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오늘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고고학 관련 서적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발굴현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남는 시간에 읽은 책인데 분량도 많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어 단숨에 읽었던 책이다. 이제 다소 여유가 있어 그 책에 대한 서평을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우물 정(井)자 처럼 생긴 고구려의 부호. 한때 최인호의『왕도의 비밀』이라는 책의 중심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책의 시작을 이것으로 시작했다. 고구려사를 전공하거나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부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국장(國章)이라는 견해도 있고, 토기나 청동기를 만든 장인의 메이커라는 견해도 있으며, 토기의 파수부를 장착할 위치를 표시해놓은 기능적인 표시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으며 고고학자는 이 불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지루하면서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학문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운을 떼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인 김병모 선생님은 고고학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분이다. 신라의 금관과 북방 스키타이 문화를 접목하여 설명하고 가야의 허황옥과 인도의 야유타국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으로 특히 유명한데 종래 학계의 견해와 달리 다소 급진적인 주장도 서슴치 않기에 더욱더 주목을 받는 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저자는 굉장히 광범위한 시각 속에서 고고학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한국사의 범위를 결코 좁은 한반도 안에 국한시켜서 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저자의 수십년 고고학 인생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책으로 저자가 그동안 다녔던 전 세계의 문화유적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문화유적들을 저자는 일관된 주제 속에 재해석하고 있어 읽는 독자들은 그를 통하여 간접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삶이야말로 고고학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만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1권에서는 먼저 남방문화권의 고인돌을 비롯한 거석기념물과 한국의 언어와의 비교연구, 스키타이를 비롯한 알타이지방에 대한 부분, 시베리아와 아무르강 유역,『산해경』을 재해석한 부분, 초원지방에 대한 여행 등 다양한 지역을 여행한 저자가 보고 느낀 점 등을 볼 수 있다.  저자는 고인돌과 같은 거석기념물의 기원이 남방문화권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확신 아래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을 답사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학자의 열정 하나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형질인류학적인 연구성과도 참조하고 그 스스로 해류조사카드도 만들어 바다에 뿌려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한다. 물론 해류조사카드를 이용한 연구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저자의 노력을 엿보는데는 충분했다. 또한 오끼나와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의외였다. 지리적으로 일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다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다시피 하여 오래도록 선사시대를 유지했던만큼 오끼나와에서 고인돌과 그에 따른 문화적인 현상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주인장도 오끼나와로 해외답사를 갔을때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 하였다. 그럼에도 미야코섬에서 저자가 발견한 고인돌을 보고 아~하고 대단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바다를 통한 선사인들의 교류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 하는 범위까지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주인장으로서는 안타깝고도 섬뜩했다. 1982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아시아 고인돌 연구 세미나에서 저자는 고인돌이 발견된 지역에서 특이하게 난생신화를 믿고 있는 종족들이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가설은 당시 국내 학계로서는 충격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듯 싶다. 어떤 원로 학자가 저자의 스승이신 김원룡 선생님께 충고성 권유를 하고 학계와 언론은 저자에게 관념암살(觀念暗殺, Iaea Assassination)을 선사한다. 신사고에 대한 기득권이라고 자부하는 집단의 본능적 부정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이야기는 저자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저자는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꾸준히 고인돌을 발견하는 등 고인돌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더불어 언어학적인 연구도 잊지 않았다. 인도어(드라비다어)와 한국어 속에는 서로 비슷한 인자(因子)가 굉장히 많은데 주인장도 평소에 별 생각없이 썼던 우리 말이 인도에서 전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흔히들 몽골의 영향으로 제주도에 생겨나게 되었다고 알려진 하르방의 원초적인 형태가 정작 몽골에는 없다는 것을 밝혀낸다(저자는 또한 제주도 조랑말이 몽골이 아닌 광동마 계통의 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토종말들과 연관이 깊다는 것도 증명해 주인장을 놀라게 했다). 오히려 제주도의 특징인 하르방이 남방문화의 인자이며 이러한 하르방은 중앙아메리카의 페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건네줬다. 