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쎄 / 사계절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루쎄의 이 책은 이제 중앙아시아 분양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분명히 평가받게 되었고, 어느 언어로 씌어진 개설서이든 아직도 이 글을 능가하지 못 하고 있다.'

주인장의 생각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이 세 사람은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족史의 대가들이다)이 옮긴이의 말에서 남긴 문구다. 개인적으로 주인장도 이런 대우를 받는 역사가가 되고 싶다. 뭐 주인장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역사가라도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지금 주인장은 감히 이런 찬사를 받고 있는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려고 한다.

유목제국사, 처음 이 책을 접한 주인장은 지금까지 유목민족사에 관한한 르네 그루쎄만한 역사가를 보지 못 했다. 물론 주인장의 유목민족사 지식 수준이 얇고 공부한 기간도 짧기에 이런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다소 성급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주인장이 본 책과 논문 중에서 르네 그루쎄의 작품(주인장은 이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은 대단한 정도다. 그는 유목민족의 역사, 끊임없는 정복과 재정복의 역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옮긴이들도 그랬겠지만 주인장은 이 유명한 사가의 놀라울 정도의 지식 보유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런 이 책의 서평을 쓰고자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군인이라는 몸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또 읽고 느끼면서 주인장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른 결과들을 얻었다. 그리고 그 다른 결과에 대해 쓰려고 한다. 예전에도 주인장은 이 책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잠깐 쓴 적이 있다. 바로 '한국사와 유목제국사와의 관계' 다. 이 정도까지 쓰면, 눈치빠른 사람들이라면 '고구려' 와 '발해' 를 문득 떠올릴 것이고, 더 나아가 '단군조선' 과 '부여' 등을 떠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북방민족, 유목민족...우리 역사에 이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력이 있을까? 분명 단군조선 시대와 거수국 시대, 열국시대를 거쳐 우리 민족은 대륙 동북방에 웅거하면서 북으로는 유목세력, 남으로는 대륙계 세력과 공조, 지배 등의 관계를 가지며 존속해 왔었다. 그리고 세계사(한국사나 동양사가 아닌)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세력들도 등장하니 주인장은 고구려와 발해를 꼽곤 한다. 이미 고구려같은 경우는 연구 성과나 관련 저서들이 엄청나게 쏟아진 상태로 '정착형 기마민족' 이라는 표현도 어느정도 보편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는 없다 하겠다.

또 발해 역시 고구려의 뒤를 이어 검은담비의 길(Sable Road)을 통해 북방을 가로지르며 활약했었다. 그런 고구려, 발해의 흔적이 왜 르네 그루쎄의 책에는 표현되지 않을까? 르네 그루쎄가 몰라서? 아니다. 그의 책에 이들은 분명히 언급되어 이싸. 하지만 극히 소수의 지식(단편적인 지식)만이 기록되어 있다. 주인장이 본 르네 그루쎄의 유목제국에 고구려와 발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문명화된 민족의 북방 진출로 이뤄진 결과여서 그럴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도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유목민족과 접촉한 문명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도 전성기 백제나 고구려, 발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륙을 휘저은 고구려와 백제, 유목민족의 유입으로 수혈에 성공해 강성해진 신라, 발해 등등...모든 게 유목민족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북벌 3황제(효명제. 효장제, 효화제)와 그 이전 시기때 활약한 차태왕의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 주도하에 이뤄진 백제, 선비, 흉노 등등의 연합 전선, 르네 그루쎄는 흉노와 후한과의 대결만 그려내고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역할을 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차지한 대륙 동북방을 막연하게 오환, 선비 등의 거주지로만 적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 지역에 흔히 야만, 잔인, 비문명화된 수렵과 목축을 일삼는 유목민만이 수십세기 지냈다고 인식하게끔 말이다.

