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수레 세계사 가로지르기 1
김용만 지음 / 다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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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괜찮은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위에 보는 바와 같다. 책 겉면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에 띈다. 

'수레라는 작은 주제 하나로 보편적 문명사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한다!' 

흐음. 아주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수레라. 수레라. 뭐 이 책의 저자를 조금 아는 사람은 저자가 그간 수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왔는지도 잘 알 것이다. 저자는 여러 연구논문과 연구서, 개설서 등에서 수레 얘기(비단 고구려 수레뿐만 아니라~한국사 속의 수레들)를 거의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저자는 수레가 문명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1차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적인 평가다 ^^). 앞으로 수레에 대한 어떤 연구성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상당히 큰 기대를 안고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책장을 채 넘기기 전에 보이는 저 문구가 마음에 든다. 얼마전 저자는 바다를 주제로 한권의 책을 써 냈는데, 이번에는 수레를 주제로, 그것도 무대를 세계로 옮겨서 또 한권의 책을 쓴 것이다. 거기다가 세계사를 재해석한다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세부 주제를 갖고 역사를 서술한 책이 몇권이나 되겠는가. 늘 이런 책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여럿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그럼 본격적으로 책 얘기 한번 해보자. 

 

 1. 목차와 구성 

추천사 _ 수레가 들려주는 놀라운 문명의 역사
머리말 _ 인류 역사를 바꾼 수레 

1.수레의 탄생
어떻게 옮길 것인가? / 수레의 등장 / 세계 각지에서 등장한 수레
수레가 널리 퍼지다 / 가장 많은 수레를 사용한 중국 / 수레 사용이 활발했던 고대 한국 

2.수레와 전쟁
전차가 일으킨 혁명 / 전차의 확산 /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전차 대결
기병의 등장과 전차의 변화 / 공성 망치와 헬레폴리스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군수용 수레 / 공성 무기와 수레 / 이동식 대포 / 전차와 병법 

3.수레와 도로
길에서 도로로 / 로마의 도로와 수레 / 다리와 수레 / 미로의 도시 페스
도로 건설을 막은 조선 

4.수레의 동력
인간이 바퀴를 굴리다 / 수레를 끄는 가축 / 수레를 끌지 못한 가축
인간의 힘으로 움직인 수레 / 연료를 이용한 수레 

5.수레 이모저모
오락에 이용된 수레 / 미국 서부 개척과 역마차 / 다양한 종류의 수레
수레를 대신한 운반용 도구 / 수레 대신 사용된 가마 / 수레 만들기와 기술자
신화에 등장하는 수레 

6.수레 사용이 제한된 나라들
수레를 알고도 사용하지 못한 이유 / 도로에 비래 수레가 덜 다닌 일본
국방 문제로 수레 사용이 제한된 조선 / 앙코르 제국과 수레 / 아프리카 체체파리 

7.수레가 없던 문명
수레와 환경 / 도로는 있으나 수레가 없던 잉카 / 거대 도시를 가졌던 아스텍
수레를 알고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야 문명  

8.수레의 변화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 / 수레와 고무 타이어
자동차에서 출발한 기차 / 전쟁을 바꾼 탱크 

9.문명을 만든 수레
수레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선물 / 수레가 준 부작용
수레가 만든 문명 / 수레 사용과 문명의 흥망 

참고 문헌

목차는 총 9개의 장으로 이뤄지고 있다. 1~5장까지는 수레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전쟁, 도로, 동력, 신화나 기술자, 가마 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6~9장까지는 수레와 문명을 연결시켜 하나의 큰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부분(1~5장)과 뒷부분(6~9장)에 어느 정도 겹치는 내용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 있어 불필요한 부분은 아니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오히려 앞의 내용이 개별적이었다면, 뒷부분에서는 이를 하나의 큰 틀에 묶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인류 역사를 바꾼 것은 바로 수레!'라고 강변하면서 하나의 화두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거에 그러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사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따름이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를 묻는 것이 곧 역사를 공부하는 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부터 우리가 던질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수레가 왜?' 

맞는 말이다. 역사책의 한줄까지 기사를 읽든,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묘사한 여러 기록을 읽든 우리는 거기에서 왜? 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수레의 탄생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저자가 수레에 주목하여 인류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라고까지 했는지 말이다.  

