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  <디워>를 넣지 않았다. 영화를 자주 많이보는 아이들(초1,5,중2)의 평을 듣더라도(논란이 있기에 앞서) 별표를 몇개주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감되지 않은 관전평을 믿는다. 그 점에 있어서는 <트랜스포머>가 점수를 조금 더 받았다. 하필이면 똑 같은 과의 <오래된 정원>과 <화려한 휴가>를 다르게 넣는다.

1.1 <트랜스포머> 선입견이 있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컨택트><쥬라기공원>, 대중의 평균적인 시선, 상상력을 넘어서는 다른 스케일들이 있어왔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져오는 경계를 넘는 것이 있어왔다. 선전을 하도 하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로 알았다. 인터넷, 컴퓨터 기술, 그리고 상상력을 받쳐주는 도구의 발전에 이내 우리들이 적응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웅장함이라든가 틀을 넘어서는 것이 이젠 또 다른 버전의 입체영화이지 않고서는 힘들지 않을까? 기대를 넘어서는 기술의 발전에 이미 적응해버렸고, 내용에 있어서도 이미 고갈되지 않았나 싶다.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이젠 나름 한계가 보이지 않나싶다. 아이들의 감수성에 맞추어 돈만 번다는 컨셉이라면 성공한 것이겠지만. 집중의 가공스런 효과는 멈칫하지 않을까 싶다. 냄새도 나고, 공간을 압박해오는 입체영화관이라면 좀더 벌어먹을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영화에 관심없는 작자의 혼자 생각이다.

1.2 <오래된 정원>과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은 유사하다. 한 화폭에 담긴 <청춘의 할아버지,딸,그리고 주인공 둘..>과 <결혼식 장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여기에 머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87년 이후 20년, 할아버지할머니나 엄마아빠나 아들딸이나 잘날 것도 못날 것도 없이 그냥 당대를 살아가는 지금, 오래되지 않은 지금의 정원을 나타내고 싶었을 뿐이다. <화려한 휴가> 역시 감독의 최소한의 작가적 메시지 - 죽은 자는 웃지만 산자는 웃지않는-와 달리, 눈물을 흘리며 극장을 나오는 관객에게 열에 아홉에게 이번 대선에 누굴 찍겠습니까라고 하면, 안타깝게도 현실은 열에 아홉은, *나라당이다.

1.3 그렇게 전유하는 현실과, 감독의 의도, 가져가는 시선은 어긋나있고, 갈라져 있다. 사분오열된 마음은 그렇게 위로받고, 한번에 묶어서 사유하기를 거부한다. 아니 그 길이 이어져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야기해준 적도 없다. 그리고 어떠할 지도 선문답처럼 어렵기만 하다. <화려한 휴가>를 보았으니 달라질 것이다. ?!

1.(-)1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가 관심사이다. 사람들과 만남, 시공간의 축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이 좀더 지금의 나-너-우리를 알게 만든다. 그 점이 이 무더운 여름에 감사할 일 가운데 하나다. 여전히 20년을 추억으로만 눈물지우며, 삶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부류 - 그 눈물은 대부분 현실의 비참한 처지, 감독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잊혀진 과거가 현실로, 힘들었던 삶이, 지금 다른 나가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겹쳐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 태어난 아이들, 청춘들의 시선은 어디있는가? 과거와 지금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어디인가? 어디가 더 심해진 것일까? 그들과 현실을 바꾸어나갈 부분은 어디인가? 왜 지금이 더 힘든가? 생각과 경험은 겹쳐지지 않는다. <오래된 정원>은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의 시선으로도 나눠진 것이 없다. 더 더구나 지금과 섞여 감독의 시선에 출발하여 앞으로를 한번도 나눠진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에서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화려한 휴가>, 아무대책없는 민주신당그룹은 국민들이 많이 보아 뭔가 의식에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것 같다. 좀더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아픔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길 희망하는 것 같다. 진보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사람들의 심성도 이쪽으로 기울었다. 뭔가 선거국면에 반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어떨까~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울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디워>와 <화려한 휴가>를 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일까? 희망사항과 현실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2.1


