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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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 책을 봤을때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옆에 적히 부제 - 어느 살인자의 이여기 - 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로맨틱 소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슨 살인에 관련된 책이었던 것이다. 추리소설? 스릴러물? 심리소설? 무슨 소설인지 몰랐다. 모르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결국 책을 펼쳤고 한장씩 읽어나간 이 책에 대해서 지금부터 소개할까 한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이 주인공이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 헤깔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이 책의 재미는 강하게 날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추리소설의 마니아들이 셔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실존인물인듯 여기면서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소재는 제목처럼 '향수'다. 향수하면 번뜩이는 것은 아름다운 것, 은은한 것, 뭐 이 정도가 연상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향수가 등장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겠지만 여기에서의 향수는 단순히 그런 미적 소재가 아니다. 한 인간 그 자체이며, 그 인간의 전부이며 그 인간이 평생을 두고 매진한 목표이자 또한 그의 죽음까지 장식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향수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 향수 광신도(狂神道)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몸에서 체취 하나 품지 못하고 살아가는 주인공. 한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파리 뒷골목에서 잡부 생활을 하며 성장해나간다. 그러면서 그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대해서 주인공은 깨닫기 시작한다. 정작 자신은 향기 하나 없는 몸으로 태어났건만 그의 코는 슈퍼 컴퓨터처럼 세상의 모든 냄새를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정확히 분석해내 국립도서관의 책들처럼 완벽하게 정리해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그 자신이 스스로 말하듯 '세상 모든 냄새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독특한 소리, 독특한 시대적 배경, 향수가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향수 사용에 대해 결코 환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궁정문화가 한없이 발달하고 세상 -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유럽과 간접적인 접경 지역에 국한된 - 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의 수도 파리, 어마어마한 인구가 모여사는만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 또한 이 곳이다. 수천년전 고대 인도나 각종 고대 문명국들이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완비했던 것에 비해 수천년 뒤의 프랑스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베르사유 궁전, 그 완전하고도 화려한 궁전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화장실'이다. 하이힐과 향수의 발달사는 그 근본적인 더러움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 연구로 승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 18세기 프랑스 파리. 그 곳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는 정말 귀신같이 냄새에 대해 예민하다. 세상 모든 것을 냄새로 분류하고 냄새로 판단할 정도다. 그런 그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운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수는 바로 아름다운 女人의 향기였다. 25번의 살인사건, 그렇게 죽인 여자의 머리카락과 몸에서 얻은 향수는 25병의 향수병에 차곡차곡 채워져 빛을 발하게 된다. 엽기적인 25번의 살인사건, 이 책은 그루누이라는 천재적인 살인마의 탄생부터 성장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그의 일대기를 주욱,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나오는 향수에 대한 얘기들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이렇게 향수를 만드는구나, 하는 전문적인 지식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18세기 프랑스 파리와 역시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각종 향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마치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한가운데에 있게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직접 주인공인 그루누이가 되어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정작 세상의 모든 향기와 냄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향기는 갖고 있지 않는 자. 자신의 향기가 없어서 황당해하고 걱정하면서 인간의 체취를 만들어 자신에게 뿌리고 다니며 만족해하는 그루누이를 보면서 단순히 어린애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그렇지만 그 살인을 저지르는 그 행위조차도 너무나도 단순한 살인 동기와 행동때문에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기만 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루누이라는 사람의 운명을 말해주듯이 그는 자신의 본질, 즉 자아를 잃어버린채 향기만을 광적으로 좇는 미치광이로 그 운명을 마치게 된다. 가장 순수한 것이 때로는 가장 본능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나?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극적 결말을 맞이하며 놀랄 것이다. 25명의 소녀를 죽인 살인마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향수를 선보임으로서 사형장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게끔 하며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뒤 유유히 사형을 면하고 사형장을 빠져나온다. 다소 극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후반부는 사실적인 묘사와 향수라고 하는 가공할 물건의 특성상 극적 재미를 더 해준다. 정말 향수 몇방울로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그의 최고의 향수는 결국 거리의 부랑자, 깡패, 거지 등 파리에 살고 있는 최하층민들로 하여금 동경과 외경심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그들은 그루누이를, 최고의 향수로 엄청난 향기를 내뿜는 그루누이를 토막쳐 생으로 삼키고는 속안에서 넘치는 행복으로 주체를 못 하게 된다. 자신들이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날로 먹었음에도 자신들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행복의 느낌에 스스로 의심할 겨를도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마치 그루누이가 자신의 순수한 동기에서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처럼 말이다.

