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의 책 3
장노엘 로베르 지음, 조성애 옮김 / 이산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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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실크로드(die Seidenstrassen)라는 용어는 19세기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처음 사용하였으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 그리고 지중해를 연결하는 일련의 긴 무역 루트를 지칭한다. 비록 명칭은 실크로드이지만 교역 품목은 비단 외에 금, 은, 옥을 위시한 보석제품, 종이와 인쇄술, 나침반, 향로, 양모, 소금, 농산물, 심지어는 운반하기 불편한 자기, 유리제품, 그리고 말과 소를 위시한 가축 등 다양한 품목들이 교역되었다1).

정수일은 이러한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의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문명가교의 역할,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 주요 문명의 산파 역할 등으로 소개하고 있는데2), 이는 맥닐의 에큐민(ecumene) 개념과 맞물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3). 이처럼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 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큼 관련 연구 역시 동 · 서양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관련 서적 또한 시중에 봇물 넘치듯 쏟아지고 있다.

評者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어왔던 실크로드 관련 서적들을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학문적으로 실크로드에 대해 설명한 연구서적들로서 역사, 지리,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대해 문명교류사적 시각에서 쓰인 것들이다4). 그 다음은 실크로드 기행문 혹은 탐방기 등의 제목으로 출판된 것들로서 현지답사를 통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풍경 등을 소개한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다양한 도판을 통해 실크로드의 현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5). 세 번째는 실크로드의 음악이나 복식, 미술 등 실크로드의 특정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단순히 실크로드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문화와의 연계성까지 서술하고 있다6).

마지막으로 실크로드에 대해 특정 시간, 특정 지역, 특정 인물, 특정 주제에 대해 서술한 상당히 미시적인 연구서적들을 꼽을 수 있겠다. 제일 처음 거론했던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쓰인 책들과 정반대의 서술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평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고 관심 가졌던 책들 또한 마지막에 분류된 책들이다7). 그렇게 봤을 때 장-노엘 로베르(Jean-Noël Robert)의『로마에서 중국까지』역시 마지막에 분류할 수 있겠다.

평자가 장-노엘 로베르의 책을 소개하는데 앞서 얘기하자면 이 책이 Susan Whitfield의『실크로드 이야기』만큼이나 굉장히 독특한 시각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이다. 우선 이 책은 실크로드에 대한 책이면서 다른 책들과 달리 정작 실크로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단 실크로드가 무엇인지, 실크로드의 硏究史가 어떤지 등등 무미건조한 내용들이 적혀있지 않으며, 실크로드에서 교역되었던 각종 물품들과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각종 나라들 및 도시들에 대한 재미없는 나열도 없다. 책을 처음 보면 언제 실크로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그러지~라는 생각에 의아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저자는 실크로드를 바로 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만남에 대해 얘기를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 로마사와 공화정 시대 로마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전문사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전체적으로 그는 사람의 이야기, 당시 실크로드와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등을 복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실크로드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 변화 요인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당시 세계가 전무후무한 평화시대였기에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는 얘기를 한다. 즉,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중국(漢), 그 사이의 파르티아와 쿠샨 등 모든 왕조가 평화 · 안정기를 겪고 있었기에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교류가 폭넓게 이뤄졌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평자가 이 책이 독특한 시각에서 쓰였다고 평한 가장 큰 이유는 실크로드를 로마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실크로드라고 하면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비단이 서양으로 대거 넘어갔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 넘어간 다양한 동양의 문물을 소개하는데 있어 동양이 主가 되어 실크로드를 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니면 동-서간 교류된 문물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그치는 경우 또한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비단이라는 상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및 수혜자의 입장에 있던 로마인의 시각으로 실크로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실크로드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Carlos Fuentes의『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8). 책에서 멕시코 출신의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역사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투영되기도 했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서양학계의 표현인 ‘신대륙의 발견’ 대신 ‘양 대륙의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평자 또한 그 말에 동의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크로드의 주인공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활동했던 모든 사람들이며 로마인 역시 거기서 제외될 수는 없다. 실크로드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문화 교류를 의미하는 상징어처럼 되어버린 지금, 서양인의 입장, 그 중에서도 특히 로마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실크로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로마인의 의식구조와 생각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분석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노력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지금까지 평자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재고의 여지를 남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는 셈이다. 실크로드에 대해 단편적인 사고만 가능했던 평자의 생각을 일깨워준 고마움을 가진 채 간단한 서평을 남기도록 하겠다.

