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의 책 3
장노엘 로베르 지음, 조성애 옮김 / 이산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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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실크로드(die Seidenstrassen)라는 용어는 19세기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처음 사용하였으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 그리고 지중해를 연결하는 일련의 긴 무역 루트를 지칭한다. 비록 명칭은 실크로드이지만 교역 품목은 비단 외에 금, 은, 옥을 위시한 보석제품, 종이와 인쇄술, 나침반, 향로, 양모, 소금, 농산물, 심지어는 운반하기 불편한 자기, 유리제품, 그리고 말과 소를 위시한 가축 등 다양한 품목들이 교역되었다1).

정수일은 이러한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의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문명가교의 역할,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 주요 문명의 산파 역할 등으로 소개하고 있는데2), 이는 맥닐의 에큐민(ecumene) 개념과 맞물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3). 이처럼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 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큼 관련 연구 역시 동 · 서양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관련 서적 또한 시중에 봇물 넘치듯 쏟아지고 있다.

評者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어왔던 실크로드 관련 서적들을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학문적으로 실크로드에 대해 설명한 연구서적들로서 역사, 지리,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대해 문명교류사적 시각에서 쓰인 것들이다4). 그 다음은 실크로드 기행문 혹은 탐방기 등의 제목으로 출판된 것들로서 현지답사를 통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풍경 등을 소개한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다양한 도판을 통해 실크로드의 현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5). 세 번째는 실크로드의 음악이나 복식, 미술 등 실크로드의 특정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단순히 실크로드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문화와의 연계성까지 서술하고 있다6).

마지막으로 실크로드에 대해 특정 시간, 특정 지역, 특정 인물, 특정 주제에 대해 서술한 상당히 미시적인 연구서적들을 꼽을 수 있겠다. 제일 처음 거론했던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쓰인 책들과 정반대의 서술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평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고 관심 가졌던 책들 또한 마지막에 분류된 책들이다7). 그렇게 봤을 때 장-노엘 로베르(Jean-Noël Robert)의『로마에서 중국까지』역시 마지막에 분류할 수 있겠다.

평자가 장-노엘 로베르의 책을 소개하는데 앞서 얘기하자면 이 책이 Susan Whitfield의『실크로드 이야기』만큼이나 굉장히 독특한 시각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이다. 우선 이 책은 실크로드에 대한 책이면서 다른 책들과 달리 정작 실크로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단 실크로드가 무엇인지, 실크로드의 硏究史가 어떤지 등등 무미건조한 내용들이 적혀있지 않으며, 실크로드에서 교역되었던 각종 물품들과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각종 나라들 및 도시들에 대한 재미없는 나열도 없다. 책을 처음 보면 언제 실크로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그러지~라는 생각에 의아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저자는 실크로드를 바로 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만남에 대해 얘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 로마사와 공화정 시대 로마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전문사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전체적으로 그는 사람의 이야기, 당시 실크로드와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등을 복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실크로드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 변화 요인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당시 세계가 전무후무한 평화시대였기에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는 얘기를 한다. 즉,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중국(漢), 그 사이의 파르티아와 쿠샨 등 모든 왕조가 평화 · 안정기를 겪고 있었기에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교류가 폭넓게 이뤄졌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평자가 이 책이 독특한 시각에서 쓰였다고 평한 가장 큰 이유는 실크로드를 로마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실크로드라고 하면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비단이 서양으로 대거 넘어갔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 넘어간 다양한 동양의 문물을 소개하는데 있어 동양이 主가 되어 실크로드를 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니면 동-서간 교류된 문물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그치는 경우 또한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비단이라는 상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및 수혜자의 입장에 있던 로마인의 시각으로 실크로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실크로드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Carlos Fuentes의『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8). 책에서 멕시코 출신의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역사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투영되기도 했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서양학계의 표현인 ‘신대륙의 발견’ 대신 ‘양 대륙의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평자 또한 그 말에 동의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크로드의 주인공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활동했던 모든 사람들이며 로마인 역시 거기서 제외될 수는 없다. 실크로드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문화 교류를 의미하는 상징어처럼 되어버린 지금, 서양인의 입장, 그 중에서도 특히 로마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실크로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로마인의 의식구조와 생각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분석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노력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지금까지 평자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재고의 여지를 남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는 셈이다. 실크로드에 대해 단편적인 사고만 가능했던 평자의 생각을 일깨워준 고마움을 가진 채 간단한 서평을 남기도록 하겠다.

Ⅱ. 책의 구성과 비평

이 책은 고대 로마사 전문가로 활약하는 저자의 연구 서적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단순하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스트라보, 프톨레마이오스, 플루타르코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플리니우스, 타키투스 등 수많은 고대 그리스어 · 라틴어 문헌들을 인용하고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은 한국사를 연구할 때의 문제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사를 대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록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그 당시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있어 자료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도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현존하는 문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당시 시대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단순히 사건들의 반복적인 나열로만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무미건조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동감 있게 복원함으로써 저자는 평자가 책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눈을 감으면 그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될 것만 같은 생생한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관에 맞는 결론들의 연속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주제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비단을 생산하는 세레스인이 사는 ‘세리카’라는 나라에 대해 기존에는 중국이라고들 생각했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카슈미르와 신강지역, 서티베트 일대일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의 당시 지리학적 지식과 세리카에 대한 관심도 등을 자세하게 언급하면서 하나하나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식의 접근방법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실크로드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에 주목했다는 점이 기존에 나온 책들과 가장 다른 점이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그러면서도 사람에게만 주목하고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재조명하려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특히 비단의 수혜자인 로마인들의 의식구조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실크로드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그렇기에 실크로드 관련 서적임에도 중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9). 오죽하면 책 제목도『로마에서 중국까지』라고 했겠는가. 실크로드 관련 서적 몇 권만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개 실크로드의 출발은 중국 長安城부터다. 거기서 비단을 싣고 출발하는 대상인에 대한 이야기가 으레 나오는 법인데, 이 책은 정반대의 시각에서 시작하니 그 점만으로도 평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시각은 동양학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런 독특한 시각에서 제공된 자료의 귀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쓰인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평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며 온갖 원망과 걱정을 늘어놓는 어느 로마 부인의 글을 읽으면서 당시 대립하고 있던 로마와 파르티아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려졌다. 또한 당시 사회(지리나 시가지, 집, 복식, 음식, 시 등)를 묘사한 자세한 기록들을 통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으로 꼽고 싶다. 이렇게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저자는 결국 실크로드가 로마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했으며, 공식적인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위대한 동-서 문화 교류에 이바지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우리가 오늘날 실크로드를 이해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책의 부록을 제외한 본문의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프롤르그
1장 역사의 우연
중국 / 인도 / 파르티아 / 쿠샨 / 로마
2장 엘도라도를 찾아서
3장 세계의 지배, 미완의 꿈
4장 로마의 모든 길은 오리엔트로 통한다
5장 로마 제국, 그 동방의 문
팔미라 / 알렉산드리아
6장 극동의 육로들
7장 바다 너머로의 여행
8장 통상로의 사람들
9장 영혼의 길
에필로그

1. 역사의 우연 : 단순한 해석

저자는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1~2세기 동-서양은 지극히 안정적이고 평화스러운 시기였으며, 그 과정에서 양자 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것이 바로 실크로드인 셈이다~라고 말이다. 서양의 지배자 로마(팍스 로마나)와 동양의 지배자 중국(팍스 시니카),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지배자 파르티아, 인도의 지배자 쿠샨까지 4개의 제국은 각자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평화로운 관계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공식기록에 적혀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한 문화교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166년 로마인들이 중국을 방문한 기록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하필 이때 로마의 사절이 중국을 방문했을까? 라는 단순한 의문은 이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줄기를 이루게 된다. 2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로마인들은 각종 선물과 함께 사절단을 중국으로 보냈고, 저자는『後漢書』에 나온 기록 몇 줄10)을 갖고 당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실제 중국 문헌을 보면 166년 이전에 이미 중국인들은 로마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正史에 분명히 기록된 로마의 공식 사절은 166년이 처음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말한다. 그 이전부터 무수히 많은 로마인들이 중계무역을 독점하려는 파르티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도달하려고 했을 테고, 166년에 중국에 도착한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동시에 이때 도착한 로마 사절단에 대해 알기 위해서 단순히 정치적 · 경제적 · 기술적 조건들로만 연구하려고 들면 잘못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까지 고대 로마인의 의식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서 기존 연구를 꾸짖기까지 하였다.

