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을 해석하면 길잡이, 개척자 뭐 이런 뜻이란다(그때는 이런 뜻인지 모르고 봤지만 ^^;).  

이 영화를 언제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2007년 이후에 개봉했다고 하니깐, 아마 그해에 바로 보지 않았나 싶긴 하다만. 이 영화는 13번째 전사 이후에 딱히 바이킹 관련된 영화를 못 보다가 오랜만에 봤던 작품인데, 상당히 독특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일단, 주인공인 칼 어번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긍지와 자존심 높은 로한의 기병대장으로 나와서 상당히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고스트 쉽 - 여기선 뭘로 나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리딕>, <본 슈프리머시>, <둠>, <스타 트렉: 더 비기닝>, <레드> 등 필자가 봤던 상당수의 영화들에 출연했었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면서 '얘는 액션배우치고는 상당히 분위기 있네~'라는 것을 느꼈다고 하면 좀 이상할라나?

그럼 영화 얘기 한번 해보자.

영화의 스토리는 이전에 소개했던 <13번째 전사>와 약간 다르지만 기본적인 소재는 비슷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바이킹 영화는 대부분 외지 사람이 꼭 등장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역할이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이다. 그리고 전작이 이슬람권의 사람이 바이킹 문화권으로 유입된 것이라면, 이 영화는 바이킹족들이 인디언 문화권으로 침투한 경우에 해당한다. 

거친 풍랑을 이겨내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1척의 배. 바이킹족을 상징하는 용머리 용골과 날씬한 선체, 그리고 단단한 철제갑주와 방패 등이 화면 전면에 보인다. 난파된 배 안에서 바이킹 족장의 아들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그는 '왐파노악(Wampanoag)'이라는 인디언 부족에 의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유령'으로 불리며 인디언으로 살아가던 소년은 장성한 청년이 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또 1척의 바이킹 함선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난파되지 않고, 온전하게(?) 도착하여, 그들은 배에서 말들을 꺼내 무서운 질주를 시작한다. 그들은 왐파노악 부족을 절단내고, 주인공은 예지 능력이 있는 무당 '패스파인더'를 찾아가 자신과 같은 형통인 바이킹들에게 복수를 맹세한다는 내용이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9~10세기 유럽뿐만 아니라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까지 배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뻗어나가던 바이킹족의 실제 역사에 코드를 맞췄다. 이전에는 레이프 에릭슨이 이끄는 바이킹 족의 한 무리가 북미에 정착했다는 신화적인 내용으로만 알려져 왔으나, 실제 캐나다 뉴펀들랜드섬 북쪽 끝에서 11세기 바이킹족이 건설한 식민지 유적이 확인됨으로써 아메리카 대륙은 바이킹족이 가장 처음 발견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지금 여기는 '랑즈 오 메도스 국립역사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캐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의 배경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섬 일대는 아니다. 다만, 처음에 바이킹족이 한번 난파된 것을 보여준 것처럼 당시 바이킹족이 아메리카에 심심치않게 도달했다~라는 시대적 배경을 전제로 깔았던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이 장성했을때 도착한 바이킹족이 가족이나 다른 무리들을 이끌지 않고, 오직 건장한 전사들로만 팀을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는 조금 오바스러운 설정이다. 이는 곧 바이킹족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자주 가는 항로를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고, 이곳에 약탈할 것이 많아 아예 처음부터 약탈을 목적으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럴만한 정황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바이킹족이 그렇게 배 1척으로 와서 이 머나먼 타국에서 뭐하고 살텐가...즉, 갑자기 이유없이 바이킹족이 침입하는 것은 설정상 무리가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오히려 영화 초반부에서처럼 우연찮게 난파되어 도달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설정일 것 같다. 암튼, 그렇게 끝나면 재미가 없으니 바이킹족이 인디언을 침입해야만 하지만 말이다. 

영화 속의 바이킹은 인디언과 아주아주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맨 위에 영화 포스터에도 나타나지만, 주인공과 바이킹족의 동일한 점은 철제 칼과 방패뿐이다. 복장이나 행동양식, 사고방식, 기타 무기, 싸우는 방식 등은 모두 인디언과 같다. 그에 반해 바이킹족은 온몸을 철제갑주로 두르고, 단단한 철제무기를 갖추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빼앗는 악마로 묘사된다. 뭐 실제로 당시 인디언과 바이킹족이 만난다면, 일방적으로 저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바이킹족의 모습은 중남미 원주민들이 처음 유럽인을 봤을 때 만큼이나 이상한 모습이긴 했을 것이다.

암튼, 주인공은 같은 바이킹족이라는 것을 내세워 적을 안심시키고 뭐 결국에는 사랑하는 애인도 구하고, 눈 덮힌 산야에서 바이킹 애들을 모조리 골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인디언 부족의 영웅으로서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일단, 전투씬은 스케일이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사실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전에 소개한 <13번째 전사>에서처럼 장렬하거나 웅장한 맛은 없지만 바이킹족에 대항해 목숨을 부지하려는 느낌은 잘 전달됐다. 전체적으로 위에 보이는 몇몇 사진에서처럼 음습한 기운이 도는 안개가 끼거나, 어두운 저녁이거나 하는 배경이 많아서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둡다. 하지만, 설경이 펼쳐지는 장면도 많아서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또한 인디언에 비해 바이킹족을 너무 강력한 존재로 묘사하려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마치 드라마 <주몽>에서 앞으로 급성장해야만 하는(?) 고구려에 비해 초반에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어야만 했던 한나라 강철기병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일부러 지저분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려다보니 다소 왜곡된 바이킹족에 대한 표현이 스크린에 보인 것은 아닐까 싶다. 너무 비사실적으로 묘사해서, 판타지처럼 느껴진다랄까?

