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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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주된 내용이 한반도 고인돌의 유래와 한국인의 기원(더불어 신라인의 문화적 원류)이라면 2권의 주된 내용은 허황옥을 중심으로 한 인도와 한반도 남부의 교류 및 일본의 야마대국, 중국의 김씨라 할 것이다. 먼저 저자는 인도와 페르시아, 간다라 등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힌두교와 불교라는 종교의 발상지, 카스트제도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 인도. 그리고 그 곳에서 특이한 문양을 발견했으니 그건 바로 카투만두박물관에서 찾은 네팔의 5세기 '쌍어문(雙漁紋)'이 새겨진 불교사원 조각품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자는 이 쌍어문을 토대로 가야의 허황옥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템포 쉬었다 가는 의미로 저자는 유럽 여행기를 소개했다. 이태리 로마 국제문화재보존복구센터에서 수학한 경험도 있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동양학) 학위를 받은 저자는 유럽문화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유럽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문화재 복원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문화유적과 실질적인 보상문제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바로 서울 한복판의 풍납토성이다. 애초에 성벽만 사적지로 지정된 탓에 성 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거주지에 대해서는 보상문제가 만만찮게 되었다. 몇 조(兆) 단위의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상액이 있어야 성내 5만평의 땅을 구입할 수 잇고, 그것보다 2배의 비용이 들어야 성 주변의 해자까지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유적을 보존하자니 돈이 없고 모르는 체하자니 역사의 죄인이 되는 순간이란다. 저자는 만약 이탈리아나 일본에 이런 유적이 있었다면 100년이 걸리더라도 유적 보존계획을 세웠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OECD 국가임에도 그 품격에 걸맞는 문화 정책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서 질타를 가하고 있다. 하긴, 술 먹고 문화재에 방화를 저지르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장기적인 문화재 보존계획 수립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면서 저자의 발길은 남유럽을 떠나 중앙아시아, 다시 동남아시아로 향한다. 저자도 책에서만 보다가 직접 봤을때 놀랐다는 베트남의 동손문화(Dongson Culture)때 만들어진 청동 북 얘기가 나왔을때는 주인장도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양각의 무늬가 화려하여 베트남의 고대 청동기문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그 유물을 보면서 주인장 또한 그 앞에서 눈을 떼지 못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쪽에 자리하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베트남 답사는 저자가 느꼈듯이 주인장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호이한[會安]시에서 느꼈던 점을 적으며 다시금 한국의 문화재 보존계획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16세기부터 번창했던 이 국제도시를 베트남은 지금껏 잘 보존해오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생겨났고 국제적 감각에 의해 축조된 건물은 아직까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베트남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청동기를 제작하는 전통마을이 곳곳에 있다. 주인장은 청동종을 만드는 마을을 들렸었는데 그 곳에서는 수백년간 전해진 전통기법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하회마을이나 민속촌 같았지만 집집마다 파전과 민속주를 파는 것 대신, 그들은 전통기법으로 만든 종을 만들고 있었다. 먼저 이 곳을 방문하셨던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약간의 돈을 주면 종을 만드는 전 과정을 몇날며칠에 걸쳐 다 보여준다고 했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무형문화재를 지켜내지 못 하고 있을까. 가끔씩 대를 이어 무형문화재를 지키려는 사람이 줄어듦에 따라 우리 문화가 점점 대가 끊긴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베트남의 경우를 보고 좀 배웠으면 했다. 주인장 역시 베트남도 이러할진데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 하고 있어 안타까웠는데 수십년간 한국 고고학계에 몸담았던 원로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를 들린 저자는 역시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현재 앙코르와트는 문화재 보존계획에 따라 전세계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유독 우리나라만 빠져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 사람들은 각자 자국 국기를 달고 자원봉사자를 보내 문화재 복원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 명색이 OECD 회원국이라는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한국식 식당과 굉장히 대조적이라 한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때 사람들이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혀를 내둘렀었다(물론 그 더위에 혀가 축 쳐진 것도 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우리도 그런 거대하고 뛰어난 문화유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계에 당당히 내세우지 못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존하고 가꾸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저자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런 고심을 하고 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의 여행기가 마무리되고 다시금 이야기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평소 남보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나도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작했다는 아유타국 연구. 