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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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와 11분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는 이게 어째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읽혀졌으며 왜 여기에 그토록 목 매이는가 하는 점이며, 두번째는 과연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이 둘 이외에도 훨씬 더 많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악마와 미스 프랭 , 뽀뽀 상자 , 그리고 일곱번째 날...등) 하지만 그 중에서 주인장이 본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2권의 책이었다.

일단, 연금술사를 먼저 보면서 느낀 점은 이 작품이 톨스토이 단편선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쉽고 단순한 흥미를 유발하면서 부담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그런 책이라는 소리다. 세상, 더 넓게 말하면 우주에 대한 사고의 장을 넓혔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기존 거수인들의 눈으로 봤을때는 대단해보일 법도 하다. 앞서 '애덤스미스 구하기'라는 책을 보면서 주인장이 서구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서구인의 사고 방식과 정신 체계에 있어서 코엘료의 작품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통하고 우주를 느끼고 삶의 이치를 깨닫는 과정. 문화 상대주의,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연금술사 내의 주인공의 길은 주인장같은 동양인의 눈에는 평범해보일 뿐이다. 얼마전 이 작품들을 보고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본 주인장은 이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대해서 보다 체계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연과 동화된 삶을 추구해온 동양인에게 자연과 분리된 삶을 추구해온 서양인의 삶은 분명히 이질적이다. 반대로 서양인의 눈에 자연과 동화되는 이질적인 우주관을 선보인 이 책은 서양인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장에게는 약간 생각을 요구하는 동화책,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 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책이었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11분은 더 난해하고 재미도 없고 감흥도 적은 책이었다. 앞에서 연금술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인생의 진리와 새로운 우주관을 선보였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성교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11분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매개체로 한 여성의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성적 관점에서 묘사한 책이랄까? 주인장을 비롯한 군부대내의 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서 그다지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 요점인즉,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잘 파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군인들 대다수가 문학적 감흥을 느낄만한 여유도, 환경도 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고려한다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여자들은 달랐다. 당장 중년의 남성이 어떻게 어린 소녀에서부터 성숙한 여인에 이르기까지 여자의 심리 묘사를 이렇게 잘 할수가 있는지 신기해했다. 그밖에 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감정적 요인과 코드가 일치하게 작용했는지 모른다. 그것까지는 주인장에게 있어 파악하기 힘든 요소인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내용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주인장에게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그런 경험을 계속 했다. 평소 이런 문학 작품을 즐겨보지도, 좋아하지도 안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주인장에게는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었다.

그럼 다시 돌아가보자. 파올로 코엘료는 그의 책에서 일반인들의 내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적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주인장은 그의 작품을 잘 본것도 아니고 부시대통령처럼 휴가때 그의 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의 열렬한 팬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본 2편의 작품에서 느낀 점은 그가 서구인들에게는 말로 하기 힘든 그런 영적 감흥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이다. 아무리 서구인의 정신 체계가 논리적이고 독립적이고 분리적인 것에 익숙해있다고 하더라도 동시대 동양인인 주인장이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는 것은 그의 글 쓰는 솜씨가 대단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는 이런 일련의 작품에서 물질주의에 만연한, 삭막하고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서정적이고도 부드러운 정신적 보충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연금술사에서는 동양적 사고 방식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서구문명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점을 팔티할 수 있는 법을 제시했고 11분에서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필치로 한 여인을 등장시켜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집단간의 심리 묘사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는 성에 대한 관념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표현했다. 그 안에서 양특은 타협하고 그 안에서 중용의 덕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한여인의 삶에 대한 묘사가 이런 철학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할 따름이다. 인생의 오묘한 진리가 느껴질 뿐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문화 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같이 읽은후에 쓴 이 서평은 주인장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아울러 문학세계에서의 양자가 느끼는 코드와 문화적 공통점에서 인류라고 하는 보다 큰 범주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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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한국사 - 시공간을 함께 보는 한국 역사 탐험
김용만 김준수 지음 / 수막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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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도우사(左圖右史).

'당서 양관전' 을 보면 '좌우에 지도와 사서를 함께 놓고 공부했다' 는 기록이 나온다. 늘 그렇지만 김용만의 책은 주인장에게 새로운 코드를 하나씩 제시한다. 그의 첫 작품인 '고구려의 발견' 에서 그는 전성기 고구려의 외교력과 영향력을 거꾸로 보는 지도로 제시했고,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나' 에서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에서는 숨겨져 있던 고구려의 여러 위인들에 대해 소개했으며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에서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원사료들을 등장시킴으로서 우리 역사 이해에 새로운 장을 열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좌도우사' 라는 코드를 주인장에게 보여줬다.

