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과 해독 - 고대 최강대국 히타이트, 100년 동안의 발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오흥식 옮김 / 푸른역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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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Hittite)'하면 당장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 주인장은 학교에서 철기문명을 최초로 일으킨 유목민으로 배웠던 것 같다. 그게 전부이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될때까지 그 어디에서도 이 히타이트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없다. 심지어는 히타이트에 대한 개설서는 커녕, 이들의 군사적인 활동이나 왕계, 문화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접했으니 그야말로 학계에서 히타이트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주인장이 게으르고 정보를 접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늦게 알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한건, 적어도 우리나라에 히타히트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연구 논문이나 개설서 하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주인장에게 있어 이 책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군대에 있을때 고고학 관련 서적을 찾으려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찾은 책인데, 처음에는 고고학 관련 서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히타이트에 대한 고고학 발굴 성과를 적은 책이었다. 물론 이 책 이후로 몇권의 책이 더 출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히타이트 발굴 100년사를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인 부분 이외에, 히타이트를 발견해내는 생동감 넘치는 과정을 알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몇권의 히타이트 서적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추천해주고 싶다. 또한 내용 자체도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대중서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재밌기까지 하다.

특히 히타이트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민족으로서 히타이트학 발전 100년사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적 요소를 강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다민족 다언어를 갖고 있었던 히타이트였기 때문에 제국과 민족의 표준어를 찾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그러다보니 발견되는 수많은 점토판의 해석을 두고 판독이 불가해졌고 히타이트에 대해서 전혀 알길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도 나오고, 이집트의 기록에도 나오는 히타이트였지만 그들 고유의 기록을 판독하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그 형태를 어렴풋이나마 추정할 수 없었고 그렇게 히타이트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히타이트의 수도인 '하투사스'가 위치했던 보가즈쾨이를 발굴하면서 소아시아 메마른 땅 밑에 흙더미를 쓰고 누워있던 문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곳에서 당대 오리엔트 최강의 권력을 유지했던 이집트 파라오와 히타이트 군주가 나눴던 협정 조약을 새긴 점토판이 출토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후 카라테페 탐사때는 히타이트학의 '로제타 비석'이 발견되면서 히타이트학이 급속도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히타이트에서 다양한 언어(8개)를 사용했으며 그들이 쓰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의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역사에 대해 하나둘씩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비와 베일에 쌓인 히타이트 제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그 안에 담겨진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1,700년에서 1,200년 사이, 지중해에 연한 아나톨리아 반도에 자리잡고 있던 히타이트. 전성기에는 소아시아 전역과 유프라테스 강 근교까지 진출하고 주변 수많은 소국들을 지배하면서 당대 최강의 군주였던 이집트 파라오까지 전투에서 도망가게 했던 나라가 바로 히타이트 제국이었다. 특히 저자는 B.C 1,296년, 이집트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군주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스가 각각 2만여명에 달한 대군을 동원해 맞붙은 '카데쉬 전투'를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폴 C.