게다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서로 다른 성씨임에도(족외혼) 서로간에 결혼을 꺼려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는 인도의 아유타국과 허황옥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신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구약성서에서 확인된 어문(漁門 : Fish Gate)이라는 단어와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신어 등을 통해 저자는 근동과 인도 등지까지 이 쌍어문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 다음에 저자는 허황옥의 시호가 보주태후(普州太后)인 점을 들어 보주라는 지명을 찾아나선다.『후한서』를 보면 서기 47년, 남군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7천명의 토착인들이 강하로 강제 이주 당하고 101년에도 봉기가 일어났는데, 그 주모자의 이름이 허성(許聖)이다. 즉, 허씨 성을 가진 사람이 보주, 즉 사천성 일대에 살고 있었으며 실제 그 곳에는 허씨 집성촌이 있다는 것도 확인을 했다. 뒤이어 허황옥의 발원지가 확인된 상태였으므로 이제는 중국 내에서 신어의 흔적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전파 지도를 완성하였다. B.C 2,700년 아시리아를 거쳐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B.C 500~300년 스키타이 지역에서 신어가 확인된다. 뒤이어 간다라와 야요디아를 거친 신어는 A.D 1~100년 운남과 보주, 무창 등지에서 확인되고 다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구마모토까지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신어사상 문화권'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윽고 저자는 이를 계기로 한반도와 인도는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주인장은 조금 회의적이다. 일단 보주라는 지명이 사천성에 있지만 김성호는 이와 달리 양자강 하류 일대를 지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타도주의 줄임말을 보주로 이해하는 것이다. 게다가 허황옥은 상인집단을 동반한 해상세력으로서 사천성에서 양자강을 따라 다시 해상으로 가야까지 왔다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움이 있다. 오히려 양자강 하류에서 활동하던 해상집단으로서 가야와 교류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신어사상 문화권이 이 주장의 가장 큰 주장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남아있는 신어사상이 포함된 문화적 요소 중 가야 당대(A.D 1세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가야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삼국유사』내의「가락국기」조차 가야 당대의 1차 사료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는 후대에 불교 전래와 더불어 전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야의 국명조차도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는 견해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후한에 저항하던 서남이 계열의 토착민들이 양자강을 따라 머나먼 길을 육로로 이동했다가 양자강 하류에서 가야로 왔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허씨 집단이 사천성에서 양자강을 따라 이동했다는 근거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 내륙에 존재하던 집단이 어떻게 해상집단의 성격을 갖게 됐는지 등등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 1권에서 신라와 스키타이에 대해 서술할때도 거시적인 틀은 마련했지만 그에 대한 세부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신어사상을 일본 구마모토에서 찾은 저자의 노력과 그에 따라 비미호를 새롭게 해석한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다. 특히 가야와 철을 매개로 교역했던 왜를 언급하면서 그런 문화적 교류 속에서 신어사상의 전파는 당연하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장은 이 부분에서 오히려 신어사상이 세계사적으로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고기 2마리가 마주본다는 식의 설정만 같을 뿐,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신어의 의미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물고기가 지니는 그 자체의 의미와 둘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보편적이라 한다면 이러한 신어사상이 어떤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동반한채 이동했다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2권에서도 저자의 열정과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후한에 투항한 흉노인 김일제의 후손과 신라 김씨족을 연관시켜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끝마치고 있었다. 요즘같이 해외여행이 성행하지 않았고, 갈 수 없는 곳도 많았을텐데 저자는 열정과 노력 하나만으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했었다. 그 원로학자의 열정과 노력을 이 2권의 책이 전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충분히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장은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이 책을 주저없이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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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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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고고학 관련 서적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발굴현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남는 시간에 읽은 책인데 분량도 많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어 단숨에 읽었던 책이다. 이제 다소 여유가 있어 그 책에 대한 서평을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우물 정(井)자 처럼 생긴 고구려의 부호. 