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 연구의 방향
이성규 외 지음 / 학연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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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후배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다른 까페에 올렸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윤명철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쓴 서평 같은데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을 지니고 의도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그러지 못 하다고 적고 있었다. 각 연구자들의 개인 논문, 혹은 연구사의 단순 정리, 자기 설의 장황한 소개에 그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중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쓴 독창적인 내용의, 연구지침으로도 훌륭한 글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성규의「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동북관」과 신종원의「단군신화의 여러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책 제목대로 연구방향을 추구하려면 좀더 적극적인 지적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끝을 맺고 있다.

이 서평이 어디에 실린 서평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서평 내용상으로 봤을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쓰여진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처럼 여러명의 공저자가 책을 쓰는 경우, 대부분 이미 기존에 자신들이 세운 학설이라든가 연구성과들을 한데 모아 보기 좋게(?) 정리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윤명철 선생님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논문들에 대해 참신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남긴 것을 보면 분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인 역사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봤더니 할인가격으로 판매되지 않기에 기다렸다가 마침 이번 전국고고학대회때 20% 할인가로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얇다. 200페이지 남짓인데다가 6명이 쪼개썼으니 한 사람당 35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남긴 것이니 일반 논문 한편 분량 정도였었다. 차를 타고 오매가매 조금씩 읽어서 3일간 다 읽었는데 전체적으로 책을 다 보고 난 다음의 평은 대체로 윤명철 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주인장의 지식이 더 얇은지라 윤명철 선생님보다는 평이 더 너그러워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몇몇 지리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재미있고 주목할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윤명철 선생님도 언급했던 이성규 선생님의 연구성과는 주인장의 고대사 인식에 일타를 가했다. 동양사학과 교수님인만큼 이성규 선생님은 풍부한 중국 문헌들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중국인들이 갖고 있던 동북관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즉, 그들은 의식적으로 문헌에 기록할때 동이(東夷)라 불리는 집단들에 대해 중화에 복속한 집단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고로 동북공정이 결코 21세기에 중국이 억지를 부려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수천년간 천천히, 조금씩 진행되어 왔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북적과 동이 중에서 북적이라 불리는 북방유목민들은 마치 벌레나 짐승처럼 묘사하면서도 동이에 대해서는 교화의 대상, 예의가 있는 나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다 '중화의 예법을 받아들여 교화된 존재'로서의 동이의 존재를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종종 중국측 문헌을 인용하는데 있어 그들의 주장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예를 들면, 고대 삼국에는 왜인이나 중국인 등이 많이 잡거(雜居)하고 있다는 기록을 두고 우리는 고대 삼국이 중국에 비해 부강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이는 곧 고대 삼국이 부국강병을 이룩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성규 선생님은 그 반대로 이해하고 계신다. 즉, 그런 기록을 중국인들이 남긴 의도적인 이유는 중국인들이 섞여 들어가 살고 있는 고대 삼국은 부국강병해졌다, 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기존에 고대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중국측 문헌에 접근했던 주인장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성규 선생님 말씀대로 중국측 문헌을 이해할때 우리가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인이 어떤 입장에서 그러한 기록을 남겼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시 중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역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록을 남긴 중국인의 눈 자체를 규명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내면적인 의미까지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2가지 작업이 모두 이뤄진다면 그 안에서 비록 타인의 기록이지만 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 일타를 가해준 부분이었기에 책을 처음 넘긴 그 순간부터 주인장은 앞으로의 내용이 상당히 많이 기대된 것이 사실이다.