책을 덮는 순간, 18세기 프랑스가 떠오르면서 소설 속의 시대적 배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파리의 최하층에서 태어나 전 프랑스를 뒤흔들며 위명을 떨친, 향수의 천재, 악마적 천재 그루누이는 그렇게 다시 최하층으로 사라졌다. 무에서 무로 돌아간 것인가?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소설 속 묘사나 자세한 내용 전개는 책을 결코 황당하게만 이끌어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설 속으로 빨려가게 하는 흡입력이 느껴진다. 마침 주인장이 이 글을 쓸때 즈음 주인장의 여자친구도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물품인 향수라는 매개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한 책이 아닌가 싶다. 향수. 한번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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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김영명 지음 / 을유문화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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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없을까 해서 부대 도서함을 봤을때, 주인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다. 눈병에 걸렸다가 막 나았던 터라 주인장이 갖고 있던 두꺼운 전문서적보다 가볍게 읽을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할 때였다. 제목이 참 재밌지 않은가?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호기심 반, 기대 반에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일본에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가 있던 저자가 일본에 대해 적은 책이다. 그 1년간 적은 초고를 귀국후 약간의 보충 후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일단, 이 책, 아니~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때면 주인장은 항시 전제조건을 깔고 본다.

'이 책의 전부가 진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장이 직접 일본에 가 보지 않은 이상 단편적인 지식 습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자신이 직접 해 보지 않은 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항상 자기 현 시점, 배경을 위주로 한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사회에 있을때로 그랬고 물론 군대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봐야 그나마 이런 류의 책을 읽는데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이 서기에 이번에도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계속 넘겨봤다.

책의 첫 내용은 '일본의 첫인상 : 미국같은 소도시' 였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유행과 패션의 선두 주자이자 서구화가 가장 빠른 아시아권 나라임을 느끼게 했다. 일본이라는 곳을 한번도 안 가 봤고,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에 주인장이 처음 느낀 일본은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미국에 놀러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소도시(변두리의 도시)들은 참 푸근하고,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건물들도 정겨워 보인다. 주인장의 친척이 사는 곳도 앨러바마 주의 한스빌이라는 작은 소도시의 외곽 거주지다. 그런데 일본이 그런 느낌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거리의 풍경이 느껴졌다. 뭔가 서로 맞지 않는 위화감의 나라, 일본. 이 책 첫면에서 접한 느낌이다.

