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박창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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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문학(古天文學)'혹은 '천문고고학(天文考古學)'이라는 학문분야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현재 남겨진 문헌이나 각종 고고학적 기록등을 통해서 천문 관련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를 통해, 옛날의 천문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사 복원에 있어 보다 자연과학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며 또한 상당히 주목받는 학문 분야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주인장의 후배 한명이 천문고고학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연구소를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연구소 소장님이 그게 뭐냐? 고 묻자, 옆에서 외국 유학을 갔다오신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페루 나스카의 거대한 비행장 유적을 언급하면서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연구하는 분야라는 식으로 얘길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린 것이 사실이며 그 얘길했던 친구는 멋적어했으니...결국 그 친구는 요즘에 천문고고학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며, 한국 고고학계의 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주인장이 알기로 천문고고학은 그런 외국의 외계인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고천문학 · 천문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온지는 발행년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청 오래됐다. 당시『환단고기』류의 진위여부가 의심받는 책에 기록된 천문현상이 천문학적으로 봤을때 사실에 가깝다는 저자의 주장은 당시 소위 '환빠'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대환영을 받았으며 이윽고 그의 주장은 그러한 환빠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인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시기에 주인장은 이 책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최근에 구입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갖고 있던 선입견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단순히 역사를 좋아하는 재야사학자의 저작물로 보기에는 상당히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이용해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연구가 기존 학계에서도 많은 호응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원래는 이번에 3일 계획으로 경기도 양평의 백제주거지를 발굴하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틈틈히 보려고 마음먹었던 책인데 결국은 첫날 두어시간만에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쉽게 쓰여져 있었고 재밌었으며 또한 양이 많지 않았다. 이 책에서 근거자료로 제시되는 것은 일단 문헌자료다. 하지만 상고시대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우리측 기록이라고는 앞서 언급한『환단고기』류의 책들 뿐인데 그 책들은 아직 진위여부의 논쟁 속에서 위서라고 확실시되고 있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 안의 천문기록들이 자연과학적으로 사실에 가깝고 조작이 힘들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만하다. 이는『환단고기』류의 책이 위서이기는 하지만 '한 개인물의 창작품'이라는 종래의 견해를 비판하는데 주요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서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내용 100%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고천문학 · 천문고고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그 안에 인용된 진짜 사실들을 가려내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와 같은 문헌자료는 역사시대로 넘어오면 보다 믿을만해지는데『삼국사기』는 물론이고,『고려사』와 같은 고려시대 기록과『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한국사에서 방대한 분량의 천문관측 관련 기록들을 찾아내 일일히 분석하고 그것들을 종합해 관련 기록들을 정리했다. 일단, 그 노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면서 책을 읽었다. 일단 주인장이 알기로 천문학은 장기간의 관측 기록을 기초로 과거도, 미래도 예상할 수 있다고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앞일을 대비하는 목적이 강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역대 왕조들은 이런 천문학 분야에 집중적으로 연구인력을 투자함으로써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박창범의 이런 연구성과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냥 가볍게 보고 넘어갔는데, 지금 이 책을 읽고 났으니 그에 대한 비판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 하겠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비판적으로 본 부분이라면 문헌사료에 집중적으로 기대어 상고사, 고대사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 문헌사료 자체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즉, 유교적 시각에서 쓰여진『삼국사기』는『구삼국사』를 저본으로 했음에도 내용에 있어서 유교적 입장에 맞춰 쓰여진 부분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좋지 않은 일(凶事)'을 천문 · 기상 현상에 빗대어 표현한 것들이다. 흑룡이 나타났다거나, 하늘에 별이 떨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는 이러한 은유적인 표현의 검증은 따로 하지 않았던 듯 싶다. 이 부분이 일단 지적할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두번째는 고인돌과 같은 청동기시대(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500년 이전)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서 상고시대(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군조선의) 천문학 수준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때 주요 논거로 드는 것이 성혈(星穴)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아득이마을의 석판처럼 실제 천체현상을 기록한 천문도, 혹은 둥그런 바탕의 십자선이 그어진 고대 윷놀이판으로 생각되는 석판 등 충분히 저자가 논지의 근거로 활용할만한 것들도 있지만 성혈처럼 그 존재가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의 경우는 죽서기년 등을 통해서 시대를 편년하고 갑골문을 통해 기후나 천문에 대한 기록들을 얻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접근방법도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이것이 학계의 주류 견해로 성장하기에는 분명 부족한 근거들이 아닐까 싶다. 이는 순전히 주인장이 저자의 연구성과를 어느정도 지지하게 되었음에도 그 근거가 적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뭐 이 2가지 정도만 제외한다면 그 밖의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주인장이 상당히 주목해서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고대 삼국의 강역을 천문기록을 통해 추정한 것은 정말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 부분은 이미 이 책을 보기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들어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 연구성과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더 다듬어진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장 두장 책을 넘기다보니 짧은 시간 안에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책 뒤에 참조된 천문기록 내역 또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는데 분량은 비록 적지만 전체적으로 속이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단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참신한 방법론이 적용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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