이번에는 지도다. 극히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닌가. 역사 공부를 하는 사람치고 지도를 옆에 끼고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당장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 봐도 모르는 지명이 많은게 당연하고 글을 쓰다가도 인터넷으로 지도를 찾아보는 것이 다반사인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역사 공부를 하면서 실제로 마땅한 역사 지도가 없어서 공부하는데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때 받은 교과서 중에 역사부도와 사회과부도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나마 거기에 나와있던 지도를 보고 아쉬움을 달랬던 기억이 났다.

내가 한번 지도를 그려서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물론 주인장도 나름대로 그려놓은 지도가 있다. 예전에 박영규라는 사람이 어떤 고구려 관련 책을 냈는데 거기에 어찌나 황당한 지도를 많이 그려넣었는지, 너무도 황당해서 이 정도 지도도 책으로 실리는데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 훨씬 낫겠다 싶어 지도를 그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공개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겠다. 암튼 지도만 가지고도 역사의 흐름을 꿸수 있는 그런 자세한 지도책을 하나 내는게 주인장의 작은 소망인데 그런 주인장에게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각 장마다 그려진 올컬러 지도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230여장에 달하는 지도의 방대한 양에도 놀랄 뿐이지만 그 지도가 하나같이 멋드러지게 그려진 컬러풀하다는 사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좋게 한다. 물론 개중에는 서로 다른 색으로 표시된 부분들 사이에 너무 비슷한 색으로 표현되서 알아보기 힘든 지도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동안 전혀 생각치 못 했던 내용들도 담겨져 있다. 그간 강단사학계에서 긴가민가, 정정당당 대접받지 못 했던 역사들이 여기에는 자랑스럽게 실려 있다는 사실이 또 마음에 든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표시한 지도라든가, 고려 시대 공험진을 포함한 동북 9성의 범위 등이 그려진 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그런 사실들이 지도와 함께 다가오면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먼저 이 책은 주인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초보자를 위한 한국사 개설서'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지도와 함께 그에 관련한 내용이 함께 하고 있어 읽는 사람은 거의 부담감없이 역사를 접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너무 어렵지도 않기에 기억하기도, 이해하기도 쉽다. 우리가 6년간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책의 내용을 토대로 그보다 조금 더 재미있고 새로운 내용들이 넛붙여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쉬운 역사, 재미있는 역사, 부담없는 역사가 책 첫장에서부터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계속 읽게 만든다. 조금 더 재미있는 국사책과 역사부도를 합친 책이라고 말하면 이 책에 대한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 아닐까?

그 다음은 폭넓은 사고와 서두르지 않는 역사 해설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첫장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로 시작해 청동기시대까지 아우른 다음 고조선으로 넘어온다. 그런데 선사 시대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 시각의 폭을 상당히 넓혔다. 그동안 지리적으로 막혀왔던 우리의 사고를 시원하게 넓혀주고 한반도가 아닌,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폭넓게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또한 세형동검, 비파형동검, 미송리식 토기 등 대표적인 고조선 시대 유물들을 근거로 고조선의 세력권을 표시하는 등 고고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모습이다.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재탕해서 전하는데 그친게 아니라 원사료를 그대로, 직접 해석해 생동감있는 역사를 전달한다는 점이 읽는 이로 하여금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지도에 경계선을 표시할때 선으로 절대 표시하지 않았다. 색이 들어간 면으로 처리한 것이 보기 좋았다. 고대에는 오늘날같이 지도상에 칼로 그은 것처럼, 자로 잰 것처럼 확실하게 영토가 나워져 있지 않았기에 선보다는 면으로 뭉뜽그려서 세력권을 표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겠다. 특히 요서 일대만 하더라도 5세기를 지나면서 중원 세력과 붕방 세력, 고구려간의 완충지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 일대에 대한 영토를 누구 것으로 딱 정해 표시하기가 어렵다. 1년 기준으로 변하는 지도를 그린다면 몰라도 말이다. 이는 한강 일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만리장성 부근에 대한 경계선 표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지도에 실선 아니면 점선으로 경계선이 그려져있어 주인장이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 책에서는 그런 아쉬움을 말끔히 씻겨줬다.