안 그래도 다음 내용은 '모순의 나라 일본' 이었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같다. 경제 대국의 빈약한 국민 생활, 그래~정말 일본은 그런 것 같애, 딱 맞는 말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스페인史를 배울때가 생각났다. 펠리페2세 치하의 스페인은 강성대국이었으나 중공업 위주의 부국 정책으로 인해 그 나라 국민들은 결국 가난했다고 말이다. 스페인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웃음이 나왔다. 내심 주인장이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밖의 내용들은 참신한 것들이 많았다. 예전에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을 봤을때 그냥 흘려 봤었는데 그런 류의 책을 이번에 다시 보니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책 전체적으로 主가 돼는 내용은 일본인의 정신적인 빈곤에 대한 것들이다. 주인장도 이 표현을 좋아하게 됐는데 물질만능주의,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정신적 황폐화, 정신적인 소극적 자세, 서구화에 대한 막연한 외경심, 모순으로 가득찬 생활...막연히 알고 있었던 일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돼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도 크게 잘난 건 없고 일본도 잘난 건 없다. 그러니 서로서로 잘 하자...라고 말이다. 어차피 동북아시아가 전체 아시아의 주요 지역(HUB)이라고 할 수 있고, 결국 한-중-일 3국으로 그 범위는 좁혀진다. 문제는 이 3국이 합심할때 그 주도 세력이 누가 돼느냐에 따라 아시아의 경영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장은 한국(되도록이면 통일한국, 최소한 남-북 연합국가라도)이 그 주도국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최소한 주체자로서 다른 2국에게 있어 꿀리지는 않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의 이런 바램은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이 책이 3년 전에 나왔고, 이런 국제 정세가 한두해 지속된 것이 아닌걸 감안한다면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은 고요속의 외침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관료 통제 사회 일본, 야쿠자가 정경계를 지배하는 좀 특이한 사회, 그런 일본인들과 같이 걸어나가야 할 한국인, 과연 어떤 대처가 필요한 것일까? 강한 힘? 주인장이 보기에는 강한 힘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 외교가 적합하지 않나 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책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일본의 이런 치부를 드러내고 아무리 속내를 파헤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쓴 내용은 자신의 저서(이 책 말고 이전에 나온 다른 책)가 일본측에서 번역, 판매돼는 과정에서 완전히 왜곡당하고 뒤틀려 버렸으며 오히려 번역자에게 훈계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주인장과 같은 독자들은 다 이 부분에서 화가 났을 것이다. 하물며 그 당사자야 어련하겠는가. 물론 저자는 법적 대응까지 불사했지만 일본측에서는 묵묵부답, 요즘 표현으로 그냥 쌩 깠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좋은 점고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물론 나쁜 점이 더 많아 보인다) 같이 나아가자~라고 취지를 잡아놓고는 마지막에 일본의 만행(이건 만행이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책장(마지막)을 넘기고 책을 덮으면서 느낄 것이다. 역시 일본놈들은 이렇다니깐~하면서 가식적인 전범 처리나 위안부 보상 문제를 떠 올릴 것이다. 주인장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계몽적인 자세는 솔직히 큰 도움이 못 된다. 보다 현실적인 책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 가 한창 한국 독서계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 독도문제(이건 뭐 수년간 계속된 것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교과서 문제때도 그랬다. 아니, 늘 그랬다. 냄비 정신이라고 불리는 그 현상은 언제나 그랬다. 마치 월드컵 분위기마냥 말이다. 평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이런 불나방같은 사상이 얼마나 더 처박혀 있을까? 한번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왜? 국민들이 평소 이런 것들을 생각할리 없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다시 생각한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이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책은 지식 전달에만 그치면 안 된다고 본다. 역사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 책의 단점일 수는 없다. 이 책은 분명 일본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이 책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나아가 신빙성을 부여한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음으로서 얻은 사실들은 많다. 그럼에 느낀 부분 역시 많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이랄까, 그건 역시 얻을 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고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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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1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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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 특별명령 11905

1976년 美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한번,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차 되풀이한 명령이다. 대개의 역사 소설의 추론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이 한줄의 명령에서 새로운 역사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현재까지 내려오는 한-미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10.26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쾌하면서도 빠른 펜터치로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하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지 않나 한다.

자주국방을 외치던 박정희 대통령, 그런 그의 독재를 끝마친 김제규, 그 이후 집권한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벌 세력, 마침내 문민정부를 외친 김영삼과 김대중까지 지난 수십년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격변의 한국史를 이룩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는 다시금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 역사를 장식 중이다.

내용은 기존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미국과 당시 한국의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그려낼 뿐이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김제규는 박정희를 죽인다. 이후 자주국방과 미사일, 핵에 대한 언급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고 강력한 정책 아래 대한민국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마지막은 희망적인 필체로, 김대중이 미대통령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내보이고 해피엔딩(?)으로 결실을 맺지만 어딘지 모르게 주인장이 보는 김진명 소설의 마무리는 늘 빈약하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내용을 독자가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데서 오는 유일한 오점이라고 해야 할까. 늘 마지막을 허무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참신한 소재로 고루한 내용을 재구성하는 건 분명 그만의 능력이리라.

주인장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박정희 통치하 대한민국과 미국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친선적 관계를 맺어온 미국. 한국의 생존과 그 뿌리를 같이한 것이 극동의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함께 세계를 두고 다퉜던 구소련의 KGB는 미국 CIA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세계를 CIA의 정보망 아래 두는 것을 방치했었다. 청와대 도청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 시절 대한민국이 독재와 폭압으로 얼룩진 역사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월남파병, 눈부신 고속 성장, 활발한 대외 활동, 자주 국방을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혹자는 그를 뛰어난 지도자로, 혹자는 그를 다시없는 독재자로 규정하지만 객관적으로 한번 보자. 그는 분명 한국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이다.

