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 책이 얻은 영예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한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김동인을 추념하고 아울러 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매년 국내 주요잡지에 발표된 중 ·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심사, 작품 1편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이 책이 그 상을 받았단다. 이런 타이틀, 주인장은 잘 모른다. 동인문학상이 꽤 유명한 상인건 알겠는데 어느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깊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듯 한데 이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2004년에는 이상문학상이라는 것도 받았다고 하는데 다 관심없고 이제는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이 책은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든다. 칼의 노래. 무(武)의 대표적인 칼과 유흥적 요소인 노래와의 만남이라...얼핏 보면 어울릴듯도 한데, 얼핏 보면 또 어울리는 것 같지 않는게 이 책의 제목이다. 약간의 이질감을 주는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주인장의 관심을 충분히 끌고 있었다. 거기다가 옆에 붙은 부제가 눈에 띄였다.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이 얼마나 멋지고 직접적인 부제란 말인가. 이순신...이순신? 조금은 고리타분한 소재. 이제 이순신이 주인공으로 나올만한 책은 그만 나올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적절한 부제에 주인자은 작은 희열감마저 느꼈다. 대체 저자는 무슨 뜻으로 이런 부제를 정했을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몰살시킨 침략자 일본의 해군사령관 도고 헤이하치가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 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까지 말하며 숭배했던, 해신(海神) 이순신에게 이 무슨 표현이란 말인가?

겉표지에서부터 주인장의 집중력을 한껏 고조시킨 이 책의 첫장을 넘기면서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전혀 허를 찌르는 소설의 전개 방식이었다. 단순한 시대적 배경 서술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의 일대기적 서술도 아닌 백의종군길에 오른 순간부터의 모습을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장부터 공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순신하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 이 표현을 두고 김용만은 1,2차 조 · 일전쟁이라고 불렀다 - 당시 해전에서 승승장구하며 불패신화를 만들어낸 명장(名將)이다. 그런 이순신의 일대기 중 임진왜란 부분을 숙떡 잘라버리고 극적 부분부터 시작했다는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은 이런 식으로 긴장감있게 전개되는데 아마 초반부 글의 시작 부분이 일반적인 극적 부분에서부터 시작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대한 대사는 절제하고, 1인칭 주인공의 독백을 서술식으로 표현한 것 역시 독특하다. 사실적이고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 필체는 여성 작가의 섬세한 그것과도 같았고 선이 굵고 짤막짤막한 내용 전개와 전체 구조는 남성 작가의 그것같았다. 주인장은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비로소 '남성성과 여성성이 횬재된 독특한 사유' 라고 표현된 김훈의 작가 스타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장같은 사람이라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문체에 주인장은 새로운 경지를 맛본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최대한 사실적인 것에 입각하면서도 주인공 내면에 대한 깊은 독백이 엿보인다. 마치 내가 이순신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나 자신이 이순신이 되어 노량해전에서 전사할때까지 이순신이 느꼈을법한 고독과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내용은 진행된다. 아니나다를까, 책 뒷부분에 충무공 연보를 넣으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소설이 불가피하게 변형시키거나 재편성한 사실들이 여기에서 복원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짧은 연보에 그 분의 생애가 모두 다 담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 분의 마음은 오직 그 분의 것이다. 후인이 다만 우러를 뿐이다 --

이순신!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북선과 학익진, 한산도대첩 등일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이순신을 거부했다. 전체적인 내용 중 거북선은 결코 해전이나 그 어떤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하고 있다. 학익진 역시 일반 서적에서처럼 '학의 날개처럼 펼쳐져 순식간에 적을 몰아 섬멸하는 진' 뭐 이런 식의 서술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진법 하나를 위해 고심하는 이순신과 훈련의 과정 등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긴장감이 느껴지고 강렬한 장면장면을 남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전쟁 자체도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껴지지 않는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에 전쟁의 피폐함과 긴장삼, 잔인함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일반 책에서 봐았던 전쟁의 묘사는 전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사실적인 전쟁 장면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이내 그 사실감에 치를 떨게 된다.

거기에 이순신의 여자들, 이순신 주변의 몸종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순신의 부하 장수들, 그의 셋째 아들 면 등 사실에 입각해 등장한 여러 등장 인물들과의 관계도 여느 책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들이었다. 그 누가 이처럼 다양하고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이순신에 대해 묘사했단 말인가. 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 하게 하는 강한 마력이 깃들여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 책에 대한 주인장의 찬미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주인장은 제목에서부터 느꼈던, 칼이라는 녀석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마 이 부분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 대한 저자의 숙제가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책을 다시 펼쳐 한번 더 읽었다. 지극히 서민적인, 사실적인 내용에 내 가슴 한구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책을 읽어나가는 사이 그 칼이라는 녀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칼은 그 사람 자신을 의미하고 있었고, 또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지를 뜻하기도 했다. 이순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그 부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저자는 이순신을 두고 줄곧 무인의 길을 달렸고, 무(武)는 곧 그의 삶의 전부라고 했다. 이순신은 이 책에서 칼이라고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순신과 그 주변의 세상 역시 칼의 세상이었다. 곧음과 날카로움, 태산같은 무거움과 공사를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이성적인 마음. 합리성. 확실한 맺고 끊음...칼로 표현된 이순신에 대한 주인공의 느낌이었다.

그는 당시 조정과 명나라, 일본, 조선 사이의 외교 상태, 조정 대신들과 자신의 복잡한 관계 등에서 미묘한 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자신의 적, 즉 왜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들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수천수만의 수군을 거느린 조선 최대의 군벌이자 유일무이한 수군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또한 임진왜란, 정유재란 최고의 전쟁 영웅이었다. 민심과 조정 여론은 극과 극이었다. 그는 자신의 토사구팽할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전쟁터에서 늘 자신이 묻힐만한 사지(死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칼이었고, 그의 칼은 또 적장 풍신수길과 조국인 조선의 조정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칼의 인생을 살아갔다. 한없이 단순하고 순결한 칼의 인생을 말이다. 그러던 찰나에 그에게 노량해전이라는 또 하나의 사지가 찾아왔다. 적탄에 맞아 전사해도 그건 자연사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순신. 그는 눈을 감으며 그렇게 왜선을 부수러 돌격해가는 아군 전선들을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 건지도 모르겠다.

칼.

이순신, 그의 인생은 항상 뭐든지 양단하는 칼과 같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의 인생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적의 적이, 자신의 적이 되야하는 상황. 세상 전체가 적의 칼이 되어 자신을 짓누르려는 상황에서도 그는 의연하게 본인의 삶을 살았다.

"신이 살아있는 한, 적은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그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순신, 그는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맺혀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치인들, 각계 각층 인사들이 즐겨 본 책이라고 한다. 뭣때문에 이 책이 그들에게 즐겨 읽혔을까? 그들은 이순신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의 적이, 그의 적의 적이 되고 싶었을까? 시대를 뛰어넘은 인물, 이순신. 그가 단순히 전쟁 영웅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 우리의 조상으로 다가서는 이 순간...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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