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점의 다양함 - 고통스러운 혼란을 피하고 '고상한' 생활을 일반화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는 철저하게 제한된다. 폭넓은 도시의 측면에서 보면, 이와 정확히 같은 양상은 규율적인 삶을 '좋은 삶'이라고 엄격하게 강요하는 혁명 정권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대를 잃지 않기 위해 접촉점의 다양성을 자발적으로 축소한다. 112


정치인보다는 정치조직의 필요 - 정치 조직이 인간적인 특징을 잃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효하다고 믿은 정치적인 영향력의 유일한 통로로부터 고립되었다. '소외된 유권자' 현상은 구호가 아니다. 소수민족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탐구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연결점을 잃었다는 실질적이면서도 강력한 의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120


다름의 장려 - 전체가 효율을 극대화하게끔 기능하는 것이 부품들의 수명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은 기계 설계에서는 타당하지만, 어떻게 인간사에서도 이런 원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서로를 상대하는 가장 편한 방법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해야 한다. 전에 존재한 것과는 다른 양상과 방향의 관계를 만들도록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 현상을 보면, 인간은 이런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 139


도시계획의 문제 - 대도시 계획의 기술적인 이미지는 고립된 작은 교외들이 그렇듯이 쉽게 청소년기의 사회로 이어진다. 이런 가면을 쓴 도시계획이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장려함으로써 공동체를 긴장시킬 수도 있는 사회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그런 전개를 장려할 것을 기대하기란 말할 것도 없다. 갈등은 갈등 없는 '더 좋은' 도시 생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전문적인 계획가들은 도시에 갈등이 생겨날 때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은 채 어떻게 갈등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지에 관해 아무런 구상이 없다.  141


도시 공동체 생활의 풍요는 노예 상태를 향한 마음속 깊은 열정이 드러날 수 있게 해주었을 뿐이다. 이 문제의 근원을 우리 시대의 풍요라는 경제적 틀을 창조한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인 기획에 두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지난 몇십 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이런 풍요가 얼마나 취약한가가 아니라 풍요를 활용하는 방법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점이다. 152


자아의 힘 - 전능하다는 느낌을 상실하면 다른 방식에서 자신이 강하다는 느낌이 생겨난다. 이런 새로운 느낌을 완전히 발달한 '자아의 힘'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이는 비록 어떤 성인이 이제 자신의 주변 세계의 조종자라고 전혀 느끼지 않더라도, 그는 세계 역시 자신을 전적으로 조종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깨닫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에게는 일정한 자족적인 고독과 독자성이 생겨난다. 마르틴 부버 같은 종교 저술가들은 사람이 사회 세계의 주인이자 따라서 거울이 아니라 '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자신을 보게 되면 '자신이 가진 속성보다 자신이 더 크다'는 느낌이 생겨난다고 표현한 바 있다. 166


돌봄의 생성 - 사람이 전능해지고 싶다는 청소년기의 욕망을 상실하면 그가 가지는 관심의 특질에도 어떤 일이 생긴다. 이 변화는 '돌봄'이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주인과 자발적인 노예의 경우를 제외하면 권력에 대한 욕망과 무관한 돌봄의 종류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이런 돌봄을 '걱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하고 동물 같은 호기심과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 즉 개별화된 이미지에 관한 호기심이다. 걱정하는 사물이나 사람이 더욱 개별적이고 특수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이나 그 사람을 걱정할 수 있고 또 기꺼이 걱정하려 한다. 이런 종류의 돌봄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독특성을 더욱 발전시킬수록, 그러니까 걱정하고 탐구할 게 더 많을수록 애정의 강도가 커진다고 가정한다.169 사회적으로 보면, 이런 종류의 돌봄은 인류애나 형제애 같은 어떤 추상적인 개념도 거부하며 어떤 이념도 거부한다....우리 자신 같은 제한된 피조물로서는 인간성이라는 보편화된 개념을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걱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0


성인기의 특성 - 과거의 노예인 동시에 과거를 지워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고 싶다는, 죄책감에 바탕을 둔 악인의 욕구는 성인기의 이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롭다는 것은 새로운 것들이 스스로 들어오게 하는 성인으로서의 능력과 더불어 자유롭지 않은 이전의 상태마저도 자신을 이루는 총합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아들인 과거의 모자이크는 개인이 바꾸기 위해 계속 되새길 필요가 없는 무언가가 된다....성인기의 불안정한 성격과 자기 안의 퇴행적인 행동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성인의 의향은 둘다 삶에서 우연을 수용하는 데 이른다. 하지만 정서적인 힘의 우연한 성격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걱정'의 힘을 확장하게 된다.  173


시민의식과 책임윤리 - 한 사회가 아우르는 품위와 시민의식을 조금이라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런 퇴행을 다루려는 사람들의 시도, 즉 퇴행하는 사람에게 그 주변 인간의 '다름'을 일깨우려는 시도이다. '다름'을 다루려는 이런 시도, 자신의 정해진 자아 경계를 넘어서 관여하려는 이 시도야말로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성인기의 본질이며, 또한 베버가 책임 윤리라고 이해한 것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183 

 

성인기의 마주침 - 베버가 이런 상태를 책임 윤리라고 말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사람들이 사회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인의 마주침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성인의 마주침은 누군가 불가피하게 상처를 받거나 혼란을 느끼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당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내가 설명한 성인기는 남들이 계획한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 수 없음을 아는 시기이다...어떤 것을 걱정하는 행위,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탐구하기 위해 외부로 손을 뻗는 행위는 마음속으로 고독해짐으로써 자신이 인간으로서 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방편이다....순수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율적인 사람들과 달리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다른 이를 돌볼 힘이 없다. 이 사람들은 특히 긴장된 순간에는 자기 행동의 결과에 무관심하다.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다른 이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순수한 정체성을 향한 욕망은 현재 상태에 절대적으로 속박돼 있다...현재 상태를 일반화된 추상적인 삶의 상태로 변형하려는 강렬한 힘만 존재한다. 성인의 돌봄은 베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좀 더 책임성이 있다.  세부 사항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개인은 미지의 사회적 경험에 이끌리면서 여기서 종종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발견을 하기 때문이다.  183-185