아울러 남북조 시기, 북위와 북방의 유연을 언급하면서 고구려는 단지 유연의 동쪽 끝 경계인 요하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4~5세기, 고구려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고구려를 제외하다니, 그는 발해를 두고 '퉁구스-고구려계' 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면서 발해를 문명화된 '퉁구스-고구려계' 가 다수의 퉁구스계 유목민을 다스리며 세운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즉, 고구려-발해의 계승적 의미보다 문명화한 고구려-잔여 세력의 문명화한 발해 건국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르네 그루쎄는 고구려보다 발해를 더 많이 서술하고 있다. 아마 발해의 유목민족적 흔적이 더 많이 녹아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주인장은 나중에 꼭 책을 쓸 것이다. 북방 유목제국사의 역사에 꼭 고구려의 전신인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후진은 발해까지,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북조(北朝)의 역사를 집어넣을 것이다. 대륙 동북방에서 수천년 존재하면서 수많은 유목 민족과 공존해온 한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한민족의 활약상이 왜 없단 말인가? 한국사학계도 다원적인 변화,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는 않을까? 왜 북방사를 한국사학계는 등한시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인장은 유목제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했던 것처럼 유목민족사의 개설서로 참고하고, 또 인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에 한국사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중요하지 않아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아서?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한 무제와 흉노(묵특대선우의 거대제국)와의 대결, 그 시기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은 분명 아시아의 3강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무제가 흉노 정벌 이전에 위만조선을 두고 흉노의 한팔과도 같다고 하면서 1년여의 장기전에도 불구하고 위만조선을 정벌했던 것에서 볼수 있듯이 우리는 이 사건이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위만조선이 붕괴되지 않았다면(강력한 일국체제에서의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4군의 실생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제 휘하 한의 용장들이 마음껏 흉노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 무제 - 선제(宣帝) 시대 흉노가 붕괴되고, 서흉노가 추강 유역에서 격파된 뒤 역사에서 사라진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훈의 등장,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혼란기 후 성립된 후한 왕조, 그리고 서흉노의 소멸, 분열되어 남흉노는 한의 번병이 되고 북흉노만이 동흉노의 맥을 잇게 된 흉노와 동북방의 고구려, 다시 3강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시기 고구려는 주변 세력을 연합해 후한 공략전을 계획할 정도로 강성했다. 이미 요서를 지나 하북 지방이 고구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후한은 이에 화해하기 바빴다. 여기서 고구려는 동북방 연합체의 구심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하위 개념인 선비, 오환, 흉노의 활약만이 서로간의 긴밀한 연계성 없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전성기인 4~5세기, 유연, 북위, 고구려, 남조(송)의 등장은 다시 4강 체제라는 다소 변화된 다원적 천하관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르네 그루쎄의 책은 유연-북위간의 패권 다툼과 돌궐(이후 등장하는 위구르 포함), 거란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거란이 있던 열하 일대 혹은 송막 지방이 고구려의 영토였고, 내몽골고원 일대까지 고구려의 세력권이었으며 유연과 지두우를 분할하고, 북위와 북연을 두고 다툰 고구려를 빼고 어떻게 당시 동북방 상황이 설명 가능하겠는가? 그 결과 고구려의 위성국(주인장이 보는 고구려-북위 관계)이 主가 되어 역사 전개는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34p의 '기원후 500년경 최초 '몽골의 제국들' : 유연과 에프탈' 이라는 제목의 지도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타나 있다. 동, 서위로 갈라진 북중국 위로 추강 유역과 옥서스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에프탈, 전 북막의 지배자인 유연(혹은 돌궐과 고차 혹은 철륵), 요하 중상류 이남의 거란이 전부다. 어째서 북위와 동, 서위의 고관대작 및 지배층이 고구려의 고씨 족벌들이며 고로 북위나 거란 등이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르네 그루쎄의 책을 보며 느낀 거라면 그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게 그의 거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구려 멸망 후 대륙 동북방에서의 변화를 마치 유목민족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교했다. 잡다한 부족 연합체의 해체후 전 지배층이 다시 여러 부족을 연합해 나라를 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틀린 건 아니지만 너무 유목민족적 성격만 강조하는 아닌가 싶다. 발해 건국 이전, 거란, 발해 지배층, 돌궐, 당과의 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음에도 거기서 고구려民의 활약상은 제외됐다. 그렇기에 검은 담비의 길에 대한 언급도 없다. 사마르칸트까지 상인 및 사절단을 파견한 고구려의 언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목민족과 한민족, 어떻게 보면 차이가 있고 어떻게 보면 모호한 경계다.

하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고구려 차태왕의 백제(마한)-선비-흉노 연합 전선이 후한을 도륙하는 건 무시할만 하고, 조조 휘하 사마의의 오환 정벌은 대단한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광개토호태왕과 장수태왕 시절 동아시아를 제패하고 고구려 독자적인 천하관을 이룩한 일은 별일이 아니고 겨우 북중국과 서역 일부를 지배한 북위는 대단한 세력이란 말인가? 일시 강성해져 당을 휘젓고 다니던 돌궐제국은 두려우며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당이 함부로 하지 못 하던 발해는 단순한, 스쳐 지나가는(고구려 이후 요, 금이 생기기 이전에 있던 나라) 나라일 뿐이란 말인가?

뭐 이 정도니 이정기나 고선지를 들춰내선 뭣하랴?

안타까움, 이 책은 엄청난 지식 못지 않게 엄청난 안타까움도 느끼게 해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가가 없다. 주인장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