아울러 주인공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주 빠르게 바이킹족의 철제 칼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 적과 싸우는 일취월장(?)의 실력을 선보인 것 또한, 조금 이해가 안 됐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보면 주인공을 모시러 온 주인공 아버지의 가신들이 주인공에게 칼 다루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오며, 마찬가지로 영화 <타이탄>에서도 왕의 가신들이 주인공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뭐 시간의 촉박함이야 그렇다쳐도 그런 과정 거의 없이 이런 식의 전투씬이 나오는 것은 조금 그랬다. 만약 주인공이 끝까지 인디언식으로 싸웠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런 건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데, 주인공이 전사는 아니지만 그는 아주 능숙한 사냥꾼으로써 자신의 기술을 십분 발휘해 적을 하나하나 물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암튼, 어떻게든 짧은 시간 내에 주인공이 성장해 적을 다 물리쳐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가 좀 무리할 수도 있겠지만...이만 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바이킹을 다룬 영화지만, 정작 바이킹에 대한 묘사나 고증을 살펴볼만한 부분이 거의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전사로서의 바이킹족의 잔인함과 무서움을 잘 표현했고, 바이킹족의 피가 흐르는 주인공 역시 무서운 전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13번째 전사>보다 부족한 부분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에 별은 3개만 주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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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 2014-05-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봤습니다.

麗輝 2014-09-30 14:31   좋아요 0 | URL
아~감사합니다. 요즘에 여기 블로그에 잘 안 들어와서. ^^;;
 
사람은 왜 옮겨 다니며 살았나 - 인류의 이민 2만년 사
기 리샤르 지음, 전혜정 옮김 / 에디터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요 근래 책 1권을 읽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책인데, 제목이 상당히 신선해서 구입했는데, 내용은 그에 비해 다소 지루한 면이 많았다.
전체 페이지는 뒤의 참고문헌을 제외한다면 367쪽 667g으로 그렇게 두꺼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책의 내용이 너무 설명식이어서 지루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암튼, 책을 읽었으니 몇자 적어보기로 하겠다. 

이 책은 8명의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책으로서 인류의 이민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가 이민을 지속적으로 했던 이유는 별거 없다. 이상향을 찾아서, 혹은 외부 세력의 침략을 피해서,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서 등등 누구나 쉽게 생각했던 이유들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제 이 간단한(?) 결론에 맞춰 세계 각지에서 어떤 이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풀어쓴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전체적인 목차 한번 살펴보자. 

제1부 지구 규모의 대이동                            제 2부 이민의 개별형성사

제1장 고대문명                                          제6장 아프리카인들의 이주
제2장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제7장 히스패틱 지역의 이주
제3장 유럽의 혼란                                      제8장 라틴아메리카라는 곳
제4장 백인 인구의 폭발                               제9장 북아메리카 이주
제5장 현대 세계                                         제10장 인도의 이주
                                                              제11장 중국의 이주
                                                              제12장 오세아니아의 이주

목차만 간단하게 보면, 제1부는 포괄적인 이민사를 다루고, 제2부에서는 개별적인 이민사를 다루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딱 그렇지만은 않다. 제1부는 오히려 세계사적으로 아주 굵직굵직하고 큰 사건들,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민사를 나름의 테마별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거시적인 것만 있지도, 무조건 전세계적인 의미를 다 갖고 있는 것만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제1장의 고대문명만 봐도 이스라엘과 페니키아,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바빌론 유폐와 강제 이주, 켈트족과 그리스인(책에는 그리스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건 뭥미?), 로마제국이 나와 이어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문명이라고 하면 지금은 잘 안 쓰지만 그래도 소위 4대 문명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야 정상 아닌가? 그 다음에 2~3장을 보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유랑하는 유대인, 터키와 몽골의 침입 등 모든 내용이 유럽과 미주대륙(이것도 유럽인의 활동범위를 언급하면서 들어간 것이니, 유럽 중심적인 서술에 포함된다 해도 이상할 것은 딱히 없다) 중심으로 돌아간다. 뭐 4장(백인 인구의 폭발)이나 5장(현대 세계)은 말할 것도 없고.

이처럼 제1부의 제목은 솔직히 번역이 잘못 된건지, 아니면 편집하면서 임의로 고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제1부의 내용을 주욱 보면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흔히 배우는 여러 내용들이 나와 있어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된다거나 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다만 많은 내용을 함축시켜서 빨리빨리 넘어가려는 듯한 느낌이 나고 있어, 부족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이 책의 기본적인 스타일은 몇년에 뭐했다, 몇년에 뭐했다, 몇년에 뭐했다~식의 서술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인데, 꼭 중간중간마다 표가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민족과 시기(이동 시기든, 침략 시기든), 그리고 어떤 형태로 이동했는지(침입인지, 건국인지, 이주인지 등), 그리고 타민족과 어떻게 만났는지, 그 규모는 어떠했는지 등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말 이게 교과서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딱히 재미도 없고, 새롭고 참신한 지식을 접한다는 느낌없이 그냥 교과서 읽듯이 주욱 읽게 되었다. 그런데 또 이게 교과서같은 느낌이 나다 보니깐 글 읽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면,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기도 뭐하고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뭐하다는 것이다. 

암튼 그렇게 제2부로 넘어가보자. 

제2부는 각 지역별로 장을 나눠서 서술하고 있는데, 일단 세부적인 지역 구분이 이뤄져서 좋다.