도허티가 쓴 '알렉산드로스의 음모(A Mistery of Alexander the Great)' 마지막 장면, 마케도니아군과 페르시아군이 그라니코스강에서 격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 이상으로 생동감 넘치는 그런 묘사였다. 하지만 카데쉬 전투는 그라니코스강 전투보다 약 10세기나 앞선 전투일 뿐더러 그 기록이 이집트측만이 남긴 일방적으로 왜곡된 기록이라는 점,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분명히 저자의 필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카데쉬 전투를 고대에 역사를 가른 결정적인 전투로 비정짓는다. 이 전투에서 오리엔트 최강의 군주, 당시까지-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기에도-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자랑하던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끄는 2만에 다다른 대군은 히타이트군에게 격파되어 대부분이 전멸하는 대패를 당하고 파라오는 겨우 구사일생으로 도망가게 된 것이다. 이후 람세스 2세의 영향력은 히타이트의 영향력 밖에서만 머물게 되었고 오리엔트 천하의 주도권은 바로 히타이트가 쥐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 기록에는 마치 람세스 2세가 대승을 거둔 것처럼 나와있어서 지금까지 왜곡된 역사가 전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 철저히 깨지면서 전혀 새로운 사실이 소아시아 일대에 그 형태를 남기며 생겨나고 있음을 은연 중에 느낄 것이다. 이후 저자는 히타이트 제국의 군주가 그 딸을 직접 데리고 람세스 2세의 궁궐을 방문하였으며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군주의 사위가 됨으로써 오리엔트 천하관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그 시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히타이트 제국은 단지 군사력만 월등히 강해서 주변 국가들을 지배했던 제국이 아니었다. 물론 당대의 다른 제국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경쾌한 2륜전차(二輪戰車)로 구성된 전차 군단을 육성함으로써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와 덧붙여 또 하나의 성문법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바빌로니아의 명군 '함무라비'가 남긴 성문법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히타이트가 문화적으로나 법제적으로도 여타 소아시아의 문명권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시기만 이른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오히려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사형제도 철폐에 대한 혁신적인 내용, 남녀 평등에 대한 부분을 다룬 점, 처벌 대신 보상을 중심으로 시행되던 형벌 원칙(이것이 특히 함무라비 법전과 극히 다른 점인데 당시 대단히 뛰어난 법률이었다고 보여진다), 다신교를 표방하는 종교적 관용의 자세 등,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봐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문명을 이룬 나라가 바로 히타이트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을 저자와 함께 하면서 주인장은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우선은 히타이트라고 하는 미지의 문명과 함께 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요, 다음은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이 철저히 깨져나가는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이 주의깊게 봤던 부분은 히타이트 군주가 전염병이 나라에 퍼지자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점토판에 실려있는 것이었다. 흔히 우리는 유리명태왕의 황조가를 두고 그 시대상을 파악하고 유리명태왕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 분석할 수 있는데 이것이 1세기대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히타이트 군주의 것은 그보다 십수세기 이전의 작품이었다. 신에 대한 고뇌와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의 고뇌가 실려있는 이런 작품은 아마 히타이트가 아니고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중동,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는 말을 남기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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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라진 문명 히타이트
    from to be immortal 2008-01-14 02:00 
    기원 전 13세기, 이집트 람세스 II 와 '영원한 동맹과 평화'를 약속했던 히타이트 왕조. 구약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고 이집트나  바빌론의  기록에도 등장하는 히타이트는 언젠가 사라져 그리이스 ,로마인들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1834년 터어키에서의 첫 유물 발굴 이후 문자 해독에 이르기 까지 히타이트 문명 탐사기록을 독일 제2 TV (ZDF)가 2007년 7월 방영했다. http
 