한때 최인호의『왕도의 비밀』이라는 책의 중심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책의 시작을 이것으로 시작했다. 고구려사를 전공하거나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부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국장(國章)이라는 견해도 있고, 토기나 청동기를 만든 장인의 메이커라는 견해도 있으며, 토기의 파수부를 장착할 위치를 표시해놓은 기능적인 표시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으며 고고학자는 이 불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지루하면서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학문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운을 떼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인 김병모 선생님은 고고학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분이다. 신라의 금관과 북방 스키타이 문화를 접목하여 설명하고 가야의 허황옥과 인도의 야유타국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으로 특히 유명한데 종래 학계의 견해와 달리 다소 급진적인 주장도 서슴치 않기에 더욱더 주목을 받는 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저자는 굉장히 광범위한 시각 속에서 고고학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한국사의 범위를 결코 좁은 한반도 안에 국한시켜서 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저자의 수십년 고고학 인생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으로 저자가 그동안 다녔던 전 세계의 문화유적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문화유적들을 저자는 일관된 주제 속에 재해석하고 있어 읽는 독자들은 그를 통하여 간접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삶이야말로 고고학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만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1권에서는 먼저 남방문화권의 고인돌을 비롯한 거석기념물과 한국의 언어와의 비교연구, 스키타이를 비롯한 알타이지방에 대한 부분, 시베리아와 아무르강 유역,『산해경』을 재해석한 부분, 초원지방에 대한 여행 등 다양한 지역을 여행한 저자가 보고 느낀 점 등을 볼 수 있다.  저자는 고인돌과 같은 거석기념물의 기원이 남방문화권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확신 아래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을 답사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학자의 열정 하나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형질인류학적인 연구성과도 참조하고 그 스스로 해류조사카드도 만들어 바다에 뿌려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한다. 물론 해류조사카드를 이용한 연구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저자의 노력을 엿보는데는 충분했다. 또한 오끼나와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의외였다. 지리적으로 일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다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다시피 하여 오래도록 선사시대를 유지했던만큼 오끼나와에서 고인돌과 그에 따른 문화적인 현상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주인장도 오끼나와로 해외답사를 갔을때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 하였다. 그럼에도 미야코섬에서 저자가 발견한 고인돌을 보고 아~하고 대단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바다를 통한 선사인들의 교류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 하는 범위까지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주인장으로서는 안타깝고도 섬뜩했다. 1982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아시아 고인돌 연구 세미나에서 저자는 고인돌이 발견된 지역에서 특이하게 난생신화를 믿고 있는 종족들이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당시 국내 학계로서는 충격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듯 싶다. 어떤 원로 학자가 저자의 스승이신 김원룡 선생님께 충고성 권유를 하고 학계와 언론은 저자에게 관념암살(觀念暗殺, Iaea Assassination)을 선사한다. 신사고에 대한 기득권이라고 자부하는 집단의 본능적 부정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이야기는 저자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저자는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꾸준히 고인돌을 발견하는 등 고인돌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더불어 언어학적인 연구도 잊지 않았다. 인도어(드라비다어)와 한국어 속에는 서로 비슷한 인자(因子)가 굉장히 많은데 주인장도 평소에 별 생각없이 썼던 우리 말이 인도에서 전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흔히들 몽골의 영향으로 제주도에 생겨나게 되었다고 알려진 하르방의 원초적인 형태가 정작 몽골에는 없다는 것을 밝혀낸다(저자는 또한 제주도 조랑말이 몽골이 아닌 광동마 계통의 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토종말들과 연관이 깊다는 것도 증명해 주인장을 놀라게 했다). 오히려 제주도의 특징인 하르방이 남방문화의 인자이며 이러한 하르방은 중앙아메리카의 페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건네줬다. 흑조해류를 타고 연안을 따라 중앙아메리카까지 흘러간 해류는 이어 적도해류를 타고 이스터섬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향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을 놀라게 한 것은 성인백혈병(ATL : Adult T-Cell Lukemia)과 고인돌의 분포범위가 비슷함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세계고인돌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인만큼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세계 거석문화협회가 창립되기에 이른다. 저자의 오랜 노력이, 어찌보면 젊은 날의 청춘을 걸고 관념암살과 싸워왔던 전쟁에서 승리하고 결실을 맺은 셈이다. 