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꿈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가 중요하게 느껴져야 한다.

 

현대 공동체 생활에서 손꼽히는 기묘한 특징은 풍요의 문제가 혁명의 구분선을 가로지른다는 점이다....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공동체 생활로 무엇을 할까? 혁명으로 부는 재분배되었지만,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혁명의 결과물인 풍요를 삶에 어떻게 도입할지, 이제 먹을거리가 충분해 싸울 필요가 없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엇에 전념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17

 

혁명의 길이 사회에서 폭군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서적인 경험이어야 한다고 프란츠 파농이나 마르쿠제 같은 사람은 믿는다. 이 길은 지배권력이 없는 상태, 즉 아나키와 일정한 삶의 무질서를 받아들이도록 사람을 길들이는 교육이어야 한다. 사회가 감당할 무질서의 양을 바꾸지 않은 채 사회 지도자만 바꾼다면 완전한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도 1844년 수고에서 경제적 풍요 자체 때문에 질서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 요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18 

 

파농은 도시가 관료제와 익명성으로 인간의 감정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믿은 것처럼 조밀한 장소에서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서 당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안전하고 틀에 박힌 삶만을 찾는다. 사람들은 결국 개인적으로 안전한 범위 안으로 쪼그라들어 혁명가로 성장하지 못한다. 19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조밀한 도시 정주지에서 함께 살아갈 때 나타나는 사회적인 다양성에 재갈을 물려야 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생활을 피하려는 요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사회적인 경계를 폐소공포증으로써 충족할 수 있다. 20

 

풍요의 공동체는 인간에게 자유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폭정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준다. 결핍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어두운 욕망, 즉 사람들이 사회관계에서 받아들이는 안전하고 확실한 노예 상태에 대한 욕망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스스로 인정하기를 혐오하는 이런 종류의 감정을 조사해야만 자유에 대한 욕망의 특징과 풍요로운 현대라는 조건 아래서 자유를 달성하는 수단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청소년기에 일련의 힘과 욕망이 형성되어 자발적인 노예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현존하는 도시 공동체의 조직은 사람들에게 청소년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노예가 되도록 부추긴다는 것, 무질서와 고통스러운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유의 본질로 삼는 성인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 틀을 깨뜨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 청소년기에서 이와 같이 새롭고 충분히 가능한 성인기로 옮겨가는 이행은 조밀하고 통제 불가능한 인간 정주지, 즉 도시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경험의 구조에 좌우된다는 것 등이다. 21

 

..도시라는 정글, 도시의 광막함과 고독에 긍정적인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22


순수한 정체성


첫발을 내딛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스스로를 작은 신으로 여기는 한편 재판관처럼 환자를 판결하고 환자를 약간 경멸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전능욕망"이라고 지칭한 이런 태도는 환자들이 가진 문제에 연루됨으로써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생긴다고 결론지었다. 환자의 문제에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깊숙이 연루되면 자신들의 자기 인식이 약해질까봐 염려한다는 것이다. 31-32

 

젊은 의사들의 경우, 엄격한 자아상을 통한 이런 혼동에 대한 방어가 환자들의 거대한 고통에 휩쓸리는 사태를 막아준다. 이 고통이라는 병은 환자가 그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혁명가와 의사 모두 어려운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위협에 대비해 미리 자아상을 고정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사회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 쉬운 열린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고정된 사물이 되는 것이다 33

 

청소년 후반기에 일어나는 정체성의 위기는 개인의 자아상과 그 자아 바깥에 있는 삶에 대한 상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 문제이다. 이처럼 정체성의 위기는 단순히 '나의 성격이 어떤지'를 말하는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위기는 자라나는 인간이 처음으로 자아상과 자아 바깥의 세계상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의 규칙이나 양상을 명확하게 밝히려는 의식적인 시도이다. 46

 

자기순수화의 동력으로부터 압도적이면서도 본질적으로 편안한 죄의식이 나올 수 있다. 이 죄의식은 세계의 구체성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을 파괴한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타인이 행동한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과 문제에 직면해서도 수동적인 태도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병적인 상태다. 이 사람은 어떤 해악을 유발하든 편안하게 용인할 수 있다. 스스로를 끔찍한 죄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54


순수한 공동체라는 신화


특정한 종교운동과 나중에 일어난 경제 운동이 유사한 이유야말로 베버가 찾고자 한 것이었다. 두 운동 모두 불안을 바탕으로 세워졌고, 둘 다 부덕한 행동에 대한 자기부정과 공동체의 억압으로 이어졌다. 베버가 추구한 방향은 매우 분명했다. 그는 종교를 내팽개친 시대에 어떻게 해서 순수한 자아를 향한 어떤 충동이 하나의 사회적 가치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61

 

공동체의 감정은 형제애이며, 여기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물질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인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수반된다. 공동체의 유대는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 즉 '우리'와 '우리가 누구인가'를 인정하는 데 따르는 기쁨이다. 63

 

청교도 공동체 생활이나 분투하는 기업가들의 공동체 생활에서는 갈등을 배제하지 않았다. 사실 고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종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뉴욕 주 북부의 작은 마을이나 '해로운' 흑인 가족을 배제한 교외는 갈등을 두려워했다....공동체 유대의 신화는 의지를 드러낸 행동을 통해, 어떤 경우에는 거짓말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겁쟁이가 되어 서로로부터 숨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68

 

