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뭐랄까. 주인장이 2004년, 군대에서 본 역사책 중 최고의 책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주인장이 2번씩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히 추천해 여러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고 새롭다고 말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인 개빈 맨지스는 정통 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다. 그는 전직 해군 장교 출신의 아마추어 역사 연구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고도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냥 넘길수 없는 무게있는 사실들이다. 거기에 주인장은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 남들이 갖고 있지 못 하는 그만의 장점인 해도를 정확하게 보고 천문을 읽을 줄 알며, 뱃사람의 생활을 했다는 것, 대영제국의 해군 장교로서 세계 도처의 수많은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실제 여러 역사적 장소들을 견학했던 그런 노하우들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 책을 썼다. 이런 점들은 일반 사학자나 역사 연구자, 지도 연구자가 결코 누릴 수 없는 그만의 행복이요, 특권이었다. 그런 막강한 자료와 경험 앞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그만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100% 다 맞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계사는 전면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기존 해양사나 세계사에 대한 여러 학설과 내용들과는 다른 충격적은 사실들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주인장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와서 이 책을 2004년, 군대에서 본 책 중 최고의 책으로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 현행 학계는 이 책의 출판을 분기점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주인장은 꼭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저자는 영락제때 시행된 정화의 대원정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그때 중국인들이 세계 일주를 했고, 그 결과물이 지도로 전해져 훗날 서양인들의 대항해 시대를 가능케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희망봉을 돌고, 세계 일주를 하고, 남-북빙양을 탐사한 기록들이 모두 중국인들이 행한 것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학계의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정신적 충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의 학설은 현재 검증 중이지만 대단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하다.

어느날, 지도를 한장 입수했는데 세계 전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지도가 제작된 시기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 제임스 쿡의 세계 일주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이건 누가 그린 것이란 말인가? 상상에 의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한 이 지도의 진위 여부 확인 결과, 진품임에 틀림없었다. 저자는 이 간단한 의문점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저자는 지도가 제작되기 이전 시기, 엄청난 규모의 원양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나라가 존재했음을 발견하고 그들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정화의 대함대가 이룬 위대한 업적을 하나하나 밝혀냈던 것이다.

주인장도 이 책을 보면서 뭔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 흔히 '혼일강리도(混一彊理圖)' 라고 부르는 지도 역시 콜럼버스나 마젤란 등이 항해하기 이전에 작성된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도는 조선 태종 2년(1402)에 만들어진,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1602)가 들어오기 전에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세계지도였다.

참고로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시기는 1488년으로서 유럽인들은 그 당시까지 아프리카 남쪽이 어떤 형태였는지도 몰랐지만 이 지도에는 놀랍도록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훗날 제노아 사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고는 인도라고 믿었던 시기가 1492년이었다. 이회는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명에서 가져온 '성교광피도' 와 '혼일강리도' 를 합성하였고, 일본에도 사람을 두 차례나 보내 지도를 구하고, 실제조사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진 이 지도는 대체 어떤 항해 기록을 근거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어떤가. 대단히 황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지난 수십세기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주인장은 이 책을 접하면서 강하게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세계를 발견하고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는 그 시기보다 거의 100여년이나 앞서서 우리나라에는 대단히 정확한 세계지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그 지도의 근거가 될만한 항해 기록과 자료, 갖가지 지도 등이 조선 주변국들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이런 모순에 가득찬 세계사를 배우면서, 가르치면서 누구 하나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이런 큰 성과를 올린 저자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물론 그가 일반 연구자와 달리 특수한 입장에 있었기에 그의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 중요한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 하고 넘겨버렸다면? 우리는 오늘날,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런 어처구니없도고 중요한 사실들을 - 우리가 지금까지 철썩같이 믿어왔던 -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 뻔하다. 앞으로 언제 이런 진실이 밝혀질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채 말이다.