Ⅱ. 책의 구성과 비평

이 책은 고대 로마사 전문가로 활약하는 저자의 연구 서적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단순하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스트라보, 프톨레마이오스, 플루타르코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플리니우스, 타키투스 등 수많은 고대 그리스어 · 라틴어 문헌들을 인용하고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은 한국사를 연구할 때의 문제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사를 대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록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그 당시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있어 자료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도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현존하는 문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당시 시대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단순히 사건들의 반복적인 나열로만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무미건조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동감 있게 복원함으로써 저자는 평자가 책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눈을 감으면 그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될 것만 같은 생생한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관에 맞는 결론들의 연속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주제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비단을 생산하는 세레스인이 사는 ‘세리카’라는 나라에 대해 기존에는 중국이라고들 생각했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카슈미르와 신강지역, 서티베트 일대일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의 당시 지리학적 지식과 세리카에 대한 관심도 등을 자세하게 언급하면서 하나하나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식의 접근방법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실크로드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에 주목했다는 점이 기존에 나온 책들과 가장 다른 점이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그러면서도 사람에게만 주목하고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재조명하려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특히 비단의 수혜자인 로마인들의 의식구조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실크로드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그렇기에 실크로드 관련 서적임에도 중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9). 오죽하면 책 제목도『로마에서 중국까지』라고 했겠는가. 실크로드 관련 서적 몇 권만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개 실크로드의 출발은 중국 長安城부터다. 거기서 비단을 싣고 출발하는 대상인에 대한 이야기가 으레 나오는 법인데, 이 책은 정반대의 시각에서 시작하니 그 점만으로도 평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시각은 동양학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런 독특한 시각에서 제공된 자료의 귀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쓰인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평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며 온갖 원망과 걱정을 늘어놓는 어느 로마 부인의 글을 읽으면서 당시 대립하고 있던 로마와 파르티아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려졌다. 또한 당시 사회(지리나 시가지, 집, 복식, 음식, 시 등)를 묘사한 자세한 기록들을 통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으로 꼽고 싶다. 이렇게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저자는 결국 실크로드가 로마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했으며, 공식적인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위대한 동-서 문화 교류에 이바지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우리가 오늘날 실크로드를 이해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책의 부록을 제외한 본문의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프롤르그
1장 역사의 우연
중국 / 인도 / 파르티아 / 쿠샨 / 로마
2장 엘도라도를 찾아서
3장 세계의 지배, 미완의 꿈
4장 로마의 모든 길은 오리엔트로 통한다
5장 로마 제국, 그 동방의 문
팔미라 / 알렉산드리아
6장 극동의 육로들
7장 바다 너머로의 여행
8장 통상로의 사람들
9장 영혼의 길
에필로그

1. 역사의 우연 : 단순한 해석

저자는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1~2세기 동-서양은 지극히 안정적이고 평화스러운 시기였으며, 그 과정에서 양자 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것이 바로 실크로드인 셈이다~라고 말이다. 서양의 지배자 로마(팍스 로마나)와 동양의 지배자 중국(팍스 시니카),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지배자 파르티아, 인도의 지배자 쿠샨까지 4개의 제국은 각자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평화로운 관계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공식기록에 적혀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한 문화교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166년 로마인들이 중국을 방문한 기록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 하필 이때 로마의 사절이 중국을 방문했을까? 라는 단순한 의문은 이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줄기를 이루게 된다. 2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로마인들은 각종 선물과 함께 사절단을 중국으로 보냈고, 저자는『後漢書』에 나온 기록 몇 줄10)을 갖고 당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실제 중국 문헌을 보면 166년 이전에 이미 중국인들은 로마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正史에 분명히 기록된 로마의 공식 사절은 166년이 처음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말한다. 그 이전부터 무수히 많은 로마인들이 중계무역을 독점하려는 파르티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도달하려고 했을 테고, 166년에 중국에 도착한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동시에 이때 도착한 로마 사절단에 대해 알기 위해서 단순히 정치적 · 경제적 · 기술적 조건들로만 연구하려고 들면 잘못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까지 고대 로마인의 의식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서 기존 연구를 꾸짖기까지 하였다.