그렇다. 저자의 서술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기존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이랄까. 역사에 기록된 무수히 많은 사건들 이면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이 더 많았으며, 그것들을 무시하고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잘못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문헌에서 확인되는 몇몇 기록들을 통한 단순한 역사 읽기를 하지 않는다. 보다 실질적인 역사 복원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저자는 166년에 로마 사절이 도착한 이유는 말 그대로 로마 사절이 갖은 어려움과 고난을 딛고 중국에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1~2세기 로마는 번영을 구가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3세기를 넘어서면서 이런 평화는 깨지게 된다. 동쪽으로 후한은 흔들리고 있었으며, 에프탈 훈족은 쿠샨 왕국을 파괴하고 사산조 페르시아 역시 로마와 파르티아, 쿠샨을 공격했다. 4세기가 되면 로마는 분열하고 서로마는 말 그대로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마가 帝國(저자는 제정이 아니라 원수정이라고 거듭 강조한다)으로 성장하여 번영하던 시기가 1~2세기였기 때문에 166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安敦)가 보낸 사절단은 중국을 방문하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인도, 파르티아, 쿠샨, 로마의 개략적인 역사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중국에 대한 내용은 아마 여기 나온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반초와 감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서역도호에 임명된 반초가 감영을 大秦(로마)으로 보냈지만 감영은 파르티아 선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페르시아 만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면서 이미 이전부터 중국은 파르티아로 대표되는 서역과 북방 초원지대를 통해서 서양 문화와 만났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기록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험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실크로드를 통한 광범위한 문화적 교류는 없었다는 점 말이다.

인도의 경우, 후술하겠지만 로마와 가장 많은 교류를 실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중국과 비단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면 그것은 인도를 통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실제 인도와 중국에 대한 환상은 중세 유럽까지 이어졌고, 마르코 폴로나 마젤란, 콜럼부스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 했었다.

파르티아와 쿠샨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를 차지하고 중국과 로마의 직접적인 만남을 방해했던 대표적인 세력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이들 왕조의 지배력이 굳건해지고, 로마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적고 있다. 물론 중앙아시아가 혼란스러워지면 로마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안정을 되찾기도 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시적이었으므로 파르티아라는 강력한 제국이 등장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가 안정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Nicola Di Cosmo가『오랑캐의 탄생』에서 말했던 부분과 흡사해서 놀랐다11). 결국 동-서양에 강력한 제국들이 연이어 존속함으로써 실크로드가 평화적으로 정착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인이 갖고 있던 의식구조에 대해 서술한다. 당시 서양인들은 중국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었고,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가 주된 내용인데 이런 식의 접근법 또한 신선했다. 우리는 중국인의 서양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측 문헌이 전하는 풍부한 기록들과 중국 왕조들이 갖는 고유한 천하관 덕분에 그들이 어떻게 주변 국가들을 인식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1792년 영국의 조지 3세가 보낸 사절에 대한 건륭제의 답서를 꼽을 수 있겠다. 영국은 단지 직접 교역을 위한 항구의 개방을 요구했을 뿐이지만 건륭제는 제후국에 대한 예로 영국 사절을 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천하관은 중국 또한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었으며, 안돈이 보낸 로마 사절을 맞이했던 한 왕조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철학자, 지리학자, 시인들이 남긴 각종 고대 문헌들을 통해 중국(세리카)과 중국인(세레스), 그리고 그들의 특산품(비단)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한다. 그 결과, 상당히 오랜 기간(수백 년)동안 로마인들은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 잘못된 지식이 대물림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비단에 대한 관심과 세레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간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저자는 아마도 중국과 교류하던 서역이나 인도 등지에서 이런 정보를 접하면서 로마인들이 중국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갔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세레스의 지리적 위치나 비단의 생산지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설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독자 스스로 로마인의 의식을 추론해보게끔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상상에 가까운 정보들만을 갖고도 로마인들이 중국과 직접 교류하기를 원하고 또 노력하고 모험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166년 이전에 중국에 대해 잘 몰랐지만, 로마인들이 끊임없이 중국을 알고 싶어 하고 실제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활약했음을 말이다.

2. 로마가 가진 미완의 꿈, 세계 지배

평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사실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로마 역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명국인 로마가 세계를 지배해서 온 세계가 로마 문명의 혜택을 받아야만 한다는 어떤 당위성 같은 것이 당시 로마에 만연해있었고 원수정을 세운 아우구스투스는 실제 세계 지배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한 무제 이후 역대 중국 황제들이 중국은 천하를 모두 발아래 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기 때문이다12). 중국 왕조야 그렇다 치고 로마가 그랬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마의 의지 때문에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하여 번영할 수 있었고, 주변의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성을 띤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았다. 로마는 끊임없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했고, 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파르티아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파르티아와 로마 사이에 一進一退의 공방전이 계속되면서 양국 간의 문화 교류 역시 더욱더 활발해졌다. 서해에서 남북 간 교전이 벌어졌음에도 동시에 육로로는 정주영의 방북행렬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양자 간의 오랜 대립은 165년 결국 로마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미 파르티아는 예전과 달리 강성한 제국이 아니었으며, 로마의 의지와 열정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긴장과 대립의 시기에 오히려 평안하고 번영을 구가했다는 것은 다소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로마는 2세기를 넘어서면서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제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만큼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의지와 열정도 사그라지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평자는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지나면서 이미 로마인의 상상력에 싹트고 있던 가장 야심찬 꿈은 이미 사그라졌다고 끝맺고 있다. 이 점이 중국 왕조와 로마의 차이점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지배의 꿈을 로마는 당대에만 꾸고 말았지만 중국 왕조는 지겹도록 일관되게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이 로마를 알고자 하는 욕구보다 로마가 중국을 알고자 했던 욕구가 더 크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가적 차원이 아닌 로마인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 차원에서 중국이라는 존재는 미지의 세계이자 미스테리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로마는 세계 지배의 꿈을 달성하지 못 했지만 그 꿈은 로마인 개개인이 지속적으로 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 단편적인 기록에는 로마가 끊임없이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모습이 확인되고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겠는가.

3. 실크로드와 함께 한 사람들

저자는 4장부터 8장까지 로마에서 출발하여 중국에 도달할 때까지의 여정을 다큐멘터리처럼 풀어쓰고 있다. 그것도 마치 스포이트로 물이 든 컵에 잉크를 뿌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큰 것을 말하고, 1에서부터 시작해서 10까지 차근차근 논지를 전개하고 있기에 독자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편 보는 셈 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먼저 저자는 로마인에 대해 말한다. 로마인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별장의 긴 의자에 나른하게 누워 연회를 즐기거나 광장 한가운데서 연설만 하던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로마인들은 자주 여행을 다녔으며 제국 각지에 난 길(via)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시 로마 여행객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시작한다. 사실과 추론의 절묘한 조합은 이야기에 더욱더 흠뻑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다.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로도 로마인의 여행은 계속된다. 예나 지금이나 항해는 일견 낭만적이지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사실적으로 당시의 항해문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자연스레 팔미라와 알렉산드리아라는 2개의 관문에 대해 설명을 계속한다. ‘동방의 문’이라고 표현된 이 두 도시는 로마에서 동방으로 떠나는 관문이며 국제화된 도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 동-서양을 오고 갔으며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문화유산은 양자에 많은 영향을 끼쳐 오늘의 세계사가 있게끔 했다. 저자의 유려한 필체는 팔미라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당시 로마 국경에서 이제 막 동쪽으로 떠나려는 여행객의 심정을 느끼게 한다.