또 하나, 저자는 맨 뒤에 참고문헌을 싣고 있는데, 전체 연구서적의 참고문헌을 한번에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참고문헌을 따로 싣고 있어 관련 연구자들 혹은 수레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눈요기가 된다. 물론 본문에 일일히 주석이나 Tip을 달아놓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관련 전공자들을 위한 연구서적이 아니기 때문에 뒷부분에 이 정도의 배려만 해놓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삽입된 삽도나 그림, 도면과 도판 등이 상당히 양질의 것이라(필자도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것들이 몇 있었다) 전체적인 편집 면에서도 깔끔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2. 세계 각지의 전장과 수레 

이 책에서 아주 눈여겨볼 부분은 세계 각지의 수레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수레(전차가 더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를 사용했던 중국 및 저자의 오랜 연구로 이제는 널리 알려진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고려, 수메르문명의 수레,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전차, 아시리아와 그리스, 로마의 수레는 물론,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역마차와 신화 속의 수레까지, 그야말로 수레란 수레는 싸그리 모아서 이 책 안에 서술해놓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레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수메르 문명권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동유럽에서 이른 시기의 수레가 묘사된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역에서도 수레 잔해가 발견됨으로써 수레가 전세계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과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비록 수레의 사용례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수레는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서 활용되었다.  

이처럼 수레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사용되면서, 수레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그건 바로 전쟁 무기였다. 수메르군은 말 또는 당나귀가 끄는 사륜마차에 창병과 마부를 태워 전쟁터에 내보냈으며, 수메르를 멸망시킨 아카드 제국은 통나무 대신 8개의 바퀴살로 이뤄진 이륜 전차를 이용해 기동성을 살린 전투를 지휘하였다. 48쪽을 보면 전차 사용의 확산을 색으로 표현한 지도가 하나 있는데,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지도인지라 굉장히 참신했다. 암튼,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급속도로 발전한 수레는 각지에 영향을 미쳤는데, 기원전 1600년경 미탄니 제국은 보다 개량된 전차를 활용하여 강대했던 아시리아 제국을 복속시켰으며, 다시 이를 받아들인 히타이트가 미탄니를 멸망시켰다. 이 두 제국은 예전에 히타이트 관련된 책을 보면서 개략적인 역사를 머릿 속에 집어넣은 적이 있는데, 전차의 활용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기원전 14세기경 미탄니 출신 전투마 조련사인 키쿨리에 대한 내용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굉장히 간과하고 넘어가지 않는가. 이미 그 당시에 전투마 조련사가 자신의 노하우를 적은 기록을 남겼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후 내용은 고대 최대의 전투라고 불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간의 카데쉬 전투로 넘어간다. 당시 양국은 수만명의 군대와 수천대의 수레를 동원해 전투를 벌였으며, 이는 모두 수레와 전차 때문에 가능한 대규모 국제대전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했다. 물론 중국도 그렇고, 중앙아시아도 그렇고,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그렇고 점차 전차는 기병으로 대체되면서 전장에서 가장 화려한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전차는 곧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며, 전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아시리아는 성벽을 공격하는 공성 망치를 개발하는데 이러한 아시리아의 공성 망치는 당시 무서운 전쟁 무기였다. 또한 헬레폴리스라고 불리는 전쟁용 탑 또한 공성전에 임하는 수비군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이는 이후 로마군의 공성무기, 동-서양에서 폭넓게 쓰인 이동식 대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전장의 환경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퀴와 수레를 활용한 새로운 전쟁무기가 전장을 휘젓게 되었고, 비록 전차는 활용도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군수용품을 나르는 수레의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미 유목민족이 게르라고 불리는 이동식 주거지를 위에 얹은 대형수레를 활용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또한 5세기 중엽, 북중국의 지배자였던 북위는 몽골 고원의 유연을 공격하기 위해 무려 10만의 기병과 15만대의 수레를 동원하기도 했는데, 이 수레가 모두 전차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는 대규모 원정군을 위한 군수용품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수 양제가 평양성을 직공하기 위해 보낸 30만명의 별동대가 치중부대 없이 엄청난 무게의 군수품을 각자 짊어지게 하여, 결국 군수용품의 부족을 경험하게 했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전쟁의 발달(?)에 있어서 수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전쟁이 계속되면서 수레는 더욱더 발달하고 개량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3. 국가의 의지와 도로, 그리고 수레 