내용 중에서 특히 주인장의 눈길을 유독 끄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부상국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상상의 나라라고 여겨졌던 부상국(扶桑國)을 저자는 중남미 일대로 지목하고 있었다. 중국의 전설에서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일컬어지던 나라, 부상국. 그 부상국이 중남미 일대라니. 5~6세기 남조의 제나라에서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중국인의 증언 이후 중국 사서는 끊임없이 부상국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주인장 역시 단순히 상상의 나라로만 여겨왔던 부상국을 실제 국가로 주장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산해경(山海經)의 내용도 어느정도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산해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 저자가 하(夏)나라 우왕(禹王) 또는 백익(伯益)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후의 저작으로 보이며 한대(漢代) 초에는 이미 이 책이 있었던 듯하다. 특히 <해외경(海外經)> 이하에서는 먼 나라의 주민과 그에 관한 신화 · 전설을 많이 실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허황되고 신비스러운 것이 많아 상상 속의 소설처럼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책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물론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더라도 실제 신기한 광경을 보고 상상한 것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해 창조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했을때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중국이 세계 각지에 건설한 식민지와 마을의 흔적이었다. 중남미는 물론 동남아 각지에 수많은 식민 도시를 건설했던 흔적들을 저자는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말하고 있다. 영락제 사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해양 정책은 순식간에 중단되고 그 이전의 수많은 자료와 업적은 재정적 부담과 정책 변화라는 이유로 사라지고 불살라졌다. 그 와중에 얼마 남지 않은 문헌들과 지금까지 간과되어온 수많은 고고학적 흔적들을 가지고 저자는 역사를 재현해낸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그렇다쳐도 아프리카나 대서양 연안, 태평양 연안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그들의 전진 기지와 마을이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도 새로운 사실들이 아닐까 한다.

이는 동남아는 물론 인도까지 세력권을 형성했던 백제의 예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약 600년전의 중국의 흔적도 그리 많지 않은 상태에서 무려 1,500년 이전 백제의 흔적을 찾는 일이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오늘날 백제가 대륙에 건설한 군현들이나 동남아 각국과의 교륙 기록등이 극소수 남아있는데 그 고고학적 기록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엄연히 문헌에 존재하는 백제의 해외 영토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 그건 실재했었다. 중국 문헌에 그 존재 여부가 남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실재 여부를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 관련 자료가 너무 희박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백제사 연구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우리나라에도 이 저자같은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꾸준히 연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자산으로 남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장은 백제사 연구자 중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듣도보도 못 했다.

또한 이 책을 보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은 중국의 세계 발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 이면에는 백제인의 해상 활동이 숨어있다는 하나의 가설이었다. 비류백제 연구로 유명한 김성호라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한때 1,500년에 달하는 비류백제인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이 있었다. 그 책에 의하면 비류백제는 고구려에서 떨어져나와 건국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세력을 팽창시켜 동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건국후 400여년만에 광개토태왕의 고구려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남정군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이후 왜 열도로 건너가 일본 건국의 주축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강 부근, 주산군도 일대에 잔존했던 백제인들은 백제 멸망 이후에도 줄곧 살아남아 그 지역에서 독자적인 해상 세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 살아남았던 그들은 이후 명나라 건국 이후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왜냐하면 명은 한때 동아시아 바다를 제패했던 고려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에 새로 건국한 조선으로 하여금 절대 해상력을 키우지 못하게 억압했었다. 또한 해안가의 모든 세력을 탄압하고 그들은 내륙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비류백제 세력이 소멸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그와 동시에 명나라에서는 항해와 관련된 각종 해양 서적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는 비류백제인을 주축으로 하는 해양 세력의 노하우를 서적으로 작성해 대중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 얼마 안되 정화의 대원정이 실시됐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란 말인가. 김성호의 그 주장 역시 주인장에게는 상당히 설득력있고 자세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자고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절대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명대에 그것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책을 보면 분명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에 반가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울러 주인장에게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 책이었으며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둘 것이 있다. 명은 고려 - 동아시아 최대, 최강의 해상 제국 - 의 뒤를 이은 조선의 해상력을 너무나 두려워해 철저한 해금 정책을 펼쳤으며 왜구의 침입에 해안가가 초토화되어도 왜구 정벌같은 것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해상력이 약한 빈껍데기 제국이었다.

저자의 책을 보면 중국이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규모의 해군을 보유한 최대, 최강의 해상 제국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그 기간은 불과 20여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을 우리는 주지해야만 할 것이다. 백제로 대표되는 우리의 해양 진출사는 그 역사가 훨씬 더 길고 오래되었으며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주인장은 서슴치않고 말할 수 있다. 명나라때 잠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비류백제인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뱃사람들에게서 강제로 얻은 노하우가 없었으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비류백제인이 태평양을 누비며 바다를 지배하고 있을때 4세기 중국 최대의 해상 국가라고 불리던 오나라는 겨우 강상 수군만 거느렸던 코흘리개 하룻강아지였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한국사에서도 해양사가 주목받는 연구 주제로 자리잡아 그 진가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화려하며 진실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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