아프리카를 따로 구술하는 것도 좋았고(제6장), 인도(제10장)와 오세아니아(제12장) 등 일반적인 세계사 시간에 세분해서 딱히 배우지 않는 지역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그 점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인도인들의 해상활동, 인도로 진출한 이슬람 세력, 그리고 인도에서의 실패를 뒤로 하고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결국 그 지역의 이슬람화를 성공시킨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단, 집필자의 주 전공분야와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 시대에서 특정 시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집중되고 있어, 通史와 같은 개념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제6장의 아프리카인들의 이주 부분에서는 반투족부터 시작해서 인도네시아와 아랍인의 이주, 그 뒤에 이어진 노예무역 얘기와 유럽인의 침입, 남아공에 대한 이야기와 현대 흑인들의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각 시대에 대한 내용이 균일하게 들어 있었지만 다른 장에서는 그러지 못한 면이 많았다. 인도의 경우에도 고대 인도의 이주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다가 갑자기 19세기 영국의 식민지배로 이야기가 넘어가고 있었으며, 중국의 경우에도 송-원-명-청까지 순식간에 이야기가 전개되더니 근-현대 중국인의 이주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오세아니아의 경우는 내용 자체가 거의 없었고...

워낙 구성이나 내용이 설명식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깐 딱히 서평을 더 길게 쓸 꺼리는 없다. 일단, 재미도 딱히 없고, 흥미가 많지도 않고, 구성면에서 지루하기 때문에 별은 3개만 줬다. 하지만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세계사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학교에 제출할 리포트나 숙제를 작성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이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안에 내용이 표로 정리되어 있고, 중간중간 지도도 괜찮기 때문이다. 

P.S)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중국여성 잔혹풍속사』,『중국의 차 문화』,『중국의 술 문화』를 갖고 있는데, 이번 책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놀랐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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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수레 세계사 가로지르기 1
김용만 지음 / 다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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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괜찮은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위에 보는 바와 같다. 책 겉면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에 띈다. 

'수레라는 작은 주제 하나로 보편적 문명사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한다!' 

흐음. 아주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수레라. 수레라. 뭐 이 책의 저자를 조금 아는 사람은 저자가 그간 수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왔는지도 잘 알 것이다. 저자는 여러 연구논문과 연구서, 개설서 등에서 수레 얘기(비단 고구려 수레뿐만 아니라~한국사 속의 수레들)를 거의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저자는 수레가 문명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1차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적인 평가다 ^^). 앞으로 수레에 대한 어떤 연구성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상당히 큰 기대를 안고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책장을 채 넘기기 전에 보이는 저 문구가 마음에 든다. 얼마전 저자는 바다를 주제로 한권의 책을 써 냈는데, 이번에는 수레를 주제로, 그것도 무대를 세계로 옮겨서 또 한권의 책을 쓴 것이다. 거기다가 세계사를 재해석한다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세부 주제를 갖고 역사를 서술한 책이 몇권이나 되겠는가. 늘 이런 책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여럿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그럼 본격적으로 책 얘기 한번 해보자. 

 

 1. 목차와 구성 

추천사 _ 수레가 들려주는 놀라운 문명의 역사
머리말 _ 인류 역사를 바꾼 수레 

1.수레의 탄생
어떻게 옮길 것인가? / 수레의 등장 / 세계 각지에서 등장한 수레
수레가 널리 퍼지다 / 가장 많은 수레를 사용한 중국 / 수레 사용이 활발했던 고대 한국 

2.수레와 전쟁
전차가 일으킨 혁명 / 전차의 확산 /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전차 대결
기병의 등장과 전차의 변화 / 공성 망치와 헬레폴리스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군수용 수레 / 공성 무기와 수레 / 이동식 대포 / 전차와 병법 

3.수레와 도로
길에서 도로로 / 로마의 도로와 수레 / 다리와 수레 / 미로의 도시 페스
도로 건설을 막은 조선 

4.수레의 동력
인간이 바퀴를 굴리다 / 수레를 끄는 가축 / 수레를 끌지 못한 가축
인간의 힘으로 움직인 수레 / 연료를 이용한 수레 

5.수레 이모저모
오락에 이용된 수레 / 미국 서부 개척과 역마차 / 다양한 종류의 수레
수레를 대신한 운반용 도구 / 수레 대신 사용된 가마 / 수레 만들기와 기술자
신화에 등장하는 수레 

6.수레 사용이 제한된 나라들
수레를 알고도 사용하지 못한 이유 / 도로에 비래 수레가 덜 다닌 일본
국방 문제로 수레 사용이 제한된 조선 / 앙코르 제국과 수레 / 아프리카 체체파리 

7.수레가 없던 문명
수레와 환경 / 도로는 있으나 수레가 없던 잉카 / 거대 도시를 가졌던 아스텍
수레를 알고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야 문명  

8.수레의 변화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 / 수레와 고무 타이어
자동차에서 출발한 기차 / 전쟁을 바꾼 탱크 

9.문명을 만든 수레
수레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선물 / 수레가 준 부작용
수레가 만든 문명 / 수레 사용과 문명의 흥망 

참고 문헌

목차는 총 9개의 장으로 이뤄지고 있다. 1~5장까지는 수레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전쟁, 도로, 동력, 신화나 기술자, 가마 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6~9장까지는 수레와 문명을 연결시켜 하나의 큰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부분(1~5장)과 뒷부분(6~9장)에 어느 정도 겹치는 내용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 있어 불필요한 부분은 아니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오히려 앞의 내용이 개별적이었다면, 뒷부분에서는 이를 하나의 큰 틀에 묶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인류 역사를 바꾼 것은 바로 수레!'라고 강변하면서 하나의 화두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거에 그러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사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따름이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를 묻는 것이 곧 역사를 공부하는 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부터 우리가 던질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수레가 왜?' 