저자는 이 글을 보면서 기존 한국학계와 전혀 다른 접근법과 증빙자료로 이와 같은 결실을 뽑아낸 저자가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학, 형질인류학, 해양학, 동물학, 의학 등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를 통한 그의 증빙은 혀를 내두르게 할 지경이었다. 그로 인해 이제는 한국 고인돌의 유래를 두고 북방기원설만 주장하는 견해는 사라졌다. 다양한 문화 전파 루트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전해졌고 그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선사문화가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흡사 유럽인의 아메리카 발견이나 서양의 대항해시대때의 격동적인 역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서양인들이 갖고 들어간 매독같은 병에 의해 면역력이 약한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부분이 떠오르면서 ATL과 고인돌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통찰력이 놀랄 따름이었다. 각각 독특한 지형과 기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동일한 문화적 요소를 갖고 다른 지역으로 퍼진다면 그 유전적 흔적은 어디든 반드시 남을테니 말이다. 정말 흥미롭던 첫번째 이야기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어 저자의 발걸음은 북방 초원으로 향해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로 향한다. 이 부분은 이미『금관의 비밀』에서 밝힌 바 있는 내용들이 많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헤로도토스의『역사』를 토대로 파지리크 지방에 살고 있던 '아르기 파이오이'라 불리는 대머리 인종을 여사제로 해석한 부분은 탁월했다. 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거친 유목민들 사이에서 분쟁을 조정해줬다는 인종, 그것은 바로 여자사제들이었던 것이다. 대머리 사제들은 이집트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만큼 그들의 신분적 질서가 다른 민족과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공산주의권 국가를 여행하며 생겼던 문제점도 있고 에피소드들도 나름 있었지만 저자는 끊임없는 탐구욕으로 바이칼호수 근처의 알타이 지역까지 나아갔다. 그 안에서 빗살무늬토기와 숟가락, 자작나무, 샤먼의 전통 등을 통해 광범위한 알타이지역과 한국의 역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특히 자작나무의 경우 신라 천마총의 승마용 장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차대용 식물로도 활용되었다는 것을 공부한 바 있었다. 저자의 발걸음은 아무르지역을 거쳐 천산산맥까지 족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카자흐어로 '무정한 바보'라는 의미를 지닌 '싸랑'에서 연원한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주인장은『산해경』의 고고학적 재해석으로 꼽고 싶다. 알타이지역 각지의 문화현상을『산해경』과 연결시켜 저자는 당시의 사회를 재해석하였다. 여기서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새 숭배사상'인데 삼족오나 까마귀, 솟대 등의 신조(神鳥)가 우리측 자료에 길조로 기록된 것을 꼽을 수 있다 하겠다. 그러면서 주목되는 것이 신라인데 신라의 금관과 무덤을 통하여 저자는 신라와 알타이지역과의 밀접함을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유리제품이 고대 한반도에서 신라, 가야의 왕족무덤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이들만이 이란 지역과 해상교역을 통해 이런 제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조하지 못 하겠다. 오히려 그런 교류가 각국마다 활발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고분의 특성상 신라, 가야에서만 독특하게 많은 양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신라의 문화를 알타이지역 스키타이 등과 연결시키는 것에 주인장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신라가 한반도 동남부에 갇혀 있으면서 꾸준히 그들과 교류함으로써 이런 문화적 요소를 간직하게 되었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신라는 몇번의 임펙트한 접촉 이후 그들 문화의 원류지와는 교류가 거의 없었고 고구려나 백제를 통한 이차적인 접촉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잘 알다시피 각배라든가, 유목민족식 명칭은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즉, 알타이지역과 신라 사이에 문화적 요소가 다분히 많다고 하여 지속적이면서도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고 성급히 단정짓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다양한 지역에서 고대 한국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수많은 문화적 요소들을 확인했던 만큼 이 책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런만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반인들은 이 책을 두고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에서 주인장과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다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한국사를 해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이 김병모 선생님의 평소 생각과도 잘 부합하는만큼 이 책은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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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평전 - 위대한 폭군 미다스 휴먼북스 4