 
marine 2005-09-1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동 지방 역사는 기껏해야 나라 이름 정도 밖에 몰라서 늘 아쉬웠는데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히타이트 하면 철기 문명, 이렇게 밖에 몰랐어요

麗輝 2005-10-02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타이트학은 이제 막 태동된 새로운 고고학 분야입니다. 그에 따라 이것 말고도 히타이트 관련 서적들이 2~3권 정도 더 나왔는데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아마 이 책이 그 중에서 가장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히타이트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성서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살펴봐도 좋을 듯 합니다.

쿠자누스 2007-09-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엔가 독일에서 히타이트 유물전을 했었지요. 유럽에서도 히타이트 연구는 신천지인가 봅니다.

쿠자누스 2007-09-2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zdf.de/ZDFde/inhalt/6/0,1872,5560102,00.html 올해 7월 1일, ZDF 제2독일 TV에서 기록영화를 방영했네요.

麗輝 2007-10-0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좋은 자료를 알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이 책을 보면서 저도 히타이트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유럽에서도 관련 전공자들이 드문만큼 신천지에 속하는 연구분야인 것 같고요. 어쨌든,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
 
위대한 황제
라인하르트 라팔트 / 찬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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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로마 황제들에 대한 쓴 간단한 개설서이다.

로마에 대해서는 이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로마사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장도 이번에 13권이 나온 기념으로 12권 전집을 20% 할인해서 판다길래 살까 하다가 아직은 보류 중이다. 어쨌든 로마인 이야기가 저자 개인적인 생각(물론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을 통해 재미있게 로마사를 볼수 있다면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로마 황제들의 비사(秘史)를 담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주인장이 서양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데 그 중에서 조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부분이 있다면 로마사일 것이다. 1,0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양사의 중심에서 꿋꿋하게 지켜온 로마에 대해 왠만한 사람들은 다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로마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강력한 중장보병과 광대한 영토, 그리고 그 정점에 서있는 로마 황제에 대해 떠올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기원전 7세기 무렵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로마, 그런데 황제가 등극한 시기는 기원전 1세기 중반이다. 즉, 지난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로마는 황제나 제국이라는 것과는 동떨어진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로마하면 황제를 떠올리는가? 마도 흔히 배우는 로마사가 황제 통치기간 이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통사도, 생활사도 아닌 로마 황제들에 대한 인물평전적인 책임을 앞서 잠깐 언급했었다. 기원전 59년부터 395년까지 등장한 46명의 황제들 중에서 저자는 카이사르부터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네로, 도미티아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헬리오가발루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 율리아누스까지 총 11명의 황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황제 개개인의 출생부터 성장기, 즉위, 치적, 죽음에 이르는 부분을 마치 짧은 위인전처럼 쓰고 있어 일단 보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로마사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황제들 말고도 처음 들어보는 황제(헬리오가발루스를 주인장은 처음 이 책에서 봤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새로운 지식 습득에도 유용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김용만 선생님이 쓰신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을 보고 왜 연개소문 당대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적냐고 했을때 그건 연개소문을 통해 그 시대사를 조망하다보니 연개소문 본인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적었다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로마 황제들을 중점적으로 우선 서술하고 당대 시대사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뭐랄까, 황제 치세하의 로마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싱거운 책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흥미 위주로 로마사에 관심을 갖고 다가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주인장 역시 그런 기분으로 서점에서 이 책을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같이 책볼 시간이 없는 이때, 차를 타고 오고가며 보던가 쉬는 시간에 잠깐씩 읽기에는 더없이 좋았던 책이었다.

물론, 기존 로마사 연구서적들과 다소 상치되어 저자의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부분들도 있지만 로마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단, 이 책이 마냥 동화책처럼 쉽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가 로마사의 대가로 불리는만큼 이 책 역시 저자가 개설서처럼 쉽게 썼지만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고증한 내용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소 벅차다는 느낌을 줄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주인장이 앞에서 여러번 얘기했듯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가볍게 읽을수 있을만큼 전체적인 구성이 짜여있기 때문에 로마 황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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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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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 내세관 표현을 중심으로'라는 박사논문을 낸 저자가 쓴 첫번째 책이다. 앞서 주인장이 서평을 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보다 먼저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장은 이 책을 더 나중에 구입해서 봤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간략한 내용을 먼저 선보이고 나중에 더 완비된 내용을 책에 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고구려의 발견'을 보고 그 안에서 중요한 생활사 부분만 따로 실은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를 본 것처럼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먼저 보고 벽화 사진을 위주로 쓴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를 나중에 본 셈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책을 읽은데 대해서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체적인 내용은 두권의 책이 거의 동일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내용면에 있어서는 나중에 나온 책이 더 연구서적의 성격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에 더 중요하다고 볼수 있지만 대중서로서의 성격을 따진다면 먼저 나온 책이 더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나다를까 주인장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때 으례 참고도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전호태 선생님의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가 박사논문을 쓸때만 해도 고분벽화는 고구려사를 연구할때 부차적으로 보는 분야이지,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 가치가 크다 할 수 있겠다.

먼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주인장은 주저없이 다양한 원색의 사진들을 꼽는다.

고분벽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실물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도록들은 대단히 큰 도움이 되는데 이 책에 나온 다양하고 풍부한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구려 고분벽화의 진수를 알게해줄 정도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고분벽화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으며 고구려의 문화나 사회를 알아가는 데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주인장이 즐겨읽는 김용만 선생님의 책도 그 시작은 고분벽화에 나온 수레 연구 논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주인장 역시 애초에 고구려사를 공부할때는 고분벽화를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정치사나 전쟁사 위주로 고구려를 이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호태 선생님의 영향력 때문인지, 요즘은 고분벽화에 대단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고분벽화를 보면 그 안에서 당대 고구려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놀이를 즐기고,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를 잘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장은 전호태 선생님의 이 2권의 책을 상당히 즐겨 읽는 편이다.