주인장은 그 시기 역사에 대해 그다지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김제규의 10.26 사건에 대해서도 막연히 미국이 공작을 꾸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정규, 비정규적으로 박정희 시절 한국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었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 당시 한국은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에 있어서도 미국의 뜻에 맞지 않는 자주국방을 실현시키려고 했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주인장에게 이 책은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상당히 났曆?있는 역사 재해석의 장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주인장은 물론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그(저자)가 이처럼 현대사를 보고 있듯이 주인장도 나름대로의 현대사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언젠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주인장은 가끔 되새긴다.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이 당찬 도전장을 내민다면? 100%의 승산이 없을 경우 강자는 모험을 하지만 약자는 확률 게임을 한다. 주인장이 보는 나름대로의 인생 철학이다. 전세계 국가가 쏟는 국방비보다 많은 국방비가 한해 미국이라는 帝國을 강력하게 덧칠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미국과 맞설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는 것 또한 주지해야 할 것이다.

왜 늘 역사는 아이러니할까? 일제의 극악무도한 칼날이 명성황후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때 우리는 분노하고 치를 떨었다. 그런데 왜 미제의 사주를 받은 김제규의 총알이 박정희 대통령의 몸을 관통할 는 별말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잊고 있는 사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한번 되새겨보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어떻게 전개되야 옳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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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쎄 / 사계절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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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쎄의 이 책은 이제 중앙아시아 분양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분명히 평가받게 되었고, 어느 언어로 씌어진 개설서이든 아직도 이 글을 능가하지 못 하고 있다.'

주인장의 생각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이 세 사람은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족史의 대가들이다)이 옮긴이의 말에서 남긴 문구다. 개인적으로 주인장도 이런 대우를 받는 역사가가 되고 싶다. 뭐 주인장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역사가라도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지금 주인장은 감히 이런 찬사를 받고 있는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려고 한다.

유목제국사, 처음 이 책을 접한 주인장은 지금까지 유목민족사에 관한한 르네 그루쎄만한 역사가를 보지 못 했다. 물론 주인장의 유목민족사 지식 수준이 얇고 공부한 기간도 짧기에 이런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다소 성급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주인장이 본 책과 논문 중에서 르네 그루쎄의 작품(주인장은 이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은 대단한 정도다. 그는 유목민족의 역사, 끊임없는 정복과 재정복의 역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옮긴이들도 그랬겠지만 주인장은 이 유명한 사가의 놀라울 정도의 지식 보유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런 이 책의 서평을 쓰고자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군인이라는 몸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또 읽고 느끼면서 주인장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른 결과들을 얻었다. 그리고 그 다른 결과에 대해 쓰려고 한다. 예전에도 주인장은 이 책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잠깐 쓴 적이 있다. 바로 '한국사와 유목제국사와의 관계' 다. 이 정도까지 쓰면, 눈치빠른 사람들이라면 '고구려' 와 '발해' 를 문득 떠올릴 것이고, 더 나아가 '단군조선' 과 '부여' 등을 떠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북방민족, 유목민족...우리 역사에 이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력이 있을까? 분명 단군조선 시대와 거수국 시대, 열국시대를 거쳐 우리 민족은 대륙 동북방에 웅거하면서 북으로는 유목세력, 남으로는 대륙계 세력과 공조, 지배 등의 관계를 가지며 존속해 왔었다. 그리고 세계사(한국사나 동양사가 아닌)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세력들도 등장하니 주인장은 고구려와 발해를 꼽곤 한다. 이미 고구려같은 경우는 연구 성과나 관련 저서들이 엄청나게 쏟아진 상태로 '정착형 기마민족' 이라는 표현도 어느정도 보편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는 없다 하겠다.