제일 먼저 본 책은 <신데렐가가 된 하녀>이다. 겨우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화려한 휴가>의 드러난 공로자들이다. 고학을 하거나, 구두 수선을 하거나,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는, 잠을 줄어야만 생계를 이어나갈, 나가고 있는 부모님과 우리와, 우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역사가 조금만 복구를 해주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사각지대이다. <이랜드>처럼.  지식을 구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형식지와 암묵지로 나눈다. 그리고 암묵지-노하우, 노웨어 잠재된 문화,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그런 것을 얼마나 형식지로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뒤늦게 각광받고 있는 문화의 힘, 철학의 힘, 예술의 힘이다.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다.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소금꽃나무>의 김진숙님의 현생활이 그러하다.  히틀러는 그 지긋지긋한 생활을 독서와 보상심리로 채웠다. 너무도 생리를 잘 알았다. 그 습속까지. 반면 오웰은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떠하며 왜 반복되는지? 통찰을 얻었다. 욕이 난무하는 현장, 무거운 일들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예술의 감각과 쿨한지에 대해 혀를 내두르면서 탄복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다. 언제는 역사의 주역으로, 일상에서는 하대로 점철된 현실, 보이지 않는 암묵지에 어느 누구하나 시선을 보내지 않는데, 역사는 묘하게도 그들 때문에 이렇게 역사는 발전했다고 한다.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매개역할을 하거나, 온도를 올리는데, 과정을 만드는데 선천적인 재주가 있는 것일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만 잘하는, 생각 몇줄기만 훔치는 지식인들이 매듭에만 존재해 과도한 대접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그들의 역할이 왜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일까? 왜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전유하기 급급한 것일까? 소설가로 성공하고, 대변해서 성공하고, 다시는 그 틈으로 가고싶어하지 않는 무리들, 그리고 그 반복. 누군가 결과만 낚아채는 것일까? 과정까지 배우면 더 낚아챌 수 있는 것일까? 왜 다들 나는 옛날에는 어렵게 살았다고 떠벌리는 것일까? 옛날에 그렇게 산 것하고, 지금 수백억 수천억을 가지고 있는 것 하고 상관이 있는 것일까?

<태양의 아이>와 <바리데기>는 이런 물음에 진도를 더 나간다. 사회적 동화라고 표현했는데 그 슬픔, 배워야할 슬픔, 교감 그리고 아픔, 오웰의 런던까지 이어닿는다. 아픔은 자본만큼이나 전지구적인 것이니까? 왜일까? 왜? 이 여름 섞어있는 의문 가운데 하나이다. 아직 명쾌한 것은 하나도 없다.

2.2


유시민은 이야기해야할 두가지를 숨겼다. 에프티에이를 맑스와 박현채선생님 뒤로 숨겼다. 맑스는 세계화를 이야기하고, 민족경제론을 한 박현채선생님은 찬성할 것이며 슬그머니, 정작 담론의 중심에 서야 할 부분을, 뒤로 놓았다. 이에 예전 개혁정당그룹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비전과 입장마저 뒤로 숨겨놓은 다른 정치가들을 보면, 아예 무관심한 '우리'를 보면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런 <우리>를 뒷전으로 하고, 에프티에이를 중심으로 민*당과 유시민의 접전만이 난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편이 갈린 이상, 자칭 진보들의 말빨은 <우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적유희를 담뿍 안은 채로 저쪽 절벽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왜 에프티에이를 고민하고, 우리 가슴 속에 품어야 하는가?는 이런 정치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기 때문이다. 진보이기때문에 화려한 지식의 깃발을 요란스럽게 날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무지를 가르치려고 선동하는 일은 더 더구나 아니기때문이다. 차분히 삶과 일터에 중심에 넣고, 내 자식도 마음에 넣고, 살림살이처럼, 은행에 적금들 듯 일상에 고스란히 가져갈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불쑥 커버릴 아들-딸들이기에, 정치가의 위선에 속지 않기때문에 그러하기도 하다. 삶의 문제가 정치의 뒷전으로 숨어버린다면, 지금의 황당한 만큼, 그 시간 뒤에 또 다른 처절한 황망함을 겪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려한 휴가>보며 저때 아빤 뭐하셨어요? 언로가 막혀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빨갱이들 데모만하는 줄 알았다가 용인되어도, 20년뒤 <에프티에이> 국면때 아빠엄마는 대체 무엇하셨어요. 언로도 막히지 않았을텐데요라고 자식들이 되물어오면 일하느라 정신없었다라고 답변하긴 거시키하잖아요.

