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꿈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가 중요하게 느껴져야 한다.
사회가 감당할 무질서의 양을 바꾸지 않으면 완전한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


 

풍요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사람이 성숙함에 따라 통제된 순수한 경험에 대한 욕망이 약해질 수 있는 사회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폐단의 기원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성장하는 동안 청소년기의 문제들에 묶이거나 사로잡힌 데서 비롯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참는 법을 배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인 성인기의 조건은 이미 분명한지도 모른다.

 

 

순수한 정체성을 넘어서 성장하기

 


성인기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의 이 모든 꿈이 실현되지 않으며, 사람은 좌절하는 가운데 그나마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꿈을 지킬 수밖에 없다. 최근에 벌어진 사태로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경험한 것과는 달리, 대다수 성인들은 이런 실패를 겪으면서 꿈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대다수 성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틀에 박힌 삶을 기다린다. 이제 문제는 특별하지 않은 성인들이 젊은 시절의 꿈을 잃어버리는 것 자체가 '성장'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마치 성인기가 청소년기에 꿈꾸었던 불운한 활동과 희망의 수동적인 종결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161

 

 '포기'는 풍요로운 성인들이 자기 성인기의 방침을 묘사하는 아주 흔한 방식이다....'포기'는 편한 행동이며, 포기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틀에 박힌 삶과 평화에 도전하는 이들을 억누르기 위해 뭉칠 수 있다. 내가 묘사한 젊은 급진주의자들 같은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왜 그들이 자신의 첫 번째 꿈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신념을 계속 부여잡았는가 하는 점이다.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힘을 장려할 수 있는 수단이다. 161-162

 

성인기의 힘으로 이동하는데에는 4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1단계 - 경험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새로운 능력과 힘을 얻는 데 필요한 경험의 축적 사이에서 불균형이 극에 달한다.  2단계 -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순수한 경험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런 성장의 불균형에 존재하는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현대도시의 사회적인 제도들은 이런 식으로 개인의 성장을 동결시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위협적이지 않는 동일성 속에서 그대로 성인의 사회 생활에 도입된다. 이런 정상적인 성인의 양상을 깨뜨려야 한다. 특별히 강한 몇몇 젊은 혁명가들의 경험은 3,4단계에서 가능성을 넌지시 보여준다. 

 

 3단계 - 젊은이는 일관된 질서의 전망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장애물이나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 상황과 마주친다. 무질서한 세계는 일관성과 유대라는 꿈을 좌절시킨다. 좌절이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좋은 편이고 그들이 나쁜 편이라는 가정이다. 이런 순수한 이미지는 무너지고 동정이 생겨난다.  4단계 - 주변 세계에 관한 아동기의 호기심이 부활한다. 모든 것이 정돈된 모습을 보려는 욕망은 제쳐두고라도 세계를 보려는 욕망이 다시 생겨난다. 다시 말해, 미지의 장소들을 보고 전에 마주치지 않았던 느낌과 상황을 경험하려는 용기가 다시 솟아오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 같은 게 생겨 세계에서 '다름'을 인식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극단적인 형태의 순수 욕망을 개인 '병리학'으로 해석한 것처럼, 이런 질환을 가진 개인들의 치료를 보면 사회적인 형태의 병리학을 어떻게 치료할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62-165

 

사람이 자기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깨닫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에게는 일정한 자족적인 고독과 독자성이 생겨난다...사람이 사회 세계의 주인이자 거울이 아니라 '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자신을 보게 되면 '자신이 가진 속성보다 자신이 더 크다'는 느낌이 생겨난다....자아의 주인다운 능력에 대한 믿음을 버림으로써 일정한 힘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166

 

 사람이 전능해지고 싶다는 청소년기의 욕망을 상실하면 그가 가지는 관심의 특질에도 어떤 일이 생긴다. 이 변화는 '돌봄'이라는 단어의 두 가지 용법으로 구체화된다. 일상 언어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걱정하는 일'과 함께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168

 

이런 돌봄 개념은 인간의 한계, 즉 세계 속에서 한 사람의 관심과 힘의 한계를 배운 결과물이다. 이렇게 하여 어린이의 자유로운 호기심과 주변에 있는 경험의 대상 자체에 대한 관심은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성인의 치료를 통해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이제 청소년기와 달리 관심과 특별한 돌봄은 사전에 형성된 가치 구조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 개인의 세계 속 정체성 의식에 '들어맞지 않는'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치료를 거치면서 환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와 마주해도 좌절하지 않는 생존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한다. 170

 

성인기의 불안정한 성격과 자기 안의 퇴행적인 행동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성인의 의향은 둘 다 삶에서 우연을 수용하는 데 이른다. 하지만 정서적인 힘의 우연한 성격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걱정'의 힘을 확장하게 된다. 173

 

정서적인 성장은 신체적인 성장과 달리 불가피하고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인기를 불안정한 것으로 파악하면, 평범한 삶의 일상적인 문제들에 그토록 많은 고통이 존재한다는 어두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 고통을 경감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75

 

성인의 성장은 변형적이기보다 부가적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실재의 다른 요소들이 언제나 끼어든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 사이의 고통과 무질서는 불가피하다. 이런 퇴행은 어떤 유토피아 사회에서도 절대 없앨 수 없는 사회적인 현실의 본질을 형성한다. 176

 