이제 로마는 안녕이다. 여기서부터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중국을 향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곳은 박트리아다. 이곳은 중국에서 오는 비단, 인도의 면직물 · 향신료 · 상아 · 진주가 도착하는 곳이며 로마가 중국 방면으로 보내는 강철, 금 · 은 그릇, 아마포, 모직물, 산호, 호박, 포도주 등이 통과하는 곳인 만큼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세계지도를 빙빙 돌려가면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처럼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을 지나가야만 중국과 거래할 수 있었으며, 일확천금을 꿈꾸며 고난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위험부담이 따랐다. 험난하고 높은 산, 그리고 무지막지한 사막 등 실크로드는 결코 낭만적이기만 한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신앙의 깨달음, 경제적 이익 등등)을 향해 나아갔다. 그것이 수백 년 후 세계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저자는 로마인들 중 실크로드의 끝에서 끝까지 가려고 도전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H. Dubus 교수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B.C 53년 크라수스가 카레에서 페르시아인에게 패할 때 포로가 된 로마 군인이 이후 훈족의 용병이 되어 중국과 싸웠고, B.C 36년에 중국에 훈족이 패할 때, 이들은 중국으로 흘러가게 됐다고 한다13). 중국인은 이들의 군사와 방어를 위한 건축 지식에 혀를 내둘렀고, 중국인에게 龜甲陣의 대형을 가르쳐 준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으로 자의든, 타의든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저자는 끊임없이 반문하고 또 반문한다. 어느 것 하나 결정적으로 결론내리는 것이 없다. 현장의 구법순례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행로는『大唐西域記』라는 책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혜초의『往五天竺國傳』만큼이나 유명한 이 책은 당시 실크로드와 인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서 실크로드와 인도에 대한 동양인의 시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현장의 행로 역시 동양인의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했다. 현장 개인의 시각, 어쩌면 현장의 그러한 개인적인 시각을 바라본 프랑스 학자의 시각으로 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제3자가 현장의 여행과정을 관찰해서 서술하듯, 현장에게 여행 도중 여행이 어떠한지 묻고 그 대답을 서술하듯 생동감 있게 써내려가고 있다. 독자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중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심정이 느껴질 만큼 저자는 계속 그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그 험난한 길을 끊임없이 가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로마는 끊임없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던 파르티아는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인, 시리아인, 팔미라인, 아라비아인, 페르시아인, 유태인 등등 로마인의 경쟁 상대는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던 그들 앞에서 로마인은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로마인 스스로 제국의 국고가 세계 각지에서 들여오는 사치품으로 탕진되는 것을 걱정하고 비판하든 말든 로마는 세계 각지의 특산품들을 원했고, 또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이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는 유베날리스 같은 ‘국가주의자’를 분개시킬 정도로 국제화된 도시가 되었다. 로마에 넘쳐나는 이국적인 상품들과 문화 때문에 로마의 생활 습관은 변해 갔고 그 전통은 세계의 상품 속에 파묻혀서 이 도시는 자기가 정복했다고 자부하는 전 세계에 의해서 비개성화된 모습(비록 독창적이기는 하지만)으로 변모한고 만다.

저자는 여기에서 질문한다. 로마인들은 이 시점에서 고유의 향기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라고 말이다. 인도의 면과 중국의 비단이 로마인들의 복식문화를 바꿔놓았으며, 비싼 후추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이제 로마인의 식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되었다. 각종 향료와 약용식물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로마인들은 이집트가 아니면 당장 먹을 곡물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저자는『에리트라이해 일주기』라는 책을 통해 당시 로마와 교류하던 아프리카는 39개의 물품을 수출하지만 정작 12개의 품목만을 수입해갔으며, 아라비아는 38개의 물품을 수출하고 15개의 품목만을 수입해갔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교역의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이런 현상은 인도에서만은 예외였다. 인도에서 28개의 물품이 수입된 반면 수출된 품목은 44개에 이른다. 저자는 이런 수치가 인도뿐만 아니라 그 너머 중국에 이르기까지 교역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무역 형태에 대해서 로마의 상인이 극동까지 찾으러 간 상품은 주로 사치품이었으며 인도나 아라비아는 진정한 경제 강국이었다고 적고 있다. 특히 인도는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중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이들 나라의 고가품을 한곳에 모아 자국 상품과 함께 로마로 재수출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경제사적으로 1세기 당시 로마 제국과 극동의 교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까지 언급하고 있다. 플리니우스는 매년 인도, 중국, 아라비아로 빠져나가는 돈이 1억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한다며 걱정했지만 공화정 초기인 1세기 초에 이미 로마는 60억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하는 국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플리니우스는 물질적으로 로마가 세계 각지로 돈을 뿌리는 것을 걱정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로마가 자국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진정으로 걱정했던 것이다. 이 역시 저자가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실크로드를 서술하면서 이처럼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 깊숙이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실크로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의식구조까지 언급했다는 얘기를 평자는 듣지 못 했다. 단순히 기록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차이는 아닐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고민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결론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순환적인 구조로 역사를 서술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먼저 로마인이라는 개개인의 삶을 통해(이는 문헌이나 각종 자료에서 확인되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 당시 로마인의 삶과 로마라는 국가가 존속했던 사회를 복원한다. 그 다음에 그 사회를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가볍게 언급하고 다시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를 거론한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거꾸로 오늘날 학문적으로 복원한 당시 사회상을 통해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이는 문헌이나 각종 자료에서 일차적으로 확인이 안 된 사실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접근방법이란 말인가.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Ⅲ. 맺음말

그렇게 책은 마지막 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영혼의 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종교와 사상, 당시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白眉는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쿠샨황제 카니슈카의 베그람 별장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실크로드의 끝과 끝에 위치했던 나라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말하면서 서두를 시작한다.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인도 북부의 그리스 고전주의적인 모습을 한 조각상이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간다라 예술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식 불교미술인지, 로마식 불교미술인지 아니면 그리스식 이란 미술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또 여러 가지 가설들을 소개하지만 정작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다.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몫인 듯하다.

당시 이런 예술문화를 전해준 것은 누구였을까?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저자는 끊임없이 반문하고 또 반문한다. 그러면서 예술적인 고민은 종교적인 고민으로 넘어간다. 우주목이나 세계목이라고 하는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는 공통된 종교적 요소이며, 중앙아시아의 종교가 기독교나 불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저자는 역설하고 또 역설하고 있다. 예술 혹은 종교에 의해서 전달되는 보편적 언어의 힘이 우리의 상상을 얼마나 초월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구절이 있어 잠시 인용하도록 하겠다.

한 로마인 또는 인도인이 자국의 문화를 중국인에게 알리려고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예술양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갖가지 이미지가 표현하는 것에 의해서이며, 그 표현들 속에서 중국인은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적 상징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아폴론의 조각상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고 해서 인도인의 관심을 끄는 거의 아니라, 거기에서 발산하는 정신적인 상징의 힘에 의해서 주의를 끄는 것이다. 그리스 신의 미소와 그 빛나는 위엄 속에서, 예컨대 인도인은 붓다의 평화로운 고요함을 찾아내었다14).

