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형전술의 어제와 오늘
디르크 W. 외팅 지음, 박정이 옮김 / 백암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무형전술에 대해 인터넷 상에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독일어로 Auftragstaktik이라고 표기하는 임무형전술은 임무(Auftrag)와 전술(Taktik)의 합성어이다. 수행의 세부사항까지 구속하는 명령형에 반대되는 것으로 수단을 위임하고 실행을 위한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부여하는 지휘방식이다. 어떤 이가 이 임무형전술을 고구려에 적용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로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다원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지닌 국가일수록 임무형전술이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선의 군사활동이 이전 왕조들과 다른 면도 임무형전술을 대입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 책을 바로 구입해서 읽어봤다.

일단 첫 느낌은 신선한 충격? 을 받았다고나 해야할까? 임무형전술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책을 읽어나갔었다. 일단 임무형전술하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사례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책의 순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수십년간 최강으로 군림하던 프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하면서 임무형전술은 빛을 보게 된다. 프러시아의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장군과 장교단의 고령화 추세, 군대지휘의 무능력화 현상인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프러시아는 대대적인 군사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프러시아의 경우, 프리드리히 이후로 전장에서 막강 전력을 발휘한 선형전술(Lineartaktik)을 지속적으로 보완 · 발전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왜냐하면 7년전쟁 등 수십년간 벌어진 전쟁에서 프러시아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프러시아의 이런 전략적 경직성과 달리 프랑스는 '산병전술'과 '애국주의' 2가지 무기로 프러시아와 전혀 다른 강력한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숲이 우거진 산 속에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기계적인 행동에 숙달되어 있으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기술도 없고 소산해서 상호 지원할 줄도 모르는 프러시아 병사들이 프랑스 산병들보다 열세에 처하는 것이 당연했다. 산개하는 것은 천성적인 비겁자(탈영병 및 도망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던 프러시아 입장에서 프랑스가 새로운 전술에 도입한 무질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보증하는 것은 야전지휘관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한 목표를 지향하는 각자의 모든 의지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지휘책임의 위임이 분명히 고려되어야만 했고, 역시 각각의 군인에게 자주성을 위임해줘야만 한다. 이로 인해서 애국주의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복종이 군에서 필요한 새로운 규준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양한 병과 부대들을 혼합 편성함으로써 제병합동 전투능력을 지닌 상비사단 및 군단의 편성과 경무장한 부대의 집중 운영 등은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프러시아의 군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프러시아는 결국 '무조건적인 프러시아적 복종과 기동성 있는 유럽적인 독자성'이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의 합일을 이뤄냈다. 그것은 바로 독일 내에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존재하던 임무형전술적 전통이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것은 수면 위로 부상해 이후 독일군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상당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군사적 전통이 있음에도 이와 전혀 다른 군사적 전통을 수십년간 발전시키며 군사적 위업을 달성했던 국가가 결국은 종래의 군사적 전통에서 해답을 찾는다는 점이 말이다. 주인장은 고구려를 이와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구려는 국초부터 유목세력과의 조우 속에서 힘을 길렀던 나라이며 그 대상은 선비, 말갈 등 다양했다. 하지만 국가가 제국화되고 거대해지면서 중장기병이라는 새로운 병종을 다량 보유하게 되었으며 기존의 기동성있는 전술은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란, 실위, 서방제국과의 교류 속에서 기동성있는 전술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구려는 후반까지 주변 제국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구려보다 더 유연하게 전략 전술적 선택을 한 당군을 제압하지 못 했기에 멸망에 이르고 말았지만 말이다. 암튼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시각에서 한국사상 전쟁을 바라볼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점 때문에 점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봤던 이런 현상은 세계사적으로도 많이 확인되는 부분이긴 하다. 이집트인들은 힉소스인의 침입을 맞아 전차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고, 로마 역시 영토가 확장되면서 주변 제국들의 군사적 전통을 습득하여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프러시아의 임무형 전술은 조금 다른 부분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는 프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군사적 전통이었음에도 그 유용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외부 충격을 통해 재삼 깨달은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군사적 전통의 유용성은 이후 역사적으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는 국경이 맞닿아있는 국가들이 많은 데다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지 못 했음에도 독일이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군사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임무형 전술에서 찾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투원,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하여 결심하고 예리하게 이용해서 성공을 확신하는 전투원으로 구성된 부대야말로 진정 강한 군대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독일군의 군사적 전통을 받아들여 군대를 육성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럼에도 양자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한 것은 바로 이런 내재적인 원인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에서는 제국주의 시절 독일군과 일본군을 비슷하게 보기도 하지만 주인장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무형 전술의 기본 전제조건으로 저자는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투원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 유럽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왜 바보같이 한줄로 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는 통제와 질서 속에서 전장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병사 개개인의 자율성보다는 부대 전체의 조직력과 단위성을 더 강조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전투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사 스스로 전투에 책임을 지고, 승리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그리고 그럴만한 능력이 보유된다면 전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여기까지 봤을때 순간 떠오른 것이 고구려의 '경당'이었다. 