맞는 말이다. 역사책의 한줄까지 기사를 읽든,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묘사한 여러 기록을 읽든 우리는 거기에서 왜? 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수레의 탄생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저자가 수레에 주목하여 인류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라고까지 했는지 말이다.  

또 하나, 저자는 맨 뒤에 참고문헌을 싣고 있는데, 전체 연구서적의 참고문헌을 한번에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참고문헌을 따로 싣고 있어 관련 연구자들 혹은 수레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눈요기가 된다. 물론 본문에 일일히 주석이나 Tip을 달아놓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관련 전공자들을 위한 연구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뒷부분에 이 정도의 배려만 해놓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삽입된 삽도나 그림, 도면과 도판 등이 상당히 양질의 것이라(필자도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것들이 몇 있었다) 전체적인 편집 면에서도 깔끔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2. 세계 각지의 전장과 수레 

이 책에서 아주 눈여겨볼 부분은 세계 각지의 수레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수레(전차가 더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를 사용했던 중국 및 저자의 오랜 연구로 이제는 널리 알려진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고려, 수메르문명의 수레,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전차, 아시리아와 그리스, 로마의 수레는 물론,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역마차와 신화 속의 수레까지, 그야말로 수레란 수레는 싸그리 모아서 이 책 안에 서술해놓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레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수메르 문명권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동유럽에서 이른 시기의 수레가 묘사된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역에서도 수레 잔해가 발견됨으로써 수레가 전세계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과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비록 수레의 사용례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수레는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서 활용되었다.  

이처럼 수레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사용되면서, 수레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그건 바로 전쟁 무기였다. 수메르군은 말 또는 당나귀가 끄는 사륜마차에 창병과 마부를 태워 전쟁터에 내보냈으며, 수메르를 멸망시킨 아카드 제국은 통나무 대신 8개의 바퀴살로 이뤄진 이륜 전차를 이용해 기동성을 살린 전투를 지휘하였다. 48쪽을 보면 전차 사용의 확산을 색으로 표현한 지도가 하나 있는데,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지도인지라 굉장히 참신했다. 암튼,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급속도로 발전한 수레는 각지에 영향을 미쳤는데, 기원전 1600년경 미탄니 제국은 보다 개량된 전차를 활용하여 강대했던 아시리아 제국을 복속시켰으며, 다시 이를 받아들인 히타이트가 미탄니를 멸망시켰다. 이 두 제국은 예전에 히타이트 관련된 책을 보면서 개략적인 역사를 머릿 속에 집어넣은 적이 있는데, 전차의 활용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기원전 14세기경 미탄니 출신 전투마 조련사인 키쿨리에 대한 내용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굉장히 간과하고 넘어가지 않는가. 이미 그 당시에 전투마 조련사가 자신의 노하우를 적은 기록을 남겼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후 내용은 고대 최대의 전투라고 불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간의 카데쉬 전투로 넘어간다. 당시 양국은 수만명의 군대와 수천대의 수레를 동원해 전투를 벌였으며, 이는 모두 수레와 전차 때문에 가능한 대규모 국제대전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물론 중국도 그렇고, 중앙아시아도 그렇고,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그렇고 점차 전차는 기병으로 대체되면서 전장에서 가장 화려한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전차는 곧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며, 전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아시리아는 성벽을 공격하는 공성 망치를 개발하는데 이러한 아시리아의 공성 망치는 당시 무서운 전쟁 무기였다. 또한 헬레폴리스라고 불리는 전쟁용 탑 또한 공성전에 임하는 수비군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이는 이후 로마군의 공성무기, 동-서양에서 폭넓게 쓰인 이동식 대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전장의 환경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퀴와 수레를 활용한 새로운 전쟁무기가 전장을 휘젓게 되었고, 비록 전차는 활용도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군수용품을 나르는 수레의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미 유목민족이 게르라고 불리는 이동식 주거지를 위에 얹은 대형수레를 활용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또한 5세기 중엽, 북중국의 지배자였던 북위는 몽골 고원의 유연을 공격하기 위해 무려 10만의 기병과 15만대의 수레를 동원하기도 했는데, 이 수레가 모두 전차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는 대규모 원정군을 위한 군수용품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수 양제가 평양성을 직공하기 위해 보낸 30만명의 별동대가 치중부대 없이 엄청난 무게의 군수품을 각자 짊어지게 하여, 결국 군수용품의 부족을 경험하게 했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전쟁의 발달(?)에 있어서 수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전쟁이 계속되면서 수레는 더욱더 발달하고 개량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3. 국가의 의지와 도로, 그리고 수레 