그렇다. 언어와 인종은 달랐지만 이런 표현 속의 이미지를 통해서 동-서양은 교류하고 또 교류했던 것이다. 실크로드가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에서 존재했던 교역로가 아니라 이처럼 문화와 종교, 예술 등이 전해졌던 전파로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결론을 도출해내는 접근방법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게 평자가 앞에서부터 누누이 얘기했던 이 책만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기원의 여명기에 극서의 로마와 극동의 중국 사이의 교류가 절정기를 맞이하기까지 각 나라마다 수세기에 걸친 길고도 고통스러운 노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7세기 무렵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들고 중앙아시아를 장악해버린 아라비아인들이 동-서양 사이에 장벽을 세워버림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 당의 수도인 장안에는 200만 명 이상이 살았으며, 로마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것과 대조적으로 장안은 5세기 전의 로마처럼 극동의 등대로 떠오른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동-서양을 잇는 길이 열린 것은 13세기 전 세계를 단일 정권 아래 통일시킨 몽골의 평화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오랜 역사의 단절 뒤, 찾아온 르네상스 시대의 항해자들은 그들이 대발견의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고대에 먼 나라들 간의 교류가 평화의 정신과 상호 존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저자는 다시금 강조한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의 유럽인들은 정복자였을 뿐이었다. 여행자도, 상인도, 순례자도, 예술가도 아니고. 고대인들은 ‘제일 먼저 뛰어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선구자이며, 그들이 없었다면 동-서양의 교류를 위해 노력했던 영웅적인 시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그의 마지막 바램은 ‘고대인들이 계속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다. 90년대 말 Samuel P. Huntington의『문명의 충돌』15)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크게 이슈가 되었지만 그로부터 5년 후 Seyyed Mohammad Khatami의『문명의 대화』16)가 출판되어 문명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장-노엘 로베르가 이 책에서 바랬던 부분도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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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주식, 2006,「실크로드의 생성과 발전 및 쇠퇴」『민족연구』27, 한국민족연구원, pp.151.
2) 정수일, 2001,『씰크로드학』, 창작과 비평사, pp.40-41.
3) W. H. McNeill, 1963, The Rise of the West Chicago,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맥닐은 세계사가 토인비나 슈펭글러가 상정하는 것처럼 몇몇의 서로 유리된 개별 문명권이 독자적으로 성장, 발전, 경쟁, 충돌한 역사가 아니라 각 지역의 여러 문화가 전파, 확산되고 상호 교류하고 융화가 반복된 역사로 보았다. 그는 세계 4대 문명이 출범한 이후 역사의 각 단계에서 끊임없이 여러 문화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서로 교류, 공존하였으며 이런 교류, 공존 공간을 에큐민(ecumene)이라 칭하여 인류 문화사를 에큐민의 역사로 재구성하였다. 여기서 맥닐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에큐민으로 실크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4) 정수일, 2001a,『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______, 2001b,『씰크로드학』, 창작과 비평사.
    ______, 2002a,『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 비단길 속에 감추어진 문명교류사』, 효형출판.
    ______, 2002b,『문명교류사 연구』, 사계절.
    Claus Richter 등저 · 박종대 역, 2002,『실크로드 견문록』, 다른우리. 
5) 정수일, 2006,『실크로드 문명기행 : 오아시스편』, 한겨레출판.
    박재동, 200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 자금성에서 바양블라크 호수까지』, 한겨레신문사.
    ______, 200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2 : 호탄에서 페샤와르까지』, 한겨레신문사.
    Arif Asci 저 · 김문호 역, 2008,『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The Last Caravan on The Silk Road)』, 일빛.
6) 권영필, 1997,『실크로드 미술 :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 열화당. 
    김소현, 2003,『호복 : 실크로드의 복식』, 민속원.
    전인평, 2003,『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 : 전인평의 실크로드 음악 기행』, 소나무.
7) 김영종, 2004,『반주류 실크로드사 : 약자의 세계사를 위한 탐색』, 사계절. 
    Peter Hopkirk 저 · 김영종 역, 2000,『실크로드의 악마들』, 사계절.
    Susan Whitfield 저 · 김석희 역, 2001,『실크로드 이야기』, 이산. \
8) Carlos Fuentes 저 · 서성철 역, 1997,『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까치글방.
9) 로마와 중국의 첫 공식사절 교환에 대한 기록, 당시 한제국의 상황을 설명한 부분, 한 무제 이후로 서역으로 끊임없이 진출하려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소개할 때 중국 관련 내용들이 나올 뿐, 대부분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실크로드를 소개하면서 중국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점에서 평자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10)『後漢書』券7「本紀」 第7 <孝桓帝紀>, “延熹九年(166), 大秦國王遣使奉獻[一]. [一]時國王安敦獻象牙, 犀角, 玳瑁等.”
    『後漢書』券88「列傳」 第78 <西域傳>, “至桓帝延熹九年(166), 大秦王安敦遣使自日南徼外獻象牙, 犀角, 玳瑁, 始乃一通焉. 其所表貢, 並無珍異, 疑傳者過焉.
11) Nicola Di Cosmo 저 · 이재정 역, 2005,『오랑캐의 탄생 :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황금가지. 저자는 한 왕조가 진정 원했던 것은 흉노 정권의 통일성이라고 주장한다. 다원화된 창구가 아닌 흉노 선우를 통한 단일한 창구를 통해 일대일로 교류함으로써 국경을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동양학계에서 기존에 연구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견해로서 한 왕조의 대흉노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12) 김용만, 2003,『새로 쓰는 연개소문傳』, 바다출판사, pp.54. 저자는 중화인들은 자신들의 이상인 온 세상이 황제의 지배하에 들어와서 四夷가 모두 중화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며, 자신들이 힘이 강해지면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절대 권력과 수많은 성공을 원하는 여러 왕들의 개성과 행동의 형태를 ‘漢武帝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3) 이에 대해 2007년 2월 17일 ‘감쑤성 오지에 사는 금발머리 중국인’에 대한 기사가 국내 각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14) Jean-Noël Robert 저 · 조성애 역, 2000,『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 pp.290.
15) Samuel P. Huntington 저 · 이희재 역, 1997,『문명의 충돌』, 김영사.
16) Seyyed Mohammad Khatami 저 · 이희수 역, 2002,『문명의 대화 : 충돌에서 대화로』, 지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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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저자의 또 다른 전쟁사 관련 서적이 나왔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를 통해 세계전사에서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한국 전쟁사를 재조명한 저자가 이번에는 그 천덕꾸러기(?)를 세계사에 당당히 집어넣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전쟁사 서적이 아닌가 싶다. 

일단 책의 첫장을 펼치면 '세계 무기지도'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각 무기들의 최초 발명지를 표기한 지도인데 그 발상이 재밌었다. '세계 전투지도'라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쉽게 확인되지만, 무기지도라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앞장의 지도 2장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우리나라 전선인 '판옥선'과 한국사상 전투인 '살수대첩', '진포해전', '한산대첩'에 대한 내용이었다. 판옥선이 우리나라에서 발명한 신무기라고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세계 전술지도'(가칭)라고 할만한 것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진법이나 진형 등에 대해서 정리한 것 말이다. 이 지도에도 거론된 쇠뿔대형이라든가, 학익진, 사선대형 등등 전장에서 처음 등장해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지도로 표현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해 봤다.

첫 지도부터 읽는 이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이 책은 그 다음에 '전쟁 세계사 화보'라는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무기 · 병력, 영웅, 전투, 진법 · 대형이라는 4개의 테마에 맞춰 총 45컷의 도판을 싣고 있었는데 일부는 한번 봤던 것들이지만 처음 보는 도판들도 많이 있었다. 아마 외국 군사서적에서 인용한 자료들이리라 생각한다. 아마 국내 다른 군사학 전공자가 이런 책(전쟁세계사 같은)을 썼다면 이런 풍부한 도판을 싣지 못 했으리라. 이 책의 첫번째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풍부한 외국 자료들의 인용! 

국내 군사학 전공자들이 한국 전쟁사 관련 책을 쓰면 이런 도판이 많이 실려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련 도판이나 자료들이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예전부터 관심갖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전투장면을 기록한 그림이나 전쟁영웅에 대한 삽화, 전쟁장면을 이야기로 서술하듯 기록한 벽화 등이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다보니 국내 연구자들이 전쟁 관련 서적을 내놓아도 이러한 시각자료들을 많이 제공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물론 조선시대가 되면 관련 자료들이 엄청 많아지지만). 그렇기에 연구과정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획일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외국의 다양한 시각자료를 활용할 줄 알고 또 그런 여건이 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 저자는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남았던 전투장면을 시각자료로 재현하려는 노력을 했었는데 이 역시 기존 전쟁사 관련 서적에서 찾아볼 수 없던 내용이었다. 흔히들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국내 다른 연구자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고, 그런 상황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런 지도나 도판들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체적인 구성은 전쟁하는 사람들, 전쟁의 도구, 전쟁하는 법, 전쟁사 속의 졸병일기, 위대한 전쟁영웅 이야기, 전쟁사에 큰 획을 그은 전투, 전쟁의 새벽 이렇게 7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마지막 장은 전쟁에 대한 일반론적인 내용이니 일단 제외하고 나머지 6개 장에서 독자는 다영한 전쟁 관련 내용들을 접할 수가 있다. 먼저 전체적인 이 책의 장점을 또 하나 언급하자면, 정말 다양한 세계 戰史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다양한 세계 전사에 대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저자 개인의 군사학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는 기존 전쟁사 관련 서적에서 언급하지 않는 내용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간중간 재미있게 묘사된 삽화들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이 없게끔 해서 좋았었다. 그럼 각 장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제 1장은 전쟁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는 전쟁을 담당하는 전사 혹은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강인한 스파르타의 남과 여, 동성애자 150쌍으로 구성된 테베의 신성군단, 최초의 현대적인 직업군인이었던 로마군, 순록의 오줌을 마시고 싸웠던 베르세르크, 신념으로 무장한 성당기사단과 기독교도의 아들로서 기독교 타도를 위해 훈련받았던 예니체리 등 세계 각지의 독특한 군사집단에 대해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에 대한 이야기나 베르세르크에 대한 내용은 주인장도 쉽게 접하지 못 했던 내용이어서 상당히 관심을 갖고 읽었다. 스파르타에서 병약한 아이는 계곡에 버려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읽으면서 정말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다른 그리스와 상당히 다른 생활풍습을 지닌 스파르타를 생각하면서 정말 독특하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각 그리스마다 저렇게 생활풍습이 다른 집단이 있었다면, 우리네 삼한 70여 개국도 저런 식으로 다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약물을 먹고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광분하여 적을 베어넘기는 베르세르크에 대한 묘사는 정말 전장에서 저런 놈들이 있다면~겁이 안 날 수가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재미가 있는만큼 아쉬움도 많은 장이었다. 먼저 손자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군사집단이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제 5장 위대한 전쟁영웅 이야기에서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임나일본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조금 어설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나일본부에 대한 내용은 다른 장에 옮기기도 좀 그랬는데 그럴 바에야 제1장에 맞는 내용으로 바꾸는게 어땠을까 싶었다. 예를 들면 5세기 동아시아 최강국 고구려와 맞짱뜬 가야의 중무장 보병 및 기병, 뭐 이런 식으로 줄기를 잡고 가야의 우수한 철기문화와 각종 철제무기, 갑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혹은 여성도 갑옷을 입고 싸웠던 가야인만큼 가야의 여성부대(?), 뭐 이런 식으로 하나의 가상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았을 듯 싶다. 단순히 가야 지역에서 출퇴되는 각종 철기들이 일본 열도의 그것보다 우수하다, 고로 임나일본부는 말이 안 된다~라는 식의 설정은 이 장과 내용도 맞지 않을 뿐더러 논리 전개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방후원분을 언급하려면 차라리 나주 지역의 다양한 원분과 방분, 전방후원분 및 출토유물들을 언급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며, 다카마쓰 고분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뻔 했다. 다카마쓰 고분은 흔히 임나일본부나 고대 한-일의 역학관계를 거론할때 언급하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 2장은 전쟁의 도구, 즉 전쟁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성벽, 납덩이, 활, 전차, 그리스의 불, 미니에탄, 기차, 기관총, 항공모함, 스텔스 등등.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장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 무기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골리앗이 돌멩이가 아닌 납덩이를 맞고 쓰러졌다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리는 흔히 돌팔매질, 혹은 투석병이라고 한다면 돌을 던졌으리라고 누구나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의 불에 대한 내용이 볼만했는데, 그리스의 불이라는 무기 하나로 천년 가까이 외침을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콘스탄티노플이 갖는 지리적 잇점도 한몫 작용했겠지만 또 그런 지리적 여건에 맞는 무기를 개발해 전술적으로 잘 활용한 동로마인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프타인지, 산화칼슘인지 그 재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주인장은 재료보다 어떤 점화장치 혹은 기화장치를 썼을지에 대한 부분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현되지 못한 무기들에 대해 Tip으로 실은 것도 좋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광적으로 슈퍼 무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 전쟁을 한번에 끝낼 신무기들을 개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마우스가 만들어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공기부양차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그런데 칼을 단 전차는 책에 실린 삽화와 다른 것을 언급하지 않았나~하는 의아함도 들었다. 