성인기는 흔히 제한된 사건들을 걱정하되 소유하거나 차지하려고 시도하지 않으면서 돌보는 시기로 여긴다. 성인의 돌봄이라 함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소유하려는 힘을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것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176

 

신체적인 나이 듦과 윤리적인 나이 듦의 시간적인 불일치로 이 문제를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소유한다 함은 그것을 시간에서 빼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것의 운명을 빼앗는 셈이 된다. 성인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옹호하면서도 그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대한 관심은 다름 아니라 좋은 돌봄은 시간 속에서, 삶의 역사에서 구체적이고 제한된 사건들을 다룬다는 의식이며, 또한 이 관심은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세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제한된 전망이라는 의식을 수반한다. 176-177

 

 열여덟 살에 보수적인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마흔 살에도 보수적인 사람은 변명에 여지가 없다. 177

 

 과거의 파노라마를 현재의 사건들과 분리하는 것이 성인기의 힘이다. 청소년기의 힘이 이 파노라마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성인은 '강박', 즉 지난 삶의 역사의 의해 엄격하게 형성된 현재의 의미와 관심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정체성의 규칙 형성 능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의미가 개인의 자기 역사 인식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 능력을 길들이는 것이다. 178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관해 정말 유연하게 '역사적'으로 인식하려면 청소년기의 힘을 실행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경험을 과거의 쟁점 측면에서만 해석하려고 하며, 설상가상으로 이 젊은이가 청소년기에 나타난 힘을 좇아 행동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면, 과거에 충분한 힘을 가졌다면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마주치는 모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에 시달릴 수도 있다...179 

 

이런 자유의 선물은 젊은이들이 고통 없는 꿈을 행동에 옮기고 건설적인 실패를 하도록 만드는 사회적인 상황으로부터 나온다. 180

 

도시의 병폐는 교통 개선이나 재정 확충 같은 기계적인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병폐는 사람들이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장소, 성인들이 정말로 사회적인 실존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인간적인 문제이다. 181

 

순수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율적인 사람들과 달리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다른 이들 돌볼 힘이 없다. 이 사람들은 특히 긴장된 순간에는 자기 행동의 결과에 무관심하다.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다른 이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할 자원은 거의 없이, 일관된 상징들을 매개로 해서 현재 상태를 일반화된 추상적인 삶의 상태로 변형하려는 강렬한 힘만 존재한다. 성인의 돌봄은 베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좀 더 책임성이 있다. 세부 사항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개인은 미지의 사회적 경험에 이끌이면서 여기서 종종 끔직하게 고통스러운 발견을 하기 때문이다. 185 

 

 지난 20년의 풍요로운 사회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공동체 개념이 실은 사람들이 서로로부터 숨기 위한 한 방편이며, 이런 숨기의 결과물이 노예상태와 무관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동체의 유대 대신 이제 다른 성인 사회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186 

 

 이런 사회가 조밀한 도시의 다양한 혼란 속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성인의 삶은 복잡한 환경에서만, 사람들의 삶에서 가능한 온갖 복잡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사람들의 모든 윤리적인 본성은 불안정하고 허약하며 무질서한 사건들에 연류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불안정한 사회만이 그 사회에 고유한 풍부함을 가지고 청소년기를 넘어 성장하기 위한 매개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혼란스러운 도시 생활만이 청소년기의 노예 상태에 도전하고, 그 결과로 지금은 소수만이 누리는 성장의 기회를 많은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187

 

 

볕뉘.

 

1. 피곤이 손쉽게 와 이른 잠을 청하다가 학번을 묻는 전화에 일어나 쌓인 시집 한권을 집어든다. 히스테리아였다.  위의 책 가운데 히스테리, 정신질환 등 개인의 심리학, 병리학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나에 갇힌 어른들. 마흔이 넘어도 보수인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이 사회.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들만 버글거리는 사회.  사회의 병리학을 다뤄야 한다고 말이다.  새벽까지 갈 것 같아 피곤을 경계삼아 절반을 보다 그쳤다.  가을은 살랑거린다. 이불 반틈이 부족하다.

 

2. 사회적인 유년기, 사회의 유아기란 말이 겹친다. 이반 일리히는 역사라는 것은 단계를 밟는 것이 아니라 불쑥 단속적이기는 하지만 이전의 역사에 접목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이념도 이론도 부질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경도된 반세기 이상의 경험을 유산처럼 안고 있다.  이론도 나만을 과잉화하여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한다. 저자가 순수한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이 자신의 맥락을 만들어가며 지탱하는 모습이 어쩌면 그간 과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 저자의 말처럼 파노라마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청소년기의 힘이라면 파노라마와 현실의 사건과 분리하는 것이 성인기의 힘이라고 한다. 순수와 환원으로 경도된 이론과 이념은 유아적이거나 어린 혁명가와 같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세상의 허망함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 깨달음의 과정이 없는 이상, 자책과 죄스러움을 평생에 안고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론이나 이념도 제것이 최고라는 유아기에서 벗어나서, 현실과 부딪치며 생기는 상처와 잔유물들을 다시 거름삼아 사상의 씨앗이 생기거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국면까지 바랄 수 없더라도, 무엇인가 선악의 이분법으로 사고하고 움직이고 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자각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다.

 

4. 멋진 실패와 포기, 자중심성에 대한 대오가 있었을 때 곁의 너가 보인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와너가 기대고 궁금해도 아주 조금밖에...더 나빠질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때만이라야 아마 더 나빠지지 않는 지지대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읽기 몇 장이 더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