이 책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이 바로 3장이다. 이 챕터는 수레가 다니는 도로에 대한 이야기인데(물론 3장 이외에도 도로와 국가의 의지에 대한 내용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기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저자는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발트해 지역과 지중해 연안 지방을 연결해주던 호박 도로부터, 히타이트 제국에 의해 건설된 왕도(Royal Road),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정비한 왕의 길 등 다양한 도로에 대해 말문을 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로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쉽게 '로마'를 떠올릴 수 있다. 맞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퐁텐이 처음 사용해 유명해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만큼 로마는 도로를 많이 만들고, 잘 만들고, 잘 관리하고, 잘 활용한 나라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을 저자는 콕 집어서 얘기하고 있다. 로마는 계속 늘어나는 식민지를 통치하고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신속한 군대 이동과 정보 및 명령 전달을 요구했고, 그로 인해 넓고 곧은 도로의 건설이 필수적이었다~고 말이다. 즉, 국가의 의지와 필요에 의해서 도로가 건설되고 관리되었다는 의미다. 앞에서 필자가 잠깐 얘기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단지 그러했구나~만 알고 배우는 것은 다가 아니라고. 왜! 그랬는지를 배우는 것이 진정한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수레가 왜 많이 쓰였을까? 도로가 많아서. 그럼 도로는 왜 많이 만들어졌을까? 로마의 성장과 군사적 이유 때문에...저자는 주제 하나하나마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풀어쓰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선에 주목한다. 도로는 육지에 놓이지만, 강이 있거나 산이 있으면 우회하거나 다리를 놓는 식으로 계속 도로를 연장하곤 한다. 로마는 그렇게 전국적인 도로망을 유지했다(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니, 로마군은 일정한 보폭과 동일한 발내딛음으로 행군하기 때문에 강에 놓인 다리가 진동을 유지하고 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흔들릴 수 있게끔, 그래서 잘 무너지지 않게끔 다리를 건설했다~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정말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한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만 해도 무려 길이가 375m에, 폭이 9m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나무다리가 평양에 만들어졌으며, 신라의 월정교 역시 길이 60m, 폭 14.5m 이상의 석조다리로서 이는 모두 사람뿐만 아니라 수레까지 다니게 만든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조선은 어떠했을까? 

조선은 다리를 잘 만들지 않았으며, 도로도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다. 이를 저자는 단순히 조선의 기후, 넓은 강폭, 국방 문제 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에서 도로나 다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수레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조선도 도성인 한양에는 수레가 충분히 다닐만한 도로가 있었고, 계획적으로 도로가 관리-유지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양만 해도 대로변에 만들어진 임시 건물들로 인해 도로폭이 좁아지게 되었고, 이는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도 그대로 비춰졌다. 결국 조선에 다시 제대로 된 도로가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때였다.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적어도 일본군 야포 2문이 동시에 건널 수 있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다리와 도로를 우선적으로 놓아야 한다고 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이에 반발했다. 도로가 잘 닦임으로서 외세의 침입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로마의 경우, 잘 닦인 도로를 통해 보다 활발한 군사정책을 실시하고, 더 많은 정복지에서 더 많은 약탈품을 운송시켰던 것에 비한다면 조선의 경우는 핑계에 불과한 변명을 내뱉은 것에 불과하지 않다. 이는 곧 국가의 의지, 보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위정자의 의지에 따라 도로가 만들어지고, 유지-관리되는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음 몇가지 사례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로가 아주 잘 닦였기 때문에 수레가 많이 사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는 수레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섬나라인만큼 해상교통이 발달했고, 해상교통으로 먹고 사는 상인들이 육상교통 수단인 수레의 발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이는 국가의 의지 혹은 위정자의 의지에 따라 도로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조선과는 다른 상황이었지만, 마찬가지로 특수한 정치 ·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인데, 앙코르 제국에서 수레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수레는 도로가 있어야 사용되는 것이며,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도로가 놓이기 힘든 밀림이 형성된 곳이 대부분이라 앙코르 제국에서 수레가 사용되었다는 생각을 이전까지 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진랍풍토기』에 의하면 당시 앙코르에서는 코끼리나 말을 타거나, 수레를 이용했다고 한다(이 책도 사놓고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실제 앙코르 제국은 17개의 주요 간선도로를 건설했으며, 그 위로 수레들이 다녔다. 하지만 앙코르 제국이 아유타야 왕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함으로써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 도로는 곧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혹시 발해도 잘 닦인 도로 때문에 거란에게 쉽게 멸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암튼 저자는 '도로'라고 하는 공공재를 하나의 투자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자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고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도로의 건설과 수레의 사용은 국가의 의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아마 수레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 일련의 생각을 이끌어낸 책은 필자가 알기로는 없었다. 

4. 수레, 문명의 원동력 

마지막으로 저자가 수레와 직결시킨 문명사에 대해 몇마디 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저자는 수레가 쓰이지 않는 나라에서는 신화에서조차 수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그렇다. 신화라는 것이 실제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수레를 끌만한 동물이 없는 지역에서도 수레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를 보면서 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내용이 이 책의 6~7장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미 선조들이 수백년 이상 수레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상의 이유로 철저하게 수레가 배척당해 사용되지 않았던 조선,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고, 수레가 잘 사용될 조건이 다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교통을 장악하고 있던 상인들에 의해 수레 사용이 배척되었던 일본, 강력한 통일제국의 권력이 수레 사용이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했지만, 그 권력이 사라지면 수레 사용 또한 사라지게 됨을 알려준 앙코르 제국, 체체파리와 같은 수레를 끌 수 있는 동물들의 천적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수레 사용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되는 아프리카, 도로는 있었지만 수레를 끌만한 동물이 없어 수레 역시 없었던 잉카 제국, 수레를 끌 동물도 없었고 수레도 몰랐던 아즈텍 문명, 수레를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실생활에 사용하지 못 했던 마야 문명 등 저자는 다양한 문명권을 소개하면서 수레와 연결시켜 이들 문명을 하나하나 재해석하고 있다. 

이 부분까지 읽으면 이제 독자들은 '아하!' 하고 머리를 탁 칠지도 모른다. 