사진을 이렇게 많이 싣고 또한 일반 대중들이 읽기 쉽게 책을 썼기 때문에 이 책은 전문 연구자는 물론이고, 고구려사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 고구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너무 대중성을 강조하다 보니 내용이 간소하고 연구결과가 소략하게 들어가 있다고 하지만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서와 연구서로써 동시에 양자를 충족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통사를 쓴다면 그런 부분이 어느정도 해소될수 있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이처럼 시각 자료에 한정되어 있는 특정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면 대중서 아니면 연구서,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먼저 나온 책은 대중서, 나중에 나온 책은 연구서의 성격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2권의 책을 참고한다면 고분벽화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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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 고구려인들의 삶의 원형을 찾아서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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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하나의 김용만 선생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을텐데 제목이 상당히 길어서 솔직히 주인장도 가끔 헤깔리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누구나 뜬금없이 왠 수레? 이럴 반응이 나올법한데 책을 읽다보면 왜 타이틀에 '수레'를 내걸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이 얼마전에 문명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수레에서부터 자동차까지 인류가 사용한 교통수단이 문명사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했었다. 왜냐하면 특정 지역에서만 모여살던 인류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간 계기가 바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책의 제목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다. 교통수단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문명사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며, 그것은 아울러 생활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은 앞서 저자가 '고구려의 발견'에서 언급했던 생활사 부분, 노태돈 선생님이 '고구려사 연구'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생활사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아시다시피 가격도 저렴하고 분량도 많지 않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대중서라고 생각한다. 미리 말하지만 주인장은 이 책을 상당히 오래전에, 아마도 고구려의 발견을 사고 얼마 안 있어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는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빌려드렸다가 전역할때까지 3년이 흘렀건만 결국은 받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샀는데 '예스24'에서는 물량이 없어서 '알라딘'에서 샀다. 얼마전에 선생님을 만나 여쭤봤는데 이보다 더 새로운 업그레이드판이 나올꺼라고 하시면서 일부러 재고물량 이외에는 새로 책을 찍어내지 않게 됐다고 하셨다.

아무튼, 주인장은 오늘 이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서평을 쓰고자 한다. 우선 이 책은 주인장이 갖고 있는 여러 역사책 중에서 유일하게 주인장 여자친구에게 권해서 읽게끔 한 책이다. 평소 주인장이 보는 역사책들이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하면서 쳐다보지도 않던 여자친구였는데 이 책만은 정말 봐도 후회하지 않을 꺼라고 해서 읽게 했는데 반응은 물론 A+였다. 지금은 주인장 여자친구도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책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국초에 집중되어 거론되는 복잡한 정치사나, 전쟁사에 대한 부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문헌이나 여러 사료에 나타나있는 세세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생활사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구려인의 장례문화, 놀이문화, 교통수단, 사회풍조, 국민 스포츠, 일반인의 생활모습 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물론 책을 보고나면 '이런 것쯤이야 뭐, 고구려인이라고 뭐 달랐나?'하면서 별거 아니라는듯이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술적인 뒷받침 아래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을 이 책에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상상이나 추정에 의한 언급은 '소설'이 되지만 역사적 근거가 담겨지게 되면 그건 소설이 아닌 '역사'가 되는 것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보면서 주목해서 본 부분은 딱 두가지다.

첫째는 고구려가 수레를 이용했기에 부국강병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의 예를 들면서 고구려와 조선의 차이를 극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그동안 교통수단 하면 흔히들 '가마'를 떠올리던 주인장의 생각이 굉장히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도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때 가마를 많이 썼을 뿐이지, 그 이전에도 가마를 타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선생님의 논문 '고구려 수레(車)연구-고분벽화를 중심으로'를 보면 당대 고구려인들의 화려하고 수준높은 교통문화를 알 수가 있다. 물론 '삼국사기' 등의 문헌기록만 보더라도 삼국시대 우리 선조들이 비효율적인 가마를 타고 다니지 않았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레는 오늘날로 말하면 자동차다. 오늘날 일국의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경제력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으며 그 경제력을 가늠할때는 발달된, 높은 수준의 산업 구조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봤을때 고구려는 자동차산업과 그에 따른 다양한 기간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라고 볼수 밖에 없다. 흔히 고구려가 북방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다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자들이 언제나 말만 타고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벽화를 보면 남녀가 사용하는 수레의 차이가 있었으며 여자들은 수레를 타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그들 스스로의 문화를 즐겼음을 알수가 있다. 여자가 자동차를 끌고 밖에 나가면 아직까지도 '집에서 밥이나 하지~왜 운전도 못 하면서 나오냐'는 말이 가끔씩 나오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미 고구려에서는 수레가 보편화된 사회였다. 이런데도 그 누가 문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되는 것이라 할수 있겠는가.