쉽고 재미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면서 멋들어진 지도까지 곁들인 책.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최고의 역사 개설서가 아니겠는가. 더군다가 그 역사의 장은 고대사나 중세사에서 멈추지않고 근현대사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국사책 하권 끝까지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본다면 이 책은 비단 초보자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단순히 쉽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은 책. 중도(中道)를 걸었다고 해야 하나. 일반 대중들에게 이런 책이 많이 알려져야 우리 역사를 알리고 지키고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런 류의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인장이 김용만의 책을 즐겨보는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새로움이며, 둘째도 새로움, 셋째도 새로움이다. 늘 남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연구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사료를 하나하나 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재해석한다. 이 책 역시 저자의 오랜 집필, 연구 스타일이 잘 배어져 있다 하겠다. 이 정도면 한번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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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도책을 찾고 있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책 읽으면서 옛날 지명이 대체 어디 쯤인지 궁금했거든요

麗輝 2005-10-02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이 책을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아직까지도 이만한 책은 시중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marine 2005-10-0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서 다 읽었어요 그냥 읽은 게 아니라 화이트 보드에 메모하면서 정말 열심히 읽었답니다 그런데 한쪽이 지도고 한쪽이 서술이다 보니 설명이 부족하다는 필연적인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책 한 권에 한국사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도 무리지만, 절반이 지도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대략적인 개념 잡기는 좋았습니다

麗輝 2006-01-27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책 1권에 전문적인 내용을 전부 집어넣는다면 얼마든지 더 내용을 불릴 수 있겠지만, 적당한 양을 적절하게 싣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랍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개념을 잡을 정도의 적정 수준의 내용만 옮겨놓았기에 이 책이 누구나 즐겨볼 수 있는 책이 될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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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랄까. 주인장이 2004년, 군대에서 본 역사책 중 최고의 책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주인장이 2번씩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히 추천해 여러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고 새롭다고 말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인 개빈 맨지스는 정통 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다. 그는 전직 해군 장교 출신의 아마추어 역사 연구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고도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냥 넘길수 없는 무게있는 사실들이다. 거기에 주인장은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 남들이 갖고 있지 못 하는 그만의 장점인 해도를 정확하게 보고 천문을 읽을 줄 알며, 뱃사람의 생활을 했다는 것, 대영제국의 해군 장교로서 세계 도처의 수많은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실제 여러 역사적 장소들을 견학했던 그런 노하우들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 책을 썼다. 이런 점들은 일반 사학자나 역사 연구자, 지도 연구자가 결코 누릴 수 없는 그만의 행복이요, 특권이었다. 그런 막강한 자료와 경험 앞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그만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100% 다 맞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계사는 전면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기존 해양사나 세계사에 대한 여러 학설과 내용들과는 다른 충격적은 사실들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주인장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와서 이 책을 2004년, 군대에서 본 책 중 최고의 책으로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 현행 학계는 이 책의 출판을 분기점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주인장은 꼭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저자는 영락제때 시행된 정화의 대원정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그때 중국인들이 세계 일주를 했고, 그 결과물이 지도로 전해져 훗날 서양인들의 대항해 시대를 가능케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희망봉을 돌고, 세계 일주를 하고, 남-북빙양을 탐사한 기록들이 모두 중국인들이 행한 것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학계의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정신적 충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의 학설은 현재 검증 중이지만 대단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하다.

어느날, 지도를 한장 입수했는데 세계 전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지도가 제작된 시기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 제임스 쿡의 세계 일주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이건 누가 그린 것이란 말인가? 상상에 의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한 이 지도의 진위 여부 확인 결과, 진품임에 틀림없었다. 저자는 이 간단한 의문점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저자는 지도가 제작되기 이전 시기, 엄청난 규모의 원양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나라가 존재했음을 발견하고 그들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정화의 대함대가 이룬 위대한 업적을 하나하나 밝혀냈던 것이다.

주인장도 이 책을 보면서 뭔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 흔히 '혼일강리도(混一彊理圖)' 라고 부르는 지도 역시 콜럼버스나 마젤란 등이 항해하기 이전에 작성된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도는 조선 태종 2년(1402)에 만들어진,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1602)가 들어오기 전에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세계지도였다.

