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맨 처음 이 책을 봤을때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옆에 적히 부제 - 어느 살인자의 이여기 - 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로맨틱 소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슨 살인에 관련된 책이었던 것이다. 추리소설? 스릴러물? 심리소설? 무슨 소설인지 몰랐다. 모르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결국 책을 펼쳤고 한장씩 읽어나간 이 책에 대해서 지금부터 소개할까 한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이 주인공이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 헤깔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이 책의 재미는 강하게 날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추리소설의 마니아들이 셔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실존인물인듯 여기면서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소재는 제목처럼 '향수'다. 향수하면 번뜩이는 것은 아름다운 것, 은은한 것, 뭐 이 정도가 연상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향수가 등장한다.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겠지만 여기에서의 향수는 단순히 그런 미적 소재가 아니다. 한 인간 그 자체이며, 그 인간의 전부이며 그 인간이 평생을 두고 매진한 목표이자 또한 그의 죽음까지 장식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향수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 향수 광신도(狂神道)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몸에서 체취 하나 품지 못하고 살아가는 주인공. 한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파리 뒷골목에서 잡부 생활을 하며 성장해나간다. 그러면서 그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대해서 주인공은 깨닫기 시작한다. 정작 자신은 향기 하나 없는 몸으로 태어났건만 그의 코는 슈퍼 컴퓨터처럼 세상의 모든 냄새를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정확히 분석해내 국립도서관의 책들처럼 완벽하게 정리해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그 자신이 스스로 말하듯 '세상 모든 냄새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독특한 소리, 독특한 시대적 배경, 향수가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향수 사용에 대해 결코 환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궁정문화가 한없이 발달하고 세상 -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유럽과 간접적인 접경 지역에 국한된 - 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의 수도 파리, 어마어마한 인구가 모여사는만큼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 또한 이 곳이다. 수천년전 고대 인도나 각종 고대 문명국들이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완비했던 것에 비해 수천년 뒤의 프랑스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베르사유 궁전, 그 완전하고도 화려한 궁전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화장실'이다. 하이힐과 향수의 발달사는 그 근본적인 더러움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 연구로 승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 18세기 프랑스 파리. 그 곳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는 정말 귀신같이 냄새에 대해 예민하다. 세상 모든 것을 냄새로 분류하고 냄새로 판단할 정도다. 그런 그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운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수는 바로 아름다운 女人의 향기였다. 25번의 살인사건, 그렇게 죽인 여자의 머리카락과 몸에서 얻은 향수는 25병의 향수병에 차곡차곡 채워져 빛을 발하게 된다. 엽기적인 25번의 살인사건, 이 책은 그루누이라는 천재적인 살인마의 탄생부터 성장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그의 일대기를 주욱,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나오는 향수에 대한 얘기들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이렇게 향수를 만드는구나, 하는 전문적인 지식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18세기 프랑스 파리와 역시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각종 향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마치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한가운데에 있게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직접 주인공인 그루누이가 되어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정작 세상의 모든 향기와 냄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향기는 갖고 있지 않는 자. 자신의 향기가 없어서 황당해하고 걱정하면서 인간의 체취를 만들어 자신에게 뿌리고 다니며 만족해하는 그루누이를 보면서 단순히 어린애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그렇지만 그 살인을 저지르는 그 행위조차도 너무나도 단순한 살인 동기와 행동때문에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기만 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루누이라는 사람의 운명을 말해주듯이 그는 자신의 본질, 즉 자아를 잃어버린채 향기만을 광적으로 좇는 미치광이로 그 운명을 마치게 된다. 가장 순수한 것이 때로는 가장 본능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나?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극적 결말을 맞이하며 놀랄 것이다. 25명의 소녀를 죽인 살인마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향수를 선보임으로서 사형장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게끔 하며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뒤 유유히 사형을 면하고 사형장을 빠져나온다. 다소 극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후반부는 사실적인 묘사와 향수라고 하는 가공할 물건의 특성상 극적 재미를 더 해준다. 정말 향수 몇방울로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그의 최고의 향수는 결국 거리의 부랑자, 깡패, 거지 등 파리에 살고 있는 최하층민들로 하여금 동경과 외경심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그들은 그루누이를, 최고의 향수로 엄청난 향기를 내뿜는 그루누이를 토막쳐 생으로 삼키고는 속안에서 넘치는 행복으로 주체를 못 하게 된다. 자신들이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날로 먹었음에도 자신들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행복의 느낌에 스스로 의심할 겨를도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마치 그루누이가 자신의 순수한 동기에서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처럼 말이다.

책을 덮는 순간, 18세기 프랑스가 떠오르면서 소설 속의 시대적 배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파리의 최하층에서 태어나 전 프랑스를 뒤흔들며 위명을 떨친, 향수의 천재, 악마적 천재 그루누이는 그렇게 다시 최하층으로 사라졌다. 무에서 무로 돌아간 것인가?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는 소설이지만 소설 속 묘사나 자세한 내용 전개는 책을 결코 황당하게만 이끌어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설 속으로 빨려가게 하는 흡입력이 느껴진다. 마침 주인장이 이 글을 쓸때 즈음 주인장의 여자친구도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물품인 향수라는 매개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한 책이 아닌가 싶다. 향수. 한번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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