어쨌든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납덩이가 돌이나 진흙에 비해 어떤 결정적인 잇점이 있는지 언급이 안 되어 있어서 그 점은 좀 아쉬웠다. 무게가 더 나간다는 것인지, 납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인지 등등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돌이나 진흙으로도 한쪽이 뾰족하게 만들어 파고들어갈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으며, 납보다 돌이나 진흙이 더 무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 같은 것을 바른다면 무기로서 더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언급이 없어서 단순히 돌팔매의 재료를 다양하게 생각한 것 이상의 논지 전개가 안 된 것이 아쉬웠다. 또한 스텔스에 대한 부분 역시 아쉬웠다. 스텔스에 대해 저자는 춘추전국시대 진과 초가 맞붙은 성복전투를 예로 들면서 고대에도 이런게 있었다, 라고 하지만 정말 양자가 동일한 개념으로 묶일만한 내용인지는 의문이었다. 닌자에 대한 내용은 그렇다치고 연막전을 스텔스와 연결시키는 것은 연결고리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변화무쌍한 매복전에 대한 사례를 언급하거나, 닌자같은 암살자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언급하지 말고(61페이지) 여기에다가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3장은 전쟁하는 법, 즉 진형과 진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팔랑크스, 테르치오가 진형이라면 공수반과 묵적의 대결, 칸나에 대전, 학익진, 쇠뿔진형 등은 진법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또한 Tip으로 무경칠서(요즘 주인장이 석사논문 작성때문에 한창 읽고 있는지라 더 반가웠다)에 대한 내용도 싣고 있어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내용들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잘 구성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공수반과 묵적의 가상 전투는 주인장으로 하여금 이마를 탁 치게 할만큼 독특한 내용이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라는 유명한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의 오프닝 화면을 보면 두 왕이 체스를 두고 있고, 체스말이 하나하나 움직이고 상대편 체스말을 하나하나 잡을 때마다 실제 전장에서 기병, 공성병, 보병, 궁병 등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면서 과거에도 분명 가상 전투가 이뤄졌으며, 그것을 통해서 진법이나 진형의 수정이 이뤄졌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니 한없이 반갑고 또 대단하기까지 했다. 분명 그 자리에서 공수반과 묵적의 가상 전투를 지켜봤던 수많은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전투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또한 칸나에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에게 포위당한 로마군의 상황을 묘사한 부분도 좋았다. 정말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포위망 가운데에 있던 병사들은 바깥쪽부터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적의 창칼 앞에 속소무책으로 당했을텐데 그 장면이 떠오르니 일방적인 전투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부상자 생존율이 높다는 이야기는 이 장과는 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제 3장의 제목이 '전쟁하는 법'이기에 전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을 서술하는 것은 찬성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진형과 진법들을 소개하는데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집트의 수준높은 의료체계는 이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앞에 언급했던 힉스소족의 전차기술을 받아들여 그들과 어떻게 다른 진법이나 진형을 사용했는지 등을 언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무경칠서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전략론, 전술론과 같은 서양의 군사서적에 대한 소개를 본문 안에 집어넣고 군의관, 혹은 취사병, 공병 등에 대한 이야기를 Tip으로 싣는 것이 제 3장의 전체적인 내용에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4장 전쟁사 속의 졸병일기는 그야말로 이 책의 백미 중의 백미!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극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주인장이 전공하고자 하는 부분이 군사생활사인만큼 이런 류의 역사 복원된 자료는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예전에 김용만 선생님이『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사수촌 여인의 삶을 복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보다 더 다양한 사례를 복원하고 있어 당시 전쟁을 직접 담당했던 병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흥미와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활약하던 병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병사들의 삶을 접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만약 그 병사였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면 이미 할말은 다 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민간인보다 오래 산 로마군인들이라는 Tip은 앞서 이집트의 군의관과 같은 장으로 묶던가, 차라리 직업군인 로마에 대해 소개한 제 1장에 집어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램이 들었다. 또한 각 병사들의 삶을 복원할때 단순히 이야기식으로만 풀어쓰는 것에 그치지 말고, 어떠한 자료 · 사료에 근거해서 이렇게 가상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리 전쟁을 처음 접하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세계 전쟁사를 소개하고 있는 서적이고, 그런 전쟁 관련 자료들을 통해 이런 역사 복원을 시도했다면 근간이 되는 자료 정도는 소개해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5장 위대한 전쟁영웅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위대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부분이다. 제 4장과 제 5장을 이렇게 엮은 것이 저자의 의도인지, 편집 과정의 결과물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잘 짜여진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대해 서술할때 예로부터 즐겨 쓰던 방법은 특정 영웅(왕이나 장군 및 영웅호걸 등)에 대해 서술하고 그가 참전하거나 활약한 전투 및 전쟁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이다. 즉, 그가 모든 전투 및 전쟁의 중심이자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전쟁을 실제 담당했던 이름없는 사람들(말단보병부터 취사병, 공병, 회계담당관 등 실제 전투를 담당한 실무자들)에 주목하여 전쟁이 아닌 전쟁 속의 인간군상에 대해 주목한 연구자들 또한 많이 생겼다. 전쟁사학계에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지만 오늘날 이 두 가지 서술방법은 다 쓰이고 있으며, 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데 제 4장과 5장에서는 이 두 가지 연구방법이 다 투영된 내용들이 있어 그 점이 흥미로웠다. 전쟁은 영웅에 주목할 필요도 있지만(나폴레옹이 한산도에서 일본군과 맞붙었다고 해보자. 이순신과 같은 학익진을 썼겠는가?), 실질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수백, 수천의 병사들에도 주목해야하는 것이 맞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 장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고전적인 내용들일 수도 있겠다. 알렉산더, 한니발, 칭기즈칸, 나폴레옹, 잔 다르크 등등. 하지만 알렉산더를 언급하면서 이소크라테스가 그에게 정복의 동기, 명분을 제공했다는 내용을 넣은 것은 독특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적인 전쟁영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천하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역대 중국 황제들이 한 무제의 치적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병적으로 따르려고 했던 것처럼, 알렉산더의 경우는 이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철학자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즉, 전쟁 영웅의 일대기와 전쟁 성과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엄청난 정복전을 벌이게 됐는지까지 언급한 것은 분명 주목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서양사의 이순신,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소개나 두 얼굴의 사나이, 바실리우스에 대한 언급도 신선하고 좋았다. 기실 로마사 관련 서적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생소한 인물들일테니 말이다. 부디카 · 쯩 자매에 대한 내용 역시 주인장도 처음 접한 내용이라서 아~하면서 읽게끔 만들었고 말이다. 나폴레옹의 경우는, 그의 여인들과 그를 배신한 신하, 그의 키를 주제로 한 루머 등을 소개로 하고 있어 이 역시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은 있었다. 먼저 광개토대왕이나 칭기즈칸에 대해서는 알렉산더와 같은 그런 식의 언급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고, 의아하기까지 했다. 왜 앞에서처럼 안 썼을까? 하고 말이다. 광개토대왕의 경우, 모용선비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복수를 꿈꾸며 모용선비에게서 보고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이집트가 힉소스족에게서 배워 제국을 형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칭기즈칸의 경우, 야율초재라는 대석학을 만나 제국 통치의 기본적인 부분을 인식했는데 이런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특히 칭기즈칸에 대한 부분은 너무 단편적인 내용들만 띄엄띄엄 소개한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더불어 히틀러에 대한 내용은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독특하긴 했지만, 그가 과연 전쟁영웅이라는 닉네임으로 소개되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히틀러가 전투 혹은 전쟁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사례를 언급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거 이프르 전투에서 죽었다면~어땠을까? 라는 의문만 남기고 있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가장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 주인장은 이 부분을 꼽고 싶다. 