그 다음은 고구려에도 스타가 있다는 표현이었다. 스타(Star)라. 맞는 말이다. 활 잘 쏘고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 상무정신을 지닌 인물이 고구려에서는 영웅, 요즘말로 치면 스타였던 것이다. 주인장이 늘 말하지만 주인장은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두가지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첫째는 요즘이나 옛날이나 다를바가 없기에 요즘 시대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도 똑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두번째는 단지 시대적인 양태만 바뀌었기 때문에 이 부분만 바꿔주면 역사를 고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인장의 생각과 꼭 맞는 부분을 발견했으니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실제 고구려의 시조는 '광개토호태왕릉비'에도 나와있듯이 흔히 알고 있듯이 주몽이 아니라 추모가 맞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추모왕이라는 명칭보다는 동명성왕 주몽이라는 명칭이 더 자연스럽게 와닿는 것이 사실이다. 대체 이 주몽이라는 것이 뭐길래 이렇단 말인가. 주몽은 부여의 속어로서 '활 잘 쏘는 명사수'를 호칭한다고 한다. 요즘 쓰는 '탑건'이나 '탑 헬리건'이라는 말과 똑같은 명칭인 셈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역대 태왕들은 누구나 주몽이라 부를 정도의 활솜씨를 갖고 있었으니 고구려의 시조를 두고 주몽이라고 불렀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는 그만큼 고구려 태왕에 대한 특징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다른 나라 임금들과는 차별성을 두는 호칭일 것이다. 그 주몽이라는 명칭에서 스타라는 대중성까지 끌어내어 표현한 부분이 주인장은 정말 신선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이 두가지 내용만 괜찮고 나머지는 별볼일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인의 모습부터 여러 복식, 화장 문화, 음식 문화, 사상적 체계 등등 고구려인에 대한 자질구레한(?) 부분들은 이 책에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선생님께서도 만족해하시는 부분이고 주인장 역시 재미있게 봤던 부분이 있는데 그건 5장도 채되지 않는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던 '역사다큐-사수촌 여인의 인생 역경'이라는 챕터였다. 미천태왕 을불의 어릴적 여정은 '삼국사기'에 잘 나와있으니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자는 을불을 고생시킨 사수촌 여관 주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 고구려 평민 여성의 삶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온 고구려 관련 서적에서 찾아볼 수 없던 시도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인장이 뭐 이렇게 떠들었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책 내용은 어렵지 않고 또 읽기에 부담될 정도로 많지도 않다. 하지만 역사소설처럼 허황된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기에 '고구려의 발견'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혹시 전호태 선생님의 고분벽화 관련 서적을 본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즐길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또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주인장은 그 말을 가장 잘 실천한 고구려 서적을 꼽으라면 언제나 주저없이 이 책을 꼽는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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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전호태 지음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주인장이 갖고 있는 전호태 선생님의 책은 두권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라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노태돈 선생님의 것처럼 저자의 논문을 하나로 모은 책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동안 고분벽화라는 분야는 고구려사 연구에서 제한적으로 이용되던 것이었는데 저자가 독립적인 주제로 다룸으로써 연구가 보다 활성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태돈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고구려사를 이해하는 전체적인 줄기는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고분벽화 전반적인 부분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재정리한 것인데 이에 앞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라는 책을 먼저 출판하기도 했었다. 다시 말하면 처음에는 간략한 대중서를 먼저 내고 이후에 논문을 정리해 보다 학술적인 부분을 보강한 책을 낸 것이다. 하지만 주인장은 뒤에 나온 책을 먼저 사고, 먼저 나온 책을 나중에 사서 봤었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대중서에 비중을 뒀느냐, 학술서적에 비중을 뒀느냐 할 뿐이지 별 차이는 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나중에 나온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저자를 필두로 해서 고분벽화를 연구한 각종 자료들이 쏟아져나왔고 고분벽화에서 다양한 주제를 뽑아 활발한 연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책이 지니는 가치 또한 대단하다 해야할 것이다. 언젠가 주인장은 고구려사를 공부하려면 벽화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는 얘기를 들었다. 이 부분은 마침 문헌사학뿐 아니라 고고학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인장에게 대단히 인상깊었던 말이었다. 그런 조언을 듣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대학교 1학년때 이 책을 구입해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앞서 소개했던 두권의 책과 함께 이 책까지 총 3권의 책이 주인장이 오늘날까지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들이 비단 주인장 뿐만이 아니라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서평을 써서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시각 자료를 들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분벽화를 통해서 당대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점도 돋보인다. 