그렇다. 저자의 서술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기존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이랄까. 역사에 기록된 무수히 많은 사건들 이면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이 더 많았으며, 그것들을 무시하고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잘못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문헌에서 확인되는 몇몇 기록들을 통한 단순한 역사 읽기를 하지 않는다. 보다 실질적인 역사 복원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저자는 166년에 로마 사절이 도착한 이유는 말 그대로 로마 사절이 갖은 어려움과 고난을 딛고 중국에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1~2세기 로마는 번영을 구가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3세기를 넘어서면서 이런 평화는 깨지게 된다. 동쪽으로 후한은 흔들리고 있었으며, 에프탈 훈족은 쿠샨 왕국을 파괴하고 사산조 페르시아 역시 로마와 파르티아, 쿠샨을 공격했다. 4세기가 되면 로마는 분열하고 서로마는 말 그대로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마가 帝國(저자는 제정이 아니라 원수정이라고 거듭 강조한다)으로 성장하여 번영하던 시기가 1~2세기였기 때문에 166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安敦)가 보낸 사절단은 중국을 방문하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인도, 파르티아, 쿠샨, 로마의 개략적인 역사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중국에 대한 내용은 아마 여기 나온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반초와 감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서역도호에 임명된 반초가 감영을 大秦(로마)으로 보냈지만 감영은 파르티아 선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페르시아 만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면서 이미 이전부터 중국은 파르티아로 대표되는 서역과 북방 초원지대를 통해서 서양 문화와 만났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기록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험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실크로드를 통한 광범위한 문화적 교류는 없었다는 점 말이다.

인도의 경우, 후술하겠지만 로마와 가장 많은 교류를 실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중국과 비단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면 그것은 인도를 통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실제 인도와 중국에 대한 환상은 중세 유럽까지 이어졌고, 마르코 폴로나 마젤란, 콜럼부스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 했었다.

파르티아와 쿠샨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를 차지하고 중국과 로마의 직접적인 만남을 방해했던 대표적인 세력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이들 왕조의 지배력이 굳건해지고, 로마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적고 있다. 물론 중앙아시아가 혼란스러워지면 로마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안정을 되찾기도 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시적이었으므로 파르티아라는 강력한 제국이 등장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가 안정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Nicola Di Cosmo가『오랑캐의 탄생』에서 말했던 부분과 흡사해서 놀랐다11). 결국 동-서양에 강력한 제국들이 연이어 존속함으로써 실크로드가 평화적으로 정착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인이 갖고 있던 의식구조에 대해 서술한다. 당시 서양인들은 중국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었고,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가 주된 내용인데 이런 식의 접근법 또한 신선했다. 우리는 중국인의 서양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측 문헌이 전하는 풍부한 기록들과 중국 왕조들이 갖는 고유한 천하관 덕분에 그들이 어떻게 주변 국가들을 인식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1792년 영국의 조지 3세가 보낸 사절에 대한 건륭제의 답서를 꼽을 수 있겠다. 영국은 단지 직접 교역을 위한 항구의 개방을 요구했을 뿐이지만 건륭제는 제후국에 대한 예로 영국 사절을 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천하관은 중국 또한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었으며, 안돈이 보낸 로마 사절을 맞이했던 한 왕조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철학자, 지리학자, 시인들이 남긴 각종 고대 문헌들을 통해 중국(세리카)과 중국인(세레스), 그리고 그들의 특산품(비단)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한다. 그 결과, 상당히 오랜 기간(수백 년)동안 로마인들은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 잘못된 지식이 대물림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비단에 대한 관심과 세레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간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저자는 아마도 중국과 교류하던 서역이나 인도 등지에서 이런 정보를 접하면서 로마인들이 중국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갔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세레스의 지리적 위치나 비단의 생산지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설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독자 스스로 로마인의 의식을 추론해보게끔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상상에 가까운 정보들만을 갖고도 로마인들이 중국과 직접 교류하기를 원하고 또 노력하고 모험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166년 이전에 중국에 대해 잘 몰랐지만, 로마인들이 끊임없이 중국을 알고 싶어 하고 실제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활약했음을 말이다.