일관된 공동체 이미지를 순수화하면 사람들의 '다름'에 대한 사랑보다는 두려움이 승리를 거둔다. 이런 두려움이 경험의 위조를 낳는다. 비슷해지려는 욕망을 표현하는 '우리'라는 감정은 사람들이 서로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 서로에 관해 모든 걸 안다고 상상하며, 사람들의 지식은 그들이 어떻게 서로 똑같아져야 하는지에 관한 환상이 된다. 72

 

이렇게 해서 현실에서 전혀 다른 것 같은 외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라는 감정이 자라날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서로가 거의 공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없다. 가짜 공동체 의식이다. 73

 

공동체 유대를 통한 존엄이라는 신화는 세가지 뚜렷한 사회적인 결과를 낳는다. 첫째, 공동체 생황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줄어든다. 두번째 결과는 일탈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 그것이다. 공통적인 정체성의 표현과 일탈에 대한 억압은 둘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측면이다. 세번째 결과는 욕망과 폭력과의 관계에 존재한다...그들 자신의 삶에서 무질서를 조금도 용인하지 않고 또한 무질서를 경험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차단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긴장이 분출하는 상황이 되면 공격과 폭력적인 힘, 보복 등의 최종적인 방법이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데에도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76-79

 

풍요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향한 욕망을 형성하는 데서 더 미묘하고 어쩌면 더 위험한 역할을 한다. 가난한 공동체에서나 결핍의 시기에는 개인과 가족 사이의 공유가 생존에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이런 공유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풍요의 증거이다...공유하는 게 훨씬 적어야 하는 경우 각 개인이 서로의 성격을 평가하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경험의 축적이 한결 적어진다. 공동체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와의 관계에서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자신들이 동일한가를 상상하려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83

 

 다시말해, 풍요는 공동체 접촉에서 고립을 만들어내는 힘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인 관계성을 서로에 대한 필요보다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이러한 것들이 공동체 유대라는 신화의 특징들이다. 84


도시는 어떻게 신화를 되살리는가


가족 구조와 도시 발전, 새로운 풍요의 조건 등이 한 흐름으로 합류하는 지점을 보면서, 이전엔 사람들이 도시라는 넓은 무대에서 추구하던 사회적 기능과 접촉을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가족이 전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던 사회적인 '공간들'이 가족에게 전유되면서 도시 지역에 남은 사람들의 공동체 관계와 가족 자체에 왜곡을 부추겼다. 이런 왜곡은 복잡성과 무질서가 야기할 수 있는 유대와 경험의 두려움을 추구한다. 89. 사람들이 도시에서 상상하는 가족과 가족형 관계가 중요해짐에 따라 청소년기의 순수화 양상이 공동체와 가족 구성원들 개인적인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89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의 사회적 관계 속에 먹고 살기 위해 자기 삶에서 "접촉점의 다양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이 속한 제도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정치적인 '호의'나 커피숍과 술집이라는 안전판, 유대교 회당과 교회의 가르침 등의 지원에 계속 의존했다. 93

 

작은 마을 생활의 두드러진 특징은 마을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마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을 문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분리되거나 고립된 사회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 분업과 지위 구분은 존재했지만, 모든 사람이 분리된 활동의 성격이 있었다. 94

 

개인들은 일상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회영역에 침투할 자격과 필요가 있었다. 이 영역들이 조화롭게 조직되지 않고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일지라도 말이다...도시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이런 접촉점의 다양성이다. 그 대신에 더욱 일관된 형태의 사회 활동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95

 

순수한 도시를 계획하기


현대의 비평가들은 분업이 적었던 산업화 이전의 목가적인 질서로 회귀하자는 꿈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와 경직성에 대한 해답으로 도시생활의 의도적인 단순성을 주장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았다. 마치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 능력을 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루이스 멈퍼드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이기 위해 도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129

 

전체가 효율을 극대화하게끔 기능하는 것이 부품들의 수명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란 사실은 기계 설계에는 타당하지만, 어떻게 인간사에서도 이런 원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서로를 상대하는 가장 편한 방법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해야 한다. 전에 존재한 것과는 다른 양상과 방향의 관계를 만들도록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 현상을 보면, 인간은 이런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 139

 

인문학자들은 종종 정복할 수 없는 기술적인 힘들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앞에서 절망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성장하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 기술의 양상은 자신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힘들에 대해서만 통제권을 가진다. 기계 기술은 도시의 사회 구조와 직접 관련된 사회적인 힘들에 의해 성장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한 기술을 도시에 다시 적용하면 기술적인 상징은 실용적이지 않고 효과가 없다. 145

 

도시계획 공동체는 조화와 예정된 질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미래를 기획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사회 생활을 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성숙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147

 

볕뉘. 다시 읽다.  4장까지 저자의 목차에 따라 옮긴다. 나머지 책날개는 조금 미루다가 이어 달려고 한다.   이 책 속에 소개된 앙드레 말로 책을 읽고 난 뒤다.  68 혁명의 시대적 맥락에 이어 개인사에 말끔하지 않았던 부분을 반추하면서 쓴 것이다. 왜 뜻대로 되지 않는가? 그 이유에 대해 되물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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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세에 보수적인 청년은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마흔에도 보수적인 사람은 변명에 여지가 없다.(2)
    from 木筆 2014-09-05 13:11 
    풍요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사람이 성숙함에 따라 통제된 순수한 경험에 대한 욕망이 약해질 수 있는 사회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폐단의 기원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성장하는 동안 청소년기의 문제들에 묶이거나 사로잡힌 데서 비롯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참는 법을 배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인 성인기의 조건은 이미 분명한지도 모른다. 순수한 정체성을 넘어서 성장하기 성인기를 거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