뒤이은 신종원 선생님의「단군신화 연구의 여러 문제」역시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군신화의 곰이 동물로서의 의미가 아닌 신(神)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먼저 규명하면서 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2마리의 동물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주인장이 작년의 어떤 수업 시간에 의문을 품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가며 공부를 잠깐 했었던 부분이기에 더 흥미를 끌었다. 그러면서 신종원 선생님은 이런 세부 단어들의 존재를 규명함은 물론이고, 단군신화를 거시적으로 분석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단군에 대한 인식,『삼국유사』에 녹아있는 불교적 영향이 단군신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어느 한쪽 부분만 갖고 단군신화를 바라봤던 여타의 연구성과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신종원 선생님은 '단' 자에 대해서 단(檀)이 아닌 단(壇)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박달나무가 어떠한 신성성을 부여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무 목(木) 변의 '단' 자를 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히려 제단을 의미하는 단(壇) 자가 쓰여야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보다 더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단(檀)이 단순히 박달나무로 해석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게 해석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두 글자 모두다 제단이라는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두 글자를 비교했을때 나무 목(木) 변이냐, 흙 토(土) 변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은 곧 당시의 제단이 나무 혹은 흙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충분히 문화 · 민족에 따라서 차이점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단군신화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줄 수 있어서 그 점들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박경철 선생님의「부여사 연구의 제문제」와 임기환 선생님의「고구려사 연구의 제문제-정치사와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는 윤명철 선생님의 평대로 식상한 것임에 분명했다. 기존의 두 분 선생님의 연구성과를 통해서 이미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상태였고, 현재 학계의 문제점을, 마치 지금까지 연구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학계의 문제점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어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읽으면서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느꼈다. 이는 가장 마지막 부분인 이청규 선생님의「철기시대 전기의 중국 동북과 한반도의 금속기문화-세형동검문화를 중심으로-」역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덧붙여 주인장이 또 하나 관심있게 바라본 부분은 오강원 선생님의「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와 지역간 교섭관계」였는데 일단 광범위한 시각에서 요령성이나 길림성 등에 분포하고 있는 각종 청동기문화를 지역별로 구획하고 이들간의 상호 문화교류에 대해서 편년을 수립해 정리하고 있어서 한눈에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물론 주인장이 청동기시대에 대해 관련 지식이 미흡하고 이 부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 내용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한 도판과 도표를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잘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라도 좋은 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당시의 고고학적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것은 좋았지만 그런 고고학적 성과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부분이 없어 이 점이 아쉬웠다. 즉, 그는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를 기원전 10세기 후반~9세기 중반, 기원전 9세기 중반~8세기 중반, 기원전 8세기 중후반~6세기 전반, 기워전 6세기 전반~5세기, 기원전 4~3세기 등, 총 5개 시기로 구분했는데 그 시기는 분명히 이 지역에 단군조선부터 위만조선을 위시한 각종 정치체들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인 문화구분과 몇몇 표지유물을 통한 각 문화권간의 교섭 관계를 파악하고 거기서 그치고 말았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각 문화권간의 교섭관계까지 하나의 도판에 정리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 읽고 나니 전체적으로 짧은 내용들이었지만 학문적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은 내용들로 꽉 짜여있는 책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개설적인 부분이 적어 청동기문화의 경우, 주인장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들이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있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사실들을 분석함은 물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주인장이 보기에는 전체적인 구성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량도 크게 많지 않고 고고학-문헌사학간의 연계성도 잘 확보하고 있어 비단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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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박창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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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문학(古天文學)'혹은 '천문고고학(天文考古學)'이라는 학문분야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현재 남겨진 문헌이나 각종 고고학적 기록등을 통해서 천문 관련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를 통해, 옛날의 천문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사 복원에 있어 보다 자연과학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며 또한 상당히 주목받는 학문 분야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주인장의 후배 한명이 천문고고학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연구소를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연구소 소장님이 그게 뭐냐? 고 묻자, 옆에서 외국 유학을 갔다오신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페루 나스카의 거대한 비행장 유적을 언급하면서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연구하는 분야라는 식으로 얘길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린 것이 사실이며 그 얘길했던 친구는 멋적어했으니...결국 그 친구는 요즘에 천문고고학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며, 한국 고고학계의 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주인장이 알기로 천문고고학은 그런 외국의 외계인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고천문학 · 천문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온지는 발행년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청 오래됐다. 