2. 로마가 가진 미완의 꿈, 세계 지배

평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사실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로마 역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명국인 로마가 세계를 지배해서 온 세계가 로마 문명의 혜택을 받아야만 한다는 어떤 당위성 같은 것이 당시 로마에 만연해있었고 원수정을 세운 아우구스투스는 실제 세계 지배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한 무제 이후 역대 중국 황제들이 중국은 천하를 모두 발아래 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기 때문이다12). 중국 왕조야 그렇다 치고 로마가 그랬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마의 의지 때문에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하여 번영할 수 있었고, 주변의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성을 띤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았다. 로마는 끊임없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했고, 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파르티아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파르티아와 로마 사이에 一進一退의 공방전이 계속되면서 양국 간의 문화 교류 역시 더욱더 활발해졌다. 서해에서 남북 간 교전이 벌어졌음에도 동시에 육로로는 정주영의 방북행렬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양자 간의 오랜 대립은 165년 결국 로마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미 파르티아는 예전과 달리 강성한 제국이 아니었으며, 로마의 의지와 열정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긴장과 대립의 시기에 오히려 평안하고 번영을 구가했다는 것은 다소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로마는 2세기를 넘어서면서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제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만큼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의지와 열정도 사그라지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평자는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지나면서 이미 로마인의 상상력에 싹트고 있던 가장 야심찬 꿈은 이미 사그라졌다고 끝맺고 있다. 이 점이 중국 왕조와 로마의 차이점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지배의 꿈을 로마는 당대에만 꾸고 말았지만 중국 왕조는 지겹도록 일관되게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이 로마를 알고자 하는 욕구보다 로마가 중국을 알고자 했던 욕구가 더 크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가적 차원이 아닌 로마인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 차원에서 중국이라는 존재는 미지의 세계이자 미스테리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로마는 세계 지배의 꿈을 달성하지 못 했지만 그 꿈은 로마인 개개인이 지속적으로 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 단편적인 기록에는 로마가 끊임없이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모습이 확인되고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겠는가.

3. 실크로드와 함께 한 사람들

저자는 4장부터 8장까지 로마에서 출발하여 중국에 도달할 때까지의 여정을 다큐멘터리처럼 풀어쓰고 있다. 그것도 마치 스포이트로 물이 든 컵에 잉크를 뿌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큰 것을 말하고, 1에서부터 시작해서 10까지 차근차근 논지를 전개하고 있기에 독자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편 보는 셈 치고 책을 읽으면 된다.

먼저 저자는 로마인에 대해 말한다. 로마인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별장의 긴 의자에 나른하게 누워 연회를 즐기거나 광장 한가운데서 연설만 하던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로마인들은 자주 여행을 다녔으며 제국 각지에 난 길(via)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시 로마 여행객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시작한다. 사실과 추론의 절묘한 조합은 이야기에 더욱더 흠뻑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다.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로도 로마인의 여행은 계속된다. 예나 지금이나 항해는 일견 낭만적이지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사실적으로 당시의 항해문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자연스레 팔미라와 알렉산드리아라는 2개의 관문에 대해 설명을 계속한다. ‘동방의 문’이라고 표현된 이 두 도시는 로마에서 동방으로 떠나는 관문이며 국제화된 도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 동-서양을 오고 갔으며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문화유산은 양자에 많은 영향을 끼쳐 오늘의 세계사가 있게끔 했다. 저자의 유려한 필체는 팔미라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당시 로마 국경에서 이제 막 동쪽으로 떠나려는 여행객의 심정을 느끼게 한다.