또 발해 역시 고구려의 뒤를 이어 검은담비의 길(Sable Road)을 통해 북방을 가로지르며 활약했었다. 그런 고구려, 발해의 흔적이 왜 르네 그루쎄의 책에는 표현되지 않을까? 르네 그루쎄가 몰라서? 아니다. 그의 책에 이들은 분명히 언급되어 이싸. 하지만 극히 소수의 지식(단편적인 지식)만이 기록되어 있다. 주인장이 본 르네 그루쎄의 유목제국에 고구려와 발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문명화된 민족의 북방 진출로 이뤄진 결과여서 그럴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도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유목민족과 접촉한 문명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도 전성기 백제나 고구려, 발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륙을 휘저은 고구려와 백제, 유목민족의 유입으로 수혈에 성공해 강성해진 신라, 발해 등등...모든 게 유목민족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북벌 3황제(효명제. 효장제, 효화제)와 그 이전 시기때 활약한 차태왕의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 주도하에 이뤄진 백제, 선비, 흉노 등등의 연합 전선, 르네 그루쎄는 흉노와 후한과의 대결만 그려내고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역할을 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차지한 대륙 동북방을 막연하게 오환, 선비 등의 거주지로만 적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 지역에 흔히 야만, 잔인, 비문명화된 수렵과 목축을 일삼는 유목민만이 수십세기 지냈다고 인식하게끔 말이다.

아울러 남북조 시기, 북위와 북방의 유연을 언급하면서 고구려는 단지 유연의 동쪽 끝 경계인 요하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4~5세기, 고구려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고구려를 제외하다니, 그는 발해를 두고 '퉁구스-고구려계' 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면서 발해를 문명화된 '퉁구스-고구려계' 가 다수의 퉁구스계 유목민을 다스리며 세운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즉, 고구려-발해의 계승적 의미보다 문명화한 고구려-잔여 세력의 문명화한 발해 건국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르네 그루쎄는 고구려보다 발해를 더 많이 서술하고 있다. 아마 발해의 유목민족적 흔적이 더 많이 녹아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주인장은 나중에 꼭 책을 쓸 것이다. 북방 유목제국사의 역사에 꼭 고구려의 전신인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후진은 발해까지,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북조(北朝)의 역사를 집어넣을 것이다. 대륙 동북방에서 수천년 존재하면서 수많은 유목 민족과 공존해온 한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한민족의 활약상이 왜 없단 말인가? 한국사학계도 다원적인 변화,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는 않을까? 왜 북방사를 한국사학계는 등한시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인장은 유목제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했던 것처럼 유목민족사의 개설서로 참고하고, 또 인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에 한국사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중요하지 않아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아서?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한 무제와 흉노(묵특대선우의 거대제국)와의 대결, 그 시기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은 분명 아시아의 3강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무제가 흉노 정벌 이전에 위만조선을 두고 흉노의 한팔과도 같다고 하면서 1년여의 장기전에도 불구하고 위만조선을 정벌했던 것에서 볼수 있듯이 우리는 이 사건이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위만조선이 붕괴되지 않았다면(강력한 일국체제에서의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4군의 실생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제 휘하 한의 용장들이 마음껏 흉노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 무제 - 선제(宣帝) 시대 흉노가 붕괴되고, 서흉노가 추강 유역에서 격파된 뒤 역사에서 사라진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훈의 등장,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혼란기 후 성립된 후한 왕조, 그리고 서흉노의 소멸, 분열되어 남흉노는 한의 번병이 되고 북흉노만이 동흉노의 맥을 잇게 된 흉노와 동북방의 고구려, 다시 3강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시기 고구려는 주변 세력을 연합해 후한 공략전을 계획할 정도로 강성했다. 이미 요서를 지나 하북 지방이 고구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후한은 이에 화해하기 바빴다. 여기서 고구려는 동북방 연합체의 구심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하위 개념인 선비, 오환, 흉노의 활약만이 서로간의 긴밀한 연계성 없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전성기인 4~5세기, 유연, 북위, 고구려, 남조(송)의 등장은 다시 4강 체제라는 다소 변화된 다원적 천하관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르네 그루쎄의 책은 유연-북위간의 패권 다툼과 돌궐(이후 등장하는 위구르 포함), 거란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거란이 있던 열하 일대 혹은 송막 지방이 고구려의 영토였고, 내몽골고원 일대까지 고구려의 세력권이었으며 유연과 지두우를 분할하고, 북위와 북연을 두고 다툰 고구려를 빼고 어떻게 당시 동북방 상황이 설명 가능하겠는가? 그 결과 고구려의 위성국(주인장이 보는 고구려-북위 관계)이 主가 되어 역사 전개는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34p의 '기원후 500년경 최초 '몽골의 제국들' : 유연과 에프탈' 이라는 제목의 지도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타나 있다. 동, 서위로 갈라진 북중국 위로 추강 유역과 옥서스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에프탈, 전 북막의 지배자인 유연(혹은 돌궐과 고차 혹은 철륵), 요하 중상류 이남의 거란이 전부다. 어째서 북위와 동, 서위의 고관대작 및 지배층이 고구려의 고씨 족벌들이며 고로 북위나 거란 등이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르네 그루쎄의 책을 보며 느낀 거라면 그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게 그의 거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구려 멸망 후 대륙 동북방에서의 변화를 마치 유목민족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교했다. 잡다한 부족 연합체의 해체후 전 지배층이 다시 여러 부족을 연합해 나라를 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틀린 건 아니지만 너무 유목민족적 성격만 강조하는 아닌가 싶다. 발해 건국 이전, 거란, 발해 지배층, 돌궐, 당과의 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음에도 거기서 고구려民의 활약상은 제외됐다. 그렇기에 검은 담비의 길에 대한 언급도 없다. 사마르칸트까지 상인 및 사절단을 파견한 고구려의 언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목민족과 한민족, 어떻게 보면 차이가 있고 어떻게 보면 모호한 경계다.