당시『환단고기』류의 진위여부가 의심받는 책에 기록된 천문현상이 천문학적으로 봤을때 사실에 가깝다는 저자의 주장은 당시 소위 '환빠'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대환영을 받았으며 이윽고 그의 주장은 그러한 환빠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인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시기에 주인장은 이 책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최근에 구입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갖고 있던 선입견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단순히 역사를 좋아하는 재야사학자의 저작물로 보기에는 상당히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이용해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연구가 기존 학계에서도 많은 호응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원래는 이번에 3일 계획으로 경기도 양평의 백제주거지를 발굴하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틈틈히 보려고 마음먹었던 책인데 결국은 첫날 두어시간만에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쉽게 쓰여져 있었고 재밌었으며 또한 양이 많지 않았다. 이 책에서 근거자료로 제시되는 것은 일단 문헌자료다. 하지만 상고시대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우리측 기록이라고는 앞서 언급한『환단고기』류의 책들 뿐인데 그 책들은 아직 진위여부의 논쟁 속에서 위서라고 확실시되고 있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 안의 천문기록들이 자연과학적으로 사실에 가깝고 조작이 힘들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만하다. 이는『환단고기』류의 책이 위서이기는 하지만 '한 개인물의 창작품'이라는 종래의 견해를 비판하는데 주요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서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내용 100%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고천문학 · 천문고고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그 안에 인용된 진짜 사실들을 가려내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와 같은 문헌자료는 역사시대로 넘어오면 보다 믿을만해지는데『삼국사기』는 물론이고,『고려사』와 같은 고려시대 기록과『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한국사에서 방대한 분량의 천문관측 관련 기록들을 찾아내 일일히 분석하고 그것들을 종합해 관련 기록들을 정리했다. 일단, 그 노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면서 책을 읽었다. 일단 주인장이 알기로 천문학은 장기간의 관측 기록을 기초로 과거도, 미래도 예상할 수 있다고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앞일을 대비하는 목적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역대 왕조들은 이런 천문학 분야에 집중적으로 연구인력을 투자함으로써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박창범의 이런 연구성과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냥 가볍게 보고 넘어갔는데, 지금 이 책을 읽고 났으니 그에 대한 비판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 하겠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비판적으로 본 부분이라면 문헌사료에 집중적으로 기대어 상고사, 고대사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 문헌사료 자체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즉, 유교적 시각에서 쓰여진『삼국사기』는『구삼국사』를 저본으로 했음에도 내용에 있어서 유교적 입장에 맞춰 쓰여진 부분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좋지 않은 일(凶事)'을 천문 · 기상 현상에 빗대어 표현한 것들이다. 흑룡이 나타났다거나, 하늘에 별이 떨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는 이러한 은유적인 표현의 검증은 따로 하지 않았던 듯 싶다. 이 부분이 일단 지적할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두번째는 고인돌과 같은 청동기시대(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500년 이전)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서 상고시대(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군조선의) 천문학 수준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때 주요 논거로 드는 것이 성혈(星穴)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아득이마을의 석판처럼 실제 천체현상을 기록한 천문도, 혹은 둥그런 바탕의 십자선이 그어진 고대 윷놀이판으로 생각되는 석판 등 충분히 저자가 논지의 근거로 활용할만한 것들도 있지만 성혈처럼 그 존재가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의 경우는 죽서기년 등을 통해서 시대를 편년하고 갑골문을 통해 기후나 천문에 대한 기록들을 얻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접근방법도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이것이 학계의 주류 견해로 성장하기에는 분명 부족한 근거들이 아닐까 싶다. 이는 순전히 주인장이 저자의 연구성과를 어느정도 지지하게 되었음에도 그 근거가 적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뭐 이 2가지 정도만 제외한다면 그 밖의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주인장이 상당히 주목해서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고대 삼국의 강역을 천문기록을 통해 추정한 것은 정말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 부분은 이미 이 책을 보기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들어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 연구성과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더 다듬어진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장 두장 책을 넘기다보니 짧은 시간 안에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책 뒤에 참조된 천문기록 내역 또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는데 분량은 비록 적지만 전체적으로 속이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단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참신한 방법론이 적용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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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기 1
이남교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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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기...아마 주인장 나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았을 책일 것이다.

요즘은 삼국시대 역사 소설이 하도 많이 나와서 나올때마다 다 읽어보지도 못할 정도지만 90년대 초반, 그러니까 주인장이 초등학교~중학교 다닐 적에는 삼국시대 관련 역사 소설책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지금도 그렇지만 삼국시대를 그려낸 역사 소설로 손색이 없다고 주인장 개인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싶은 책이다. 실제 9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삼국기〉라는 대하사극의 원본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사극 역시도 주인장이 굉장히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장 주인장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장면은 아마도 김유신(서인석)의 파상공세에 결국 황산벌에서 패배한 계백(유동근)이 백제의 깃발을 잡고 온몸에 화살이 박힌채 고슴도치가 되어 눈을 번득이며 주검이 가득한 전장에 홀로 서 있는 장면이었다.