 

삶의 접속 - 이런 방식으로 조직된 도시는 단순히 거주자들이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장소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차이를 다뤄야 한다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마음속의 꿈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가 중요하게 느껴져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인간 공동체를 설계할 때 우선해야 할 문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느끼게 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사람들을 서로의 삶에 접속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2


생존의 틀로 결집 - 사람들의 사회 생활을 하나로 짜 맞추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서로를 필요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서로에 관해 알 필요가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도시 생활에서는 얼굴을 맞대는 마주침을 통해 사회적 관계, 특히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는 관계가 생겨나야 한다. 사람은 차이와 갈등의 마찰을 경험하면서 자기 삶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따로 떨어져 유대의 신화 속에서 순수해지려고 애쓸 게 아니라 갈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인기로의 이동을 장려하는 사회적 장은 우선 대결과 갈등 상황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을 얼마나 확실히 인식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193


실패와 시도의 가치 - 이렇게 실패한 결과로 사람은 자신을 좌절시킨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자 한다면, 호기심은 일깨워질 수 있고, 일깨워져야 한다.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고통 없는 질서와 무관한 성인의 돌봄은 이런 식으로 생겨난다. 이것은 초월적인 사랑이나 순수를 향한 충동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회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참여에 바탕을 둔 돌봄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조르주 라파사드는, 성인기는 이제 기쁨과 고통이 분리되지 않는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목적 없는 상황, '달성되지 않은 ' 상황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기 전에는 분명한 형태나 정의가 없는 '달성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점이야말로 이런 생존 공동체의 특징이다. 의도적으로 사회적 생존의 문제를 사람들이 하는 혼란스럽고 순수하지 않은 행동에 의존하게 만들면, 미지의 것을 돌보고 궁금해 하는 이런 성인의 능력이 생겨날 것이다. 심리사회적 발달의 근본적인 역설에 따르면, 더 문명화되고 성숙한 삶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집단 사이에 생존이라는 원시적인 문제가 다시 표면에 나와야 한다. 206


관료제의 이용 - 게오르그 지멜은 관료제의 본질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개인적인 구조는 관료제 그 자체를 목표로 간주할 때, 관료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사회 자체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이미지로 여길 때에만 부패한다. 이런 기계적인 이미지를 깨뜨림으로써, 그리고 대규모 관료제로부터 갈등을 조절하는 힘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관료제가 다양성과 무질서를 질식시키는 대신 이 둘을 창조하는데 일조하는 새로운 활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24


시대의 윤리 - 사람들은 선량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남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구분이 우리 시대의 윤리와 과거의 종교 윤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현대의 윤리 체계는 베버가 본 것처럼 독선적이고 편협한 지경에 다다른 그 자체를 위한 선의 실천을 옹호하는 대신, 행위자들이 윤리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면서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조건이 사회 상황에서 나타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사회 구조 안에서 윤리적인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마음을 바꾸라고 호소하는 것보다 더 정직한 일이며, 각 개인이 그 뒤로 영원히 선해지기로 결심하는 개심의 경험보다 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다. 245-246


지루함의 활용 - 새로운 중산층 세대에서 보이는 지루함이라는 감정은 다양성을 향한 욕망의 숨겨지고 아직 발달하지 못한 표현이다. 이런 숨은 욕망이 자신을 표현할 장을 얻으면, 도시가 인간의 욕구에 부응한다면, 현재 사람들이 경험하는 틀에 박힌 삶의 지겨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다양성과 마주치도록 한 단계 한 단계 움직이게 하는 의식적인 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불가피하게 생겨날 테고, 관련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은 도시 성장의 과정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250

 

 

볕뉘. 간지를 두지 않아 밑줄이 명확하지 않다.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 있다. 묵자의 동이나 덧셈이거나 이념과 가치보다, 나중심보다 결과 곁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다름에 익숙하지 못하는 지금은 미숙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걱정하거나 돌아볼 꺼리들보다 내가 우선이고 나를 관철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은 조급함과 미숙함을 동시에 들어내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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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들은 스스로 미래를 기획하지 않는 한, 성숙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1)
    from 木筆 2014-09-04 18:33 
    현대 공동체 생활에서 손꼽히는 기묘한 특징은 풍요의 문제가 혁명의 구분선을 가로지른다는 점이다....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공동체 생활로 무엇을 할까? 혁명으로 부는 재분배되었지만,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혁명의 결과물인 풍요를 삶에 어떻게 도입할지, 이제 먹을거리가 충분해 싸울 필요가 없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엇에 전념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17 혁명의 길이 사회에서 폭군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서적인 경험이어야 한다고 프란츠 파농이나 마르쿠
  2. 18세에 보수적인 청년은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마흔에도 보수적인 사람은 변명에 여지가 없다.(2)
    from 木筆 2014-09-05 13:12 
    풍요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사람이 성숙함에 따라 통제된 순수한 경험에 대한 욕망이 약해질 수 있는 사회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폐단의 기원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성장하는 동안 청소년기의 문제들에 묶이거나 사로잡힌 데서 비롯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참는 법을 배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인 성인기의 조건은 이미 분명한지도 모른다. 순수한 정체성을 넘어서 성장하기 성인기를 거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