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과 해독 - 고대 최강대국 히타이트, 100년 동안의 발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오흥식 옮김 / 푸른역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히타이트(Hittite)'하면 당장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 주인장은 학교에서 철기문명을 최초로 일으킨 유목민으로 배웠던 것 같다. 그게 전부이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될때까지 그 어디에서도 이 히타이트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없다. 심지어는 히타이트에 대한 개설서는 커녕, 이들의 군사적인 활동이나 왕계, 문화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접했으니 그야말로 학계에서 히타이트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주인장이 게으르고 정보를 접하는데 있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늦게 알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한건, 적어도 우리나라에 히타히트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연구 논문이나 개설서 하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주인장에게 있어 이 책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군대에 있을때 고고학 관련 서적을 찾으려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찾은 책인데, 처음에는 고고학 관련 서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히타이트에 대한 고고학 발굴 성과를 적은 책이었다. 물론 이 책 이후로 몇권의 책이 더 출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히타이트 발굴 100년사를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인 부분 이외에, 히타이트를 발견해내는 생동감 넘치는 과정을 알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몇권의 히타이트 서적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추천해주고 싶다. 또한 내용 자체도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대중서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재밌기까지 하다.

특히 히타이트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민족으로서 히타이트학 발전 100년사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적 요소를 강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다민족 다언어를 갖고 있었던 히타이트였기 때문에 제국과 민족의 표준어를 찾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그러다보니 발견되는 수많은 점토판의 해석을 두고 판독이 불가해졌고 히타이트에 대해서 전혀 알길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도 나오고, 이집트의 기록에도 나오는 히타이트였지만 그들 고유의 기록을 판독하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그 형태를 어렴풋이나마 추정할 수 없었고 그렇게 히타이트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히타이트의 수도인 '하투사스'가 위치했던 보가즈쾨이를 발굴하면서 소아시아 메마른 땅 밑에 흙더미를 쓰고 누워있던 문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곳에서 당대 오리엔트 최강의 권력을 유지했던 이집트 파라오와 히타이트 군주가 나눴던 협정 조약을 새긴 점토판이 출토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후 카라테페 탐사때는 히타이트학의 '로제타 비석'이 발견되면서 히타이트학이 급속도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히타이트에서 다양한 언어(8개)를 사용했으며 그들이 쓰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의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역사에 대해 하나둘씩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비와 베일에 쌓인 히타이트 제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그 안에 담겨진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1,700년에서 1,200년 사이, 지중해에 연한 아나톨리아 반도에 자리잡고 있던 히타이트. 전성기에는 소아시아 전역과 유프라테스 강 근교까지 진출하고 주변 수많은 소국들을 지배하면서 당대 최강의 군주였던 이집트 파라오까지 전투에서 도망가게 했던 나라가 바로 히타이트 제국이었다. 특히 저자는 B.C 1,296년, 이집트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군주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스가 각각 2만여명에 달한 대군을 동원해 맞붙은 '카데쉬 전투'를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폴 C.도허티가 쓴 '알렉산드로스의 음모(A Mistery of Alexander the Great)' 마지막 장면, 마케도니아군과 페르시아군이 그라니코스강에서 격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 이상으로 생동감 넘치는 그런 묘사였다. 하지만 카데쉬 전투는 그라니코스강 전투보다 약 10세기나 앞선 전투일 뿐더러 그 기록이 이집트측만이 남긴 일방적으로 왜곡된 기록이라는 점,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분명히 저자의 필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카데쉬 전투를 고대에 역사를 가른 결정적인 전투로 비정짓는다. 이 전투에서 오리엔트 최강의 군주, 당시까지-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기에도-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자랑하던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끄는 2만에 다다른 대군은 히타이트군에게 격파되어 대부분이 전멸하는 대패를 당하고 파라오는 겨우 구사일생으로 도망가게 된 것이다. 