의 신체가 여러 가지 훈련이나 생활 요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면 과도한 훈련이나 부상을 막을 수 있다. 아래의 정보를 이용해서 훈련 프로그램이나 생활의 여러 부분을 잘 조절한다면 몸의 회복과 러닝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1.기상 후 심장 박동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심박수가 평소보다 분당 5회 이상 높다면 훈련 때문에 몸이 피로한 것이다. 이 경우 며칠간 고강도 훈련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일주일 동안 매일 기상 후 심박수를 체크하여 자신의 ‘정상’ 심박수를 알아내도록 한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면 분당 10회 정도 빨라지므로, 눈뜨자마자 재도록 한다. 가능하다면 알람시계 없이 일어나서 재는 것이 좋다.

2.수면의 양과 질: 수면 패턴을 체크하기 위해, 매일 밤 수면의 질을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평가하고 수면 시간을 기록한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러닝 성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과도한 훈련 때문일 수도 있지만 러닝과 관련 없는 생활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 하루 정도 수면 시간이 줄어든 것은 크게 상관없지만, 며칠간 계속 수면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회복에 영향을 미치고 훈련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3.체중: 매주 3∼4회 같은 시간에 체중을 잰다. 2∼3일간 몸무게가 줄었다면 수분 부족 때문일 수 있다. 몇 주 동안 계속 몸무게가 줄었다면 열량 섭취가 충분하지 않거나, 훈련이 과도하거나 몸이 아픈 것이다.

4.식사의 질: 에너지 부족은 음식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1∼2일간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하면 훈련을 할 때 기운이 없게 느껴진다. 매일 전반적인 식사의 질을 1∼10으로 평가하고, 훈련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한 음식을 기록한다. 이렇게 하면 매일 적절한 음식을 고르도록 신경 쓰게 된다.

5.수분: 수분 부족은 러닝 성적이나 훈련 후 회복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매일 체중을 재면 수분 상태를 알기 쉽다. 수분 상태를 매일 1∼10으로 기록하고 수분 부족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적도록 한다(예를 들어 내가 코치한 마라토너는 ‘와인과 담배 과잉섭취’라고 기록했는데 적절한 원인 지적이었던 것 같다).

6.에너지: 에너지 레벨을 체크하는 것은 몸의 회복 상태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일 에너지 레벨을 1∼10으로 평가하도록 한다. 에너지 레벨이 낮은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은 연이은 과도한 훈련, 질병, 수분 부족, 탄수화물 섭취 부족, 철분 부족, 수면 부족 등이다. 훈련일지를 체크하면 원인을 찾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7.근육통: 러너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근육통을 늘상 느끼게 마련이다. 특정 근육의 통증은 부상 때문일 수 있으며, 전반적인 근육통은 훈련에 적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매일 전반적인 근육통을 1∼10으로 평가한다. 이 숫자가 며칠간 계속 증가한다면 몸이 아프거나 훈련이 과도한 것이다. 경기 후 또는 고강도 훈련 후 2∼3일간의 근육통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특히 내리막길에서 달린 후에는 4일 정도까지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8.특정 페이스에서의 심박수: 기상 후 심박수처럼, 러닝시 일정한 페이스에서 심박수를 측정하면 회복 상태를 체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트랙에서 편안히 훈련할 때 심박수를 재도록 한다. 평소보다 분당 5회 이상 빠르면 회복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심박수는 매일매일 조금씩 다를 수 있으며 수분 부족, 덥고 습한 날씨, 맞바람 등에 영향을 받으므로 이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하도록 한다.

9.환경 조건: 극도로 덥고 습한 환경에서 달린다면 신체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온과 습도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몸이 그러한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다. 특정한 환경에서 자꾸 몸이 힘들다면, 그런 환경에서는 하루 정도 쉬거나 실내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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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진리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483
레나토 로살도 지음, 권숙인 옮김 / 아카넷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사회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부제)


1. 학문이라는 것이 어쩌면 방관자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바라본다고 하지만, 그러한 관점이 제대로 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실이라는 '움직이는 모래톱'이 과거를 반추하여 만든 틀로 분석하여 현실을 멈추게 된다. 그러면 움직이는 모래톱은 우수수 모래 알갱이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계급분석을 규정짓고 분석하는 이상, 제대로된 계급분석도 되지 않고, 현실에 있어 의미도 잃어버린다. 분석이라는 잣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 필리핀의 일롱고트부족의 머리사냥하는 문화를 논리틀에 들이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14년간의 연구에서도 얻지 못했던 것을, 아내를 잃은 슬픔을 통해서 그나마 조금은 머리사냥을 할 수밖에 없는 분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체주의가 목욕통에 있는 물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실천이라는 것이 이런 학문의 방관자적 입장과 해체주의의 경계에서 실천을 매개로한 본질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2. 경제전체주의에서 다양성과 공적영역의 접근성을 되살리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도 소중한 노력이다. 해방을 위한 거대기획의 실패?처럼 정치는 생활인의 공적영역의 접근, 기획만큼 생활정치에 천착하고 일상에서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경제적 접근 보다, 예술적, 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접근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현수막에 걸려있는 과학이 '경쟁력'입니다라는 표현은 과학은 '문화'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녹아들지 않는 이상 '경쟁력'이란 구호는 경쟁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과 경쟁력의 들러리를 선 과학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상에 밥먹듯 즐기거나 부닥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되지 않는 이상, 도구로서의 분과학문이 되는 이상 지금을 변화시키기에, 질적변화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3. 저자의 문화라는 개념은 기존 틀과 다른 것 같다.기존 분석틀이나 객관성, 공평무사를 학문의 바탕이라고 여긴다면 문화는 유형으로 구성되고 자기충족적인 총체이어야 한다. 타자의 문화를 알려면 내 기준으로 차이를 전제로 분석가능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문화라는 것이 그런 완결형태가 아니라 구멍이 숭숭뚫린 교차로들의 집합체로 표현한다. 사회를 지나간 것으로 또는 미래를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한, 관찰자의 입장은 별의미가 없다고 한다. 사회분석은 지금의 움직임을 나타내줄 수 있는 절망, 입장교환, 서사, 위트 등이 빠진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전지적 렌즈를 들이대는 이상, 그 분석이란 것이 별 볼일 없다고 한다.