참고로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시기는 1488년으로서 유럽인들은 그 당시까지 아프리카 남쪽이 어떤 형태였는지도 몰랐지만 이 지도에는 놀랍도록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훗날 제노아 사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고는 인도라고 믿었던 시기가 1492년이었다. 이회는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명에서 가져온 '성교광피도' 와 '혼일강리도' 를 합성하였고, 일본에도 사람을 두 차례나 보내 지도를 구하고, 실제조사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진 이 지도는 대체 어떤 항해 기록을 근거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어떤가. 대단히 황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지난 수십세기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주인장은 이 책을 접하면서 강하게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세계를 발견하고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는 그 시기보다 거의 100여년이나 앞서서 우리나라에는 대단히 정확한 세계지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그 지도의 근거가 될만한 항해 기록과 자료, 갖가지 지도 등이 조선 주변국들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이런 모순에 가득찬 세계사를 배우면서, 가르치면서 누구 하나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이런 큰 성과를 올린 저자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물론 그가 일반 연구자와 달리 특수한 입장에 있었기에 그의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 중요한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 하고 넘겨버렸다면? 우리는 오늘날,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런 어처구니없도고 중요한 사실들을 - 우리가 지금까지 철썩같이 믿어왔던 -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 뻔하다. 앞으로 언제 이런 진실이 밝혀질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채 말이다.

내용 중에서 특히 주인장의 눈길을 유독 끄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부상국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상상의 나라라고 여겨졌던 부상국(扶桑國)을 저자는 중남미 일대로 지목하고 있었다. 중국의 전설에서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일컬어지던 나라, 부상국. 그 부상국이 중남미 일대라니. 5~6세기 남조의 제나라에서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중국인의 증언 이후 중국 사서는 끊임없이 부상국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주인장 역시 단순히 상상의 나라로만 여겨왔던 부상국을 실제 국가로 주장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산해경(山海經)의 내용도 어느정도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산해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 저자가 하(夏)나라 우왕(禹王) 또는 백익(伯益)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후의 저작으로 보이며 한대(漢代) 초에는 이미 이 책이 있었던 듯하다. 특히 <해외경(海外經)> 이하에서는 먼 나라의 주민과 그에 관한 신화 · 전설을 많이 실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허황되고 신비스러운 것이 많아 상상 속의 소설처럼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책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물론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더라도 실제 신기한 광경을 보고 상상한 것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해 창조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했을때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중국이 세계 각지에 건설한 식민지와 마을의 흔적이었다. 중남미는 물론 동남아 각지에 수많은 식민 도시를 건설했던 흔적들을 저자는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말하고 있다. 영락제 사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해양 정책은 순식간에 중단되고 그 이전의 수많은 자료와 업적은 재정적 부담과 정책 변화라는 이유로 사라지고 불살라졌다. 그 와중에 얼마 남지 않은 문헌들과 지금까지 간과되어온 수많은 고고학적 흔적들을 가지고 저자는 역사를 재현해낸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그렇다쳐도 아프리카나 대서양 연안, 태평양 연안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그들의 전진 기지와 마을이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도 새로운 사실들이 아닐까 한다.

이는 동남아는 물론 인도까지 세력권을 형성했던 백제의 예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약 600년전의 중국의 흔적도 그리 많지 않은 상태에서 무려 1,500년 이전 백제의 흔적을 찾는 일이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오늘날 백제가 대륙에 건설한 군현들이나 동남아 각국과의 교륙 기록등이 극소수 남아있는데 그 고고학적 기록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엄연히 문헌에 존재하는 백제의 해외 영토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 그건 실재했었다. 중국 문헌에 그 존재 여부가 남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실재 여부를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 관련 자료가 너무 희박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백제사 연구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우리나라에도 이 저자같은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꾸준히 연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자산으로 남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장은 백제사 연구자 중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듣도보도 못 했다.