천징 지음, 김대환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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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봤다. 고속도로 휴게실 할인코너에서 운 좋게 좋은 책을 하나 건짓 듯 하다. 처음에는 할인코너를 미처 못 보고 돌아섰는데 동생이 "오빠, 진시황 평전이라는 책 있어?" 라고 물어보길래 잽싸게 가서 구입한 책이다. 물론 50% 할인가에 말이다. 어쨌든, 진시황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읽어봤지만 대부분은 진시황, 인간 그 자체보다 그의 치적과 연결된 정치사적인 부분에 대해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만리장성과 흉노 정벌,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물론 주인장은 아직 쓰루마 가즈유키가 쓴『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진시황제』라는 평전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오늘은 위에 소개한 책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은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다.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두어번 읽으면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운 일은 없을 듯 싶다. 게다가 책 뒷부분에는 전국시대 6국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나와 있어서 당시 6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인장이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저자가 분명 관련 분야의 전공자로서 관련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흥미를 잃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혹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제들을 한두개 던져두고 이를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형식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어서 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전에 주인장이 한번 언급했듯이 진시황 출생의 비밀(어찌보면 상당히 널리 알려져있는 진시황 관련 의문들 중 하나일 듯 싶다)을 책 초두에 꺼내놓으면서 그는 관련 연구자들의 여러 견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중에 자신의 생각을 게재했다. 읽으면서 내심 '이거 중국 학자들이라고 진시황의 출생에 대해서 일부러 정통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해석하고자 여불위와 관련된『사기』의 기록을 무시하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관련 문헌과 연구자료들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인장이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고 진시황 출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주인장은 그간『사기』의 기록이 사실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는『사기』의 기록 자체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인장이 지금껏 생각했던 것들을 재고할 필요가 생겼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저자는 차근차근 진시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주인장이 또 흥미롭게 본 부분으로는 여불위와 진시황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치세기간이 짧은 장양왕과 집권 초반 중부(仲父)에게 정치를 일임했던 진시황 시절, 여불위는 수년간 진나라를 제국으로 만들고 다듬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은『여씨춘추(秋)』로 세상에 빛을 선보였는데 여불위가 빈객 3,000명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내놓은 지식들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한글자라도 고칠 수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 했으니 그 자부심이 대단했으리라. 

그러면서 저자는『여씨춘추』의 정치 스타일은 진시황과 달랐다고 적고 있다. 알다시피『여씨춘추』는 패도(覇道)에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일부에서『여씨춘추』를 두고 너무 틀에 맞춰 쓰다보니 내용의 헛점이 있다는 비평도 하지만 그것은 모두 여불위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이라 적고 있다. 즉, 그는『여씨춘추』라는 책을 만들면서 일종의 '사상 통일'을 꾀했던 것이다. 즉, 글의 형태만 스탠다드한 표준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틀을 맞춤으로서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도 통일성을 강조했다는 소리였다. 그간『여씨춘추』에 대해서 막연히 그러한가 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깊은 뜻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순간, 진시황이 행했던 수많은 정책들이 떠올랐다. 분명 그 정책들은 진시황이 혼자서, 당대에 갑자기 천재적으로 떠올려 만든 것들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수백년간 서쪽 변방의 진나라에서 고생하면서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여불위는 그것들을 통일하려 하였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책 뒷부분에 가면 저자는 진시황의 업적을 말하면서 '왜 사람들이 진시황의 정치 · 군사 · 경제적인 통합 정책은 언급하면서 사상적인 통합 정책은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렇다. 어찌보면 이 사상 통합이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들여야 하며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세계에 대한 개혁적인 정치변화를 어찌 그동안 무시했을까. 흉노를 정벌한 것은 조나라 무령왕도 호복기사를 통해 행한 적이 있었고, 만리장성을 쌓은 것 역시 북쪽에 적을 두고 있는 위나라, 조나라, 연나라 등에서 행했던 것이다. 화폐와 글자가 다양했지만 그 또한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을 중심으로 몇개의 화폐와 글자로 구분되어 사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상 통일은 아무도 해내지 못 했다. 물론 패도에 입각한 정책 아래 법가사상이 중시되었지만 여불위의『여씨춘추』에서 알 수 있듯이 진나라는 사상 통합을 이룩한 나라가 분명했고, 그것은 분서갱유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도 잘 나타났다. 이 또한 주인장이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분때문에 이 책을 두고 일반적인 전국시대를 소개한 역사책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한 독자들도 몇몇 봤다. 하지만 분명 주인장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부분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자뭇 지루할지도 모를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들은 위에 언급한 것 말고 더 있었다. 