이 책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이 바로 3장이다. 이 챕터는 수레가 다니는 도로에 대한 이야기인데(물론 3장 이외에도 도로와 국가의 의지에 대한 내용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기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저자는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발트해 지역과 지중해 연안 지방을 연결해주던 호박 도로부터, 히타이트 제국에 의해 건설된 왕도(Royal Road),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정비한 왕의 길 등 다양한 도로에 대해 말문을 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로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나 쉽게 '로마'를 떠올릴 수 있다. 맞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퐁텐이 처음 사용해 유명해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만큼 로마는 도로를 많이 만들고, 잘 만들고, 잘 관리하고, 잘 활용한 나라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을 저자는 콕 집어서 얘기하고 있다. 로마는 계속 늘어나는 식민지를 통치하고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신속한 군대 이동과 정보 및 명령 전달을 요구했고, 그로 인해 넓고 곧은 도로의 건설이 필수적이었다~고 말이다. 즉, 국가의 의지와 필요에 의해서 도로가 건설되고 관리되었다는 의미다. 앞에서 필자가 잠깐 얘기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단지 그러했구나~만 알고 배우는 것은 다가 아니라고. 왜! 그랬는지를 배우는 것이 진정한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수레가 왜 많이 쓰였을까? 도로가 많아서. 그럼 도로는 왜 많이 만들어졌을까? 로마의 성장과 군사적 이유 때문에...저자는 주제 하나하나마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풀어쓰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선에 주목한다. 도로는 육지에 놓이지만, 강이 있거나 산이 있으면 우회하거나 다리를 놓는 식으로 계속 도로를 연장하곤 한다. 로마는 그렇게 전국적인 도로망을 유지했다(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니, 로마군은 일정한 보폭과 동일한 발내딛음으로 행군하기 때문에 강에 놓인 다리가 진동을 유지하고 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흔들릴 수 있게끔, 그래서 잘 무너지지 않게끔 다리를 건설했다~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정말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한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만 해도 무려 길이가 375m에, 폭이 9m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나무다리가 평양에 만들어졌으며, 신라의 월정교 역시 길이 60m, 폭 14.5m 이상의 석조다리로서 이는 모두 사람뿐만 아니라 수레까지 다니게 만든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조선은 어떠했을까? 

조선은 다리를 잘 만들지 않았으며, 도로도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다. 이를 저자는 단순히 조선의 기후, 넓은 강폭, 국방 문제 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에서 도로나 다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수레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조선도 도성인 한양에는 수레가 충분히 다닐만한 도로가 있었고, 계획적으로 도로가 관리-유지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양만 해도 대로변에 만들어진 임시 건물들로 인해 도로폭이 좁아지게 되었고, 이는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도 그대로 비춰졌다. 결국 조선에 다시 제대로 된 도로가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때였다.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적어도 일본군 야포 2문이 동시에 건널 수 있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다리와 도로를 우선적으로 놓아야 한다고 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이에 반발했다. 도로가 잘 닦임으로서 외세의 침입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로마의 경우, 잘 닦인 도로를 통해 보다 활발한 군사정책을 실시하고, 더 많은 정복지에서 더 많은 약탈품을 운송시켰던 것에 비한다면 조선의 경우는 핑계에 불과한 변명을 내뱉은 것에 불과하지 않다. 이는 곧 국가의 의지, 보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위정자의 의지에 따라 도로가 만들어지고, 유지-관리되는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음 몇가지 사례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로가 아주 잘 닦였기 때문에 수레가 많이 사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는 수레가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섬나라인만큼 해상교통이 발달했고, 해상교통으로 먹고 사는 상인들이 육상교통 수단인 수레의 발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이는 국가의 의지 혹은 위정자의 의지에 따라 도로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조선과는 다른 상황이었지만, 마찬가지로 특수한 정치 ·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인데, 앙코르 제국에서 수레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수레는 도로가 있어야 사용되는 것이며,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도로가 놓이기 힘든 밀림이 형성된 곳이 대부분이라 앙코르 제국에서 수레가 사용되었다는 생각을 이전까지 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진랍풍토기』에 의하면 당시 앙코르에서는 코끼리나 말을 타거나, 수레를 이용했다고 한다(이 책도 사놓고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실제 앙코르 제국은 17개의 주요 간선도로를 건설했으며, 그 위로 수레들이 다녔다. 하지만 앙코르 제국이 아유타야 왕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함으로써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 도로는 곧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혹시 발해도 잘 닦인 도로 때문에 거란에게 쉽게 멸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암튼 저자는 '도로'라고 하는 공공재를 하나의 투자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자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고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도로의 건설과 수레의 사용은 국가의 의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아마 수레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 일련의 생각을 이끌어낸 책은 필자가 알기로는 없었다. 