또한 이 책을 보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은 중국의 세계 발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 이면에는 백제인의 해상 활동이 숨어있다는 하나의 가설이었다. 비류백제 연구로 유명한 김성호라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한때 1,500년에 달하는 비류백제인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이 있었다. 그 책에 의하면 비류백제는 고구려에서 떨어져나와 건국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세력을 팽창시켜 동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건국후 400여년만에 광개토태왕의 고구려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남정군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이후 왜 열도로 건너가 일본 건국의 주축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강 부근, 주산군도 일대에 잔존했던 백제인들은 백제 멸망 이후에도 줄곧 살아남아 그 지역에서 독자적인 해상 세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 살아남았던 그들은 이후 명나라 건국 이후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왜냐하면 명은 한때 동아시아 바다를 제패했던 고려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에 새로 건국한 조선으로 하여금 절대 해상력을 키우지 못하게 억압했었다. 또한 해안가의 모든 세력을 탄압하고 그들은 내륙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비류백제 세력이 소멸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그와 동시에 명나라에서는 항해와 관련된 각종 해양 서적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는 비류백제인을 주축으로 하는 해양 세력의 노하우를 서적으로 작성해 대중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 얼마 안되 정화의 대원정이 실시됐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란 말인가. 김성호의 그 주장 역시 주인장에게는 상당히 설득력있고 자세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자고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절대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명대에 그것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책을 보면 분명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에 반가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울러 주인장에게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 책이었으며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둘 것이 있다. 명은 고려 - 동아시아 최대, 최강의 해상 제국 - 의 뒤를 이은 조선의 해상력을 너무나 두려워해 철저한 해금 정책을 펼쳤으며 왜구의 침입에 해안가가 초토화되어도 왜구 정벌같은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해상력이 약한 빈껍데기 제국이었다.

저자의 책을 보면 중국이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규모의 해군을 보유한 최대, 최강의 해상 제국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그 기간은 불과 20여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을 우리는 주지해야만 할 것이다. 백제로 대표되는 우리의 해양 진출사는 그 역사가 훨씬 더 길고 오래되었으며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주인장은 서슴치않고 말할 수 있다. 명나라때 잠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비류백제인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뱃사람들에게서 강제로 얻은 노하우가 없었으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비류백제인이 태평양을 누비며 바다를 지배하고 있을때 4세기 중국 최대의 해상 국가라고 불리던 오나라는 겨우 강상 수군만 거느렸던 코흘리개 하룻강아지였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한국사에서도 해양사가 주목받는 연구 주제로 자리잡아 그 진가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화려하며 진실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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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 책이 얻은 영예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한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김동인을 추념하고 아울러 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매년 국내 주요잡지에 발표된 중 ·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심사, 작품 1편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이 책이 그 상을 받았단다. 이런 타이틀, 주인장은 잘 모른다. 동인문학상이 꽤 유명한 상인건 알겠는데 어느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깊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듯 한데 이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2004년에는 이상문학상이라는 것도 받았다고 하는데 다 관심없고 이제는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이 책은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든다. 칼의 노래. 무(武)의 대표적인 칼과 유흥적 요소인 노래와의 만남이라...얼핏 보면 어울릴듯도 한데, 얼핏 보면 또 어울리는 것 같지 않는게 이 책의 제목이다. 약간의 이질감을 주는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주인장의 관심을 충분히 끌고 있었다. 거기다가 옆에 붙은 부제가 눈에 띄였다.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이 얼마나 멋지고 직접적인 부제란 말인가. 이순신...이순신? 조금은 고리타분한 소재. 이제 이순신이 주인공으로 나올만한 책은 그만 나올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적절한 부제에 주인자은 작은 희열감마저 느꼈다. 대체 저자는 무슨 뜻으로 이런 부제를 정했을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몰살시킨 침략자 일본의 해군사령관 도고 헤이하치가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 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까지 말하며 숭배했던, 해신(海神) 이순신에게 이 무슨 표현이란 말인가?

겉표지에서부터 주인장의 집중력을 한껏 고조시킨 이 책의 첫장을 넘기면서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전혀 허를 찌르는 소설의 전개 방식이었다. 단순한 시대적 배경 서술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의 일대기적 서술도 아닌 백의종군길에 오른 순간부터의 모습을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장부터 공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순신하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 이 표현을 두고 김용만은 1,2차 조 · 일전쟁이라고 불렀다 - 당시 해전에서 승승장구하며 불패신화를 만들어낸 명장(名將)이다. 그런 이순신의 일대기 중 임진왜란 부분을 숙떡 잘라버리고 극적 부분부터 시작했다는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은 이런 식으로 긴장감있게 전개되는데 아마 초반부 글의 시작 부분이 일반적인 극적 부분에서부터 시작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대한 대사는 절제하고, 1인칭 주인공의 독백을 서술식으로 표현한 것 역시 독특하다. 사실적이고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 필체는 여성 작가의 섬세한 그것과도 같았고 선이 굵고 짤막짤막한 내용 전개와 전체 구조는 남성 작가의 그것같았다. 주인장은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비로소 '남성성과 여성성이 횬재된 독특한 사유' 라고 표현된 김훈의 작가 스타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장같은 사람이라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문체에 주인장은 새로운 경지를 맛본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최대한 사실적인 것에 입각하면서도 주인공 내면에 대한 깊은 독백이 엿보인다. 마치 내가 이순신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나 자신이 이순신이 되어 노량해전에서 전사할때까지 이순신이 느꼈을법한 고독과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내용은 진행된다. 아니나다를까, 책 뒷부분에 충무공 연보를 넣으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소설이 불가피하게 변형시키거나 재편성한 사실들이 여기에서 복원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짧은 연보에 그 분의 생애가 모두 다 담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 분의 마음은 오직 그 분의 것이다. 후인이 다만 우러를 뿐이다 --