암튼, 그 정도로 주인장의 눈에 강한 인상을 남겼고 또한 주인장의 머릿 속에 삼국시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바로 이 삼국기라는 역사 소설책과 사극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이 책을 집에 오면 뒤적거리면서 보는데 상당히 잘 쓰여졌다는 생각을 그때마다 하게 된다. 요즘에『우리나라 삼국지』라는 책(11권)을 보고 있는 중인데(지금 8권 읽는 中)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이렇게 다시금 이 책을 집어들어서 뒤적거리다가 서평을 간략하게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주인장이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로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나온 책에서 보여주는 주체적인 필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주인장 역시 비평을 썼지만 이덕일의『오국사기』라고 하는 책과 구성 면에서는 비슷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천지차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왜 4국을 중심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수 · 당까지를 무대로 넣었던『오국사기』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국측 문헌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 서술한『오국사기』에 비한다면 이 책은 훨씬 더 주체적인 필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88년, 일본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 부영사 시절에 일본어로 출간한 책을 이후 고려원에서 89년 번역 · 출간했으며 92년 KBS 대하사극으로 방영이 결정되면서 사극과 같은 명칭인『삼국기』로 재삼 출판하게 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꼽고자 하는 점은 각국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있어 균형잡힌 시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일부 역사 소설을 보면 우리는 지극히 높이고, 타국은 지극히 낮추는 극단적인 시각이 적용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최근 출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우리나라 삼국지』와 비교했을때도 전혀 꿀리지 않는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갖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딱딱하게 역사적 인물들만 등장한 것도 아니며 적절하게 가미된 픽션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더 하게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단 2권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인해 스피디한 전개가 돋보이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책을 삼국시대 관련 역사 소설책으로 적극 추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다소 역사적인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도 있다. 친왕파로서 연개소문과 거리가 멀었던 선도해가 고구려의 명참모로 등장한다는 점이나 계백이 젊은 시절, 김유신과 전장에서 만났다는 식의 설정이 그러한데 이는 분명 오늘날 알려져있는 학계의 연구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설정에 있어서 크게 무리가 없는데다가 지나친 허구성이 가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최근 혹평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대하사극〈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이 어려서 신라에서 머물며 김유신과 친분이 있었다는 식의 설정이나 안시성 전투때 길다란 목책 사다리를 이용해 토산을 점령한다는 식의 황당한 설정보다는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역사 소설이 사실 그대로만을 100% 수용해서는 재미가 없을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전체적으로 굵직굵직한 전쟁씬이나 정치적인 대사건 등은 가볍게 처리하면서도 등장인물들 간의 내면 묘사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아니 요즘에 읽는 역사 소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암튼, 오래된 삼국시대 역사 소설의 고전이니만큼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량도 얼마 안 될테니 재밌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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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구려역사 중국에는 없다 - 한. 중 역사전쟁의 시작
이인철 외 지음 / 예문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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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주인장이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7월 21일이다.
이렇게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공저자 중 한분이 이 책을 추천해서 주인장에게 전해줬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장은 이 책을 받고 얼마 안 있어 다 읽어봤다. 마침 이 주제와 연관되어 '동북공정'에 대한 학교 리포트를 제출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이 책이 주인장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지금 주인장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이 요즘 읽혀야만 하는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제2의 동북공정'이라 하여 말들이 많다. 주인장의 아버지 역시 주인장에게 늘 안부를 묻는 전화에서 "고구려 잘 지키고 있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씀을 하시곤 한다. 주인장이 보기에 이미 동북공정이 가시화된 2004년 무렵, 보여준 우리의 대응은 이미 늦은 것이었다. 주인장이 당시 군대에 있었을 무렵 동북공정이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었는데 이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장이 몸담고 있던 부대장이 주인장에게 장병들을 상대로 동북공정과 우리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 정신교육을 하라고 지시했던 이유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러한 중국의 동북공정 결과물들이 다시 TV나 신문 등의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면서 동북공정은 다시금 주목되고 있다.