마지막으로 제 6장의 내용은 어찌보면 이 책의 부제와 가장 잘 맞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전쟁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살수대첩, 진포해전,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은 분명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다른 전투 및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들 전투 역시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외국인이 쓴 세계전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저자는 이 전투들을 언급하기 위해 앞에서 세계 전사에 대해 죽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꾹꾹 참으면서 말이다.

먼저 메기도 전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내용뿐이어서 그저 재밌게 읽은 기억밖에 없다. 전투의 시작과 끝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란 말인가. 결과만『삼국사기』에 딸랑 써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말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래~전쟁은 정말 인간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전쟁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된 전투가 메기도 전투였던 것이었다. 그 다음 아슈르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에 대한 내용도 재밌었다. 유대교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마리우스의 군 개혁과 이슬람 문명을 위기에서 구한 아인잘루트 공방전, 뉴잉클랜드를 독립시킨 미국의 게릴라 83명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특히 최무선과 세계 최초의 함포 전투인 진포해전에 대해 소개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초'라는 것이 그만큼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이 자꾸 공론화되어야만 외국 학계에서도 그걸 인식하고 이를 인용할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당당히 집어넣은 저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다. 일단, 마원에 대한 부분은 이 앞장에 집어넣었으면 더 적합했을 듯 싶다. 제목은 베트남의 봉기를 진압하고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하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마원 개인적인 내용(인간됨, 전공 등등)이 더 많아서 오히려 전쟁영웅 이야기에 집어넣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살수대첩에 대한 부분도 아쉬웠다. 먼저『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보다도 못한 내용에 일단 실망을 했다. 물론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법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무 내용을 축약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살수대첩이 수공인지, 아니었는지가 아니라 살수대첩에서 고구려군이 이김으로써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뭐 '오만한 천하통일의 꿈을 깨버린 전투'라든가, '거대한 통일제국의 침략을 일거에 분쇄한 전투' 등등의 역사적 의의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장의 테마 또한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에 대한 4가지 반론 역시 시도는 좋았지만,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요동정벌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어떠한 역사적 사건(성격이 전혀 다른 왕조의 등장)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쟁사를 빛낸 10대 일방적인 전투라는 Tip 역시 재밌었다. 일방적인 전투라~이런 목록을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가? 주인장은 없다. 독특한 시각에서 뽑아낸 리스트라 그런지 흥미로웠다. 그리고 1차 걸프전이 그 첫번째에 올라있어 더 재밌었다. 그치~현대전도 포함을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제 7장에서 전쟁의 원인, 잔인한 원시시대, 전사와 군사의 차이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앞의 내용들과 달리 약간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반론적인 내용이어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전쟁을 이해하는데 있어 분명 필요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또한 저자의 첫번째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으로, 저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부분이기에 이 책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잔인한 원시시대에 대한 부분은 기존 학계의 견해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주목할만한 내용들이 있다. 오히려 원시시대가 더 잔인했고, 더 평화롭지 않다는 사실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인간 본연의 행위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전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까지 소개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책은 356페이지지만 삽화도 큼직큼직하고, 활자도 큼직큼직해서 읽는데는 전연 부담이 없다. 주인장도 짬을 내서 2시간 가량을 할애해서 다 읽었다. 또한 문체도 쉽고 어려운 용어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서 전쟁에 대해 전혀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단 각 장마다 장점과 단점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맨 앞에서 주인장이 언급한 2가지의 장점(풍부한 외국 자료의 인용, 다양한 세계 전사 관련 지식)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저자가 한국사상 위대한 전투로 기록된 몇몇 전투를 세계 전사에 처음으로 당차게 소개하는 첫 발돋움이니까 말이다. 국제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조금씩 비중이 커지는 것처럼 살수대첩과 진포해전, 한산대첩이 외국 학계에서 인정받고 비중이 커지는 그 날이 온다면 그 硏究史의 첫줄에 이름이 들어갈 책이라고 주인장은 서슴없이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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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2-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자세히 "리뷰"를 하셨군요. 저도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麗輝 2009-05-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이 책의 저자가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형님이라서 서평을 좀 부탁받았거든요. 그래서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하고, 좀 더 자세하게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님도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임무형전술의 어제와 오늘
디르크 W. 외팅 지음, 박정이 옮김 / 백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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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형전술에 대해 인터넷 상에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독일어로 Auftragstaktik이라고 표기하는 임무형전술은 임무(Auftrag)와 전술(Taktik)의 합성어이다. 수행의 세부사항까지 구속하는 명령형에 반대되는 것으로 수단을 위임하고 실행을 위한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부여하는 지휘방식이다. 어떤 이가 이 임무형전술을 고구려에 적용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로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다원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지닌 국가일수록 임무형전술이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선의 군사활동이 이전 왕조들과 다른 면도 임무형전술을 대입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 책을 바로 구입해서 읽어봤다.