흑조해류를 타고 연안을 따라 중앙아메리카까지 흘러간 해류는 이어 적도해류를 타고 이스터섬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향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을 놀라게 한 것은 성인백혈병(ATL : Adult T-Cell Lukemia)과 고인돌의 분포범위가 비슷함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세계고인돌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인만큼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세계 거석문화협회가 창립되기에 이른다. 저자의 오랜 노력이, 어찌보면 젊은 날의 청춘을 걸고 관념암살과 싸워왔던 전쟁에서 승리하고 결실을 맺은 셈이다. 저자는 이 글을 보면서 기존 한국학계와 전혀 다른 접근법과 증빙자료로 이와 같은 결실을 뽑아낸 저자가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학, 형질인류학, 해양학, 동물학, 의학 등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를 통한 그의 증빙은 혀를 내두르게 할 지경이었다. 그로 인해 이제는 한국 고인돌의 유래를 두고 북방기원설만 주장하는 견해는 사라졌다. 다양한 문화 전파 루트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전해졌고 그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선사문화가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흡사 유럽인의 아메리카 발견이나 서양의 대항해시대때의 격동적인 역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서양인들이 갖고 들어간 매독같은 병에 의해 면역력이 약한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부분이 떠오르면서 ATL과 고인돌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통찰력이 놀랄 따름이었다. 각각 독특한 지형과 기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동일한 문화적 요소를 갖고 다른 지역으로 퍼진다면 그 유전적 흔적은 어디든 반드시 남을테니 말이다. 정말 흥미롭던 첫번째 이야기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어 저자의 발걸음은 북방 초원으로 향해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로 향한다. 이 부분은 이미『금관의 비밀』에서 밝힌 바 있는 내용들이 많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헤로도토스의『역사』를 토대로 파지리크 지방에 살고 있던 '아르기 파이오이'라 불리는 대머리 인종을 여사제로 해석한 부분은 탁월했다. 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거친 유목민들 사이에서 분쟁을 조정해줬다는 인종, 그것은 바로 여자사제들이었던 것이다. 대머리 사제들은 이집트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만큼 그들의 신분적 질서가 다른 민족과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공산주의권 국가를 여행하며 생겼던 문제점도 있고 에피소드들도 나름 있었지만 저자는 끊임없는 탐구욕으로 바이칼호수 근처의 알타이 지역까지 나아갔다. 그 안에서 빗살무늬토기와 숟가락, 자작나무, 샤먼의 전통 등을 통해 광범위한 알타이지역과 한국의 역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특히 자작나무의 경우 신라 천마총의 승마용 장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차대용 식물로도 활용되었다는 것을 공부한 바 있었다. 저자의 발걸음은 아무르지역을 거쳐 천산산맥까지 족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카자흐어로 '무정한 바보'라는 의미를 지닌 '싸랑'에서 연원한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주인장은『산해경』의 고고학적 재해석으로 꼽고 싶다. 알타이지역 각지의 문화현상을『산해경』과 연결시켜 저자는 당시의 사회를 재해석하였다. 여기서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새 숭배사상'인데 삼족오나 까마귀, 솟대 등의 신조(神鳥)가 우리측 자료에 길조로 기록된 것을 꼽을 수 있다 하겠다. 그러면서 주목되는 것이 신라인데 신라의 금관과 무덤을 통하여 저자는 신라와 알타이지역과의 밀접함을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유리제품이 고대 한반도에서 신라, 가야의 왕족무덤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이들만이 이란 지역과 해상교역을 통해 이런 제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조하지 못 하겠다. 오히려 그런 교류가 각국마다 활발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고분의 특성상 신라, 가야에서만 독특하게 많은 양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신라의 문화를 알타이지역 스키타이 등과 연결시키는 것에 주인장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신라가 한반도 동남부에 갇혀 있으면서 꾸준히 그들과 교류함으로써 이런 문화적 요소를 간직하게 되었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신라는 몇번의 임펙트한 접촉 이후 그들 문화의 원류지와는 교류가 거의 없었고 고구려나 백제를 통한 이차적인 접촉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잘 알다시피 각배라든가, 유목민족식 명칭은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즉, 알타이지역과 신라 사이에 문화적 요소가 다분히 많다고 하여 지속적이면서도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고 성급히 단정짓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다양한 지역에서 고대 한국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수많은 문화적 요소들을 확인했던 만큼 이 책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런만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반인들은 이 책을 두고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에서 주인장과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다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한국사를 해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이 김병모 선생님의 평소 생각과도 잘 부합하는만큼 이 책은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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