 

4. 그는 문화적 시민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민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법적 시민권만으로 부족하며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시민권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구조보다는 과정을 나타내는 변화가 공간보다는 시간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학문과 글쓰기의 새로운 시도와 방법으로 일상적 실천을 말하고 있다.  (문외한이라 글을 쫓아가기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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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상
에드워드 파머 톰슨 지음, 나종일 외 옮김 / 창비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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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은 노동 계급이 무지하고 난폭하다는 자본가들의 루머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이며 노동자가 지닌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역능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이 책 앞에 달린 수많은 수식어와 그 역사적 의의를 논하기 이전에 이 책은 어느 영웅담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책이라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이 책은 1790년대 초의 런던 교신 협회의 활동부터 1832년의 차티스트 운동까지 영국 노동 계급의 완성에 이르는, 억압 속에서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단결하고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영국노동자들의 서사시 같은 장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우선, 톰슨이 사용하는 계급이라는 개념이 그 톰슨 이전의 계급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톰슨 이전에는 계급이라는 것을 현상파악을 위한 사회 과학적 개념, 범주, 혹은 맑스에 따라서 경제적인 생산관계에 따라서 결정되는 물체 혹은 구조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톰슨에 의하면 계급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톰슨은 계급이라는 것을 노동자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이러한 계급에 대한 정의에 따라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에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생겨나는데 우선, 계급 형성이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라 할 때 프랑스 혁명과 같은 외부의 사건보다는 당시 노동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문화적 전통이 노동 형성에 중요한 특징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계급은 경제 구조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활동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즉 여기서부터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톰슨에 의하면 당시 노동 계급의 형성은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화되는 데에 대한 수동적인 반작용이 아니었다. 기존의 노동사 연구를 통해 비춰진 노동자들의 모습은 새로운 진보에 적응하지 못하고, 난폭하고 음주를 즐기는 무절제한 집단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톰슨은 노동자들을 절제하고 스스로 만든 규칙을 지키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으로 묘사한다. 일례로 러다이트 운동이 단순히 기계 문명에 대한 거부라는 반동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도덕경제'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이 톰슨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거부했던 것은 산업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산업혁명을 둘러싸고 있던 여러 정치적 억압들,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가와 국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들이다. 그러므로 톰슨에 의하면 노동 계급의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영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절망에 의한 폭동도, 유토피아적 향수에 의한 반동적 운동도 아닌, 산업혁명 후의 사회를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헌신적인 투쟁이다.

톰슨의 책은 '우리는 이 시대의 영웅적 문화를 꽃피운 그들에게 감사할 만하다'라는 감동적인 말로 끝난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실증연구에 의하면 영국의 노동 계급들이 제국주의에 전혀 적대적이기 않았고 오히려 제국주의가 노동자들로부터 올라오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동 계급 역시 백인 남성이라는 자기 계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 계급 역시 그 시대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당시 노동자들의 운동을 폄하할 수 있을까? 영국 노동계급들이 당시에 보여줬던 영웅적인 기록들은 당시의 시대적 맥락 안에서 평가 받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 단순히 이 책이 가져온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적 혁신으로만 평가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폭압에 대항하며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노동자, 보통 사람들의 역능을 생생히 증언하는 그 내용이 더욱 소중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끝으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한 작품의 번역에 쏟은 역자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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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1-2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지인 술자리로 향하던 중, 건축일하는 친구이야길 한다. 일거리도 없고 아이들 먹여살리기가 힘들다고 '죽음'을 생각해보았느냐구 해서 '멍청한 생각'하질 말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둘이서 대작을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폭음을 하였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자꾸 시선이 간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노동계급의 코드가 베여 있는 절망을 반복한 시선은 어떨까? 삶과 죽음은 늘 같은 시선으로 반복될 것이고, 그 경계에 대한 심각한 절망도 고독도 옅어지는 것은 아닐까? 너무 가진것?이 많아 소자본가의 코드로 인해 죽음에 대해 담을 쌓아두고 이해했던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솔직함과 건강함이 노동계급의 미덕이라고, 내일 하루 품팔려면 지나친 음주, 사치스러우면 그만큼 고통이 따르기에 사치스러울 수도 없는...

당신들로부터 그런 습관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살림살이도,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건강한.... 나의 얄팍한 삶의 태도에 대해 주저스럽다.

톰슨 책을 보고 싶다. 계급은 그 구성원들이 유형화된 관계, 제도, 관념들을 정립함으로써 가시적으로 만들때만 비로소 가시적인 것이 된다는, 계급 형성은 정적 형성이 아니라 능동적 과정이라는 톰슨의 책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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