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선사 및 고대사 연구의 방향
이성규 외 지음 / 학연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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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후배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다른 까페에 올렸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윤명철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쓴 서평 같은데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을 지니고 의도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그러지 못 하다고 적고 있었다. 각 연구자들의 개인 논문, 혹은 연구사의 단순 정리, 자기 설의 장황한 소개에 그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중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쓴 독창적인 내용의, 연구지침으로도 훌륭한 글들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성규의「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동북관」과 신종원의「단군신화의 여러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책 제목대로 연구방향을 추구하려면 좀더 적극적인 지적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끝을 맺고 있다.

이 서평이 어디에 실린 서평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서평 내용상으로 봤을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쓰여진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처럼 여러명의 공저자가 책을 쓰는 경우, 대부분 이미 기존에 자신들이 세운 학설이라든가 연구성과들을 한데 모아 보기 좋게(?) 정리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윤명철 선생님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논문들에 대해 참신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남긴 것을 보면 분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인 역사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봤더니 할인가격으로 판매되지 않기에 기다렸다가 마침 이번 전국고고학대회때 20% 할인가로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얇다. 200페이지 남짓인데다가 6명이 쪼개썼으니 한 사람당 35페이지 정도 되는 글을 남긴 것이니 일반 논문 한편 분량 정도였었다. 차를 타고 오매가매 조금씩 읽어서 3일간 다 읽었는데 전체적으로 책을 다 보고 난 다음의 평은 대체로 윤명철 선생님의 그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주인장의 지식이 더 얇은지라 윤명철 선생님보다는 평이 더 너그러워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몇몇 지리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재미있고 주목할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윤명철 선생님도 언급했던 이성규 선생님의 연구성과는 주인장의 고대사 인식에 일타를 가했다. 동양사학과 교수님인만큼 이성규 선생님은 풍부한 중국 문헌들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중국인들이 갖고 있던 동북관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즉, 그들은 의식적으로 문헌에 기록할때 동이(東夷)라 불리는 집단들에 대해 중화에 복속한 집단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고로 동북공정이 결코 21세기에 중국이 억지를 부려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수천년간 천천히, 조금씩 진행되어 왔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북적과 동이 중에서 북적이라 불리는 북방유목민들은 마치 벌레나 짐승처럼 묘사하면서도 동이에 대해서는 교화의 대상, 예의가 있는 나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다 '중화의 예법을 받아들여 교화된 존재'로서의 동이의 존재를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종종 중국측 문헌을 인용하는데 있어 그들의 주장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예를 들면, 고대 삼국에는 왜인이나 중국인 등이 많이 잡거(雜居)하고 있다는 기록을 두고 우리는 고대 삼국이 중국에 비해 부강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이는 곧 고대 삼국이 부국강병을 이룩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성규 선생님은 그 반대로 이해하고 계신다. 즉, 그런 기록을 중국인들이 남긴 의도적인 이유는 중국인들이 섞여 들어가 살고 있는 고대 삼국은 부국강병해졌다, 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기존에 고대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중국측 문헌에 접근했던 주인장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성규 선생님 말씀대로 중국측 문헌을 이해할때 우리가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인이 어떤 입장에서 그러한 기록을 남겼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시 중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역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록을 남긴 중국인의 눈 자체를 규명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내면적인 의미까지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2가지 작업이 모두 이뤄진다면 그 안에서 비록 타인의 기록이지만 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 일타를 가해준 부분이었기에 책을 처음 넘긴 그 순간부터 주인장은 앞으로의 내용이 상당히 많이 기대된 것이 사실이다.

뒤이은 신종원 선생님의「단군신화 연구의 여러 문제」역시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군신화의 곰이 동물로서의 의미가 아닌 신(神)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먼저 규명하면서 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2마리의 동물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주인장이 작년의 어떤 수업 시간에 의문을 품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가며 공부를 잠깐 했었던 부분이기에 더 흥미를 끌었다. 그러면서 신종원 선생님은 이런 세부 단어들의 존재를 규명함은 물론이고, 단군신화를 거시적으로 분석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단군에 대한 인식,『삼국유사』에 녹아있는 불교적 영향이 단군신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어느 한쪽 부분만 갖고 단군신화를 바라봤던 여타의 연구성과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신종원 선생님은 '단' 자에 대해서 단(檀)이 아닌 단(壇)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박달나무가 어떠한 신성성을 부여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무 목(木) 변의 '단' 자를 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히려 제단을 의미하는 단(壇) 자가 쓰여야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보다 더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단(檀)이 단순히 박달나무로 해석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게 해석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두 글자 모두다 제단이라는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두 글자를 비교했을때 나무 목(木) 변이냐, 흙 토(土) 변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은 곧 당시의 제단이 나무 혹은 흙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충분히 문화 · 민족에 따라서 차이점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단군신화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줄 수 있어서 그 점들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박경철 선생님의「부여사 연구의 제문제」와 임기환 선생님의「고구려사 연구의 제문제-정치사와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는 윤명철 선생님의 평대로 식상한 것임에 분명했다. 기존의 두 분 선생님의 연구성과를 통해서 이미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상태였고, 현재 학계의 문제점을, 마치 지금까지 연구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학계의 문제점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어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읽으면서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느꼈다. 이는 가장 마지막 부분인 이청규 선생님의「철기시대 전기의 중국 동북과 한반도의 금속기문화-세형동검문화를 중심으로-」역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덧붙여 주인장이 또 하나 관심있게 바라본 부분은 오강원 선생님의「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와 지역간 교섭관계」였는데 일단 광범위한 시각에서 요령성이나 길림성 등에 분포하고 있는 각종 청동기문화를 지역별로 구획하고 이들간의 상호 문화교류에 대해서 편년을 수립해 정리하고 있어서 한눈에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물론 주인장이 청동기시대에 대해 관련 지식이 미흡하고 이 부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 내용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한 도판과 도표를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잘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라도 좋은 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당시의 고고학적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것은 좋았지만 그런 고고학적 성과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부분이 없어 이 점이 아쉬웠다. 즉, 그는 요령지역의 청동기문화를 기원전 10세기 후반~9세기 중반, 기원전 9세기 중반~8세기 중반, 기원전 8세기 중후반~6세기 전반, 기워전 6세기 전반~5세기, 기원전 4~3세기 등, 총 5개 시기로 구분했는데 그 시기는 분명히 이 지역에 단군조선부터 위만조선을 위시한 각종 정치체들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인 문화구분과 몇몇 표지유물을 통한 각 문화권간의 교섭 관계를 파악하고 거기서 그치고 말았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각 문화권간의 교섭관계까지 하나의 도판에 정리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 읽고 나니 전체적으로 짧은 내용들이었지만 학문적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은 내용들로 꽉 짜여있는 책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개설적인 부분이 적어 청동기문화의 경우, 주인장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들이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있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사실들을 분석함은 물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주인장이 보기에는 전체적인 구성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량도 크게 많지 않고 고고학-문헌사학간의 연계성도 잘 확보하고 있어 비단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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