 

2.3

<관용>에 대하여, <바리에떼>, 똘레랑스 - 정치적 중립을 가장하거나, 다양성을 부르짖으며 저쪽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벌써 그쪽에 서 있으니 중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 입으로는 <순수>를 이야기하지만, 벌써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조차 분간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무더운 여름, 한 가운데 <기독교>가 서 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평신도의 책임이 있겠지만, 극히 작은 부분이라 여긴다.

여러가지 작고 큰 결정을 신에게 의탁하는 경우를 본다. <신>은 합리적으로 결정할 기회를 준 것이지, 그렇게 하라고 계시를 준 것일까? 아들 놔 달라고, 우리새끼 꼭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의탁하고자 하는 차이가 무엇일까? 샤머니즘화된 종교가 합당한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록 <관용>과 거리가 더욱 멀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점점 멀어져가는 평신도를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정치적 목사, 점점 대형화하는 교회를, 그 순결하지 않은 축재를 중립이란 이유로 가만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만이 살길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류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연민의 정까지... <화려한 휴가> 정치적 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대형교회들의 현대사와 커지고 있는 우리의 교회의 정치적 습속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은 중립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2.3.1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이시영,샘님의 글은 황석영 <바리데기>에 맞닿아있다. 기사 한올을 모아왔을 뿐이지만, 시인과 소설가의 가슴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것을 나누고 싶은 것이 장년의 그들의 심사이다. 녹슬지 않았고, 여전히 더욱 더 칼날을 벼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달라진 김선우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예리한 맛도 있지만, 달라졌다. 젊은 시인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쥐어짜내야 한다는 강박을 여전히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삶을 훑어내리는 시들은 오롯이 마음을 전한다. 신기하게도 울리는 마음은 퍼진다. 연못의 동심원처럼. 어쩌면 그런 면에서 시집의 가격은 너무 박하다. 야박할 정도로, 젊은 시인의 삶이 들어있는 아픈 마음들을 그렇게 알량한 값을 치루고 산다는 것이... ...

전업 시인처럼 고달픈 직업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예술은 궁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직업에 연연해 하지 않을 때, 쥐어짜내지 않을 때...그런 면에서 시대는 자꾸 시인의 영혼을 너무나 짧은 시간에 헐값으로 매매하는 것은 아닐까? 허명하나 남겨두고.  그런면에서 <시간의 부드러운 손>, 교수직을 물러난 뒤, 장년의 움직임과 눈길은 마음길이 많이 남는다. 새벽길 부지런한 움직임의 향연에 대해 적정한 마음의 연대가 느껴진다. 그리고 따듯한 시선이 늘 마음에 머물러 있고 곱다. 이십대 청춘처럼. 그렇게 예쁘게 나이먹고 싶다 느껴질 정도로.

한편 <조성웅>님의 시다. 예수와 부처는 곳곳에 숨어있다. 단 느끼지 못할 뿐. 나는 그에게서 타인의 죄를 사하기 위해, 제 몸을 사르는 사람임을, 서늘한 의무감도.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나오는 부끄러움이 옮았다. 한편 온전히 불사르고 있음에 대한 경외는 어떤 표현으로도 다가설 수 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분노와 절망도, 그 막막함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렇게 내몬, 내몰 공모자 가운데 한 사람임을 역으로 느낀다. 비정규직의 절망과 외침, 그 외로운 고도에서, 골리앗의 외침에 어느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내 몸 속에 그림자도 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마음들만 단단하게 뭉쳐서, 가져가지 않는다. 마음에 가져가는 즉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반발심때문일까?

다가서는 법도, 마음을 나누는 법도, 불을 지펴내는 것도...외로운 섬에 가교를 놓는 것도, 그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몫일지 모른다. 그 일 역시 고도에서 외롭게 외치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일이고, 아무도 관심기울이지 않는 일일 수 있다. 

3.