주인장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냄비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그렇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사실인 것 같기 때문이다. 동북공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2004년 이후 꾸준히 진행된 동북공정에 대해서 '제1의' '제2의' 등으로 표현하면서 반짝이는 국민 감정 반발심 이용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냄비의식 마저 없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책은 동북공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중국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비단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간도사와 연관된 한국의 근대사 왜곡 문제, 더 나아가 통일과 연관된 미래 한국의 영토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들이 이미 기사화된 것들이 많고, 주변에서 많이 접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주인장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이제 와서 쓰는 첫번째 이유이다. 혹자는 이 책의 공저자와 주인장이 친분이 있다 하여 주인장이 이 책에 대한 선전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주인장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 중 한명으로서 서평을 쓰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평을 쓰는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이 책에 대한 소개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10명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라고 불릴만한 역사(고구려사) 연구자들이 공저자로서 만들어낸 책이다. 그러다보니 책의 내용이 일반인을 상대로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논문 형태로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반인들로 하여금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해서 동북공정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는데 일조한다고도 본다. 주인장 또한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이 책이 다소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었다. 다만, 책을 읽다보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이 단순한 역사 정보 전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몽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자칫 독자로 하여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수 도 있게끔 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전체적인 책의 구성이나 내용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책은 전체적으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닌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닌) 국가라는 내용을 싣고 있는 챕터가 2개(이인철, 서영수), 동북공정과 중국의 정치적인 역사 왜곡에 대한 챕터가 2개(김용만, 박선영), 고구려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한 챕터가 4개(이태호, 오순제, 윤명철, 서병국), 간도에 대한 내용이 1개(이일걸), 마지막으로 중국 역사 교과서 속의 고구려 · 발해사에 대한 부분이 1개(임상선)가 담겨 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상, 어느 것 하나 고구려사를 이해하는데, 또 동북공정과 오늘날 중국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갖가지 만행(?)에 대해 잘 설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겠다. 그만큼 흥미있는 주제이고, 또한 재미있는 주제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누구나 뉴스나 신문에서 많이들 봤을 것이다. 하지만 동북공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며,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동북공정이 왜 문제가 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주변에서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몰아가니까, 동북공정이 단편적으로 이런저런 부분에서 문제가 있구나 하고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럴때는 이 책을 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 아마 누구나 '아~중국이 무섭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미 우리가 그런 중국의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겁 먹을 것 없다. 중국이 아무리 고구려 성벽을 중국식으로 갈아끼고 광개토호태왕비문을 갈아마셔도...

고구려는 한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켜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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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 한국사의 잊혀진 무대, 한국 해양의 역사
강봉룡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주인장이『고구려 해양사 연구』를 보고 난 다음에, 다른 분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이다. 저자는 장보고와 같은 해양 활동의 주역들을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분인데 이 책은 해양사라는 관점에서 한국사를 관통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구해 읽으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손에서 책을 쉽게 놓을 수 없을만큼 책은 흡입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단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다가 해양사라는 관점에서 한국사를 잘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문에 책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읽어냈다.