일단 첫 느낌은 신선한 충격? 을 받았다고나 해야할까? 임무형전술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책을 읽어나갔었다. 일단 임무형전술하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사례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책의 순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수십년간 최강으로 군림하던 프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하면서 임무형전술은 빛을 보게 된다. 프러시아의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장군과 장교단의 고령화 추세, 군대지휘의 무능력화 현상인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프러시아는 대대적인 군사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프러시아의 경우, 프리드리히 이후로 전장에서 막강 전력을 발휘한 선형전술(Lineartaktik)을 지속적으로 보완 · 발전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왜냐하면 7년전쟁 등 수십년간 벌어진 전쟁에서 프러시아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프러시아의 이런 전략적 경직성과 달리 프랑스는 '산병전술'과 '애국주의' 2가지 무기로 프러시아와 전혀 다른 강력한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숲이 우거진 산 속에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기계적인 행동에 숙달되어 있으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기술도 없고 소산해서 상호 지원할 줄도 모르는 프러시아 병사들이 프랑스 산병들보다 열세에 처하는 것이 당연했다. 산개하는 것은 천성적인 비겁자(탈영병 및 도망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던 프러시아 입장에서 프랑스가 새로운 전술에 도입한 무질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보증하는 것은 야전지휘관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한 목표를 지향하는 각자의 모든 의지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지휘책임의 위임이 분명히 고려되어야만 했고, 역시 각각의 군인에게 자주성을 위임해줘야만 한다. 이로 인해서 애국주의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복종이 군에서 필요한 새로운 규준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양한 병과 부대들을 혼합 편성함으로써 제병합동 전투능력을 지닌 상비사단 및 군단의 편성과 경무장한 부대의 집중 운영 등은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프러시아의 군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프러시아는 결국 '무조건적인 프러시아적 복종과 기동성 있는 유럽적인 독자성'이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의 합일을 이뤄냈다. 그것은 바로 독일 내에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존재하던 임무형전술적 전통이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것은 수면 위로 부상해 이후 독일군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상당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군사적 전통이 있음에도 이와 전혀 다른 군사적 전통을 수십년간 발전시키며 군사적 위업을 달성했던 국가가 결국은 종래의 군사적 전통에서 해답을 찾는다는 점이 말이다. 주인장은 고구려를 이와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구려는 국초부터 유목세력과의 조우 속에서 힘을 길렀던 나라이며 그 대상은 선비, 말갈 등 다양했다. 하지만 국가가 제국화되고 거대해지면서 중장기병이라는 새로운 병종을 다량 보유하게 되었으며 기존의 기동성있는 전술은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란, 실위, 서방제국과의 교류 속에서 기동성있는 전술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구려는 후반까지 주변 제국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구려보다 더 유연하게 전략 전술적 선택을 한 당군을 제압하지 못 했기에 멸망에 이르고 말았지만 말이다. 암튼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시각에서 한국사상 전쟁을 바라볼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점 때문에 점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봤던 이런 현상은 세계사적으로도 많이 확인되는 부분이긴 하다. 이집트인들은 힉소스인의 침입을 맞아 전차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고, 로마 역시 영토가 확장되면서 주변 제국들의 군사적 전통을 습득하여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프러시아의 임무형 전술은 조금 다른 부분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는 프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군사적 전통이었음에도 그 유용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외부 충격을 통해 재삼 깨달은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군사적 전통의 유용성은 이후 역사적으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는 국경이 맞닿아있는 국가들이 많은 데다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지 못 했음에도 독일이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군사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임무형 전술에서 찾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투원,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하여 결심하고 예리하게 이용해서 성공을 확신하는 전투원으로 구성된 부대야말로 진정 강한 군대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독일군의 군사적 전통을 받아들여 군대를 육성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럼에도 양자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한 것은 바로 이런 내재적인 원인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에서는 제국주의 시절 독일군과 일본군을 비슷하게 보기도 하지만 주인장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무형 전술의 기본 전제조건으로 저자는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투원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 유럽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왜 바보같이 한줄로 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는 통제와 질서 속에서 전장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병사 개개인의 자율성보다는 부대 전체의 조직력과 단위성을 더 강조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전투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사 스스로 전투에 책임을 지고, 승리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그리고 그럴만한 능력이 보유된다면 전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여기까지 봤을때 순간 떠오른 것이 고구려의 '경당'이었다. 우리측 기록인『삼국사기』나『삼국유사』보다는 중국측 기록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당에서 고구려인들은 글쓰기와 활쏘기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봤을때 고구려인들이 경당에서 단순히 심신단련을 위하여, 까막눈을 겨우 면하기 위해서 글과 활을 배웠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이는 가장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태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흔히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했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 교육기관인 태학에서 과연 그들이 어떤 것들을 배웠을까? 조선시대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그 안에서 '공자 왈 맹자 왈'을 배웠을리는 만무하다. 이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보유한 교육체계를 갖춘 고구려라면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충분히 만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이런 교육기관은 백제나 신라, 혹은 유목국가나 중국에 비해 고구려에만 있던 특징적인 부분이었으므로 이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 임무형 전술에도 단점은 있다. 복종과 독자적인 결심, 책임감 사이의 갈등, 독단활동(Abweichen vom Auftrag)의 허용, 전투상황과 형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모토는 자율성이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단순한 명령형 전술보다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책임감의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상당히 불분명하다. 사단급 이상의 참모장교부터 말단 제대 병사 개개인까지 모두 개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과연 어떻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임무에 투입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떤 뚜렷한 기준이 없다면 독자적인 결심은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독단활동의 허용과도 직결된다. 과연 어느 부분까지 임무형 전술적인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하는지 뚜렷하게 정의하기란 어렵다. 일반적으로 상황 변동이 근본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변동된 상황이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 명령을 하달한 상급자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거나 즉각 접촉할 수 없는 경우 등 3가지 경우에 독단활동은 허용되는데 이 기준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즉, 지휘관의 지휘 역량이나 경험이 이때는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양만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가 떠올랐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를 언급한 것은 연개소문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구려에도 임무형 전술을 적용할 수 있고, 안시성주와 같은 대성급 성주라면 최고 통수권자와 다른 견해를 지닌채 군사적인 활동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공격하는 정도의 내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보지만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군사적인 갈등은 충분히 발생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차후에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임무형 전술의 단점을 꼽자면 공격과 방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적용 가능한 전술적 차이다. 독일 육군의 강점은 공격과 지연전 수행시 전술적이든 작전적 차원이든간에 고도의 기동성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어는 이와 반대로 정적인 요소들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방어는 선, 진지와 지역을 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방어작전시 예하 지휘관들에게 공격과는 달리 재량권을 덜 부여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습과 반돌격 등 기동성이 강조됨에 따라 방어작전의 정체성이 상당히 줄긴 했지만 가용병력의 제한과 방어라고 하는 전장의 상황은 임무형 전술을 더 이상 가능하게 만들지 못 한다. 즉, 작전지역이 넓고 적의 저항이 약할때라면 상관이 없지만 적의 저항이 강력해서 행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될 때는 임무형 전술이 명령형 전술보다 덜 유용적이라는 소리가 된다. 종종 공성전 수행시 상급제대 참모장의 지시가 하달되기 전까지 성밖으로 나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다가 성을 빼앗기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당군에게 항복한 백암성주 손대음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임무형 전술과 명령형 전술의 차이에서 해석해야만 할 것이다.

즉, 임무형 전술은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춘 전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전장에서 상당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에 임무형 전술이라고 볼만한 군사적 전통이 있었다는 것 또한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단편적인 부분만을 두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고구려 자체적인 기록이 없으며, 군사 관련 기록은 더더욱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이 상당히 잘 남아있는 중국측 기록에서 고구려의 임무형 전술적인 면을 추론해낼만한 것들을 추려내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군의 임무형 전술적인 측면은 독일 자체적인 기록 이외에도 주변의 기록을 통해서 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본다면 고구려에 대해서도 주변 국가들이 그런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경당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일단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부분인만큼 차후 더 공부가 필요할 듯 싶다. 현재 한국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이런 군사적인 부분은 그야말로 피상적인 면에 머물러 있는데, 이런 군사 이론적인 부분이 도입된다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보다 적극적인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은 임무형 전술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그 개념을 고구려군에 적용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 이론을 단순히 겉으로만 보고 적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서 한국사상에 적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주인장의 차후 연구주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인만큼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한번 주인장의 생각을 정리할 것을 다짐하고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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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백제부흥운동 엿보기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연구총 제5집
양종국 지음 / 서경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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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 오늘은 좀 흥미로운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의자왕이 다스리던 백제 말기와 백제부흥운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알다시피 백제사 관련 책 중에서 특정 인물에 대해 서술한 책도 많이 없지만, 더불어 백제 멸망기만 따로 다룬 책도 별로 없다(실제 온라인 서점을 검색했더니 관련 서적이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의자왕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면서 더불어 백제 멸망기의 상황, 이후 전개되는 백제 부흥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지난달 호서고고학회를 갔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책 표지때문에 집어들었는데 목차를 살펴보니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구입했던 것이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역사 전공자나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부담없이 읽게끔 하기 위해 설명내용은 1,200자 이내로 줄이고 대신 사진과 지도, 도표 등을 많이 싣고자 하였다. 그래서 전체 100개의 주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장이 2~3장 정도에 불과하다. 읽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후다닥 읽었는데 서술은 가벼웠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주인장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100개의 주제들은 대부분 백제 멸망기를 다루는 거의 모든 주제에 해당한다. 특히 100개의 장은 크게 의자왕의 진실 엿보기, 백제 멸망의 진실 엿보기, 백제부흥운동의 진실 엿보기, 백제유민과 의자왕의 후손 엿보기 등 4개의 큰 테마로 나뉘는데 정사부터 야사, 전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의자왕에 대해 사람들이 그간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잘못된 것임을 항변한다. 그가 국제 시류를 읽지 못 하고 횡음과 주색에 빠져 백제를 멸망에 빠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백제 멸망기때 태자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 따로 장을 마련했다. 이 부분은 주인장이 평소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라 더욱 흥미있게 봤던 부분이다. 더불어 나제통문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고, 백제와 관련된 각종 전승지와 전설들을 소개하고 있어 처음부터 독자로 하여금 책에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또한 신라군의 진격로와 황산벌 전투에 대한 저자의 생각, 탄현에 대한 생각, 계백장군이 설치했다는 3영의 위치, 웅진강구 전투 및 부여나성의 전투 등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모두 다 참신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라 주인장에게 많은 공부가 됐다. 특히 황산벌전투에 대해서는 예전에 김성남의『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이희진의『전쟁의 발견』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밖에 소정방에 대해 적지 않은 내용을 소개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대개 백제 멸망기를 다루면서 당군과 소정방 등에 대해서는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적지 않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상주 당교전설을 거론하며 이는 야사일 뿐,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못 박아두고 있어 그 점도 눈에 띄었다.