책 막바지에서 저자는 진시황이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가? 라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기초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이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결론을 먼저 꺼내놓고 이야기를 풀어놨다. 법가사상에 치중해 수백년간 내공(?)을 쌓아가며 빡쎄게 나라를 운영했던 진시황 이전의 군주들 덕분에 진시황은 그런 힘을 모아 거의 2년마다 일국을 멸망시켜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덧붙여 그는 중국은 통일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며 진시황이 뭐 새롭게 천하통일을 한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은 주나라 이래로 주욱 중국(中國)이라는 명칭 아래 하나의 통일된 존재였으며, 봉분된 국가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춘추5패와 전국7웅의 시대를 거쳐 진시황이 진(秦)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은 것 뿐이니 천하통일이라는 용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서 '역시 중국 학자라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시 진시황은 과거 6국의 영토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으며 그 영향력도 더 많이, 더 넓은 지역까지 행사했었다. 그럼에도 이미 중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변화라는 식의 서술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리장성을 두고 북방에 대한 방어적인 의미도 있지만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의미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 역시 앞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몇몇 부분에서 다소 작위적인 해석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진시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전문적인 내용이 추가되고 보완될 부분만 수정된다면 진시황 관련 연구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확실히 진시황은 수천년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패도적으로 통치했고 6국의 정복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백성에게도 가혹한 통치를 부여했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만세황제가 아닌 2세 황제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6국을 정복하고 천하통일에 매진할 때라면 그의 패도적인 정치는 그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일단 제국이 완성되면 제국은 더 이상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진시황을 보면 아스라이 스러져간 고구려의 모본왕이 생각난다. 분명 군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장기적인 고구려의 국가정책상 그의 의지는 엇나갔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치적은 이후 중국사에 그대로 남아 근간을 이루었다. 한대 정치제도가 대부분 진의 그것을 본땄으며, 한 역시 진의 패도를 부정하고 들고 일어나 진의 유물을 그대로 받아먹어 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후계자로 자처하던 고려가 신라 정치제도의 상당부분을 계승한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하나 읽어 이렇게 소개하고자 몇자 적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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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고고학회 엮음 / 사회평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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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마 처음일 것이다. 김원룡 선생님의『한국고고학개설』이후에 한국사 전반을 다룬 고고학 개설서가 나오기는 말이다. 안 그래도 한국고고학에 대한 개설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주인장처럼 고고학을 배우는 학생들도 그렇고, 고고학에 뜻이 있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는 각종 고고학회 학회지와 고고학 관련 잡지, 저널 등이 많이 발간되어 일반 대중들도 고고학을 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역시 고고학 개설서 1권 읽는 것만큼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1973년 김원룡 선생님의 책 초판이 나온 이후로 수많은 판본들이 출간되었고 아직도『한국고고학개설』은 대학에서 중요한 교재로 쓰이고 있다. 수십년이 지났건만 그 책에서 아직도 많은 정보들을 얻는다는 점에서 김원룡 선생님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고고학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한국고고강의』라는 책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원래 이 책은 대학교 및 대학원 교재로 쓰기 위해 몇몇 뜻있는 분들이 모여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인원이 보충되고 프로젝트가 커지고 분량이 늘어나면서 번듯한 개설서 1권을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물은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주인장이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셨고 연구원들 또한 각종 도면과 도판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상당히 애착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잡담이었고 책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최근 한국고고학계의 연구현황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김원룡 선생님의 책이 고전(古典)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만큼 최신 연구성과가 그 안에 표현되지 못한 반면, 이 책에서는 각 분야별 전공자들에 의해 최신 연구성과가 잘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사의 공간적 범위를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전부로 설정하고 있어 상고사 및 고대사를 이해하는 시각을 크게 넓힐 수가 있다. 더불어 문헌사학적 시각이 아닌, 고고학적 시각에서 쓴 책이어서 유물과 유적을 통해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고고자료만으로 한국사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미로울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또한 각 장마다 '시대개관-연구사(혹은 연구논점)-중요 유적과 유물'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있어 각 시대마다 그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고고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함은 물론이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파트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각 시대별로 서로 같은 분야의 문화적 내용들을 비교하며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한국고고학개설』도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분량이 적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었다. 