저자는 한국 해양사를 크게 '태동기', '융성기', '침체기', '부흥기'라는 4개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었다. '태동기'는 동북아 연안항로가 개척되고 연안항로를 둘러싼 쟁패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삼국시대 이전을 말하고, '융성기'는 이전까지 간헐적으로만 활용되던 황해 횡단항로가 상시적인 항로로 본격 활용되면서 동북아시아 해상활동에 일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통일신라-고려시대를 일컫는다. 그리고 '침체기'는 공도정책(空島政策)과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강하게 밀어붙여 해상활동을 크게 위축시킨 조선시대를 지칭하고 '부흥기'란 해방과 함께 해양의 문호가 다시 열린 이후 '대개방의 시대'로 가고 있는 오늘날까지를 일컫는다. 그리고 책의 주된 내용은 '침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책은 전반적으로 해양사라는 측면에서 한국사를 바라봤기 때문에 몇가지 부분에서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이 가장 참신하고 독특하다고 여긴 내용은 3가지였다. 첫째는 고구려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와 백제 공격에 대한 부분이었고 둘째는 고려 최씨 정권에 대한 평가, 마지막은 고려말부터 진행되어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속된 공도정책과 해금정책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들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기존에 주인장이 갖고 있던 인식들이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첫번째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와 백제 공격에 대한 부분을 말해보겠다. 앞서 윤명철은 그의 저서『고구려 해양사 연구』에서 장수왕의 평양으로의 남천은 고구려가 능동적으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과제였으며 이를 토대로 고구려는 활발한 해양활동을 벌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모든 국가와 종족들이 고구려와 남북조, 북방 세력 등 4개의 중심축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교섭을 갖는 '다핵다중방사상 외교' 형태의 등장을 이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남진의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백제를 위시한 남부 정치체로 설정하고 평양천도를 남진과 직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반고구려 국제연대'가 백제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간의 끊임없는 대립이 계속되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고구려의 한성 점령으로 인해 연안항로의 경색이 부채질되었고 동북아 해상교역이 위축됨에 따라 주변 여러 나라들의 경제적 손실이 가중되어 자연히 고구려에 반대하는 여론이 국제사회에 더욱 확산되었다고 하고 있다. 즉,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구려의 천하 경영과 연결시켜 이해한 전자와 달리 후자는 고구려의 남진경략에 주목하였고, 그것이 오히려 고구려에 반대하는 집단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사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얼만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했다.

둘째는 최씨 무신정권에 대한 해석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려사에 대한 몇가지 부분들을『국사』책에서 배울때 최씨 무신정권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씨 무신정권은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몽골과의 무리한 항전을 지속했으며 고려를 망국으로 몰아가는 독재정치를 펼쳤다고 설명되어왔다. 주인장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피신하면서 육지의 관민에게 '몽골의 침입이 있을 시에 산성(山城)과 해도(海島)에 들어가 피신[入保]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것은 무책임한 조치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기마민족인 몽골족에 대항해 산성의 나라, 해양의 나라 고려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가 그것이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라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팔만대장경의 조판을 최씨 무시정권의 고려의 생명줄인 바닷길을 지켜내기 위한 주도면밀한 정치행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즉, 대장경 조판 사업이 강화도와 남해도를 잇는 바닷길을 넘나들며 수행되었음을 상기했을때 최씨 정권이 진주를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부 일대에 광대한 경제적 ·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시했다. 그리고 대장경 조판이라는 어마어마한 국책 사업을 일으킨 이유가 불력으로써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강화도와 남해도를 잇는 바닷길의 네트워크를 유지 · 강화하려는 의도에서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최씨 무신정권은 서남해 지역에 머물고 있던 당대 최고의 고승들을 성심성의껏 섬기고 후원했으며 그로 인해 그 지역 해상 토호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던 것이라 한다. 이는 분명 기존 최씨 무신정권 치하의 몽골항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할 수 있으며 주인장이 2번째로 눈여겨 본 부분이었다.

마지막 3번째는 고려말부터 조선때까지 지속되었던 공도 · 해금정책인데 지금까지는 막연히 왜구의 침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문헌에 나와있고, 주인장 역시 그런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진도를 중심으로 해양왕국을 건설했던 삼별초에 주목하여 이 부분을 해석했는데, 고려정부가 삼별초를 진압하면서 해상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하여 공도정책을 단행했던 것이라 한다. 실제 왜구의 침탈때문이었다면 오히려 도서지역에 방어체계를 단단히하여 격퇴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해상세력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고 봤던 것이다. 실제 삼별초 정부가 일본과 연계하여 항몽전쟁을 지속하려 했던 점을 상기했을때 고려왕조의 이러한 정책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고려말기에 시행된 공도정책은 이후 조선시대까지 이어졌고, 결국 조선시대는 명의 해금정책을 좇아 바다에 대한 모든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스스로 폐쇄적인 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이나 이순신의 조-일전쟁에서의 눈부신 활약상이 확인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조선은 바다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했었다. 조-일전쟁 이후에도 해금 · 쇄국정책을 지속했던 조선이 열강들의 침입 속에서 결국 일제강점기를 맞이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이 3가지 부분 말고도 전체적으로 해양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다보니 기존의 견해와 다른 내용들을 상당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역사를 얼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해양사에 대한 책이 적지 않게 나와있지만 이 책은 한국사 전반을 관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만큼 해양사를 공부하는 사람 혹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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