우리측 기록인『삼국사기』나『삼국유사』보다는 중국측 기록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당에서 고구려인들은 글쓰기와 활쏘기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봤을때 고구려인들이 경당에서 단순히 심신단련을 위하여, 까막눈을 겨우 면하기 위해서 글과 활을 배웠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이는 가장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태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흔히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했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 교육기관인 태학에서 과연 그들이 어떤 것들을 배웠을까? 조선시대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그 안에서 '공자 왈 맹자 왈'을 배웠을리는 만무하다. 이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보유한 교육체계를 갖춘 고구려라면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충분히 만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이런 교육기관은 백제나 신라, 혹은 유목국가나 중국에 비해 고구려에만 있던 특징적인 부분이었으므로 이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 임무형 전술에도 단점은 있다. 복종과 독자적인 결심, 책임감 사이의 갈등, 독단활동(Abweichen vom Auftrag)의 허용, 전투상황과 형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모토는 자율성이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단순한 명령형 전술보다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책임감의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상당히 불분명하다. 사단급 이상의 참모장교부터 말단 제대 병사 개개인까지 모두 개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과연 어떻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임무에 투입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떤 뚜렷한 기준이 없다면 독자적인 결심은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독단활동의 허용과도 직결된다. 과연 어느 부분까지 임무형 전술적인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하는지 뚜렷하게 정의하기란 어렵다. 일반적으로 상황 변동이 근본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변동된 상황이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 명령을 하달한 상급자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거나 즉각 접촉할 수 없는 경우 등 3가지 경우에 독단활동은 허용되는데 이 기준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즉, 지휘관의 지휘 역량이나 경험이 이때는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양만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가 떠올랐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를 언급한 것은 연개소문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구려에도 임무형 전술을 적용할 수 있고, 안시성주와 같은 대성급 성주라면 최고 통수권자와 다른 견해를 지닌채 군사적인 활동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공격하는 정도의 내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보지만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군사적인 갈등은 충분히 발생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차후에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임무형 전술의 단점을 꼽자면 공격과 방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적용 가능한 전술적 차이다. 독일 육군의 강점은 공격과 지연전 수행시 전술적이든 작전적 차원이든간에 고도의 기동성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어는 이와 반대로 정적인 요소들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방어는 선, 진지와 지역을 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방어작전시 예하 지휘관들에게 공격과는 달리 재량권을 덜 부여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습과 반돌격 등 기동성이 강조됨에 따라 방어작전의 정체성이 상당히 줄긴 했지만 가용병력의 제한과 방어라고 하는 전장의 상황은 임무형 전술을 더 이상 가능하게 만들지 못 한다. 즉, 작전지역이 넓고 적의 저항이 약할때라면 상관이 없지만 적의 저항이 강력해서 행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될 때는 임무형 전술이 명령형 전술보다 덜 유용적이라는 소리가 된다. 종종 공성전 수행시 상급제대 참모장의 지시가 하달되기 전까지 성밖으로 나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다가 성을 빼앗기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당군에게 항복한 백암성주 손대음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임무형 전술과 명령형 전술의 차이에서 해석해야만 할 것이다.

즉, 임무형 전술은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춘 전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전장에서 상당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에 임무형 전술이라고 볼만한 군사적 전통이 있었다는 것 또한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단편적인 부분만을 두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고구려 자체적인 기록이 없으며, 군사 관련 기록은 더더욱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이 상당히 잘 남아있는 중국측 기록에서 고구려의 임무형 전술적인 면을 추론해낼만한 것들을 추려내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군의 임무형 전술적인 측면은 독일 자체적인 기록 이외에도 주변의 기록을 통해서 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본다면 고구려에 대해서도 주변 국가들이 그런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경당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일단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부분인만큼 차후 더 공부가 필요할 듯 싶다. 현재 한국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이런 군사적인 부분은 그야말로 피상적인 면에 머물러 있는데, 이런 군사 이론적인 부분이 도입된다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보다 적극적인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은 임무형 전술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그 개념을 고구려군에 적용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 이론을 단순히 겉으로만 보고 적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서 한국사상에 적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주인장의 차후 연구주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인만큼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한번 주인장의 생각을 정리할 것을 다짐하고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