이순신!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북선과 학익진, 한산도대첩 등일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이순신을 거부했다. 전체적인 내용 중 거북선은 결코 해전이나 그 어떤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하고 있다. 학익진 역시 일반 서적에서처럼 '학의 날개처럼 펼쳐져 순식간에 적을 몰아 섬멸하는 진' 뭐 이런 식의 서술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진법 하나를 위해 고심하는 이순신과 훈련의 과정 등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긴장감이 느껴지고 강렬한 장면장면을 남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전쟁 자체도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껴지지 않는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에 전쟁의 피폐함과 긴장삼, 잔인함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일반 책에서 봐았던 전쟁의 묘사는 전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사실적인 전쟁 장면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이내 그 사실감에 치를 떨게 된다.

거기에 이순신의 여자들, 이순신 주변의 몸종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순신의 부하 장수들, 그의 셋째 아들 면 등 사실에 입각해 등장한 여러 등장 인물들과의 관계도 여느 책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들이었다. 그 누가 이처럼 다양하고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이순신에 대해 묘사했단 말인가. 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 하게 하는 강한 마력이 깃들여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 책에 대한 주인장의 찬미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주인장은 제목에서부터 느꼈던, 칼이라는 녀석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마 이 부분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 대한 저자의 숙제가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책을 다시 펼쳐 한번 더 읽었다. 지극히 서민적인, 사실적인 내용에 내 가슴 한구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책을 읽어나가는 사이 그 칼이라는 녀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칼은 그 사람 자신을 의미하고 있었고, 또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지를 뜻하기도 했다.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그 부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저자는 이순신을 두고 줄곧 무인의 길을 달렸고, 무(武)는 곧 그의 삶의 전부라고 했다. 이순신은 이 책에서 칼이라고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순신과 그 주변의 세상 역시 칼의 세상이었다. 곧음과 날카로움, 태산같은 무거움과 공사를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이성적인 마음. 합리성. 확실한 맺고 끊음...칼로 표현된 이순신에 대한 주인공의 느낌이었다.

그는 당시 조정과 명나라, 일본, 조선 사이의 외교 상태, 조정 대신들과 자신의 복잡한 관계 등에서 미묘한 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자신의 적, 즉 왜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들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수천수만의 수군을 거느린 조선 최대의 군벌이자 유일무이한 수군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또한 임진왜란, 정유재란 최고의 전쟁 영웅이었다. 민심과 조정 여론은 극과 극이었다. 그는 자신의 토사구팽할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전쟁터에서 늘 자신이 묻힐만한 사지(死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칼이었고, 그의 칼은 또 적장 풍신수길과 조국인 조선의 조정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칼의 인생을 살아갔다. 한없이 단순하고 순결한 칼의 인생을 말이다. 그러던 찰나에 그에게 노량해전이라는 또 하나의 사지가 찾아왔다. 적탄에 맞아 전사해도 그건 자연사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순신. 그는 눈을 감으며 그렇게 왜선을 부수러 돌격해가는 아군 전선들을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 건지도 모르겠다.

칼.

이순신, 그의 인생은 항상 뭐든지 양단하는 칼과 같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의 인생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적의 적이, 자신의 적이 되야하는 상황. 세상 전체가 적의 칼이 되어 자신을 짓누르려는 상황에서도 그는 의연하게 본인의 삶을 살았다.