하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고구려 차태왕의 백제(마한)-선비-흉노 연합 전선이 후한을 도륙하는 건 무시할만 하고, 조조 휘하 사마의의 오환 정벌은 대단한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광개토호태왕과 장수태왕 시절 동아시아를 제패하고 고구려 독자적인 천하관을 이룩한 일은 별일이 아니고 겨우 북중국과 서역 일부를 지배한 북위는 대단한 세력이란 말인가? 일시 강성해져 당을 휘젓고 다니던 돌궐제국은 두려우며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당이 함부로 하지 못 하던 발해는 단순한, 스쳐 지나가는(고구려 이후 요, 금이 생기기 이전에 있던 나라) 나라일 뿐이란 말인가?

뭐 이 정도니 이정기나 고선지를 들춰내선 뭣하랴?

안타까움, 이 책은 엄청난 지식 못지 않게 엄청난 안타까움도 느끼게 해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가가 없다. 주인장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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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책 겉면에 있는 이 문구가 마음에 들어 책장을 하나씩 넘기게 됐다. 한창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고 써 있기도 하지만 워낙 이런 교양서적 쪽은 관심이 없는터라 평소에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솔직히 톨스토이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젠가 한번 글을 읽어보고자 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책을 읽게 돼서 한편으로는 기분 좋기도 하다.

이 책은 몇십페이지 내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그저 단순한 동화책이겠거니~하고 느꼈는데 점점 읽을수록 단순한 동화책 같지만은 않았다. 이 책에는 신(神)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항상 신을 생각하고 신과 함께 살며 결국은 신의 은총을 받는다는 사상, 또한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 원천의 마음을 중시하는 사상, 탐욕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상 등, 약간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내용 전개 속에서 저자는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인 박형규는 톨스토이 문학 번역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자로서 그는 이 단편들이 톨스토이 '민화' 시리즈의 효시라고 말하고 있다.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 국가의 근본인 백성들에 대한 삶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문체로 빚어내는 그의 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이 바로 톨스토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부 여느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만의 독창적인 내용 전개는 단순한 소재와 단순한 구도를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동화책도 민화집도 아니다. 여느 곳에서 읽는, 어린이가 글을 배우기 위해 보는 잡화도 아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글에 빠져들게 하고 뭔가 느끼게 하는 그런 매력을 지닌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지만 만약 기독교를 믿는 절실한 신자였다면 이 책을 읽고 더 느끼는 것이 많지 않았을까 한다.

주인장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가끔 이런저런 글을 쓰지만, 동화책이나 민화집만큼 쓰기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누구나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이 말은 곧 저자 역시 상당한 작품 집필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거기에다가 계몽력과 숨겨진 진의(眞意)를 갖추려면 더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평소 교양서적은 독서하는데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주인장이다.

이 단편선은 주인장에게 있어서 단순한 윤활유 역할을 넘어 군생활하는데 있어 포근한 마음과 여유까지 갖게 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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