더불어 귀실씨의 유래 문제라든가, 백촌강전투 및 주류성의 위치, 연미산과 취리산의 위치 비정, 당 유인원 기공비의 건립연대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백제 멸망기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주인장이 눈여겨 본 것은 웅진도독부를 당에 예속된 군현이 아닌 독자적인 정치체로 보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는 웅진도독부의 치소는 공산성이고, 소정이펄은 당군의 주둔지였으며 웅진도독부가 그 당시 독자적으로 신라와 영토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의 기미정책을 언급하면서 중국인들이 백제 멸망 후 당의 영토를 한반도 남부까지 확장해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부여륭은 의자왕과 달리 사대외교에 충실한 것 뿐이지 웅진도독부가 백제의 실질적인 군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의 조공책봉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더불어 백제사에서 웅진도독부 시기를 빼놓는다면 백제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강변하고 있었는데, 마치 예전에 한국사에서 의도적으로 낙랑사를 축소은폐하거나 아님 확대해석하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아마 이 부분에서 주인장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두번째로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다양한 도판과 지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매 장마다 빠지지 않고 도판과 도면 등이 실려 있어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다만, 지면의 한정 때문인지 도판과 도면을 너무 작게 줄여놔서 그 점이 아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8,000원의 가격에 이 정도 쪽수를 유지하다보니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면 큰 문제는 아닐 듯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현실 문제와 연결시켜 백제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존재하는 전설이나 전승지를 언급하면서 역사적인 사실 여부를 가리는 점이라든가, 부여 능산리 의자왕, 부여륭 묘단비의 내용 수정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점, 백제문화제와 백제대왕제에 대한 생각,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대한 우려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백제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접근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이래저래 주인장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봤다면 한번 읽어보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백제 멸망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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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처 2008-05-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일반인에게도 친절한 책이라니, 읽을 목록에 추가해 놓아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麗輝 2008-05-1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 재밌게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님도 건강하세요~^^
 
무기의 역사 역사 명저 시리즈 12
찰스 바우텔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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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하나 읽었다. 처음에는 무기의 역사~라고 해서 표지를 보고 서양 무기의 역사인가 보다, 했는데 제목을 보니 보다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고대와 중세시기 서양의 무기와 갑옷 등을 다룬 연구보고서(?)의 성격을 지닌 책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프랑스의 고물애호가 'P. 라콤'의 책을 '찰스 바우텔'이 영어로 옮기고 라콤이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나 주관적으로 빠뜨린 점 등을 주석으로 달고, 서문을 집어넣은 뒤에 영국 무기의 역사에 대해 독립적인 장을 추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본 19세기까지의 서양 무기의 역사와 그 이후에 발전될 무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주로 들어있는데 지금 보면 물론 잘못된 해석도 있지만, 당대 학자의 눈으로 당대 무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라면 한창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해가는 시기(프랑스에서 이 시기 이미 석기시대의 편년, 개념정리가 이뤄지고 있었다)였고, 고물애호주의가 학문적인 관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시점인데 책에 실린 도판을 보면 자세하게 갑옷이나 무기, 문장 등을 실측해놓고 있어 시대적인 학풍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일단 이 책을 볼때 여러 서양 무기 변천사를 다룬 책 중 하나이겠거니~하는 생각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차부터 주욱 살펴보면서 '흠~상당히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석기시대 무기들을 다루는 것부터 청동기시대 아시리아, 갈리아, 영웅시대 그리스의 무기를 다루고 철기시대로 넘어오면 그리스와 페르시아, 에르투리아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서양 전쟁사 혹은 무기발달사에 일대 획을 그었던 로마를 다루고 고대 무기와 갑옷의 장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야만족들(이는 지극히 로마시대적 관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프랑크족만은 독립적인 장을 두어 다루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과 프랑크족의 무기에 대해, 마지막으로 중세시대 유럽의 무기와 갑옷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일단 아시리아나 갈리아의 무기를 따로 다루고 있는 것도 독특했고, 에트루리아나 프랑크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21세기 학자의 눈이 아닌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고대 무기나 갑옷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석기시대 무기부터 주욱 살펴보면 저자의 다양한 삽화가 실려있어 보기 좋았다. 출토된 유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그렇다고 정확한 치수를 재고 정확한 비율로 삽화를 실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토대로 무기의 각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19세기면 사실주의가 대두되어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문학작품이 등장하고, 회화 작품에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 등장하는 시기인데 아마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그런 삽화를 다수 남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름 편년까지 해 석기시대 무기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제국주의 학자의 연구성과물이라 그런지 여러 식민지의 민족지적 사례를 기준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특히 석기시대 무기를 만들때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무기를 꽂아두면 나무의 자연 치유력으로 석기를 꽉 조이게 되고 그 뒤에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내용은 분명 참고할만 했다. 아직 이런 식으로 석기시대 무기에 대해 해석한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일본측 연구에서도).

그 밖에 아시리아나 페르시아의 무기 및 갑옷을 거론하면서 유럽의 무기 체계와 비교 설명한 것도 재밌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서로 다른 무기 체계가 전투 결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 것도 흥미있었다. 그리고 로마사를 언급할때 등장하는 에트루리아의 무기에 대해 따로 장을 두어 설명한 것도 독특했다. 11개의 장 중에 중세시대 무기를 다룬 장이 4개 (영국의 무기를 설명한 장도 포함해서)인데 반해 고대 무기를 다룬 장이 5개나 되어서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야만족이라고 표현된 고대 로마영토 밖에 거주했던 민족이나 프랑크왕국을 세워 유럽을 제패한 프랑크족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좋았다. 인디언이나 프랑크족은 투척용 도끼를 잘 활용했는데 마치 활이나 투창을 사용하는 것처럼 능숙했다는 대목 등이 주목됐다. 이처럼 당시 여러 민족의 무기 체계와 갑옷 체계를 설명하고 그것을 통해 전투 양상이나 전쟁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19세기 학자의 학문적 수준으로 완성한 연구성과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삽화나 설명에 있어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마치 일제강점기때 고유섭이 이뤄놓은 연구성과가 오늘날 학계의 그것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멍~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비록 야만족이라 하더라도 석기를 이용한 원론적인 무기 제작 기술은 오히려 그들이 뛰어나다는 평까지 하고 있어 제국주의 학자의 평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 석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무식하거나 문명이 덜 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오늘날 그런 생각을 서슴없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석촉은 중요한 무기로서 활용됐고(심지어 5세기 고구려 군사기지인 홍련봉 2보루에서도 잘 만들어진 석촉이 출토됐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쓰던 석부나 석창, 석검은 오늘날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군사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후대의 사람들 역시 갑주나 무기를 만들던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지 계속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더 발전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그리스를 두고 기존의 군사문화는 계승하되 다른 세계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 발전했다는 말도 적고 있다. 그렇다. 전쟁은 서로 다른(물론 같을수도 있지만) 두 군사집단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군사문화의 직접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제국주의 사회의 배경 아래서 지배받는 식민지의 역사와 군사문화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처음에 프레이저의『황금가지』를 보면서 그 참신한 해석과 시각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저자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관대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연구성과가 완성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벌써 그때 중세시대 갑옷에 대한 세세하고 정확한 편년이 완성된 것도 놀라웠다. 찰스 바우텔이 모든 시대의 문장(紋章)에 관한 권위자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세 영국 갑옷을 크게 몇개의 시기로 편년하고 다시 각 시기별로 세분화해서 설명한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갑옷을 그렇게 편년해서 연구한 결과물을 주인장은 본 적이 없다. 유럽의 경우 고대 왕조에서 만들어낸 동전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 동전에 대한 권위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를 통한 연구성과 또한 엄청나게 많다(물론 동양의 경우, 동시기 동전이 그리 활발하게 쓰이지 않았고 그 연구성과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도 않다). 그처럼 각 왕조의 문장이나 장식품, 깃발에 그려진 문장 등을 무기 변천사에 활용한 면도 독특했다. 주인장이 종종 갖는 의문이지만 한국은 서양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군사문화 부분의 예술작품이나 기록 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림에 그려진 기사의 모습이나 문양에 새겨진 기사의 모습을 토대로 당시의 갑주 및 무기 체계를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나 이 책에서는 중세시대 다양한 고고자료를 통해 갑주와 무기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히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책은 더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총과 권총, 대포 등에 대해 따로 장을 마련해서 미래의 전쟁양상에 대해 평을 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화약을 매개로 한 원거리 무기가 마련되면서 더 이상 두꺼운 갑옷의 의미는 사라졌다. 하지만 저자는 대포와 권총 등 화약화기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두꺼운 갑옷은 두꺼운 철판으로 옮겨가면서 큰 전함 등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평했다. 물론 이는 미사일이나 기뢰 등 현대적인 무기를 예상치못한 얘기겠지만 분명 일리있는 해석임에는 틀림없었다. 여러 종류의 총이 개발되면서 전쟁 양상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저자는 그 과도기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래전을 예상하는 당시 저자의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상당히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2세기 전의 학자의 시각으로 완성된 연구성과라는 점에서 굉장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찰스 바우텔의 이 책 초판본은 상당한 희귀본으로 사랑받고 있다니, 그 인기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무기 변천사를 서술한 제대로 된 연구성과도 없으니 뭐 어쩔 수 없지만, 차후에 이런 세분화된 주제에 대해 다룬 연구성과도 나오길 바라마지 않으며...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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