이제 로마는 안녕이다. 여기서부터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중국을 향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곳은 박트리아다. 이곳은 중국에서 오는 비단, 인도의 면직물 · 향신료 · 상아 · 진주가 도착하는 곳이며 로마가 중국 방면으로 보내는 강철, 금 · 은 그릇, 아마포, 모직물, 산호, 호박, 포도주 등이 통과하는 곳인 만큼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세계지도를 빙빙 돌려가면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처럼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을 지나가야만 중국과 거래할 수 있었으며, 일확천금을 꿈꾸며 고난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위험부담이 따랐다. 험난하고 높은 산, 그리고 무지막지한 사막 등 실크로드는 결코 낭만적이기만 한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신앙의 깨달음, 경제적 이익 등등)을 향해 나아갔다. 그것이 수백 년 후 세계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저자는 로마인들 중 실크로드의 끝에서 끝까지 가려고 도전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H. Dubus 교수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B.C 53년 크라수스가 카레에서 페르시아인에게 패할 때 포로가 된 로마 군인이 이후 훈족의 용병이 되어 중국과 싸웠고, B.C 36년에 중국에 훈족이 패할 때, 이들은 중국으로 흘러가게 됐다고 한다13). 중국인은 이들의 군사와 방어를 위한 건축 지식에 혀를 내둘렀고, 중국인에게 龜甲陣의 대형을 가르쳐 준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으로 자의든, 타의든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저자는 끊임없이 반문하고 또 반문한다. 어느 것 하나 결정적으로 결론내리는 것이 없다. 현장의 구법순례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행로는『大唐西域記』라는 책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혜초의『往五天竺國傳』만큼이나 유명한 이 책은 당시 실크로드와 인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서 실크로드와 인도에 대한 동양인의 시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현장의 행로 역시 동양인의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했다. 현장 개인의 시각, 어쩌면 현장의 그러한 개인적인 시각을 바라본 프랑스 학자의 시각으로 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제3자가 현장의 여행과정을 관찰해서 서술하듯, 현장에게 여행 도중 여행이 어떠한지 묻고 그 대답을 서술하듯 생동감 있게 써내려가고 있다. 독자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중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심정이 느껴질 만큼 저자는 계속 그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그 험난한 길을 끊임없이 가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로마는 끊임없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던 파르티아는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인, 시리아인, 팔미라인, 아라비아인, 페르시아인, 유태인 등등 로마인의 경쟁 상대는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던 그들 앞에서 로마인은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로마인 스스로 제국의 국고가 세계 각지에서 들여오는 사치품으로 탕진되는 것을 걱정하고 비판하든 말든 로마는 세계 각지의 특산품들을 원했고, 또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이든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로마는 유베날리스 같은 ‘국가주의자’를 분개시킬 정도로 국제화된 도시가 되었다. 로마에 넘쳐나는 이국적인 상품들과 문화 때문에 로마의 생활 습관은 변해 갔고 그 전통은 세계의 상품 속에 파묻혀서 이 도시는 자기가 정복했다고 자부하는 전 세계에 의해서 비개성화된 모습(비록 독창적이기는 하지만)으로 변모한고 만다.

저자는 여기에서 질문한다. 로마인들은 이 시점에서 고유의 향기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라고 말이다. 인도의 면과 중국의 비단이 로마인들의 복식문화를 바꿔놓았으며, 비싼 후추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이제 로마인의 식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되었다. 각종 향료와 약용식물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로마인들은 이집트가 아니면 당장 먹을 곡물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저자는『에리트라이해 일주기』라는 책을 통해 당시 로마와 교류하던 아프리카는 39개의 물품을 수출하지만 정작 12개의 품목만을 수입해갔으며, 아라비아는 38개의 물품을 수출하고 15개의 품목만을 수입해갔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교역의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이런 현상은 인도에서만은 예외였다. 인도에서 28개의 물품이 수입된 반면 수출된 품목은 44개에 이른다. 저자는 이런 수치가 인도뿐만 아니라 그 너머 중국에 이르기까지 교역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무역 형태에 대해서 로마의 상인이 극동까지 찾으러 간 상품은 주로 사치품이었으며 인도나 아라비아는 진정한 경제 강국이었다고 적고 있다. 특히 인도는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중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이들 나라의 고가품을 한곳에 모아 자국 상품과 함께 로마로 재수출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경제사적으로 1세기 당시 로마 제국과 극동의 교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까지 언급하고 있다. 플리니우스는 매년 인도, 중국, 아라비아로 빠져나가는 돈이 1억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한다며 걱정했지만 공화정 초기인 1세기 초에 이미 로마는 60억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하는 국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플리니우스는 물질적으로 로마가 세계 각지로 돈을 뿌리는 것을 걱정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로마가 자국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진정으로 걱정했던 것이다. 이 역시 저자가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실크로드를 서술하면서 이처럼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 깊숙이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실크로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의식구조까지 언급했다는 얘기를 평자는 듣지 못 했다. 단순히 기록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차이는 아닐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고민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결론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순환적인 구조로 역사를 서술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먼저 로마인이라는 개개인의 삶을 통해(이는 문헌이나 각종 자료에서 확인되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 당시 로마인의 삶과 로마라는 국가가 존속했던 사회를 복원한다. 그 다음에 그 사회를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가볍게 언급하고 다시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를 거론한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거꾸로 오늘날 학문적으로 복원한 당시 사회상을 통해 로마인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이는 문헌이나 각종 자료에서 일차적으로 확인이 안 된 사실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접근방법이란 말인가.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Ⅲ. 맺음말