수레가 좋고, 전차가 좋고, 기병이 좋고, 마차가 좋은데...어째서 어느 한쪽은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해서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는가 하면 어느 한쪽은 왜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을까? 라는 생각을 누구나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에 딱 맞는 대답이 바로 이 책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각 문명권마다 똑같은 이유로 수레를 사용하고,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환경적인 측면, 정치-사회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 군사적인 측면 등 다양한 방향에서 수레를 살펴봄으로써 저자는 어떻게 보면 아주 쉬우면서도 어려운 하나의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건 바로 '수레야말로 인류 역사와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동차와 기차, 탱크 등을 언급하면서 수레의 변천사를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마치 여기에서 끝이 나면 재미없지~라는 말을 하듯이 저자는 마지막 9장에서 가벼운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건 바로 수레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선물뿐만 아니라 수레가 준 부작용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레는 인간에게 속력을 줬으며, 두번째로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었다. 또한 직업을 분화시켜 주었고, 각 지역의 통합과 소통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있었으며, 엄청나게 많은 수레를 만들기 위해 벌목을 해대는 통에 산림이 황폐화되기도 하였고, 도로를 건설하면서 생태계와 지형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또한 오늘날 자동차로 인한 환경 오염과 소음 등의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레(이후의 자동차까지 포함하여)는 그만한 부작용을 감내해도 될만한 이익을 인류 문명에게 남겨줬다. 수레는 단순히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이동 수간에서 멈춤 것이 아니라 신분, 기술자 계급 등 비물질적 측면, 종교, 속도와 거리 관념 등 의식 측면에 있어서도 변화 원인이 되었다. 아울러 전쟁 규모의 확대, 상업 발전, 거대 국가 탄생에 이르기까지 수레는 매우 중요한 자극제가 되어 왔다.  

이 말은 곧 수레가 인류 문명의 흥망을 좌우했던 중요한 존재인만큼, 앞으로도 우리 인류가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메세지인 셈이다. 이렇게 책은 끝맺음을 맺고 있다. 하지만 책장을 다 덮은 흥분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단순히 좋은 책 한권을 읽었다~이상으로 필자에게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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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바이킹 관련해서 재밌는 영화를 봤는데(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음), 문득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본 바이킹(혹은 북유럽인) 관련 영화가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봤던 바이킹 관련한 영화들이 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몇자 적게 됐다. 아마 영화 리뷰를 쓰면서 뭔가 테마를 정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듯...암튼, 색다른 시도인만큼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본격적으로 몇자 적어보자.  

이 영화는 정말 정말 정말 오래전에 본 영화다. 미국에서는 1999년에 개봉한 듯 한데, 아마 나도 다운받아 본 것은 아니고 비디오를 빌려서 봤던 것 같다. 2000~2001년 무렵에만 해도 다운받아 보는 것이 그렇게 보편적인 문화적 현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암튼, 그때 왜 이걸 빌려 보게 됐는지 동기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예전부터 필자 주변에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누구의 추천을 받았던 것 같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봤던 것 같지도 않다(당시 필자는 오직 다음의 역사까페-여기 말고-에서만 활동했었기에 다른 인터넷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비디오 가게에 들려서 재밌을 것 같기에 빌려봤던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영화를 어떻게 보게 됐는지 동기도 생각나지 않는 영화의 리뷰를 이렇게 쓰게 된 이유는, 어느날 이 영화를 보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빌려봤는데 정말 놀랍게도 이 영화와 스토리가 아주아주아주 흡사해서 놀랬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영화는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마이클 클라이튼이 1997년에 발표한 소설 '시체 먹는 사람들(Eaters Of The Dead)'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0세기를 배경으로 바이킹족의 전사들과 식인종인 '웬돌족'과의 전투씬 등이 잔인하고도 웅대하게 펼쳐진다고 한다. 

이걸로 검색했더니 최근까지도 나온 것으로 봐서 꽤 인기가 있는 책인 것 같다(분명 난 그때 번역본을 읽은 것 같은데, 그 책 제목을 정확히 기억을 못 해서 검색하지 못 하겠다). 암튼 책 얘기는 뭐 생략하겠다. 다만, 책과 영화의 내용이 상당히 흡사했다는 점, 그만큼 원작을 충실히 영화화했다는 점이 기억날 뿐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지만 아주 간략하게 줄여서 좀 적어보겠다. 바그다드,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명국의 중심부에서 화려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불륜 스캔들에 휩싸여 차디찬 먼 북구에 사절단으로 파견된다(이 부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불륜녀의 남편이 농간을 부려 그를 보냈다고 한다. 당시 무슨 일로 그가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난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런데 그 동네 주변에는 적지 않은 규모의 식인종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북구 바이킹 애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결국 아주아주 쌈짱인 바이킹 족장의 아들이 원정대를 이끌고 걔네들을 까러 가는데, 무당이 예언하기를 외부인 전사를 1명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바로 주인공인 13번째 전사 '아메드 이븐 파할란'이다. 그리고 그는 점차 바이킹 애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름 지략도 써 가면서 적들을 하나하나 공략해 나간다. 그리고 그 땅의 평화를 되찾아준다(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지금 마지막 결말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책의 내용 역시...-.-;).  

이 영화의 스토리는 네이버 영화 검색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아 여기서는 Pass! 

암튼,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단편을 끄집어내어 몇가지만 좀 자세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바이킹과 아랍 문화권의 만남에 대해 그린 것이 흥미로웠다. 

솔직히 당시 아랍권과 바이킹 문화권이 만난 것 자체가 신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걸 영화화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것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면 아주 간간이지만 주인공(아랍권 인물)과 다른 전사들(북구권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 방식, 사고 방식의 차이를 잘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주인공은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영위하던 사람인데 반해 다른 전사들은 거칠고 다소 미개한 이미지가 강하게 묘사되었다. 뭐 아랍인의 눈으로 본 영화 전개라는 점을 상정한다면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극명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재밌었다. 또한 바이킹들이 거대한 검을 양손으로 쥐거나, 한손으로 쥐고 싸우면서 어설픈(?) 아랍인에게 칼싸움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이 흥미로웠다. 계속 쓰러지던 주인공은 잠시 타임! 을 요청하더니, 바이킹들이 건네준 칼을 그라인더(?)에 갈아서 刀(언월도까지는 아니고, 살짝 만곡한 형태의 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재결투를 하더니 아주 능숙하게 刀를 다뤄 바이킹족을 이겨버린 것이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양자가 서로간의 차이점을 점점 극복하면서 戰友로서 맺어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이것이 볼 만했다.  