이후 람세스 2세의 영향력은 히타이트의 영향력 밖에서만 머물게 되었고 오리엔트 천하의 주도권은 바로 히타이트가 쥐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 기록에는 마치 람세스 2세가 대승을 거둔 것처럼 나와있어서 지금까지 왜곡된 역사가 전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 철저히 깨지면서 전혀 새로운 사실이 소아시아 일대에 그 형태를 남기며 생겨나고 있음을 은연 중에 느낄 것이다. 이후 저자는 히타이트 제국의 군주가 그 딸을 직접 데리고 람세스 2세의 궁궐을 방문하였으며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군주의 사위가 됨으로써 오리엔트 천하관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그 시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히타이트 제국은 단지 군사력만 월등히 강해서 주변 국가들을 지배했던 제국이 아니었다. 물론 당대의 다른 제국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경쾌한 2륜전차(二輪戰車)로 구성된 전차 군단을 육성함으로써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와 덧붙여 또 하나의 성문법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바빌로니아의 명군 '함무라비'가 남긴 성문법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히타이트가 문화적으로나 법제적으로도 여타 소아시아의 문명권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시기만 이른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오히려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사형제도 철폐에 대한 혁신적인 내용, 남녀 평등에 대한 부분을 다룬 점, 처벌 대신 보상을 중심으로 시행되던 형벌 원칙(이것이 특히 함무라비 법전과 극히 다른 점인데 당시 대단히 뛰어난 법률이었다고 보여진다), 다신교를 표방하는 종교적 관용의 자세 등,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봐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문명을 이룬 나라가 바로 히타이트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을 저자와 함께 하면서 주인장은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우선은 히타이트라고 하는 미지의 문명과 함께 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요, 다음은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이 철저히 깨져나가는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이 주의깊게 봤던 부분은 히타이트 군주가 전염병이 나라에 퍼지자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점토판에 실려있는 것이었다. 흔히 우리는 유리명태왕의 황조가를 두고 그 시대상을 파악하고 유리명태왕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 분석할 수 있는데 이것이 1세기대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히타이트 군주의 것은 그보다 십수세기 이전의 작품이었다. 신에 대한 고뇌와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의 고뇌가 실려있는 이런 작품은 아마 히타이트가 아니고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중동,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는 말을 남기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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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라진 문명 히타이트
    from to be immortal 2008-01-14 02:00 
    기원 전 13세기, 이집트 람세스 II 와 '영원한 동맹과 평화'를 약속했던 히타이트 왕조. 구약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고 이집트나  바빌론의  기록에도 등장하는 히타이트는 언젠가 사라져 그리이스 ,로마인들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1834년 터어키에서의 첫 유물 발굴 이후 문자 해독에 이르기 까지 히타이트 문명 탐사기록을 독일 제2 TV (ZDF)가 2007년 7월 방영했다. http
 
 
marine 2005-09-1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동 지방 역사는 기껏해야 나라 이름 정도 밖에 몰라서 늘 아쉬웠는데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히타이트 하면 철기 문명, 이렇게 밖에 몰랐어요

麗輝 2005-10-02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타이트학은 이제 막 태동된 새로운 고고학 분야입니다. 그에 따라 이것 말고도 히타이트 관련 서적들이 2~3권 정도 더 나왔는데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아마 이 책이 그 중에서 가장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히타이트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성서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살펴봐도 좋을 듯 합니다.

쿠자누스 2007-09-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엔가 독일에서 히타이트 유물전을 했었지요. 유럽에서도 히타이트 연구는 신천지인가 봅니다.

쿠자누스 2007-09-2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zdf.de/ZDFde/inhalt/6/0,1872,5560102,00.html 올해 7월 1일, ZDF 제2독일 TV에서 기록영화를 방영했네요.

麗輝 2007-10-0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좋은 자료를 알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이 책을 보면서 저도 히타이트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유럽에서도 관련 전공자들이 드문만큼 신천지에 속하는 연구분야인 것 같고요. 어쨌든,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