그렇게 책은 마지막 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영혼의 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종교와 사상, 당시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白眉는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쿠샨황제 카니슈카의 베그람 별장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실크로드의 끝과 끝에 위치했던 나라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말하면서 서두를 시작한다.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인도 북부의 그리스 고전주의적인 모습을 한 조각상이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간다라 예술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식 불교미술인지, 로마식 불교미술인지 아니면 그리스식 이란 미술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또 여러 가지 가설들을 소개하지만 정작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다.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몫인 듯하다.

당시 이런 예술문화를 전해준 것은 누구였을까?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저자는 끊임없이 반문하고 또 반문한다. 그러면서 예술적인 고민은 종교적인 고민으로 넘어간다. 우주목이나 세계목이라고 하는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는 공통된 종교적 요소이며, 중앙아시아의 종교가 기독교나 불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저자는 역설하고 또 역설하고 있다. 예술 혹은 종교에 의해서 전달되는 보편적 언어의 힘이 우리의 상상을 얼마나 초월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저자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구절이 있어 잠시 인용하도록 하겠다.

한 로마인 또는 인도인이 자국의 문화를 중국인에게 알리려고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예술양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갖가지 이미지가 표현하는 것에 의해서이며, 그 표현들 속에서 중국인은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적 상징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아폴론의 조각상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고 해서 인도인의 관심을 끄는 거의 아니라, 거기에서 발산하는 정신적인 상징의 힘에 의해서 주의를 끄는 것이다. 그리스 신의 미소와 그 빛나는 위엄 속에서, 예컨대 인도인은 붓다의 평화로운 고요함을 찾아내었다14).