둘째, 식인종인 웬돌족이 왠지 동방의 유목민족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웬돌족이 어떤 애들인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은 모두 곰을 숭배하는 듯 했고, 상당히 힘이 강한(비정상적으로) 애들로 묘사되었다. 사용하는 무기 역시 강철검이나 철제화살 등이 아니라 두꺼운 곤봉이나 도끼 등 투박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려졌으며, 특이한 것은 이 녀석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기병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바이킹 역시 기병 전술을 활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웬돌족에게 속소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어 조금 독특했다. 마치 유럽인들이 느끼는 몽골족이나 헝가리족에 대한 공포를 그려낸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바이킹족(일반적으로 세계사를 배울때 우리는 바이킹족이 유럽 각지로 진출하여 공포에 떨게 한 모험가 겸 정복자로 배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아니다)의 웬돌족에 대한 공포가 아주 잘 드러나고 있어 독특했다. 

거기다가 그들은 안개를 틈타 횃불을 들고 능숙하게 열을 지어 진군하곤 했는데, 이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여 더욱더 바이킹들의 공포를 부추겼던 것이다. 그들은 여왕(무당을 겸하고 있는)을 모시고 있었으며, 바이킹의 마을을 만나면 전부 파괴하고, 사람들의 사지를 찢어 죽일 정도로 잔인한 녀석들이었다. 그때 영화를 봤을 때는 별 생각없이 봤었는데,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기억을 되새겨보니 마치 잘난 아랍권 녀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영화에서는 동방에서 온 듯한 이 미개한 야만족들을 아주 철저하게 야만스럽게 묘사하고 있었다. 영화 자체가 당시 사람들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듯 스토리 전개를 하고 있어 그 점 또한 흥미로웠던 부분이었다. 

셋째,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몇몇 있었다. 

주인공이 13번째 전사로서 바이킹들과 먼 여정을 떠나는 장면이 기억난다. 밤에 모닥불에 앉아 영어로 저희들끼리 씨부리는 바이킹들을 주인공이 유심히 쳐다본다. 그러던 중 한 바이킹이 주인공을 비웃으면서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날리는데, 주인공이 딱 그들 말로 이를 반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바이킹들은 '너 우리 말 할줄 아는데 왜 모른 척 했어!?'라고 하면서 칼을 겨누고, 주인공은 '너네 씨부리는거 듣고 다 배웠다. (내가 좀 짱이거등)'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반전 효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 우리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아랍어로 대사를 치는데, 영화 초중반 무렵 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어를 마구 사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바이킹들과 의사소통에 있어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민족의 언어가 그리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감?? ㅋㅋ 그때에도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어이가 없다.  

또한 주인공이 적의 괴수(여왕 겸 무당?)를 공격하는데 있어 약간의 지략을 발휘한다. 뭐 영화 후반부에 가면 식인종 대다수와 아주 격렬한 전투를 치루는데, 그때 12명의 바이킹을 이끌었던 부족장의 아들이자 주인공과 친하게 지내게 된 인물이 전사하고 만다. 지금 어렴풋한 기억으로도 상당히 멋진 포즈로 최후를 맞이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자연스레 리더가 되고 있었지만, 이게 상식적으로 적절한 설정인지 의문이 가긴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가 리더가 될만한 활약상을 영화 중반 이후로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바이킹의 짱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리더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활약상으로 전투는 바이킹의 승리로 끝이 나고 말이다.  

뭐 필자가 기억나는 단편은 여기까지다 일단은. 전체적으로 전투씬이나 배경, 싸운드 등은 바이킹과 어울리는, 그리고 액션과 어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스토리를 지나치게 앞당기는 듯 한 느낌이 드는 몇몇 장면은 지금 생각하면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역시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아랍권과 북구권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려 했다는 점, 그게 가장 볼 만했다. 미리 몇자 적자면, 바이킹 관련한 영화들 중에는 이처럼 다른 문화권과 만나는 내용이 상당수 나오는데,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뭐 다른 문화권의 문헌기록에 바이킹이 많이 나오기 때문? 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겠지? 어쨌든, 옛날 영화 기억 떠올리며 몇자 적었는데 다음 작품에 대한 기억도 더듬어야 해서 이만~ 

P.S)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몇 있는데 다음 2개의 글이 가장 그럴 듯 해서 여기 소개한다. 참고하시길~ 

지리산손길님이 척추의 명가 지리산손길 까페에 올린 영화 감상평 

허브님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영화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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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킹의 위대한 왕 불바이가 전쟁이 끝난 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라스트씬이 멋있었던 영화로 기억되는군요.

麗輝 2010-12-28 14:45   좋아요 0 | URL
네~저 역시 그 장면이 기억납니다. 상당히 멋있게 묘사했던 것 같거든요. ^^
 

오늘은 좀 옛날에 본 영화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외계인 수용구역을 다룬 조금 독특한 영화인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지 잠시 소개하자. 

이 영화를 본지는 꽤 됐는데, 뭐 그 당시만 해도 영화 감상평 하나 쓰자~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TV에서 남아공의 관광 명소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온 단어가 '디스트릭스 6'였다. 엉??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이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던 것이다. 분명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디스트릭트 6라는 것을 차용하여 영화 제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밥 먹고 들어와서 한번 검색해봤다. 