"신이 살아있는 한, 적은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그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순신, 그는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맺혀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치인들, 각계 각층 인사들이 즐겨 본 책이라고 한다. 뭣때문에 이 책이 그들에게 즐겨 읽혔을까? 그들은 이순신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의 적이, 그의 적의 적이 되고 싶었을까? 시대를 뛰어넘은 인물, 이순신. 그가 단순히 전쟁 영웅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 우리의 조상으로 다가서는 이 순간...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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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가나 일본 자위대
김경민 지음 / 아침바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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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접한 계기는 참 우연하다. 교육계원이 진중문고 20권이 새로 나왔으니 사단 본부에 가는 김에 같이 수령해 오라고 해서 진중문고를 수령해 오면서 봤었다. 뭐 이런 종류의 책도 관심 분야이긴 하지만 굳이 책을 찾아가면서 보지는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한번 보고자 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달리 볼 책이 없었는데 마침 이 책이 생긴 것도 이유라면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럼 여담은 끝내고, 이 책에 대해 먼저 몇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일단, 이 책은 2003년 초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니만큼 그 내용면이나 관련 자료면에서 상당한 정확성과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증으로만 강하다고 느끼는 자위대에 대해 보다 실증적이고도 객관적인 의견을 꺼내 놓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아니~이럴수가!' '아아~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논하면서 주변국인 미국, 러시아, 북한, 중국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이해를 하고 있어 21세기 동북아의 현 실태가 어떤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저자인 김경민은 1992년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및 릿쿄대학에서 '일본 군사력 분석과 동북아 안보협력체의 가능성'을 연구했으며 저서로는「일본이 일어선다」「일본인도 모르는 일본」을, 주요 논문으로 <일본 산업정책 결정과 관료><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일본의 군사력><남사제도와 중일 분쟁 가능성><군사 기술대국 일본>을 쓰는 등 일본에 관련된 각종 연구를 심도?게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이 책에 더욱 신뢰성이 간다.

책은 크게 21세기의 일본 군사력, 북한의 핵무기와 일본의 핵무기, 우주대국 일본, 미국을 앞지른 최첨단 항공 기술, 해양국가 일본의 막강한 해군력, 일본과 중국의 각축이라는 장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가 10여개의 소단락으로 나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일단, 군사학이나 밀리터리 마니아들처럼 이쪽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에 앞선 내용들은 그냥 흥미로운 주제일 뿐이었다. 이 책을 읽은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보다 자세한 자료가 제시되는 그런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주인장도 관심있게 보고 또 신경써서 봤던 내용이 있다면 해양국가 일본의 막강한 해군력과 일본과 중국의 각축이라는 부분이었다.

일단, 2002년 3월 통계로 봤을때 일본은 호위함(구축함) 54척, 잠수함 16척, 기뢰전함 31척, 초계함정 5척, 수송함정 8척, 보조함정 28척 등 총 142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평균 함정이 10년 이하의 최신예 함정들이다. 거기다가 미국이 63척을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함정인 이지스함을 일본은 4척 보유하고 있으며 곧 이어 2척을 추가 보유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이제 4천t급 전함을 자체 개발해 전력화하는 수준이며, 2010년에야 첫번째 이지스함을 전력화하는 등 총 3척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섬나라 일본과 반도국가 한국은 필연적으로 해군, 그것도 원양해군(遠洋海軍)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아시아권은 물론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현재 최강대국인 미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일본 해상 자위대(Maritime Self Defence Forces)와 비교하면 한국 해군의 위상은 너무나도 초라하기만 한 것이 현재 심정이다.