그렇다. 언어와 인종은 달랐지만 이런 표현 속의 이미지를 통해서 동-서양은 교류하고 또 교류했던 것이다. 실크로드가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에서 존재했던 교역로가 아니라 이처럼 문화와 종교, 예술 등이 전해졌던 전파로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결론을 도출해내는 접근방법은 판이하게 달랐다. 그게 평자가 앞에서부터 누누이 얘기했던 이 책만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기원의 여명기에 극서의 로마와 극동의 중국 사이의 교류가 절정기를 맞이하기까지 각 나라마다 수세기에 걸친 길고도 고통스러운 노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7세기 무렵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들고 중앙아시아를 장악해버린 아라비아인들이 동-서양 사이에 장벽을 세워버림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 당의 수도인 장안에는 200만 명 이상이 살았으며, 로마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것과 대조적으로 장안은 5세기 전의 로마처럼 극동의 등대로 떠오른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동-서양을 잇는 길이 열린 것은 13세기 전 세계를 단일 정권 아래 통일시킨 몽골의 평화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오랜 역사의 단절 뒤, 찾아온 르네상스 시대의 항해자들은 그들이 대발견의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고대에 먼 나라들 간의 교류가 평화의 정신과 상호 존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저자는 다시금 강조한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의 유럽인들은 정복자였을 뿐이었다. 여행자도, 상인도, 순례자도, 예술가도 아니고. 고대인들은 ‘제일 먼저 뛰어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선구자이며, 그들이 없었다면 동-서양의 교류를 위해 노력했던 영웅적인 시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그의 마지막 바램은 ‘고대인들이 계속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다. 90년대 말 Samuel P. Huntington의『문명의 충돌』15)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크게 이슈가 되었지만 그로부터 5년 후 Seyyed Mohammad Khatami의『문명의 대화』16)가 출판되어 문명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장-노엘 로베르가 이 책에서 바랬던 부분도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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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주식, 2006,「실크로드의 생성과 발전 및 쇠퇴」『민족연구』27, 한국민족연구원, pp.151.
2) 정수일, 2001,『씰크로드학』, 창작과 비평사, pp.40-41.
3) W. H. McNeill, 1963, The Rise of the West Chicago,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맥닐은 세계사가 토인비나 슈펭글러가 상정하는 것처럼 몇몇의 서로 유리된 개별 문명권이 독자적으로 성장, 발전, 경쟁, 충돌한 역사가 아니라 각 지역의 여러 문화가 전파, 확산되고 상호 교류하고 융화가 반복된 역사로 보았다. 그는 세계 4대 문명이 출범한 이후 역사의 각 단계에서 끊임없이 여러 문화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서로 교류, 공존하였으며 이런 교류, 공존 공간을 에큐민(ecumene)이라 칭하여 인류 문화사를 에큐민의 역사로 재구성하였다. 여기서 맥닐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에큐민으로 실크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4) 정수일, 2001a,『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______, 2001b,『씰크로드학』, 창작과 비평사.
    ______, 2002a,『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 비단길 속에 감추어진 문명교류사』, 효형출판.
    ______, 2002b,『문명교류사 연구』, 사계절.
    Claus Richter 등저 · 박종대 역, 2002,『실크로드 견문록』, 다른우리. 
5) 정수일, 2006,『실크로드 문명기행 : 오아시스편』, 한겨레출판.
    박재동, 200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 자금성에서 바양블라크 호수까지』, 한겨레신문사.
    ______, 200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2 : 호탄에서 페샤와르까지』, 한겨레신문사.
    Arif Asci 저 · 김문호 역, 2008,『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The Last Caravan on The Silk Road)』, 일빛.
6) 권영필, 1997,『실크로드 미술 :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 열화당. 
    김소현, 2003,『호복 : 실크로드의 복식』, 민속원.
    전인평, 2003,『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 : 전인평의 실크로드 음악 기행』, 소나무.
7) 김영종, 2004,『반주류 실크로드사 : 약자의 세계사를 위한 탐색』, 사계절. 
    Peter Hopkirk 저 · 김영종 역, 2000,『실크로드의 악마들』, 사계절.
    Susan Whitfield 저 · 김석희 역, 2001,『실크로드 이야기』, 이산. \
8) Carlos Fuentes 저 · 서성철 역, 1997,『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까치글방.
9) 로마와 중국의 첫 공식사절 교환에 대한 기록, 당시 한제국의 상황을 설명한 부분, 한 무제 이후로 서역으로 끊임없이 진출하려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소개할 때 중국 관련 내용들이 나올 뿐, 대부분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실크로드를 소개하면서 중국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점에서 평자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10)『後漢書』券7「本紀」 第7 <孝桓帝紀>, “延熹九年(166), 大秦國王遣使奉獻[一]. [一]時國王安敦獻象牙, 犀角, 玳瑁等.”
    『後漢書』券88「列傳」 第78 <西域傳>, “至桓帝延熹九年(166), 大秦王安敦遣使自日南徼外獻象牙, 犀角, 玳瑁, 始乃一通焉. 其所表貢, 並無珍異, 疑傳者過焉.
11) Nicola Di Cosmo 저 · 이재정 역, 2005,『오랑캐의 탄생 :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황금가지. 저자는 한 왕조가 진정 원했던 것은 흉노 정권의 통일성이라고 주장한다. 다원화된 창구가 아닌 흉노 선우를 통한 단일한 창구를 통해 일대일로 교류함으로써 국경을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동양학계에서 기존에 연구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견해로서 한 왕조의 대흉노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12) 김용만, 2003,『새로 쓰는 연개소문傳』, 바다출판사, pp.54. 저자는 중화인들은 자신들의 이상인 온 세상이 황제의 지배하에 들어와서 四夷가 모두 중화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며, 자신들이 힘이 강해지면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절대 권력과 수많은 성공을 원하는 여러 왕들의 개성과 행동의 형태를 ‘漢武帝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3) 이에 대해 2007년 2월 17일 ‘감쑤성 오지에 사는 금발머리 중국인’에 대한 기사가 국내 각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14) Jean-Noël Robert 저 · 조성애 역, 2000,『로마에서 중국까지』, 이산, pp.290.
15) Samuel P. Huntington 저 · 이희재 역, 1997,『문명의 충돌』, 김영사.
16) Seyyed Mohammad Khatami 저 · 이희수 역, 2002,『문명의 대화 : 충돌에서 대화로』, 지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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