발굴을 통해서 드러나는 유물, 유적은 당대인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면이 잘 드러나있는 셈이다. 저자는 고분벽화를 크게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와 계세적 내세관' '장식무늬계 고분벽화와 전생적 내세관' '사신계 고분벽화와 선-불 혼합적 내세관' 등 3가지로 나누고 있다. 고구려에 고분벽화가 처음 등장하는 시대부터 멸망할때까지 크게 3시기로 구분해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했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저자는 집안 지역과 평양-안악 지역의 지역적 차이에 대해서도 역사적, 고고학적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 다각도로 고분벽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한국사에서 고분벽화라는 존재는 연구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분벽화가 전해지는 시기는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이 고구려의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만큼 고구려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고분벽화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는데 이런 고분벽화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성립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고구려에서 고분벽화가 성행했다고 해서 고분벽화가 고구려 자생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면 안 되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까지도 지적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화적인 요소라는 것은 어떤 문명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날지 모르지만 그 문명권과 타 문명권이 교류 혹은 충돌하면서 전래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명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치 않았던 것들이 타 문명권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렇게 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변형되고, 토착화되어 특유의 문화가 발생-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요소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 발생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화적 요소를 자기만의 것으로 발전시킨 주체가 누구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고구려는 제국적 국가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개방적이고도 폭넓은 문명권을 형성했기 때문에 고분벽화를 이해하는데에도 역시 이런 면이 작용해야만 할 것이다. 고분벽화는 고구려 자생적인 것이 아니며 요양 일대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을 고구려가 받아들인 것이다. 아울러 고분벽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고구려만의 것이 있는 반면, 중국적인 것, 외래 종교적인 것, 동아시아 전반적으로 공통적인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장이 앞에서 언급했지만 고분벽화가 고구려 문명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고구려인들은 고분벽화라는 문화적 요소를 받아들여, '고구려 고분벽화'라는 독자적인 문화로 재탄생시켰던 것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장은 노태돈 선생님의 '고구려사 연구', 김용만 선생님의 '고구려의 발견', 전호태 선생님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이 3권의 책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고구려사에 대한 올곧은 학계의 생각과 객관적인 판단을 세우고 거기에 참신하고 다양한, 유용성있는 사고력을 더해 고분벽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고구려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명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고분벽화라는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문헌에 없는 것, 추정만 하는 것들이 고분벽화를 통해서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다. 1차 사료인데다가, 문헌에 남겨져 있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니 그 가치를 어찌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부록으로 실린 벽화고분의 분포와 벽화 구성에 대한 부분 역시 중요하다 하겠다. 여러 고분군에 대해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자세한 설명을 달고 있는데 고구려 고분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기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비록 역사적인 시각을 약간 접목하여 고분벽화를 단순한 설명식으로 언급하고 일정 기준을 두고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그 가치를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고분벽화 연구사 부분에서 거의 개척자 수준으로 내놓은 이 연구서적이 오늘날 고분벽화나 생활사 연구 부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신을 높이 사야한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미개발분야에 뛰어들어 일정한 틀을 잡아놓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보다 학문적인 발전은 그 다음에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까지 총 3권의 책을 감히 주인장은 고구려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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