4. 수레, 문명의 원동력 

마지막으로 저자가 수레와 직결시킨 문명사에 대해 몇마디 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저자는 수레가 쓰이지 않는 나라에서는 신화에서조차 수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그렇다. 신화라는 것이 실제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수레를 끌만한 동물이 없는 지역에서도 수레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를 보면서 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내용이 이 책의 6~7장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미 선조들이 수백년 이상 수레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상의 이유로 철저하게 수레가 배척당해 사용되지 않았던 조선,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고, 수레가 잘 사용될 조건이 다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교통을 장악하고 있던 상인들에 의해 수레 사용이 배척되었던 일본, 강력한 통일제국의 권력이 수레 사용이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했지만, 그 권력이 사라지면 수레 사용 또한 사라지게 됨을 알려준 앙코르 제국, 체체파리와 같은 수레를 끌 수 있는 동물들의 천적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수레 사용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되는 아프리카, 도로는 있었지만 수레를 끌만한 동물이 없어 수레 역시 없었던 잉카 제국, 수레를 끌 동물도 없었고 수레도 몰랐던 아즈텍 문명, 수레를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실생활에 사용하지 못 했던 마야 문명 등 저자는 다양한 문명권을 소개하면서 수레와 연결시켜 이들 문명을 하나하나 재해석하고 있다. 

이 부분까지 읽으면 이제 독자들은 '아하!' 하고 머리를 탁 칠지도 모른다. 

수레가 좋고, 전차가 좋고, 기병이 좋고, 마차가 좋은데...어째서 어느 한쪽은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해서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는가 하면 어느 한쪽은 왜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을까? 라는 생각을 누구나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에 딱 맞는 대답이 바로 이 책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각 문명권마다 똑같은 이유로 수레를 사용하고,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환경적인 측면, 정치-사회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 군사적인 측면 등 다양한 방향에서 수레를 살펴봄으로써 저자는 어떻게 보면 아주 쉬우면서도 어려운 하나의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건 바로 '수레야말로 인류 역사와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동차와 기차, 탱크 등을 언급하면서 수레의 변천사를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마치 여기에서 끝이 나면 재미없지~라는 말을 하듯이 저자는 마지막 9장에서 가벼운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건 바로 수레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선물뿐만 아니라 수레가 준 부작용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레는 인간에게 속력을 줬으며, 두번째로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었다. 또한 직업을 분화시켜 주었고, 각 지역의 통합과 소통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있었으며, 엄청나게 많은 수레를 만들기 위해 벌목을 해대는 통에 산림이 황폐화되기도 하였고, 도로를 건설하면서 생태계와 지형이 파괴되기도 하였다. 또한 오늘날 자동차로 인한 환경 오염과 소음 등의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레(이후의 자동차까지 포함하여)는 그만한 부작용을 감내해도 될만한 이익을 인류 문명에게 남겨줬다. 수레는 단순히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이동 수간에서 멈춤 것이 아니라 신분, 기술자 계급 등 비물질적 측면, 종교, 속도와 거리 관념 등 의식 측면에 있어서도 변화 원인이 되었다. 아울러 전쟁 규모의 확대, 상업 발전, 거대 국가 탄생에 이르기까지 수레는 매우 중요한 자극제가 되어 왔다.  

이 말은 곧 수레가 인류 문명의 흥망을 좌우했던 중요한 존재인만큼, 앞으로도 우리 인류가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메세지인 셈이다. 이렇게 책은 끝맺음을 맺고 있다. 하지만 책장을 다 덮은 흥분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단순히 좋은 책 한권을 읽었다~이상으로 필자에게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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