그리고 무더운 이 여름, 세분의 샘을 만났다. 더위 만큼 갈증이 심했는데, <정보사회>,<파시즘과 대중심리>,<교육>에 대한 명쾌한 맥락의 설명은 책자나, 논문들로 범접할 수 없는 다른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줄기와 뿌리와 곁가지를 선명하게 분류해주는 마력같은 것들이다. 인터넷망 극시대에 , 인터넷이, 매스미디어가 속류자본주의에 의해 추잡하게 커 가고 있는지? 불과 20년 내로 달라지는 접근 모드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강의를 접하지 않고서는, 계속하여 길잃은 아이처럼 헤매일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빌레흠 라이히를 접하게 된 것. 새벽이 가깝도록 윤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 윤샘의 모호한 답변 역시 행운인 것 같다. 물론 다리놓은 신대표님에게는 더욱 큰 감사를 드려야겠다. 내심 지금도 그러하지만, 라이히가 묻는 것이, 질문하는 것이, 늘 탐색하려는 것이 덩어리가 크다. 숲과나무를 적절히 안배하며, 안개가 드러나듯, 선명해지는 놀랄 만한 그의 능력은 번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한분의 선생님. 의대와 교대가 지형을 바꿔놓은 서열화된 대학의 현실. 노동운동을 하다가 뒤늦은 공부를 한 경제학-교육정책 교수님을 뵈었다. 신제도주의학파 입장에서, 아니 자본주의 틀을 고스란히 인정하더라도, 엘리트를 키운다는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천박함 만큼이나 교육의 천박함이 드러나보였다. 시민성과 사회성을 키우지 못해 똑똑하지만 팀플레이를 전혀할 줄 모르는 경쟁력 있는 아이, 혼자는 똑똑하지만, 팀은 똑똑하지 못할 아이, 자기 전공은 만만하지만, 역사-인문은 전무한 아이, 공부이외에 팀플레이를 할, 만들지도, 축구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아무런 교육 재생산을 고민하지 않고 늙어만 가는 힘,권력많은 노조들

이렇게 <사회의 변화>와 <대중>의 시선으로, <교육>에 대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일도 무더운 여름을 난 보람 가운데 굵은 하나이다.

4.

너무 정신을 한 곳에 놓았다. 일터에 마음과 몸이 많이 벌어졌다. 폭염만큼 마음도 산만하지 않았나 싶다. 좀더 차분하게 간극의 좁히고, 일터에 집중해야한다. 동료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몸도 추스려야 하고, 뫔이 좀더 세련되었으면 싶다. 몸에겐 너무 헤프게 대한 듯하다. 두루두루 죄스런 마음이다. 산발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고,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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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8-2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인일로 트랜스 포머를?
저는 김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보긴 했어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요.
(김쌤 여기도 온다고 했는데 ㅎㅎ)

여울 2007-08-20 14:26   좋아요 0 | URL
볼 것도 없는데 괜한 연락을..... 이래서 제가..ㅎㅎ

달팽이 2007-08-20 15: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림만 올려져 있길래 가볍게 덧글 달았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개수의 글씨가 나중에 추가되어 버렸네요? 저도 일터에 마음과 몸이 많이 벌어졌어요. --;;

해적오리 2007-08-2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려한 휴가>는 보고 몸살을 앓았고...

<디워>는 요번 토욜에 봤어요.
사람 몰리는 영화는 별로 좋아라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그냥 한번 보고 싶단 마음에 봤어요. 그냥 별다른 의미를 두고 싶진 않고 그냥 봤다는 말만 할 정도네요. ^^

여울 2007-08-20 14:31   좋아요 0 | URL
10살의 저라면, 15살이라면, 스무살이라면...같은 느낌일것이고, 그것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다른 사람과 다른 무엇이 있다면 나누면 좋을 것이고요. 김치맛도 좋아하는 음식도 다 다른데 하물며, 영화평이야 ..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존중합니다. 폄하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해적오리 2007-08-20 15:44   좋아요 0 | URL
아.. 전 그냥 제가 그케 봤다는 거에욤. ^^;;
전 영화보고나서 감정적인 면만 동요가 크게 되서 생각은 정리가 안되는 타입이라서요...^^

비로그인 2007-08-2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에는 추천을 두번씩 누를 수 있었음 합니다.
여울마당님 감사히 잘 읽고 가요 :)

여울 2007-08-20 14:45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역시 체셔님밖에 없구랴~ ㅎㅎ

프레이야 2007-08-20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마당님 반갑습니다. 우선 길고 알찬 페이퍼 쓰윽 읽고 추천부터 날리고 갑니다~~ ^^

여울 2007-08-20 16:40   좋아요 0 | URL
반갑워요. 고맙구요.

이리저리 산만해서 보시기 힘들거예요. 그냥 마음들이 날라갈 것 같아 급히 매놓고만 있습니다요. 여름이 길고 난폭하네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