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진리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483
레나토 로살도 지음, 권숙인 옮김 / 아카넷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사회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부제)


1. 학문이라는 것이 어쩌면 방관자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바라본다고 하지만, 그러한 관점이 제대로 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실이라는 '움직이는 모래톱'이 과거를 반추하여 만든 틀로 분석하여 현실을 멈추게 된다. 그러면 움직이는 모래톱은 우수수 모래 알갱이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계급분석을 규정짓고 분석하는 이상, 제대로된 계급분석도 되지 않고, 현실에 있어 의미도 잃어버린다. 분석이라는 잣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 필리핀의 일롱고트부족의 머리사냥하는 문화를 논리틀에 들이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14년간의 연구에서도 얻지 못했던 것을, 아내를 잃은 슬픔을 통해서 그나마 조금은 머리사냥을 할 수밖에 없는 분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체주의가 목욕통에 있는 물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실천이라는 것이 이런 학문의 방관자적 입장과 해체주의의 경계에서 실천을 매개로한 본질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2. 경제전체주의에서 다양성과 공적영역의 접근성을 되살리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도 소중한 노력이다. 해방을 위한 거대기획의 실패?처럼 정치는 생활인의 공적영역의 접근, 기획만큼 생활정치에 천착하고 일상에서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경제적 접근 보다, 예술적, 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접근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현수막에 걸려있는 과학이 '경쟁력'입니다라는 표현은 과학은 '문화'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녹아들지 않는 이상 '경쟁력'이란 구호는 경쟁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과 경쟁력의 들러리를 선 과학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상에 밥먹듯 즐기거나 부닥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되지 않는 이상, 도구로서의 분과학문이 되는 이상 지금을 변화시키기에, 질적변화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3. 저자의 문화라는 개념은 기존 틀과 다른 것 같다.기존 분석틀이나 객관성, 공평무사를 학문의 바탕이라고 여긴다면 문화는 유형으로 구성되고 자기충족적인 총체이어야 한다. 타자의 문화를 알려면 내 기준으로 차이를 전제로 분석가능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문화라는 것이 그런 완결형태가 아니라 구멍이 숭숭뚫린 교차로들의 집합체로 표현한다. 사회를 지나간 것으로 또는 미래를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한, 관찰자의 입장은 별의미가 없다고 한다. 사회분석은 지금의 움직임을 나타내줄 수 있는 절망, 입장교환, 서사, 위트 등이 빠진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전지적 렌즈를 들이대는 이상, 그 분석이란 것이 별 볼일 없다고 한다.

 

4. 그는 문화적 시민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민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법적 시민권만으로 부족하며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에 대해 자신을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시민권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구조보다는 과정을 나타내는 변화가 공간보다는 시간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며 학문과 글쓰기의 새로운 시도와 방법으로 일상적 실천을 말하고 있다.  (문외한이라 글을 쫓아가기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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