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 한국사의 잊혀진 무대, 한국 해양의 역사
강봉룡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주인장이『고구려 해양사 연구』를 보고 난 다음에, 다른 분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이다. 저자는 장보고와 같은 해양 활동의 주역들을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분인데 이 책은 해양사라는 관점에서 한국사를 관통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구해 읽으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손에서 책을 쉽게 놓을 수 없을만큼 책은 흡입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단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다가 해양사라는 관점에서 한국사를 잘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문에 책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읽어냈다.

저자는 한국 해양사를 크게 '태동기', '융성기', '침체기', '부흥기'라는 4개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었다. '태동기'는 동북아 연안항로가 개척되고 연안항로를 둘러싼 쟁패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삼국시대 이전을 말하고, '융성기'는 이전까지 간헐적으로만 활용되던 황해 횡단항로가 상시적인 항로로 본격 활용되면서 동북아시아 해상활동에 일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통일신라-고려시대를 일컫는다. 그리고 '침체기'는 공도정책(空島政策)과 해금정책(海禁政策)을 강하게 밀어붙여 해상활동을 크게 위축시킨 조선시대를 지칭하고 '부흥기'란 해방과 함께 해양의 문호가 다시 열린 이후 '대개방의 시대'로 가고 있는 오늘날까지를 일컫는다. 그리고 책의 주된 내용은 '침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책은 전반적으로 해양사라는 측면에서 한국사를 바라봤기 때문에 몇가지 부분에서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이 가장 참신하고 독특하다고 여긴 내용은 3가지였다. 첫째는 고구려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와 백제 공격에 대한 부분이었고 둘째는 고려 최씨 정권에 대한 평가, 마지막은 고려말부터 진행되어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속된 공도정책과 해금정책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들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기존에 주인장이 갖고 있던 인식들이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첫번째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와 백제 공격에 대한 부분을 말해보겠다. 앞서 윤명철은 그의 저서『고구려 해양사 연구』에서 장수왕의 평양으로의 남천은 고구려가 능동적으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과제였으며 이를 토대로 고구려는 활발한 해양활동을 벌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모든 국가와 종족들이 고구려와 남북조, 북방 세력 등 4개의 중심축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교섭을 갖는 '다핵다중방사상 외교' 형태의 등장을 이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남진의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백제를 위시한 남부 정치체로 설정하고 평양천도를 남진과 직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반고구려 국제연대'가 백제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간의 끊임없는 대립이 계속되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고구려의 한성 점령으로 인해 연안항로의 경색이 부채질되었고 동북아 해상교역이 위축됨에 따라 주변 여러 나라들의 경제적 손실이 가중되어 자연히 고구려에 반대하는 여론이 국제사회에 더욱 확산되었다고 하고 있다. 즉,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구려의 천하 경영과 연결시켜 이해한 전자와 달리 후자는 고구려의 남진경략에 주목하였고, 그것이 오히려 고구려에 반대하는 집단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사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얼만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했다.

둘째는 최씨 무신정권에 대한 해석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려사에 대한 몇가지 부분들을『국사』책에서 배울때 최씨 무신정권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씨 무신정권은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몽골과의 무리한 항전을 지속했으며 고려를 망국으로 몰아가는 독재정치를 펼쳤다고 설명되어왔다. 주인장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피신하면서 육지의 관민에게 '몽골의 침입이 있을 시에 산성(山城)과 해도(海島)에 들어가 피신[入保]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것은 무책임한 조치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기마민족인 몽골족에 대항해 산성의 나라, 해양의 나라 고려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가 그것이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라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팔만대장경의 조판을 최씨 무시정권의 고려의 생명줄인 바닷길을 지켜내기 위한 주도면밀한 정치행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즉, 대장경 조판 사업이 강화도와 남해도를 잇는 바닷길을 넘나들며 수행되었음을 상기했을때 최씨 정권이 진주를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부 일대에 광대한 경제적 ·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시했다. 그리고 대장경 조판이라는 어마어마한 국책 사업을 일으킨 이유가 불력으로써 외적을 물리치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강화도와 남해도를 잇는 바닷길의 네트워크를 유지 · 강화하려는 의도에서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최씨 무신정권은 서남해 지역에 머물고 있던 당대 최고의 고승들을 성심성의껏 섬기고 후원했으며 그로 인해 그 지역 해상 토호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던 것이라 한다. 이는 분명 기존 최씨 무신정권 치하의 몽골항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할 수 있으며 주인장이 2번째로 눈여겨 본 부분이었다.

마지막 3번째는 고려말부터 조선때까지 지속되었던 공도 · 해금정책인데 지금까지는 막연히 왜구의 침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문헌에 나와있고, 주인장 역시 그런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진도를 중심으로 해양왕국을 건설했던 삼별초에 주목하여 이 부분을 해석했는데, 고려정부가 삼별초를 진압하면서 해상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하여 공도정책을 단행했던 것이라 한다. 실제 왜구의 침탈때문이었다면 오히려 도서지역에 방어체계를 단단히하여 격퇴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해상세력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고 봤던 것이다. 실제 삼별초 정부가 일본과 연계하여 항몽전쟁을 지속하려 했던 점을 상기했을때 고려왕조의 이러한 정책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고려말기에 시행된 공도정책은 이후 조선시대까지 이어졌고, 결국 조선시대는 명의 해금정책을 좇아 바다에 대한 모든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스스로 폐쇄적인 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이나 이순신의 조-일전쟁에서의 눈부신 활약상이 확인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조선은 바다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응했었다. 조-일전쟁 이후에도 해금 · 쇄국정책을 지속했던 조선이 열강들의 침입 속에서 결국 일제강점기를 맞이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이 3가지 부분 말고도 전체적으로 해양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다보니 기존의 견해와 다른 내용들을 상당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역사를 얼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해양사에 대한 책이 적지 않게 나와있지만 이 책은 한국사 전반을 관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만큼 해양사를 공부하는 사람 혹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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