그에 반해 이 책에서는 풍부한 도면과 도판, 표 등을 제시하고 그에 합당한 설명이 부가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그렇게 어려운 책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원삼국시대를 언급하면서 북부, 중부 및 서남부, 동남부 3개 지역권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북부지역에 대해서는 낙랑을 거론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고구려 이외에 북방의 패자였던 부여에 대해서도 약간의 보충설명을 더하고 있으며 백제 부분에서는 영산강유역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그리고 문헌사적으로, 혹은 미술사적 시각에서 주로 다뤄왔던 통일신라와 발해에 대해서도 다양한 고고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어 기존의 고고학 관련 서적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간 한국고고학의 시 · 공간적 범위가 확대되었음은 물론이요, 그에 따라 더 많고 다양한 자료들이 축적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단점이라면 편집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분량이 편집되어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고, 그 다음으로 각 분야별 전공자마다 생각하는 바와 학문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용어 사용이라든가, 기본적인 역사인식에 있어서 일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이 비록 한국고고학회라는 한국고고학계를 대변하는 집단의 주도 아래 출간되었지만 이 책의 내용이 곧 '국정교과서'처럼 한국고고학계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므로 읽으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명의 집필자들의 원고를 일일히 다듬어 편집한 5명의 편집위원들 덕택에 훌륭한 책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책도 개정판이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이보다 더 좋은 최신 정보를 실은 개설서가 앞으로도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나오기 전까지 이 책은 충분히『한국고고학개설』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고고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분들이나 고고학에 뜻을 둔 학생들,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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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암살사건
김재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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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강제규필름 등의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관련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이런저런 분야에서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을 보기 전에 주인장이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전에 읽었던 정약용 살인사건과 함께 최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사극이 인기를 얻고 있어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아라? 무슨 내용일까? 설마『환단고기』류의 책에서 말하는 가림토 문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책장을 넘겼다.


결론을 말하면 주인장의 예상과 책의 내용은 상당부분 일치했다. 우연히 소매치기가 훔친 지갑 속에서 훈민정음 원류본의 마지막 페이지 일부가 발견되고 그와 관련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약간 무대포격인 강현석 형사와 지적인 여교수 서민영이다. 그리고 이 둘이 일본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운다는 식의 스토리가 흘러간다. 일본의 거대한 음모라는 것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이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그 사실을 막기 위해서 이런저런 위험과 고비를 이겨내며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명 이 소설의 소재는 참신하다 할만하다. 훈민정음이 가림토 문자라고 하는 단군시대 글자에서 본을 떴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고 말이다. 재야사학계에서 언급하는 사실들은 충분히 소설적 재미로 활용할만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좋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두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 유적, 저 유적을 찾아나서는 모든 과정이 일본 우익의 수장 야마다가 파놓은 함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통해 한글의 뿌리는 일본의 신대글자라는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이른다. 물론 일본측의 음모는 밝혀지게 되지만 그 모든 과정 사이의 연관성이 치밀하지 못 하다.


문화재청에서 발굴을 해야한다고 떼를 써서(?)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아낸다는 설정은 읽으면서 그야말로 코웃음을 치게 했고(문화재청은 그렇게 쉽게 발굴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것도 공문 1장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흡사『다빈치 코드』를 보는 듯한 몇개 조합을 풀어나가면서 이 유적, 저 유적을 찾아나가는 설정은 그다지 참신하지 못 했다. 분명 서민영 아버지가 남긴 암호문의 암호라든가, 일본측이 일부러 파놓은 함정으로 가기 위한 암호문 등은 한국적 팩션에 어울릴만한 아이템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몇몇 소재나 아이템이 빛을 잃을 정도로 스토리가 빈약했다. 차라리 2권으로 내용을 늘리면서 보다 정교하게 스토리를 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출판사 리뷰를 보니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동경, 오사카 등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청계천, 경복궁, 신륵사, 세종대왕릉 등 수많은 장소를 직접 답사하고 여러 역사학자와 인터뷰하고, 다양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는 이러한 유적 답사가 소설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 따로 비평을 적겠지만 역시 똑같은 훈민정음 창제를 갖고 쓴 소설『뿌리깊은 나무』와 비교한다면 이 책은 정말로 어린애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에게는 안타까운 말이겠지만 좋은 점수를 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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