요즘 군대를 보면 신(新) 병영문화다, 신세대 장병이다 뭐다 하며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진게 사실이다.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반면에 위계질서마저 흐트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거센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라크 파병이나 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장병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멋있으니까, 돈을 많이 버니까, 최신 보급품이 나오니까 등등.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훈련소 시절, 국방일보에서 한 재한일본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시설과 장비, 대우는 일급이지만 매주 외박에, 탈영을 해도 큰 죄가 되지 않고, 군복무를 기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일본 젊은이들의 군대인 자위대와 내무 생활과 엄격한 군기로 무장한 한국군을 비교해보면 그 결과는 뻔하다는 내용이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실제 이 책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163,784명이 정원인 육상자위대(Ground Self Defence Forces)는 90.5%인 148,197명이, 45,812명이 정원인 해상자위대는 96.9%인 44,404명이, 47,266명이 정원인 항공자위대(Air Self Defence Forces)는 96.4%인 45,582명이, 1,719명이 정원인 통합막료회의는 96.3%인 1,656명이 충원되어 전체 258.581명의 정원 중 92,8%인 239,839명만이 복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군의 사기나 군기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제 한국군은 그마저도 일본에 뒤지는게 아닌가 싶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기피한다고 하지만 그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이미 심각한 문제이며, 그로 인해 역대 대통령들과 정권이 군복무 기간을 경쟁적으로 줄이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집권과 당선을 위해서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주한미군 철수, 극미와 반미를 외치는 대학생들, 징병제가 아닌 민병제나 모병제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을 아직까지 보면 더 한심스러울 뿐이다.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북한이 우리와 같은 동포 국가니까 핵무기 많이 만들어주면 나중에 통일되서 우리가 쓸 수 있으니 좋지 않느냐는 사람마저 있다. 그것도 고학력자인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이 말이다. 일본의 해군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고,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소위 나라님들도 말이다. 국가가 잘 산다는 건, 재력이 충실하다는 말도 되지만 국방력이 튼튼하다는 것도 포함된다. 아니, 이게 더 중요하다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주인장으로 하여금 우리군의 실태와 우리 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느끼고 후회하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관심있는 부분들은 중국과 일본의 각축이었다.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오랜 대치 상황끝에 엄청난 규모의 육군과 막강한 전력의 특수부대를 군 전력의 중심으로서 구축해 온 것처럼 중국 역시 러시아 - 구 소련 - 과의 국경 분쟁과 기타 국가들간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육군과 핵미사일 체제 중심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 중국이 동지나해, 남지나해의 제해권을 두고 주변 동남아 국가들, 일본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다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육군만 비대하게 키우는 동안 주변 국가들은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독도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지해야만 한다.

UN 해양법 조약 제 121조에 의거, "섬이란 자연히 형성된 육지로서 물에 둘러싸여 밀물시에도 수면위에 있어야 한다." 고 되어 있으나 중국은 밀물시 잠겨버리는 암초덩어리 6개를 차지해 그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줄곧 주장해온 남사군도 영유권을 재현하기 위해 1974년 1월 서사제도를 베트남으로부터 탈취하고, 1988년 그 곳에 활주로와 항만을 건설한 중국, 거기다가 조어도 근방에 막대한 양의 지하 자원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오래도록 조어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던 일본과 대치하고 있는 중국. 자신이 불리할 때는 쉬쉬하며 영토 문제를 접고 있다가 힘을 가지자마자 소리내어 영토에 대한 야욕을 하나둘씩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수십년간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처럼 말이다.

요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인해 한층 뜨거워진 한-중 관계. 강대국이란 거저 얻은 명칭이 아니며 또한 그에 따른 의무와 권리 역시 엄청난 것이다. 일반인들이 거의 신경도 안 쓰는 티벳에 대한 영유권 문제, 시베리아와 연해주 일대에서의 러시아와의 영토 문제, 동지나해-남지나해의 무수히 많은 군도들에 대한 동남아 각국간의 분쟁, 대만과의 불편하고도 노골적인 관계, 일본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 등, 중국은 이미 6.25 전쟁에 허덕이며 한국인들이 살아갔을 때부터 영토 야욕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제 와서 고구려사를 두고 난리치는 것도 늦은 감이 없지만은 않다. 발해사는 이미 국제적으로 한국사에서 멀어져 있는 상태다. 더 이상 뺏길 수는 없다. 만주에 대한 연고권과 고구려사 하나 제대로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인 한국,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벌여 고구려 700년 역사와 그 이전 수천년 한민족 역사를 날로 집어삼키려는 중국, 그 결과는 현재 불보듯 뻔하다. 이렇게 당하고 있다가는 한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오랜 세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일방적인 종속 관계인지, 대등한 관계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현재로는 앞으로의 관계가 전자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물론 그렇게 되서는 안 된다. 발빠른 시대 상황에 발맞춰서 한국은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한다. 신라라는 작은, 일개 지방 소국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천년 제국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이 한권의 책, 김경민 교수의 추적 리포트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책은 그 내용적인 면보다, 제시하고 있는 경고성 메세지가 더 충격적인 책이었다. 아울러 오늘도 우리 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분들께 깊은 노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해군에 관련된 소설이 하나 있어서 추가로 적어볼까 한다. 제목은 '가블린의 바라'라는 책인데 천금성씨가 쓰셨고, 글마당에서 펴낸 책이다.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며 중국이 동남아 일대를 자국의 바다로 선포하고 그 곳을 지나가는 한국 상선을 격침시키면서 한국 해군이 보유한 이순신함이 출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중국 잠수함과 동남아 해적, 일본 이지스함과 맞붙는 장면은 주인장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대목들이었다. 내용도 쉽고 재미있기 때문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해양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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