오호~역시나 뭐가 있었다. 디스트릭트 6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내에 있었던 주거구역의 명칭으로서 1970년대 6만명이 넘는 거주민들의 강제 이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마르군님 블로그를 참고하시라(http://amarese.tistory.com/10). 그랬구나~방송에도 뭐 강제이주 이런 내용이 나온 것 같긴 했었다. 전염병이 돌자, 백인들이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항구에서 주로 활동하는 흑인 등을 멀리 강제이주시켜 격리시켰다...뭐 이런 내용이 나왔는데...암튼 이제 좀 이해가 됐다.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 왜 외계인 수용구역이 하필이면 남아공에 있을까? 뭐 이런 의문을 가졌었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내용을 좀 더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몇몇 블로그에 이 영화와 디스트릭트 6의 연관성, 그리고 이를 비판한 영화에 대한 대략의 포스팅이 올라와 있었다.  

마이즈님의 블로그 - MAIZ STACCATO 

사자왕님의 블로그 - Sci-Fi 스테이션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지만(외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넘어왔다? ^^;), 결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외계인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해 벌써 30여년 동안 인간과 접촉하며 지내고 있다(영화의 시작부터 독특하지 않은가? 최근에 나온 '스카이 라인'이나 톰 크루즈의 父情이 돋보이는 '우주전쟁', 외계인과의 한판전이 볼만한 '인디펜던스 데이'만 봐도 외계인은 지구에 오자마자 지구인을 몰살시키고, 지구를 정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명한 미드 'V'에서처럼 지구인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구인에게 격리당하고, 감시받으면서, 인간(외계인?)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격리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말이다. 즉, 그들은 지구인이 갖지 못한 첨단과학기술을 갖춘 존재이기는 했지만(로봇형 전투기계나, 엄청난 레이저파를 이용한 무기, 거대한 우주선 등), 그것을 이용해 지구를 정복하러 온 존재들이 아니었다(분명 기술력만 보면 프레데터급의 기술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고향을 떠난 이주민 정도로 보일라나? 

어쨌든 각국의 윗대가리들은 협의 끝에 그들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9구역(District 9)’에 격리시키고, 인간들과의 접촉을 통제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통제를 담당할 계약을 맺은 것은 민간 회사인 ‘MNU (Multi-National United)’인데 문제는 이 회사가 외계인들의 복지보다는 그들의 진보한 무기기술을 습득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무기 기술은 외계인의 DNA가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는 까닭에 무기만 입수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MNU 직원인 비커스 메르바가 외계인의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DNA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그런 그를 중심으로 장인(MNU 최고경영자)과 부인, 정부와 외계인들이 서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정부와 MNU측은 주인공을 새로운 무기 개발의 실험체로 인식하게 되고, 그런 그와 부인과의 애절한 심리 묘사가 영화 후반부에 돋보인다. 그는 살기 위해 디스트릭트 9으로 숨어 들어가고, 거기에서 외계인 父子를 탈출시키는데 협력한다. 나중에 돌아와 자신을 치료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이 말은 곧 주인공이 외계인으로 변해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영화가 일단 끝맺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대강의 내용만 봐도 기존의 헐리웃식 SF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그냥 참신하다, 독특하다(영화 초반부에 MNU 직원과 요원들이 디스트릭트 9에 사는 외계인들에게 강제 이주를 강요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찍어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렸다) 뭐 이런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3천만불 밖에 들이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CG가 돋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에는 왜 외계인이 하필 남아공에 격리됐는지, 디스트릭트 9이 무슨 의미인지 등등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감흥도가 좀 떨어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왜 당시 영화가 개봉됐을 때는 디스트릭트 6와의 연관성, 감독의 어떤 비판적인 부분 이런 것들이 이슈화가 안 됐나 모르겠다. 영화 소개하고 이럴때 이런 부분들이 대개 소개되지 않나?? 어쨌든...). 그런데 오늘 우연히 밥을 먹다가 TV에서 흘려들은 내용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고, 그때는 미처 못 느끼고 스쳐 지나갔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 디스트릭트 9을 지배하는 것은 흑인 갱단이다. 그들은 외계인들이 깡통으로 된 고양이밥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를 매점매석해서 팔거나, 외계인을 납치해 죽인 다음 그 시체를 먹는다거나(강한 적의 시체를 먹으면 그 힘이 나에게 전해진다~는 원시적 신앙이 여기에 스며있다)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DNA 변이를 일으켜 팔 한쪽이 외계인처럼 변한 것을 알고는 주인공의 팔 한쪽을 잘라 먹을라고도 했던 것이고~그런 것만 봐도 영화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열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계인이 과거의 흑인 및 말레이, 중국, 인도인 등으로 바뀌고 영화 속 흑인이 백인으로 바뀌면 과거의 상황을 영화 속에 그대로 재연한 것이니 말이다.  

또한 애초부터 좀 우유부단하고 맹한 캐릭터로 나온 주인공이 DNA 변이를 일으켜 외계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인간 군상에 대해서 잘 묘사하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지만, 그가 돈벌이가 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 순간, 장인은 그를 더 이상 사위가 아닌 실험체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서도 결국 그를 지탱하는 것은 부인과의 사랑이었다(그는 영화 말미 외계인이 되었음에도 부인에게 매번 접어주는 인조 꽃을 계속 접고 있었다). 그리고 외계인과 정말로 진실하게 대화하면서, 서로의 느낌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하게 된 것이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을 통한 스토리의 전개를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 외계인보다 더 에일리언같은 인간에 대한 군상을 적절한 역사적 사건, 적절한 시 · 공간적 배경과 잘 연결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터넷을 보니 후속작이 나온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기대가 큰 영화가 되어 버렸다. 한번 시간남을때 감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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