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권의 주된 내용이 한반도 고인돌의 유래와 한국인의 기원(더불어 신라인의 문화적 원류)이라면 2권의 주된 내용은 허황옥을 중심으로 한 인도와 한반도 남부의 교류 및 일본의 야마대국, 중국의 김씨라 할 것이다. 먼저 저자는 인도와 페르시아, 간다라 등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힌두교와 불교라는 종교의 발상지, 카스트제도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 인도. 그리고 그 곳에서 특이한 문양을 발견했으니 그건 바로 카투만두박물관에서 찾은 네팔의 5세기 '쌍어문(雙漁紋)'이 새겨진 불교사원 조각품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자는 이 쌍어문을 토대로 가야의 허황옥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템포 쉬었다 가는 의미로 저자는 유럽 여행기를 소개했다. 이태리 로마 국제문화재보존복구센터에서 수학한 경험도 있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동양학) 학위를 받은 저자는 유럽문화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유럽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문화재 복원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문화유적과 실질적인 보상문제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바로 서울 한복판의 풍납토성이다. 애초에 성벽만 사적지로 지정된 탓에 성 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거주지에 대해서는 보상문제가 만만찮게 되었다. 몇 조(兆) 단위의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상액이 있어야 성내 5만평의 땅을 구입할 수 잇고, 그것보다 2배의 비용이 들어야 성 주변의 해자까지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유적을 보존하자니 돈이 없고 모르는 체하자니 역사의 죄인이 되는 순간이란다. 저자는 만약 이탈리아나 일본에 이런 유적이 있었다면 100년이 걸리더라도 유적 보존계획을 세웠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OECD 국가임에도 그 품격에 걸맞는 문화 정책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서 질타를 가하고 있다. 하긴, 술 먹고 문화재에 방화를 저지르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장기적인 문화재 보존계획 수립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는게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면서 저자의 발길은 남유럽을 떠나 중앙아시아, 다시 동남아시아로 향한다. 저자도 책에서만 보다가 직접 봤을때 놀랐다는 베트남의 동손문화(Dongson Culture)때 만들어진 청동 북 얘기가 나왔을때는 주인장도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양각의 무늬가 화려하여 베트남의 고대 청동기문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그 유물을 보면서 주인장 또한 그 앞에서 눈을 떼지 못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쪽에 자리하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베트남 답사는 저자가 느꼈듯이 주인장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호이한[會安]시에서 느꼈던 점을 적으며 다시금 한국의 문화재 보존계획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16세기부터 번창했던 이 국제도시를 베트남은 지금껏 잘 보존해오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생겨났고 국제적 감각에 의해 축조된 건물은 아직까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베트남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청동기를 제작하는 전통마을이 곳곳에 있다. 주인장은 청동종을 만드는 마을을 들렸었는데 그 곳에서는 수백년간 전해진 전통기법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하회마을이나 민속촌 같았지만 집집마다 파전과 민속주를 파는 것 대신, 그들은 전통기법으로 만든 종을 만들고 있었다. 먼저 이 곳을 방문하셨던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약간의 돈을 주면 종을 만드는 전 과정을 몇날며칠에 걸쳐 다 보여준다고 했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무형문화재를 지켜내지 못 하고 있을까. 가끔씩 대를 이어 무형문화재를 지키려는 사람이 줄어듦에 따라 우리 문화가 점점 대가 끊긴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베트남의 경우를 보고 좀 배웠으면 했다. 주인장 역시 베트남도 이러할진데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 하고 있어 안타까웠는데 수십년간 한국 고고학계에 몸담았던 원로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를 들린 저자는 역시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현재 앙코르와트는 문화재 보존계획에 따라 전세계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유독 우리나라만 빠져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 사람들은 각자 자국 국기를 달고 자원봉사자를 보내 문화재 복원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 명색이 OECD 회원국이라는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한국식 식당과 굉장히 대조적이라 한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때 사람들이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혀를 내둘렀었다(물론 그 더위에 혀가 축 쳐진 것도 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우리도 그런 거대하고 뛰어난 문화유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계에 당당히 내세우지 못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존하고 가꾸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저자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런 고심을 하고 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의 여행기가 마무리되고 다시금 이야기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평소 남보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나도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작했다는 아유타국 연구. 게다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서로 다른 성씨임에도(족외혼) 서로간에 결혼을 꺼려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는 인도의 아유타국과 허황옥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신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구약성서에서 확인된 어문(漁門 : Fish Gate)이라는 단어와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신어 등을 통해 저자는 근동과 인도 등지까지 이 쌍어문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 다음에 저자는 허황옥의 시호가 보주태후(普州太后)인 점을 들어 보주라는 지명을 찾아나선다.『후한서』를 보면 서기 47년, 남군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7천명의 토착인들이 강하로 강제 이주 당하고 101년에도 봉기가 일어났는데, 그 주모자의 이름이 허성(許聖)이다. 즉, 허씨 성을 가진 사람이 보주, 즉 사천성 일대에 살고 있었으며 실제 그 곳에는 허씨 집성촌이 있다는 것도 확인을 했다. 뒤이어 허황옥의 발원지가 확인된 상태였으므로 이제는 중국 내에서 신어의 흔적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어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전파 지도를 완성하였다. B.C 2,700년 아시리아를 거쳐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B.C 500~300년 스키타이 지역에서 신어가 확인된다. 뒤이어 간다라와 야요디아를 거친 신어는 A.D 1~100년 운남과 보주, 무창 등지에서 확인되고 다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구마모토까지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신어사상 문화권'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윽고 저자는 이를 계기로 한반도와 인도는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주인장은 조금 회의적이다. 일단 보주라는 지명이 사천성에 있지만 김성호는 이와 달리 양자강 하류 일대를 지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타도주의 줄임말을 보주로 이해하는 것이다. 게다가 허황옥은 상인집단을 동반한 해상세력으로서 사천성에서 양자강을 따라 다시 해상으로 가야까지 왔다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움이 있다. 오히려 양자강 하류에서 활동하던 해상집단으로서 가야와 교류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신어사상 문화권이 이 주장의 가장 큰 주장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남아있는 신어사상이 포함된 문화적 요소 중 가야 당대(A.D 1세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가야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삼국유사』내의「가락국기」조차 가야 당대의 1차 사료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는 후대에 불교 전래와 더불어 전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야의 국명조차도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는 견해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후한에 저항하던 서남이 계열의 토착민들이 양자강을 따라 머나먼 길을 육로로 이동했다가 양자강 하류에서 가야로 왔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허씨 집단이 사천성에서 양자강을 따라 이동했다는 근거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 내륙에 존재하던 집단이 어떻게 해상집단의 성격을 갖게 됐는지 등등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 1권에서 신라와 스키타이에 대해 서술할때도 거시적인 틀은 마련했지만 그에 대한 세부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신어사상을 일본 구마모토에서 찾은 저자의 노력과 그에 따라 비미호를 새롭게 해석한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다. 특히 가야와 철을 매개로 교역했던 왜를 언급하면서 그런 문화적 교류 속에서 신어사상의 전파는 당연하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장은 이 부분에서 오히려 신어사상이 세계사적으로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고기 2마리가 마주본다는 식의 설정만 같을 뿐,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신어의 의미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물고기가 지니는 그 자체의 의미와 둘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보편적이라 한다면 이러한 신어사상이 어떤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동반한채 이동했다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2권에서도 저자의 열정과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후한에 투항한 흉노인 김일제의 후손과 신라 김씨족을 연관시켜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끝마치고 있었다. 요즘같이 해외여행이 성행하지 않았고, 갈 수 없는 곳도 많았을텐데 저자는 열정과 노력 하나만으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했었다. 그 원로학자의 열정과 노력을 이 2권의 책이 전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충분히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장은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이 책을 주저없이 추천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